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이백예순네 번째
비교하지 마!
아이들을 혼낼 때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예전에 우리 집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그랬습니다. “왜 비교해요? 걔는 걔고 나는 난데”. 이후로 우리 집에선 남과 비교하는 말들이 사라졌지만, 아내는 내게만 불평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비교로 인해서 쌓인 분노, 원한의 감정을 프리드리히 니체는 ‘르상티망 Ressentimen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르상티망은 힘에 대한 열망이나 성취할 수 없는 욕망에서 비롯된 적대감과 질투를 의미합니다. 르상티망은 원한(resentment)의 프랑스어 번역어입니다. 이러한 감정은 자신보다 우월한 타인을 향한 원한이 되어 불교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모든 존재가 고통의 상태에 놓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고통의 근원이 ‘욕망’이며, 이 욕망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비교, 경쟁심, 적대감으로 이어집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탐욕과 무지로 설명합니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슷할 뿐입니다. 각기 개성을 가지고 태어나 환경에 따라 한 개인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니 비교할 일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겁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일사불란一絲不亂, 대위소희大爲小犧 등과 같은 말을 배우고 가르쳐 왔습니다. 군대에 가면, 특수한 사회이기는 하지만, 같은 옷을 입힙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같은 옷을 입도록 했습니다. 빈부의 차이 등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좋은 점도 있지만, 개성을 인정하지 않고 키워주지도 않았습니다. 큰일을 위해 작은 것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논리도 결국에는 약자만 희생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편향성은 그러한 르상티망으로 얼룩진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