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육학년 때 전기가 들어와
한밤중에 술에 취한 우리 아버지는
신문지 위에 막둥이를 앉혀놓고 이발을 한답시고
바리깡으로 빡빡 밀어 울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던 그 얼굴을 잊을 수 없습니다.
드디어 중학교 3학년 때 서울 간 언니의 덕분으로
겨울이면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우리 집에
네 발 달린 문을 열었다 닫는
흑백 테레비젼이 안방에 들어왔었지요.
서울 간 언니가 왔다는 소식에 동네 사람들 모이고
요거이 커피라면서 밥그릇에 한 잔씩 타서 대접을 하니
오매~~쓰디쓰고 요거시 뭔 맛이라요?
종합선물세트를 양손에 들고 동네로 들어서는 이집 저집 풍경에
신이 난 동네 아이들이 새로 산 설옷을 입고 자랑을 하며 뛰어놀던 골목길은
인적이 끊긴지 오래이고, 마당가에 고목으로 버티고 있는 팽나무 집 홍량이 집도
오래전부터 주인을 잃었고 기억만 붙잡고 있습니다.
영상 속에 나오는 코미디언, 가수들도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도 있지만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떡국 한 그릇 못 먹는 형편(여기는 떡국이 없음 ㅎ)에
나이도 못 먹고 있습니다만
따뜻했던 그때 그 설날을 기억합니다.
신나는 70년대 라이브쇼
첫댓글 https://youtu.be/q0J5o804hO0
송년특집 인기가요 20 (1976)
PLAY
저 텔레비전, 저 고1 때, 가난하셨던 우리 부모님이
벼르고 별러서 마침내 장만하셨던 그 텔레비전입니다.
1977년이었죠.
그후 1980년에 컬러 TV방송이 시작되었어도 흑백 티브이만 보다가
1982년에, 당시 2년제이던 교대 졸업 후 첫 발령 받고 월급을 모아, 빨간 색 삼성 14인치 컬러 TV를 들여놓고
좋아하시던 엄마 모습에 저도 얼마나 좋던지요.
가리나무님, 떡국도 못 드셔서 어쩌나요.
대신 나이도 안 드신 걸로 퉁치세요. ^^
복 많이 쌓는 갑진년 되소서!
가난을 가난이라 여기지도 못하고 살았던 시절이었지요
그래도 우리집은 보리쌀 속에 쌀밥이 섞여있었는데
찢어지게 가난한 힝배집에가면 100프로 보리밥이었습니다
얼마나 고소하고 맛나던지 가끔 놀러갔습니다 ㅎ
1977년이면 저보다 1년뒤에 장만을 했군요
엄니,아부지의 힘으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tv
전 그래서 설날이니 추석이니
그날이 그날이려니~하고 지냅니다
생일도 그냥 건너뛰어요
누가 챙겨주는 것도 그냥그냥~
한살 더 먹는것이 뭐가 좋다고 ㅋㅋ
어제 tv에서 본 내용입니다
아침을 굶으면 살이 더 찐다는 사실 ~
그리고 아침부터 왠 고기하겠지만 붉은 고기를 먹는게 좋다네요
대신 야채를 많이.....제 생각이 옳았습니다
어제 아침 당근,양배추, 고구마 찜통에 푹쪄서 먹고
찐계란 먹고 스키야끼 먹었거든요
하루 종일 속이 든든하고 기분이 업~
대신 저녁은 간단하게 여섯시쯤 먹어요
이런 다이어트는 악을 쓰면서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아침 굶으면 절대 안됩니다요
@가리나무 네 아침 잘 챙겨 먹고 있어요.
저녁을 안 먹어요.
늘 염려해주시는 마음 감사합니다. ^^
예전 설날, 내 충청도 산골은 눈이 엄청 내려 내려서 쌓여 엄청 추웠지요.
시골집 부억은 바깥에 있고 장독은 부엌 옆 뒤란에 있어
부엌과 뒤란을 오가며 먹을 음식 장만하던 어머니, 큰 형수(나하고 26년 차이)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모두들 고인이 된지 35년이 넘었으니.....
