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 동원하면 공멸이죠...... 조선은 영혼까지 끌어모은 한타가 결국은 막힐테니 나라가 결딴날테고 명은 건국초기에 안그래도 원의 잔당들 정리하기도 빡빡한데 뜬금없이 20만이나 동쪽에서 달려오면 나라 내부가 혼파망으로 급전직하해서 유로파의 따밍처럼 알록달록해졌을겁니다.
연왕이 경사에 점차 육박해오자, 황제가 요동총병관(遼東總兵官) 양문(楊文)에게 명하여 거느린 부(部) 10만을 거느리고 철현을 합쳐, 연의 후방을 끊게 하였다. 양문의 군대가 직고(直沽)에 이르러, 연의 장수인 송귀(宋貴)에게 패배하여, 단 한사람도 제남에 이르지 못했다. ─ 명사 철현전 출처)http://m.cafe.naver.com/ArticleRead.nhn?clubid=17994410&menuid=122&articleid=47859&query=2%EC%B0%A8%20%EC%9A%94%EB%8F%99%20%EC%A0%95%EB%B2%8C
생산활동 포기하고 청장년층 몽땅 긁어모으면 모을 수는 있겠죠. 전근대의 통치자가 할만한 행동은 아니지만 초한전쟁 때 소하가 유방 지원하느라 애랑 노인까지 동원한거 생각하면 불가능은 아님. 그렇게 끌려나와서 보급도 못 받으며 요동까지 가라고 할 경우 전방에서 반란 터질 가능성은 100%겠지만. 또 위화도 회군을 통해 탄생한 국가에서 똑같은 꼴을 당할 짓을 할 것 같지도 않지만요.
조선군 20만을 요동에서 묶어버리고 역으로 산둥에서 명 수군이 인천이나 충청도 지역을 향해 역공해버릴 여력은 충분한 나라가 명나라입니다 ㅎ 참고로 명초 어느시기냐가 문제지만 요동에 주둔한 병력만 10만에서 최대 19만 수준 이라고 합니다 그 만한 병력이면 조선 20만대군 묶거나 장수역량에 따라 역으로 회전에서 완파해버리기엔 충분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마네일단 조선 태조6년~ 7년인 1397~8년 삼봉 정도전이 계획한 요동정벌시 조선의 동원예정군은 10만가량입니다 즉 조선 초기 태조시기에 조선이 동원가능한 원정군의 규모는 대략 나오실거고요 20만은 아마 고려 우왕 시기 최영이 계획한 요동정벌군 처럼 닥닥 긁어모아야 가능할겁니다 조선시대까지 한국사에서 한번에 10만대군 이상이 소집된 사례는 고당전쟁에서 주필산에서 격돌한 17만이나 여요전쟁에서 통주에서 격돌한 고려군 30만등 말 그대로 방어전에서 모인 사례뿐이고 이런 사례도 정말 드뭅니다 그걸 감안하셔야 합니다 중국이니까 원정군 20만이 만만해보이는거죠
오히려 너무 많이 보내면 더욱 힘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수 양제 전투병력만 113만을 믿는 이유가 그렇게 보냈으니 나라가 순폭망하지... 논리거든요. 오히려 전투병 + 비전투병 113만 정도로는 수나라 망하게 하기 힘들다고 보기에 그렇습니다. 전투병 113만 + 비전투병 200만명 정도는 말아먹어줘야 옛 천조 대수제국이 멸망한 이유가 더욱 타당해 보입니다. 실제로 수양제가 자랑하기를 전투병만 200만명을 동원했다고 자랑하고 다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수나라 그 당시 국력이 어마무시하게 강력할 시기였습니다. 의외로 동양에서는 인정 못받지만 서양에서 인정하는 황제가 수 문제죠. (중국 재통일 + 경제 발전 등
위 내용들과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요즘 이글x스 나 네이버 역사 카페등에 마오쩌둥의 대실책들에 대한 글들이 올라와 읽는데요. (이에 대한 책도 번역되어 나왔구요) 1980년대 초까지 중국의 경제는 세계에서 최빈곤 수준이었고, 건국후 마오 주석의 여러 실정들이 문혁까지 몇십년 기간이 있었습니다. // 윗댓글에 달린것 처럼 300년 가까이의 분열시기를 종식한 홍농 양씨의 수조는 창업자의 바로 아들대에 대규모 원정 실패와 대운하 건설(은 그렇다치고) 아무튼 화려한 건축 짓기등을 하여 광이는 반란이 여기저기 터지는 와중에 뒤졌고 결국 수조는 얼마못가서 망했습니다. 근데 왜 마오의 중국은 그렇게나 초절정 실패를 했습에도
첫댓글 글쎄요, 조선은 그 정도 병력 보급을 감당 할 수 있을지;;
끌어들이면서 해군 동원해 보급선만 끊어도 자멸했을 겁니다. 5만~10만 예상합니다.
20만 동원하면 공멸이죠......
조선은 영혼까지 끌어모은 한타가 결국은 막힐테니 나라가 결딴날테고
명은 건국초기에 안그래도 원의 잔당들 정리하기도 빡빡한데 뜬금없이 20만이나 동쪽에서 달려오면 나라 내부가 혼파망으로 급전직하해서 유로파의 따밍처럼 알록달록해졌을겁니다.
20만명으로 텔레포트로 주원장 바로잡고 우주모항으로 북경하고 남경 후두려패면 항복문서에 서명할수잇습니다.
