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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1633년작 '빌레몬과 바우키스 집에 있는 주피터와 머큐리'. 그림 왼쪽 편에 앉은 주피터와 머큐리는 낯선 자로 변신한 자신들을 성심 성의껏 대접하는 노부부 빌레몬과 바우키스에게 기적을 행하고 상을 내린다. |
인간은 이주(移住)하는 동물이다.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아프리카 동부에 안주하지 않았다. 일부 호기심 많은 호모 사피엔스들은 20만년 전과 10만년 전, 두 차례 고향 아프리카를 떠났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탐험이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들은 오늘날 유럽과 아시아가 자신들과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 생존을 위해 더 나은 장소라고 판단하였다. 유럽에는 이미 네안데르탈인들이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어, 두 인종간의 갈등은 불가피했다. 이주민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본격적으로 만나 경쟁한 시기는 기원전 4만5000년에서 4만년 사이다. 고고학자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이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공존했으나, 네안데르탈인들은 현생인류에 밀려 기원전 3만년경 지구에서 자취를 감췄다.
새로움과 다름의 수용, 생존을 결정짓다
네안데르탈인이 한 순간에 멸종된 이유는 다양하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그들의 ‘사회성 부족’이다. 네안데르탈인들은 기껏해야 10명 이하의 인원들이 모여 살았다. 새로움과 다름을 수용하지 못했다. 이들에 비해 호모 사피엔스들은 수십 명이 함께 거주하면서 공동체를 이루었다. ‘공동체’란 자신의 이익을 넘어선 ‘공동선’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만들어 낸 추상적인 표현이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들이 익숙한 직계가족이나 가까운 친척들과 생활하였다. 이들에게 ‘외부인’은 적이며, ‘다름’은 제거 대상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끊임없이 이주하였다. 그들이 밟는 땅은 미지의 세계였다. 그들은 이주를 통해 새로운 경지로 들어가, 그곳에 원래 거주하는 자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는다. 고고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낯선 사람’들을 자신들의 공동체에 영입하여 공동체를 끊임없이 확대하였다고 본다. ‘낯선 사람’을 적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가족 혹은 친구로 여겼다.
이슬람의 정신도 이주와 환대다
낯섦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시도를 ‘환대’(歡待)라고 부른다. ‘환대’는 아프리카나 중동 사막에 거주하는 베두인들의 삶을 지배하는 원칙이다. 그들은 사막에서 마주치는 낯선 자들을 무조건 환대한다. 그들은 환대하는 행위를 용맹으로 여겼다. 베두인들이 오랫동안 거친 사막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낯선 자를 환대해서다. 베두인 여성들의 윤리를 아랍어로 ‘이르둔’(irdun)이라고 부른다. ‘이르둔’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숙한 상태를 유지하는 마음가짐’이다. 베두인 여성들은 ‘이르둔’은 한번 잃으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베두인 공동체 전체는 여성들이 ‘이르둔’을 지킬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자신의 재산을 부족과 마을의 안녕을 위해 아끼지 않는다. 그들은 이 공동체적 노력을 ‘샤라프’(sharaf)라고 불렀다.
베두인들에게 마을의 안녕을 위한 가장 중요한 윤리는 ‘낯선 자’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낯선 자들’이 심지어는 적이라 할 지라도, 일정 기간 동안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한다. 자신들이 아무리 가난하다 할지라도, 숙식을 마련해줘야 한다. 베두인들은 삶의 원칙을 아랍어로 ‘디야파’(diyafa)라고 불렀다. ‘디야파’는 흔히 ‘환대’라고 번역하며 베두인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이다. 기원후 7세기 무함마드는 ‘낯섦’을 삶의 방식에서 축출하여 자신의 상업적인 이윤만 쫓아가는 메카 사람들에게 그 생활과의 단절을 요구한다. 무함마드는 기원후 632년 공동체를 이끌고 메카에서 부족주의 생활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자신의 아버지 무덤이 있는 야쓰리브(후대 ‘메디나’로 개명)로 ‘이주’한다. 야쓰리브인들이 무함마드와 그 일행을 환대하여 ‘이슬람’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주’라는 아랍어 ‘헤지라’는 ‘과거의 편안한 삶과의 폭력적이며 단호한 단절’이란 의미도 지닌다. 이슬람에서 사회약자에 대한 배려도 바로 ‘디야파’라는 환대정신에 뿌리를 둔다.
