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안양에 사는 처형네집에 다녀왔다
처형네는 몇 년전 미국동부로 이민갔는데 처형만 영주권취득이 안되어 1년에 한번씩
국내에 몇 달씩 머물다간다. 이번에는 90이 넘으신 시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월세방에서
둘이 생활하고 계신다. 아내는 그런 처형이 안되보였는지 김장김치를 갇다주자고 하여
동행하게 되었다. 처형이 살고있는 아파트에 도착해서 먼저 사돈어르신에게 인사를 드렸는데
처음엔 나와 아내를 못알아보셔서 누구의 아들이라고 말했더니 금방 알아채리신다.
그리고 지금도 천안에 사냐. 승진은 했냐. 형은 잘있냐. 동생은 외국에서 아직 안들어왔냐.
아버지 산소에는 자주 가냐는 둥 한참을 질문하셨다. 처형의 시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의
초등학교 6년 선배되시는 분이고 우리부부의 인연을 맺어주신 분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아내는 서울에 사는 언니집을 자주 놀러갔었고 사돈처녀를 참하게
보시고 고향후배인 아버지에게 중매를 서신 것이다. 내게는 사돈어르신이라기보다는
아버지의 고향선배님으로 이미지가 더강하시다.
처형과 아내가 짐을 정리하는 사이 나와의 대화는 계속이어졌다.
올해 92세가 되신다는데 몇 년전 낙상해서 거동이 불편하신걸 제외하면 얼굴에 검버섯도 없고
안경없이 신문도 보시고 아주 정정하시다. 고향에서 내동생이 자네 아버지를 자전거에 많이
태워줬었는데 자네 아버지는 너무 일찍 죽었다며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셨다.
향우회수첩을 꺼내서는 돌아가신분들 말씀을 하시고 이제는 거의다 죽고 나만 남았어 하신다.
향우회에는 나가냐 하시길래 2001년 봄 아버지 돌아가신후 수고하신 고향어르신들에게
식사대접을 한번해드린적 있는데 그후론 못가봤다하니까 고향과의 끈을 놓지말라고 하신다.
잠시후 아내가 중매를 잘서주셔서 행복하게 잘살고있어 고맙다고 하니까 자신이 세명을 중매했는데
모두 잘살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돌아오는길에 아내는 할아버지를 언제 또볼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아쉬워했다. 내년 1월엔 처형과 어르신 두분다 미국으로 영주이민가게 되시기 때문이다.
아내에겐 중매를 서준 사람이기 이전에 하나밖에 없는 언니를 친딸처럼 잘 돌보아주시는
고마운 분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고향의 의미는 없다. 고향하면 어린시절을 보낸 용산구 청파동과
원효로거리, 한강에서 멱감던 추억이 떠오르지만 그곳에 가봐야 아무도 없다.
어릴 때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을 앉혀놓으시고 너희들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평안도사람의 후예이니 맹호출림의 기상을 잊지말라고 하신 적이 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땐 북한소식에 남달리 귀울이곤 했지만 이젠 사는데 지쳐서인지
나이들어가서인지 별 감흥이 없다. 다만 죽기전에 가능하다면 아버지가 생전에 그토록
가고싶어하셨던 고향땅에 한번 가고싶은 바람이 있다
2011.12.6 씀
윗글은 10여년전 아버지의 고향선배이자
우리부부의 인연을 맺게 해주신 사돈어르신을
뵙고나서 쓴글입니다
그리고 몇년후 사돈 어르신은 미국에서 96세의 연세로
두아들에게 유언까지 다하시고 다음날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합니다
내일까지 근무하면 4일 연휴라
오늘 출근했지만 사무실은 약간 들뜬 분위기입니다
신정때 한탄강너머에 있는 부모님묘소와
예산에 있는 장인묘소도 미리다녀왔기에
명절되도 딱히 갈곳이 없어
아내와 신혼을 보냈던 영월에 다녀올까 합니다
첫댓글 맹호출림, 평안도의 기상이 그산님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군요.
