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이백예순다섯 번째
너는 빨간색, 나는 파란색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유명한 <풀꽃>입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지요. ‘친구’란 같은 공간에서 서로에게 공감하며 자연스레 이루어진 사랑스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친구를 자기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 이 시대에 던지는 경구警句로 들립니다. 그들은 자세히 보기는 하는데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가늠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오래 보아도 사랑스럽지 않은 겁니다. 관심을 가지고 오래 보아온 사람들은 서로에게 기쁨이 됩니다. 맛깔나는 음식이 입 안에서 퍼지는 기쁨처럼 그렇게 서로에게 기쁨이 됩니다. 시인은 계속해서 얘기해 줍니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우린 그렇게 누군가를 만났고 결혼도 합니다. 나와 같은 색깔, 모양이어서가 아니라 그 색깔이, 그 모양이 예뻐서, 그 색깔이, 그 모양이 나와 어울릴 것 같아서 함께합니다. 너는 빨간색, 나는 파란색, 그렇게 무지개를 만들자는 겁니다. 그는 한마디 더 합니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 꽃 피워봐 / 참 좋아. 이 대목이 참 좋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기죽지 말라고 합니다. 남들 같은 꽃을 피우라는 게 아닙니다. 나도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다고, 당신도 아름다운 꽃인 걸 알라고, 그러니 꽃을 피워보라고 합니다. 남을 닮은 꽃이 아니라 나만의 꽃, 당신만의 꽃을 피워보라고 합니다. 사랑함으로써 꽃을 피우고 꽃이 피게 하듯이 우린 여태 그리 살아왔고,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노라고. 이 나이가 되니 나도 한 송이 꽃인 걸 알았노라고, 나이 들었다고 기죽지 말라고. 시인도 나이 들어 그걸 알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