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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8일 주일 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교회는 전교 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와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고자 1926년부터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일의 앞 주일을 ‘전교 주일’로 지내며, 신자들에게 교회 본연의 사명인 선교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오늘의 특별 헌금은 교황청 전교회로 보내져 전 세계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는 데 쓰인다.
오늘은 전교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은 선교 사명을 깨닫고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행동합시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레오 14세 교황 성하의 2026년 제100차 전교 주일 담화
(2026년 10월 18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선교 사명으로 일치하여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2026년 전교 주일은 비오 11세 교황께서 제정하신 이래 100주년을 맞이하는, 교회에 매우 뜻깊은 기념일입니다.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선교 사명으로 일치하여’를 이날의 주제로 선정하였습니다. 저는 희년에 이어 온 교회가 성령 안에서 기쁨과 열정으로 선교 여정을 계속해 나가도록 격려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마음, 공동체들의 화해, 그리고 관대함과 신뢰로 기꺼이 협력하려는 모든 이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고 선교 사명으로 일치하여 있음을 묵상하며, 교회 역사의 이 “새로운 선교 시대”에 “우리 안에 선교 소명의 불꽃을 되살리고” 복음화에 헌신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 은총의 인도와 영감에 우리 자신을 내어 맡깁시다(선교 분야와 이주민들의 희년 미사 강론, 2025.10.5. 참조).
1.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일치하는 선교 제자들
그리스도와 이루는 일치의 신비는 선교 사명의 핵심에 자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앞두고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이 말씀에서는 예수님의 간절한 바람뿐만 아니라 그분의 제자 공동체인 교회의 정체성도 드러납니다. 교회의 정체성은 바로, 삼위일체에서 비롯되고 삼위일체를 통하여 계속 유지되는 친교, 모든 인간의 형제애와 모든 피조물과 이루는 조화에 이바지하는 친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관행이나 사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삶, 그리스도께서 성령 안에서 아들로서 아버지와 이루시는 그 관계에 동참하는 삶입니다. 이는 포도나무의 가지처럼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며 성삼위의 생명 안에 온전히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요한 15,4 참조). 이 일치가 믿는 이들의 상호 친교를 낳고 모든 선교 열매의 원천이 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가르치신 대로, 참으로 “친교는 선교의 원천이고 결실”(교황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Christifideles Laici], 32항)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의 첫째가는 선교 책임은 교회 구성원들의 영적 형제적 일치를 새롭게 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상황에서 갈등, 양극화, 오해, 상호 불신을 마주합니다. 이러한 일이 심지어 우리 공동체들 안에서 일어날 때 우리의 증언은 힘을 잃고 맙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맡기신 복음화 사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화해를 이루고 친교를 열망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의 공동 기념에서 생겨나는 기회들에 힘입어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와 함께 교회 일치 노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어느 것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이 우리의 시선을 언제나 주님께 고정하도록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주님께서는 참으로 우리 삶과 공동체의 중심이 되시고 모든 말과 행동과 인간관계의 중심이 되시어 우리가 경탄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이끄실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그리고 성사의 은총에 힘입어, 우리는 교회의 살아 있는 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이후의 교황 교도권,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에서 제시된 근본 주제들을 다루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사실, 바오로 성인의 말씀처럼,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2코린 4,5)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하느님의 아들 나자렛 예수님의 이름과 가르침, 그분의 생애와 약속, 그분의 나라와 신비를 선포하지 않고서는 참된 복음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22항). 온 인류에게 다다르기 위한 진정한 복음화의 이 여정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하나 될수록, 그분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함께 더욱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선교 사명으로 일치하여 – 세상이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믿게 하소서
제자들의 일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선교 사명을 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점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요한 17,21). 복음 선포는 바로, 화해를 이루고 형제애를 나누며 하나 된 공동체의 증언을 통하여 온전한 전달력을 지니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파올로 만나 복자의 좌우명인 ‘전 세계의 회개를 위한 온 교회의 일치’를 되새겨 볼 만합니다. 이 좌우명은 1916년 교황청 전교 연맹의 설립에 영감을 준 사상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교황청 전교 연맹의 설립 110주년을 맞이하여, 저는 그동안 사제와 축성 생활자와 평신도의 선교 정신을 북돋우고 양성하며 모든 복음화 노력의 일치를 증진하는 데에 헌신해 온 교황청 전교 연맹에 감사와 축복의 인사를 전합니다. 실제로 세례받은 사람은 그 누구도 선교 사명에서 제외되거나 이 사명에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에 맡기신 이 위대한 일에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고유한 소명과 삶의 여건에 따라 참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거듭 일깨워 주신 대로, 복음 선포는 언제나 조화롭고 공동체적이며 시노드 정신이 깃든 행위입니다.
