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30일 (금)
제목 :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
오늘의 말씀 : 누가복음 5:27-39 찬송가: 289장(구 208장)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중심 단어: 레위, 죄인, 금식, 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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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의 상징
31절: 건강한 자-의인/ 병든 자-죄인/ 의사-예수님
34절: 혼인집 손님들-제자들/ 신랑-예수님
36절: 새 옷 한 조각-예수님/ 낡은 옷-유전과 관습
37절: 새 포도주-예수님/ 낡은 가죽 부대-율법
도움말
1. 레위(27절): ‘연합’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세리 마태의 본명이다.
2. 세리(27절): ‘세금을 모으는 자’를 뜻한다. 세리는 세금을 징수해 로마에 상납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착복했기에 유대 사회에서는 매국노요, 죄인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3. 금식(33절): 종교적 목적으로 일정 기간 음식을 절제하거나 완전히 끊는 것을 말한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주 2회 금식했다.
말씀묵상
새 포도주를 마신 레위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보시고 제자로 부르셨습니다(27절). 레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기쁨으로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28-29절). 당시에 세리는 죄인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를 지적하며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30절). 유대교 관습에 따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죄인과 식사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세리와의 식사를 구원 사역의 한 과정처럼 묘사하셨습니다. 레위와 먹고 마시는 일은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복음)를 레위에게 공급하시고, 레위는 새 포도주를 마시는 사건이었습니다.
신랑과 기뻐하는 제자들
바리새인들은 또한 요한의 제자와 비교하며, 예수님의 제자들이 먹고 마시는 일을 트집 잡았습니다(33절). 이에 예수님은 3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비유는 신랑의 비유입니다(34-35절). 신랑은 예수님이고, 혼인집 손님들은 제자들입니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같이 즐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예수님과 제자들이 같이 먹고 마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두 번째 비유는 새 옷 비유입니다(36절). 새 옷은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이고, 낡은 옷은 유대교의 유전과 관습입니다. 새 옷과 낡은 옷이 하나일 수 없듯이 복음과 유대교 관습은 하나일 수 없습니다. 세 번째 비유는 포도주와 부대 비유입니다(37-39절). 새 포도주는 예수님이며, 낡은 가죽 부대는 율법입니다.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신랑 되신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관습을 얻었음을 의미합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예수님의 비유의 상징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세리를 바라보는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관점은 각각 어떻게 다릅니까(30, 32절, 메시지 참조)?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관습이나 편견 없이 사람들을 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2. 여러분은 복음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부름에 베드로는 생업을 포기하고 배와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의 부름에 마태도 좋은 직업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다.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세리라는 직업은 사람들에게 ‘매국노’ ‘죄인’ 취급받는 직업이었지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 좀 어떠냐 돈 잘 버는 직업인데 어쩌면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면서 속으로 부러워하는 직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레위는 이 좋은 직장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을까?
레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을 불러주신 것이 너무 감사해서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벌인다.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그러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 모습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방하기 시작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님이 그들을 향해 말씀하신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그러자 이 번에는 금식의 문제로 따져 묻는다.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지적하는 소리를 어떻게 들었을까?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잘한 일인가? 우리가 지금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이 나를 선택하여 부르신 것인가? 내가 예수님을 선택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가는 것인가?...
율법과 전통을 철저하게 지키며 그것이 전부인 사람들이었다.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고 기록하는 성경 박사들이다. 하지만 그런 자들이 ‘자기 의’에 빠져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리와 제자들이 함께 어울려 음식 먹는 것을 보고 정죄한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는 자신들은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왜 너희들은 우리처럼 금식하지 않느냐고 정죄하고 있다. 결국 이것은 그들의 선생이었던 예수님을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금요세미나가 시작되는 날, 금요치유집회 마지막 날 주님은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길 원하시는가?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이 맘에 들지 않아 거부하려고 애를 써 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더 사로잡히게 된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자기 의’라는 견고한 틀을 가지고 따지는 바리새인, 서기관 앞에 예수님은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들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고 있다고 믿는 분들 앞에서 또다시 버리라고 한다면 과연 들을까?...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기도에 힘쓰며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성실히 목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과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라고 말하면 들을까?
그렇다 우리에겐 ‘묵은 것’이 좋다. 바꾸고 싶지 않다. 익숙한 것이 좋다.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은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전하는 것이 이제는 기쁨보다 비방을 받을까 두렵다. ‘자기 의’로 정죄하는 자들 앞에 서야 한다. ‘건강한 자’ 앞에서 말씀을 전해야 한다. 묵은 것이 좋다고 하는 자들 앞에서 새것을 마시라고 해야 한다. 과연 누가 듣고 누가 아멘 하겠는가?
그럼에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빈자리가 두렵다. 아멘 없는 반응이 두렵다.
왜 예수님을 따르는데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종에게 왜 또 버리고 따르라고 하십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이 기쁨이 아니라 무거운 짐처럼 느껴집니까? 저도 박수받고 싶고, 제 귀에 아멘 소리를 듣기 원합니다.
하지만 성령이 주신 감동을 따라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이 말씀을 붙들고 시작하겠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먼저 제 심령이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