삼천이백쉰아홉 번째
레테의 강에 놓은 다리
우리는 끝내 어디로 가는 걸까. 그리스인들은 어딘가에 명계冥界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하데스 신이 지배하는 그 명계에 가기 위해서는 다섯 개의 강을 건너야 한답니다. 아케론 Acheron이라는 고통의 강과 코키투스 Cocytus라는 슬픔의 강, 스틱스 Styx라는 증오의 강을 건너서, 네 번째 강 플레게톤 Phlegethon에서 불로 영혼이 정화되고, 다섯 번째 레테 Lethe의 강을 건너야 마침내 모든 것을 잊은 망자가 된답니다. 그래서 레테는 ‘망각의 강’으로 불립니다. <국가론>에서 플라톤은 이승에서 올바르고 지혜롭게 살아야 천국에서 천 년을 행복하게 살고서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살 인생도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다며 ‘운명 선택설’과 ‘영혼 회귀설’을 소개합니다. 단테의 신곡에서도 연옥 편에서 단테가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며 활력을 얻어 천국으로 오른다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든 못된 기억, 편견과 아집, 고정 관념을 망각의 강에 흘려보내고 깨끗이 비워야 맑게 정화된 영혼의 그릇에 새로운 삶의 가치들을 담을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네 옛 노인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데드봇 dadbot’이라는 인공지능이 태어났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아버지 휴대폰에 전화를 겁니다. 그러면 생전의 아버지처럼 반갑게 맞아주시고 대화를 나눕니다. 데드봇에 아버지의 음성을 입력해 놓은 겁니다. 미국의 데드봇 기업 히어애프터 Hearafter 창립자 제임스 블라호스는 이렇게 삶과 죽음을 갈라놓은 레테의 강에 다리를 놓았습니다. 레테의 강을 건너 이승에서의 온갖 것들을 지우고 맑게 정화된 영혼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다리를 놓다니, 헛된 짓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상처한 친구에게 하나쯤 사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