따라서 선교 사명으로 일치한다는 것은 친교의 영성과 선교 협력의 정신을 지키고 기른다는 의미입니다. 날마다 이러한 자세를 길러 주는 하느님 은총에 힘입어 우리는 형제자매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법을 점차 배워 나갑니다. 우리는 또한 모든 사람 안에 성령께서 불어넣으신 선(善)을 기쁘게 인식하고, 다양성을 보화로 여기며, 서로의 짐을 함께 나누어 지고, 위에서 오는 일치를 추구하는 법을 배웁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페 4,5-6). 그러하기에 참으로 우리는 하나의 사명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선교 제자직은 날마다 이러한 선교 협력과 친교의 영성으로 표현됩니다. 이 영성은 우리가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대한 보편적 전망을 되찾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예를 들어 “‘나는 바오로 편이다.’, ‘나는 아폴로 편이다.’”(1코린 1,10-12) 하고 저마다 내세우듯, 한 분이신 주님을 따르는 이들 가운데서도 나타나는 불협화음과 파벌 형성을 극복하도록 도와줍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선교 사명의 일치는 획일화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다른 은사들이 같은 목적을 위하여 한데 모이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 목적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눈에 보이게 드러내고,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모든 이를 초대하는 것입니다. 지역 공동체들이 서로 협력할 때 그리고 같은 신앙 안에서 문화와 영성과 전례의 차이가 온전히 조화롭게 표현될 때, 복음화가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저는 교회 안의 모든 단체가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친교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도록 그리고 선교 사명을 위하여 선교 사명 안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구체적인 길들을 닦아 나가도록 격려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선교 협력에 헌신하는 교황청 전교기구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페루에서 사목하는 동안 이러한 협력에 고마움을 느꼈던 경험이 있습니다. 교황청 전교기구, 곧 교황청 전교회, 교황청 어린이전교회, 교황청 베드로사도회, 교황청 전교연맹은 모든 연령대의 신자들의 선교 의식을 북돋우고 양성하며, 전 세계 공동체들을 연결하는 기도와 자선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황청 전교회의 설립자인 폴린 마리 자리코 복자가 200년 전에 ‘살아 있는 묵주 기도’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오늘날에도 이 운동을 통하여 전 세계 많은 신자가 하나 되어 모든 영적 선교적 필요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황청 전교회의 제안에 따라 비오 11세 교황께서 1926년에 ‘전교 주일’을 제정하셨다는 점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해마다 이 전교 주일에 모금된 헌금은 교황청 전교회가 교황을 대신하여 교회의 선교 사명에 필요한 다양한 곳을 지원하는 데에 쓰입니다. 그러므로 이 네 단체는 전체로서 그리고 각 단체의 고유한 특수성에 따라 여전히 온 교회를 위하여 소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들은 일치의 살아 있는 표징이자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 친교의 살아 있는 표징입니다. 모든 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황청 전교기구에 협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3. 사랑의 사명 - 하느님의 신실한 사랑을 선포하고 실천하며 나누기
일치가 선교 사명의 조건이라면, 사랑은 선교 사명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파견되어 선포하는 기쁜 소식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과 삶으로 육화된, 하느님의 신실한 사랑에 대한 복음입니다.