이북 분들은 그 사투리의 어감이 강해서인지
성품도 강직하고 추운 겨울의 날씨처럼 깨끗하고 쨍한 느낌을 받습니다.
평생을 두고온 고향을 그리워하셨을 그산님 아버님,
그 부모님의 땅을 그산님이 밟으실 그날이 언제가 될지,
진짜 그 좋은 날이 언제 올지, 요즘 돌아가는 정세를 생각하니 답답하네요.
그산님 내외분께 좋은 말씀 해주시고 미국 이민 가셔서
96세까지 장수하시고 평안히 영면에 드신 그 어르신, 존경스럽습니다.
명절에 내외분 영월 나들이 잘 다녀오세요.
저희는 포천 아주버님 댁으로 명절 쇠러 갑니다.
달항아리님 반갑습니다
평안도는 말보다 행동이 빠르고 여차하면 박치기로 받아 버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해방전 14살에 서울에 유학오셨다 고향에 가지 못하셨지요
그리고 내대신 할아버지 산소에 술한잔 올려드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사돈어르신은 일본유학까지 하신 엘리트시고 동생이 아버지와 동창이고
저희집과는 인연이 많으신 분입니다
포천 아주버님댁에 잘다녀오시고 즐거운 설명절되시기 바랍니다 !
어쩜 이렇게 잔잔하게 글을 잘 쓸수가 있을까
모나지도 않고 티나지도 않고 자랑질도 않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담백한 콩물 한그릇 마신
기분입니다 언제나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세요
어른들과 잘지내는 남자는 단연코 사윗감 신랑감 일순위입니다
신의 직장에서 정퇴한 사람도 이렇게 일하면서 열심히 사는데 이생망은 그저 놀러다닐 궁리만 합니다
동거할매가 적금탄돈 소액을 예금한다해서 쫌있음 쓰지도 못할 돈 그냥 다쓰자 했다가 아구창 날아갈뻔했어요 얼얼~ 합니다^^
몸님 반갑습니다.
저는 글솜씨가 없어 재밌게 쓰지 못하고 있었던 사실을 생각나는대로 쓸뿐인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들은 얘기를 잘들어드리면 좋아하시기에 저를 편하게 생각하시는것 같습니다
재직중 재테크실력이 없어 퇴직후에도 집사람 고생시키고 있습니다
평일에도 부인과 함께 여해다니고 맛집 찾아다니시는 몸님이 부러울뿐입니다
명절이 가까워 오니 찾고싶은 분들이 생각나네요.
생각뿐이 아니라 실제 만났으니
많이 기뻤겠어요.
선배님반갑습니다
고향어르신을 만난것은 10여년전의 일이고
명절이 다가오니 그때의 일을 떠올려봤습니다
명절이나 고향이나 이제 수명을 다해가는 단어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 세대가 떠나고 나면 디지털과 AI 가 모든 걸 보여주고 해결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괜한 걱정이 됩니다 ^^
반갑습니다.
저역시 양가 부모님이 모두 안계시니 성묘는 미리 다녀오고
아내와 편히 쉬고있습니다
이제 명절은 연휴이고 해외여행 갈수 있는 기회로 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영월 다녀오시면 후기도 올려주실거죠?
기대해봅니다^^!!!
페이지님 반갑습니다
영월은 젊은 시절 10년을 살았던 곳이라 추억이 많아
자주 갑니다. 특별히 원하시니 올려드리겠습니다 ^^!!!
