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이백예순 번째
내 얼굴
영화배우 찰스 브론슨은 자기 얼굴에 대해 “내 얼굴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된 광산처럼 생겼다.”라고 평가했답니다.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다가 거기에 낯선 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나’는 누구일까. 스스로 자 自 자의 갑골문 자형은 사람의 코를 본뜬 것이었답니다. 중국인은 자신을 가리킬 때 손으로 자기 코를 가리킨다는데, 얼굴 중에서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코밖에 없기 때문일까요? 보인다고는 하지만, 보일 듯 말 듯 하지요. 우리가 ‘나’를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얼굴로 남과 상통합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얼굴로 남을 대하고 잘 알지 못하는 상대의 얼굴을 보며 교감합니다. 그러니 얼굴은 타인을 위한 것이기에 여성들은 열심히 꾸미기에 바쁩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얼굴에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마는 심, 코는 비, 왼뺨은 간, 오른뺨은 폐, 턱은 신의 부위여서 얼굴을 보면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산 선생은 “서당에 다니는 사람은 그 상이 아름답고, 시장바닥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상이 검고, 짐승 치는 사람들은 그 상이 헝클어졌고, 골패판이나 투전판에서 어울리는 사람들은 그 상이 으르렁거리는 짐승 같은가 하면 또 약삭빠르기도 하다. 대개 익히는 것이 오래되면 성품도 날마다 따라서 변하니, 마음속에 간절한 것은 바깥으로 표현되는 법이라, 상은 그래서 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그 얼굴에 나타난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니 잘 살아야 합니다. 부자로, 출세한 사람으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만나면 즐거움이 퍼지는 얼굴로 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수시로 변하는 마음,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니 얼마나 인격을 쌓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