제자들과 온 교회의 사명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곧, 사랑에서 비롯되고 사랑으로 살며 사랑으로 나아가는 사명입니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수난을 앞두고 아버지께 드리신 당신의 위대한 기도에서 제자들의 일치를 청하시고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기도를 마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26).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다그치는 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자 밖으로 나갔습니다(2코린 5,14 참조). 이와 마찬가지로, 수 세기 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 순교자, 증거자, 선교사가 목숨을 바쳐 하느님의 이 사랑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처럼 사랑의 영이신 성령의 이끄심으로 교회의 복음화 사명은 세상 끝 날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의 만민 선교사들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처럼 고향과 가족, 모든 안락함을 뒤로한 채 복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을 전하고자, 흔히 난관이나 빈곤, 끊임없는 분쟁에 시달리는 지역이나 문화적 차이가 큰 지역으로 나아갔습니다. 선교사들은 역경과 인간적 한계에도,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복음이 우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보물임을 알기에 기쁨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내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모든 장벽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이 용감한 증인들이 필요하고, 교회 공동체들에는 여전히 새로운 선교 성소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을 염두에 두고 끊임없이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꺼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그리스도를 따라 땅끝까지 복음화의 길을 걸어가려는 젊은이와 어른들을 선물로 주시기를 빕니다!
저는 남녀 선교사들에 대한 존경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온 교회에 특별히 당부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우리 삶의 증거를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선교지들을 위한 기부를 통하여, 선교사들과 함께 복음화 사명에 동참합시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씀대로 “사랑이 사랑받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천상 탄일 800주년을 맞아 특별한 마음으로 그분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랑을 전하고자 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바람에서 영감을 얻읍시다. 성인 말씀대로,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신 분의 사랑은 한없이 사랑받아 마땅합니다”(바뇨레조의 성 보나벤투라,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The Life of Saint Francis], 제9장, 1, 『프란치스코 전집』[Fonti Francescane], 1161). 또한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사명을 계속 이어 나가겠다고 선언한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열정에서도 영감을 길어 올립시다. “저는 천국에서도 현재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같은 것을 바랄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사랑받으시게 하는 것입니다”(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서한집 220, 벨리에르 아빠스에게 보낸 편지, 1897.2.24.).
우리 모두 이러한 증언들에서 영감을 받고 저마다 받은 소명과 선물에 따라, 언제나 사랑의 활동인 위대한 복음화 사명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합시다. 특별히 전교 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기도와 구체적인 지원은 하느님 사랑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과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선물이라도 모든 선물은 의미 있는 선교적 친교의 행위가 됩니다. “제가 전 세계 선교사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베풀어 주는 모든 도움에 대하여”(2025년 전교 주일 교황 영상 메시지, 2025.10.19.)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영적 친교를 북돋우고자, 다음과 같은 짧은 기도와 더불어 여러분에게 저의 교황 강복을 보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저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일치와 쇄신을 가져다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내리게 하소서. 교회의 모든 지체가 선교 사명으로 일치하고, 성령께 순종하며, 담대하게 복음을 증언하고, 모든 피조물을 향한 당신의 신실한 사랑을 선포하고 날마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모든 남녀 선교사를 축복하시고 그들이 지치지 않도록 도와주시며 희망을 잃지 않도록 지켜 주소서!
선교의 모후이신 마리아님, 세상 곳곳에서 저희가 펼치는 복음화 활동에 함께하소서. 저희를 평화의 도구로 삼으시어, 온 세상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빛을 깨닫게 하소서. 아멘.