연왕이 경사에 점차 육박해오자, 황제가 요동총병관(遼東總兵官) 양문(楊文)에게 명하여 거느린 부(部) 10만을 거느리고 철현을 합쳐, 연의 후방을 끊게 하였다. 양문의 군대가 직고(直沽)에 이르러, 연의 장수인 송귀(宋貴)에게 패배하여, 단 한사람도 제남에 이르지 못했다. ─ 명사 철현전
출처)http://m.cafe.naver.com/ArticleRead.nhn?clubid=17994410&menuid=122&articleid=47859&query=2%EC%B0%A8%20%EC%9A%94%EB%8F%99%20%EC%A0%95%EB%B2%8C
정난의 변 직전 시점에서 연왕의 군대를 제외해도 십만단위로 요동 지역에 군대를 주둔시켜놓은 것 같더군요. 킹갓이성계가 수를 무시하는 신묘한 계책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동원은 고사하고 요동에 주둔한 군대와 몇번 충돌하고 깨갱하는 수준이었을 듯.
조선의 20만 군대라니...신스인가요? ㄷㄷ
그리고 요동엔 연왕이 있었다
임란때 십만도 다 못모은거같은데 20만은 가능함?
생산활동 포기하고 청장년층 몽땅 긁어모으면 모을 수는 있겠죠.
전근대의 통치자가 할만한 행동은 아니지만 초한전쟁 때 소하가 유방 지원하느라 애랑 노인까지 동원한거 생각하면 불가능은 아님.
그렇게 끌려나와서 보급도 못 받으며 요동까지 가라고 할 경우 전방에서 반란 터질 가능성은 100%겠지만.
또 위화도 회군을 통해 탄생한 국가에서 똑같은 꼴을 당할 짓을 할 것 같지도 않지만요.
임란기 계사년에 전국에 퍼진 군대가 의병포함 17만으로 기억합니다. 뭐 10만은 넘김...
@????자 방어전하고 원정은 다르죠. 보급의 난이도가 다릅니다. 원정군은 현실적으로 10만을 못넘길겁니다. 조선 초기라는 걸 정확히 어떤 때로 잡느냐에 다르겠지만요.
요동에서 막히다가 몰려오는 지원병에 아작나버릴듯
위화도 회군때 가정이지만 참고하는것도 재미있을거 같음http://m.cafe.daum.net/shogun/1Db/6580?svc=cafeapp
조선군 20만을 요동에서 묶어버리고 역으로 산둥에서 명 수군이 인천이나 충청도 지역을 향해 역공해버릴 여력은 충분한 나라가 명나라입니다 ㅎ 참고로 명초 어느시기냐가 문제지만 요동에 주둔한 병력만 10만에서 최대 19만 수준 이라고 합니다 그 만한 병력이면 조선 20만대군 묶거나 장수역량에 따라 역으로 회전에서 완파해버리기엔 충분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이건 단순히 시기를 두루뭉술하게 잡아서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당대 조선군의 전력과 국력 그 군을 지휘할 가능성이 높은 지휘관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명도 그시대 어느정도 전력을 동원할지 어느정도 피해를 입을지 대략 견적이 나올테니까요
@마네 일단 조선 태조6년~ 7년인 1397~8년 삼봉 정도전이 계획한 요동정벌시 조선의 동원예정군은 10만가량입니다 즉 조선 초기 태조시기에 조선이 동원가능한 원정군의 규모는 대략 나오실거고요 20만은 아마 고려 우왕 시기 최영이 계획한 요동정벌군 처럼 닥닥 긁어모아야 가능할겁니다 조선시대까지 한국사에서 한번에 10만대군 이상이 소집된 사례는 고당전쟁에서 주필산에서 격돌한 17만이나 여요전쟁에서 통주에서 격돌한 고려군 30만등 말 그대로 방어전에서 모인 사례뿐이고 이런 사례도 정말 드뭅니다 그걸 감안하셔야 합니다 중국이니까 원정군 20만이 만만해보이는거죠
@마네 그 중국도 통일왕조 전성기가 아니면 원정군 20만대군은 만만한 숫자가 아닌게 함정이지만요;;;
오히려 너무 많이 보내면 더욱 힘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수 양제 전투병력만 113만을 믿는 이유가 그렇게 보냈으니 나라가 순폭망하지... 논리거든요.
오히려 전투병 + 비전투병 113만 정도로는 수나라 망하게 하기 힘들다고 보기에 그렇습니다.
전투병 113만 + 비전투병 200만명 정도는 말아먹어줘야 옛 천조 대수제국이 멸망한 이유가 더욱 타당해 보입니다.
실제로 수양제가 자랑하기를 전투병만 200만명을 동원했다고 자랑하고 다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수나라 그 당시 국력이 어마무시하게 강력할 시기였습니다.
의외로 동양에서는 인정 못받지만 서양에서 인정하는 황제가 수 문제죠. (중국 재통일 + 경제 발전 등
이게 정답이지요. 너무 많이 보낸게 이 당시 수나라의 패착이었어요.
홍무시기에 20만으로 북평이나 점거할수 있을런지...
위 내용들과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요즘 이글x스 나 네이버 역사 카페등에 마오쩌둥의 대실책들에 대한 글들이 올라와 읽는데요. (이에 대한 책도 번역되어 나왔구요) 1980년대 초까지 중국의 경제는 세계에서 최빈곤 수준이었고, 건국후 마오 주석의 여러 실정들이 문혁까지 몇십년 기간이 있었습니다. // 윗댓글에 달린것 처럼 300년 가까이의 분열시기를 종식한 홍농 양씨의 수조는 창업자의 바로 아들대에 대규모 원정 실패와 대운하 건설(은 그렇다치고) 아무튼 화려한 건축 짓기등을 하여 광이는 반란이 여기저기 터지는 와중에 뒤졌고 결국 수조는 얼마못가서 망했습니다. 근데 왜 마오의 중국은 그렇게나 초절정 실패를 했습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