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 ‘죽기 살기로’라는 생존법
TV 채널을 돌리다가 ‘방랑 식객’이라는 글자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이 이름으로 불리던 이가 얼마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손꼽히는 요리사라는 것만 알고 있었기에 궁금한 마음이 일어 조금만 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방랑 이유가 궁금했다.
눈썹이 짙고 미소가 인상적인 방랑 식객 임지호(1956-2021.06.12. 심장마비 별세, 향년 65세)는 ‘밥 정(情)’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도 방랑 중이었다. 과거 급제를 위해 자신의 조상을 욕했던 김삿갓 같은 사연이 있었던 걸까. 잠깐 보려 했는데 결국 다 보고 말았다. 혼자 울컥하면서.
그에게도 아픈 사연이 있었다. 아들을 원했지만 줄줄이 딸 넷을 낳았던 아버지는 대를 잇기 위해 여자를 얻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도 아들을 얻지 못하자 떠났는데 그 사이에 애가 들어섰고 그가 임지호였다. 세 살 때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게 됐지만 안타깝게도 생모는 아이를 데려다 주고 돌아가던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삶이 순탄할 수 없었다. “주워 온 애”라는 말이 그를 옥죄었다. 세상의 시선이 불편해 혼자 있기 시작했고 가출까지 했다. 그런 그를 언제나 기다려주고 품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길러준 어머니였다. 왜 낳지도 않았으면서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느냐고 딸이 걱정하자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낳은 아들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가 가출했다가 돌아왔을 때도 그 어머니는 눈물을 쏟았다.
그는 그걸 보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자신의 운명에 눌려 사느라 보답을 못 했다. 그래서 철이 든 후 “죽기 살기로 살았다”고 했다. 어머니의 눈물 값을 하려고 말이다. 방랑하다가 두 어머니와 비슷한 또래 이들에게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로 밥상을 차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에” 방랑했던 것이다.
삶 자체가 여운이 남지만 특히 그가 남긴 “죽기 살기로 살았다”는 말이 묘하게 잊히지 않는다. 그랬으니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요리사가 되었고 자신에게 씌워진 굴레를 어느 정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의외로 남다른 성공을 한 이들 중엔 바로 이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바꾼 일이 많다.
우리는 대개 막다른 골목 같은 상황이 되어서야 물불 안 가리고 ‘죽기 살기로’ 노력하지만 성공한 이들은 이 ‘죽기 살기로’를 좀 다르게 사용한다. 발등에 불 떨어진 후에야 안간힘을 쓰고 몸부림을 치는 대신 위기가 오기 전 미리 그렇게 한다. 여유가 있으니 아등바등하지 않을 수 있고 목표가 명확하니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같은 표현을 쓰지만 본질은 매한가지다.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탁월한 생존법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잘만 사용하면 삶을 바꿀 수도 있는, 두 번은 고통이겠지만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 아닌가 싶다.
▲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청와대에서 미팅을 가졌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남자들의 관심사와 그들이 술잔을 잡고 나눈 자리였다. 이날 음식을 책임진 사람은 청와대 주방장도, 김정숙 여사도 아닌 자연주의 요리 연구가 임지호 씨다. 산과 들, 바다 등 전국 방방곡곡의 자연을 소재로 요리에 맛과 멋을 담아 ‘방랑식객’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그는 이날도 접시 없이 청와대 뒷산과 녹지원에 있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이용해 그 위에 안주를 담아냈다.(2017년 9월)/ 40여 년간 전국을 떠돌며 자연에서 식재료를 찾아 요리를 만드는 ‘방랑식객’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2006년에는 외교통상부 장관 표창을 받으며 ‘한국 요리 외교관’으로 불리기도 했던 요리연구가 故 임지호 씨 ⓒ 사진 동아일보 최혁중 기자
“물, 바람, 불, 빛을 담은 우주의 재료에 영혼을 보태는 작업, 그것이 요리다” -임지호
임지호가 운영했던 식당 ‘산당’에는 ‘음식은 종합예술이고 약이며 과학입니다’라는 글이 현판에 새겨져 있었다. 그가 음식을 바라보는 관점이였다. 예술이고, 과학이다. 현재 식당은 문을 닫았다.
▲ 황열병 옮기는 페루의 사베테스모기. 남미 에콰도르에서 사진가의 손가락에서 흡혈하는 모습 촬영. 길 위젠, 2021 올해의 야생동물 사진가 공모전 출품작, 런던 자연사박물관 제공.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서광원의 자연과 삶, 서광원(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동아일보, 2021년 9월 2일(목)/ Daum∙Naver 지식백과, 사진과 글: 이영일∙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고봉산 정현욱 님
죽기살기로 살았다는 표현을 애둘러 말하자면 온갖 어려움 극복하고 치열하게 살았다는 의미인데 이제 성공해서 앞날이 창창한데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안타깝네요
임지호 세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음식은 종합예술이고 약이며 과학이라고 칭한걸 보면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들풀
옛날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해
살게 되었습니다.
둘은 항상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소는 사자를 위해 날마다
제일 맛있는 풀을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사랑하는
소를 위해 참고 먹었습니다.
사자도 매일 소를 위해 가장
연하고 맛있는 살코기를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고기를 먹지 못하는 소도 괴로웠지만, 참고 먹었습니다.
하지만, 참을성에는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둘은 마주 앉아 이야기 합니다.
문제를 잘못 풀어 놓으면, 큰
사건이 되고 맙니다.
결국 소와 사자는 크게 다투고
끝내 헤어지고 말 았습니다.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한 말은
"난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어" 였습니다.
소가 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자가 사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다면..
그들의 세상은 혼자 사는 무인도
소의 세상 사자의 세상일 뿐입니다.
나 위주로 생각하는 최선,
상대를 못 보는 최선, 그 최선은 최선일수록 최악을 낳고 맙니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만 어쩌면 그것도 나 위주로 생각하고,
상대방을 보지 못하는 최악의
최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