바티칸에서
2026년 1월 25일
연중 제3주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레오 14세 교황
[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61406 ]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0,9-18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축일10월 18일 성 루카 (Luke)
신분 : 복음사가, 증거자
활동 연도 : +1세기
같은 이름 : 누가, 루가, 루까, 루카스, 루크
전통적으로 성 루카(Lucas, 또는 루가)는 교회사학자 에우세비우스(Eusebius) ·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 · 리옹의 성 이레네우스(Irenaeus, 6월 28일) 등에 따르면, 안티오키아(Antiochia) 출신의 그리스인 의사로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의 ‘협력자’(필레 1,24)이자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라고 알려졌다. 실제로 성 바오로는 서간에서 그를 ‘사랑하는 의사 루카’라고 지칭했다(콜로 4,14).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12월 26일) 부제의 순교와 박해로 많은 이들이 흩어져 복음을 전했는데, 안티오키아도 그런 도시 중의 하나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을 돌보기 위해 성 바르나바(Barnabas, 6월 11일)를 파견했고, 성 바르나바는 타르수스에 있던 성 바오로를 데려와 함께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성 루카는 아마도 이때 사도들과 알게 되고 특별히 성 바오로를 깊이 존경하고 따랐던 것 같다. 그는 51년경에 있었던 사도 바오로의 제2차 선교 여행을 수행하며 힘껏 도왔고, 57년까지 필리피(Philippi)에 머물면서 그곳의 공동체를 지도한 후 성 바오로의 제3차 선교 여행 때도 만난 듯하다. 그는 성 바오로가 카이사리아의 감옥에 갇혔을 때도, 로마로 호송되어 감옥에 갇히고 재차 갇혔을 때도 늘 곁에 있었다(콜로 4,14; 필레 1,24; 2티모 4,11). 그는 사도 성 바오로의 순교 이후 그리스로 건너간 듯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복음서를 집필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Maria)를 찾아뵙고 주님의 탄생 전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반대로 성모 마리아를 직접 뵐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마리아의 초상화를 여러 개 만들어 섬겼다고도 한다. 전통적으로 가장 오래된 성모 마리아 초상화로 알려진 이콘의 작가가 성 루카라는 의견도 있지만, 사실 그는 ‘붓’보다는 ‘펜’으로써 다른 복음서들이 전해주지 않은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기 이야기 속에서 마리아의 모습을 마치 그림처럼 묘사해 주었다(루카 1-2장). 성 루카가 언제 어디서 복음서를 집필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확실한 것은 팔레스티나 밖에서 80년 전후에 쓰였다고 한다. 그리고 루카 복음을 시작하는 머리말(1,1-4)에 따르면, 그는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Theo-philos)을 뜻하는 ‘테오필로스’라는 인물을 통해 이미 그리스도교의 기본 진리를 전해 들은 이들이나 입문자가 더욱 확고한 신앙을 갖게 하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대체로 성서학자들은 복음사가 성 루카가 염두에 둔 독자는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로 보고 있다.
루카 복음서와 이어지는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부터 63년경 사도 성 바오로가 로마에서 수인으로 생활하며 선교 활동에 매진할 때까지 초대교회의 성장기를 서술하고 있다. 전반부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에게 그리고 후반부는 사도 성 바오로에게 집중하고 있지만 정작 성 루카 자신에 관한 구절은 하나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겸손함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성 바오로의 순교 이후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 아카이아(Achaia) 지방과 소아시아 지방에서 선교하며 온갖 고난을 참아내며 주님을 섬기다가 84세를 일기로 선종한 듯하지만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의 열두 사도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복음서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에 대해 특별히 강조했던 성 루카는 의사와 화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성 루카는 성경(에제 1,10; 묵시 4,7)에 언급된 ‘살아있는 네 생물’에서 유래한 상징에 의하면 황소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는 성 루카 복음사가의 침착하고 강인한 성격과 주님과 사도 성 바오로를 위한 희생과 충직함을 상징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루카 (Luke)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