우리 시골 풍경과 같습니다
머리에 두건을 쓰시고
장독대와 부엌을 들락거리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선합니다
눈에
선합니다
그때는
텔레비전 한대면
온동네
스타입니다
전설의 고향 보려고
아랫마을 재숙이 집 마당에 덕석을 깔고
침을 꼴깍 삼키면서 봤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설의 고향에 귀신 생각에 등골이 오싹 하였지요 ㅎㅎ
흑백 네발달린 텔레비젼의
그엿날의. 추억을 송환하신글 잘 감상하고 공감하고 갑니다^^
님의 언니의 효심과 언니의. 성취감이
느께지는글 감동받고 갑니다 ^^
집집마다 서울로 간 언니 오빠들 덕을 많이 보고 살았습니다
남자는 영등포 뺀찌공장, 여자들은 주로 서울 구로공단 ㅎ
세월이 조금 지나니 공순이와 공돌이라는 우스운 말도 생겨나구요 ~
지인님의 따뜻한 댓글
고맙습니다
@가리나무 그
언니 오빠 세대들의
우리나라의 역동의. 시절 진정한 애국자들 이십니다
어머나!
저 텔레비전 서울물 먼저먹은제가 고향집에 사다놓았지요~~
동네사람들 여럿모여 시청하더군요~~
이국에서 설 떡국도 못드셔서 나이를 못드신다니 어쩜 좋아요?
아무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괜찮아요
떡국대신 라면으로 ㅎㅎ
우리동네에도 윗마을에 한곳
아랫마을에 한곳이 있었는데
전 아랫 마을로 매일밤 출근을 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보름달이거나 초승달이 오는길을 비춰주었지요
모두들 반가운 얼굴들입니다
지금은 저분들 대부분 고인이 되셨지요
70년대 가난했지만 따스한 정들이 있었고 모두들 그립습니다
가리나무님 먼일본에서 설연휴 잘보내시기 바랍니다 !
그산님
설 잘 쇠셨는지요
저는 똑같은 날 입니다
그날이 그날 ~~ㅎ
영상 속에 나오는 얼굴도 다 기억나고
옛날 노래는 가사를 거의 다 기억하고 있어요
어렸을때 기억은 오래가고 더 뚜렷하나봅니다
흑백티비~
전기가 들어 온 후
동네에 티비 있는 집이 생겼고
수사반장,수사본부를 남의 집에 가서
재밌게 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지요.ㅋ
그 오래전 기억들이
흑백티비처럼 떠오르네요.
가리나무님 글 잘 보았어요.
맞아요
수사반장~ 최고의 드라마였지요
tv화면도 쪼매만한데 영화보는 기분으로 ㅋ
명절때만 되면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 시절 티비가 귀했었죠.
저녁 재밌는 만화 영화 보려고..
티비 있는 집에 모두 몰려 구경했던 기억이 나네요.
먼 옛날의 기억을 끄집어 내 주시네요.
맞아요
동네에 몇대없는 tv
토방에서부터 검열을 받고
고무신짝에 흙이 묻어 있으면 못 들어갔습니다 ㅎ
저는 중학교를 도시로 유학(?)가는 바람에 만화방에서 TV를 처음 보았습니다 ^^ 빡빡머리에 中 배지가 달린 모자를 쓰고 신기함에 놀라며 보던 그 티비네요.
세월은 흐르고 추억이 남았네요. 이 글을 올리는 시간 또한 그리 되겠지요.
도시로 유학을 간 사람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릅니다
방학때 시골로 내려오면 시커멓게 그을린 내 모습이 부끄러워 동백나무 뒤로 숨었었지요
세월이 흘러서 이렇게 되었군요 (늙은 소녀 ㅎ)
@가리나무 짐작이 갑니다.
그리고 늙은 소녀가 아니라, '흰머리 소녀' 입니다 ㅎ ^^/
@앵커리지 맞아요
흰머리 소녀~
그 말이 생각이 안나 늙은 소녀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마음은 28청춘에 머물러 있는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