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02일 (월)
제목 : 사랑의 명령
오늘의 말씀 : 누가복음 6:27-42 찬송가: 299장(구 418장)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중심 단어: 원수, 사랑, 자비
주제별 목록 작성
예수님의 사랑의 명령
27절: 원수를 사랑함/ 미워하는 자를 선대함
28절: 저주를 축복으로 되돌려 줌/ 모욕을 기도로 되돌려 줌
29절: 뺨을 치는 자를 용서함/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까지 줌
도움말
1. 칭찬(33절): ‘은총, 은혜’라는 뜻으로, 이기적인 목적으로 선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다는 의미다.
2. 비판하지 말라(37절): ‘판단하지 말라, 심판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비판(심판)받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본질상 우리 자신이 비판받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3. 되어(38절): 곡물을 측량 용기(容器)로 재는 것을 가리킨다.
말씀묵상
사랑의 명령
세상은 ‘주고 받기’의 원칙을 따릅니다. 사람들은 이 원칙에 따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사랑을 베풀며(32절), 자기를 선대하는 사람만 선대하고(33절), 되돌려받을 수 있는 경우에만 빌려 줍니다(34절). 반대로 원수나 자신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법칙을 적용해 복수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사랑은 상식적인 수준을 초월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자신을 미워하는 자를 선하게 대해야 합니다(27절). 저주를 축복으로 되돌려주고 모욕을 기도로 갚아 줘야 합니다(28절). 이쪽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저쪽 뺨까지도 돌려대야 합니다. 가장 소중한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는 속옷까지도 내어 줘야 합니다(29절). 이와 같이 파격적이기까지 한 사랑을 실천하는 자만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자비의 명령
예수님은 자비에 있어서도 상식적인 수준을 초월하십니다. 예수님은 남을 비판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고 헤아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37절). 다시 말해, 내가 가진 잣대를 남에게 적용해 그 기준에 미달되거나 내 기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때 못마땅하게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항상 자기 기준으로 타인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헤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같이 자비로울 것을 요구하셨습니다(36절). 이를 위해 예수님은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제거한 후 형제의 티를 지적하라고 말씀하십니다(42절). 그리고 자기 기준을 버린 채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세상에 나타내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만이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예수님의 사랑의 명령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인관계의 기본원리는 무엇입니까(31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예수님께 배운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습니까?
2. 여러분이 남의 허물을 지적하기 전에 먼저 살펴야 할 여러분의 허물은 무엇인지 점검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금요치유집회를 마치고 나니 마치 100m를 힘차게 달리고 숨차서 숨 고르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9월의 시작이다. 본격적인 하반기 사역이 시작되는 날인데 왜 이 말씀이 사모가 되는 것일까?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수많은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병도 고쳐주셨던 예수님이 사람 없는 곳을 찾아가 기도하신다.
‘한적한 곳에서...’
한적한 곳을 찾아갈 수는 없지만, 유일한 나의 피난처는 목양실이다. 사람 없는 곳에서 하나님과 만나고 싶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그 시간을 갖고 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이 스트레스가 될 때가 많은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온통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관계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처럼 자비를 베풀 것을 강조하신다.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원수를 사랑하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라.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라.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사랑할 수 있는 자만 사랑하지 말고, 사랑할 수 없는 자도 사랑하라.
선대하는 자만 선대하지 말고 선대할 수 없는 자도 선대하라.
받기를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라.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하나님 아버지처럼 은혜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라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비판하지 말라
정죄하지 말라
용서하라
주라
온전한 자가 되라
먼저 자신의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마태는 이웃과의 관계를 이렇게 맺고 사는 것이 온전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 ‘바보처럼 살아라!’는 말씀처럼 들린다.
‘하나님 아버지처럼 은혜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라.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성령 받으면 과연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사람과의 관계를 형식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지혜로운 사람들이 아닐까?
원수 맺을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되지 않는가, 미워하고 저주할 만큼 가깝게 지내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왜 뺨 맞을 일을 만드는가, 빼앗길만한 겉옷을 입고 살면 되지 않겠는가, 서로 안 주고 안 받는 관계가 최고가 아닐까, 대접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어떻게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고 선대할 수 없는 자를 선대할 수 있단 말인가?
관계 맺지 않으면 비판할 일도 없고, 정죄할 일도, 용서할 일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로 주고 받지 않는 관계가 최고 아닐까?
하지만 주님은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아버지와 자녀 사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성령 받으면 과연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성령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자비로운 자가 될 수 없다. 연습하지 않으면 주님이 원하시는 관계속에서 자비를 베풀며 살아갈 수 없다.
어렵다고 도망칠 수 없고, 힘들다고 관계 맺지 않고 살아갈 수도 없다.
어쩌면 혼자 있고 싶은 이유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과 부딪히기 싫어서 도망쳐 버린 것은 아닐까?
어쩌면 하나님 앞에 ‘저에게는 영혼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 만나는 것보다 하나님 만나는 것이 더 좋습니다!’라고 합리화하기 위함이 아닐까
그런데 주님은 나에게 이 말씀을 통해 세상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이 말씀을 사모하는 이유가 내게 무엇보다 하나님과 독대하는 공간과 시간을 너무 좋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는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너무 싫고 부담스러웠기 때문임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원수를 사랑할 만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할 만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할 만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만큼 성숙해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오늘도 십자가의 은혜를 붙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제 심령에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심으로 충만케 하셔서 저도 자비로운 자가 되어 가족과 성도와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아는 아버지를 닮은 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