그 산님 글은 늘 우리들의 잃어 버리고 사는 고향의 이야기입니다 언제나 아련한 그리움을 눈에 담고 읽습니다 연휴에 부인과 영월 여행 가시는군요 저는 갈 곳도 가고싶은 곳도 없답니다 ㅎ
반갑습니다
미화아저씨 퇴근후 홀로 주차장 쓰레기줏다 지금 들어왔습니다
현대인들에겐 이제 이제 부모님이 안계신 고향은 의미가 없을것 같습니다
강릉은 어딜가도 다 절경이니 소금강이나 가까운 해변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
청파동, 원효로하니 어렸을때 생각이
납니다. 숙대와 큰길로 나오면 금성극장, 성남극장도
있고..
반갑습니다
금성극장과 성남극장, 그리고 숙대앞과 효창공원 자주 다녔던 곳입니다
66년(?)인가 맨발의 아베베가 온다해서 금성극장 육교위에서
직접 본적도 있습니다 ^^
@그산 이곳 카페에 수수님은 효창국교 선배시고
벙이님은 효창국교 1년 후배입니다.
용산에 사셨던 분들이 이곳에 제법 있습니다.
@비온뒤 수수님이 선배님이란건 지난번에 알았고
저는 효창48회입니다. 연세를 보니 저보다 4년정도
선배님인것 같습니다
제동생은 51회인데 그뒤 폐교했다 합니다
@그산 그산님도 효창 나오셨군요...반갑습니다.
회수는 잊어먹고 66년 2월 졸업생입니다.
숙대캠퍼스로 바뀌었습니다.
@비온뒤 선배님 반갑습니다
제가 70년 2월 졸업했고 48회이니
44회이실겁니다
@그산 그렇군요..감사합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소주나 한잔해요...
@비온뒤 넵 감사합니다 ^^
10년 전의 글임에도 마치 엊그제 있었던 것처럼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사돈 어른께서 천수를 누리시고 편히 가셨다니 그것도 복이네요.
저도 해외에서 오랜 기간 디아스포라로 살았기에 이런 글 읽으면 다르게 읽힌답니다.
아버님이 쓰셨다는 비문을 읽어보니 그산님 문장력이 부전자전인 듯합니다.
인내심 강한 평안도 후손에다 선비같은 그산님 즐거운 명절 되시길요.ㅎ
유현덕님 반갑습니다
2011년 12월초 제블로그에 쓴글인데 명절이 되니 부모님 생각이나서 올려봤습니다
처형의 시아버지를 달리 부를말이 없어 사돈어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사시면서 고향을 많이 그리워하셨나 봅니다
아버지는 어릴때부터 한학을 배우신 분이고 저는 문장력이라 할것도 없이
그냥 생각나는대로 써본 글입니다
정성가득하신 댓글 감사드리며 행복한 설연휴되시기 바랍니다
서울
사람들 고향에 대한
애틋함은 덜하지요
시골 출신인
저와 준 서울 출신
아내는
그래서 자주
다툼니다
향우회
동창회
이런 모임 이해를
안합니다
에고 ᆢ
반갑습니다
말씀대로 서울사람들은 고향이 모두 개발되어 어릴때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초등학교동창회도 따로 없고 아버님고향 2세끼리 모임은 있습니다
매방산님은 찾아갈 고향도 향우회도 있으니시니 부럽습니다
행복한 설연휴되시기 바랍니다
이번 명절에 아내와 신혼을 보냈던 영월땅 잘 댕겨오시기 바랍니다.
넵 민순님도 행복한 설연휴되시기 바랍니다 !
10년 전 글이군요.
저희 부모님 고향도 이북입니다.
평안남도 "성천"이란 곳인데..
생 전 늘 고향을 그리워 하셨습니다.
통일이 되면 좋겠지만..
제 생전 가보지는 못 할 것 같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김포인님 반갑습니다. 2011년 12월초에 썼고 사돈어르신은 2015년 96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제아버님 고향이 평남 성천군 능중면인데 김포인님 아버님도 평남 성천이신가 봅니다
저는 대학시절 명예성천군수님한테 장학금도 받은적이 있어
첫월급일부를 성천장학회에 기부한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