어릴 적 배운 엄마의 마음, 그것이 환대다
왜 베두인들은 자신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숙식을 제공하는가? 그 낯선 자가 적이란 사실이 발각되면,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가족이나 공동체도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할 수 있는데, 왜 그들은 이 환대정신을 최고의 ‘명예’(名譽)라고 여겼는가? 이런 행동을 설명하려는 과학적인 시도가 ‘호혜적 이타주의’다.
최근 몇몇 과학자들은 프랑스 사회학자 오귀스트 콩트(1798-1857)가 말한 ‘이타주의’는 인간사회에 적용할 수 없는 환상이라고 주장한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 서문에서 인간의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을 ‘손톱과 발톱이 피로 물든 자연ㆍ본성’(nature, red in tooth and claw)으로 표현하였다. 인간은 결국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일을 도모하는 유전자를 몸에 지닌 숙주일 뿐이다. 미국 진화심리학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인간의 ‘이기적 행위’를 ‘호혜적 이타주의’로 설명한다. 인간은 어려움에 처한 다른 인간을 지금 당장 자신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도와주는 이유는, 자신이 반대로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국 자신의 이윤과 명예를 위해 전략적 선행을 베푸는가? ‘적자생존’과 ‘양육강식’이 인간 삶의 규범인가? 인간은 다른 포유류와는 달리 1년 정도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망아지는 어미말로부터 나와 30분이면 스스로 걷지만, 인간이 걷기까지 1년이 걸린다. 아니 스스로 독립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비교하여, 비효율적이지만 한 가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난 어린아이는 1년 동안 누군가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쳐 젖을 주고 양육하는 것을 본다. 누군가의 이타적이며 헌신적인 노력이 자신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을 배운다. 인간은 유아기를 거쳐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점점 이기적인 문화에 물들어, 이기적 행위를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수용한다. 그러나 마음 속 깊이, 누구를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목숨을 바치는 ‘어머니’의 삶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 마음의 확장이 바로 ‘환대’다.
최고 신 제우스에게도 낯선 자에 대한 환대는 의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인들은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었다.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고양시키기 위해 원형극장에 앉았다. 당시 원형극장은 1만명에서 1만5,000명 정도의 관객을 수용하였다. 아테네 사회는 소수만이 자유 시민이었다. 이들이 아테네 정치사회를 이끌었다. 대부분은 아테네를 방문하여 비극을 보러 온 ‘외국인’이거나 일거리를 찾아 아테네로 이주해온 ‘노동자’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외국인을 ‘크세노스’(xenos)라고 불렀고 아테네에서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메티코스’(metikos)라고 불렀다.
크세노스는 ‘낯선 자’로 번역하는데 문맥에 따라 ‘적’ ‘이방인’으로 혹은 ‘손님’, 더 나아가 ‘친구’로 번역한다. 크세노스는 그리스 다른 도시나 멀리는 마케도니아나 소아시아와 같은 외국에서 방문한 외국인이다. 아테네인들은 외국에서 와 일정한 교류를 통해 우정을 나눈 친구를 크세노스라고 불렀다. 그리스인들이 크세노스를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사용한 이유가 있다. 그리스 최고의 신인 제우스의 별칭은 ‘제우스 크세네오스’다. 제우스는 여행자나 낯선 자에게 환대를 베풀어야 한다는 종교적인 의무의 화신이다.
베두인의 삶의 원칙이 낯선 자를 신처럼 환대하는 ‘디야파’인 것처럼, 이제 아테네라는 도시를 건설하여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아테네인들 삶의 원칙도 유사하게 ‘크세니아’다. 크세니아는 그리스인들의 ‘환대원칙’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종종 신은 ‘가난한 낯선 자’(크세노스)로 변장하여 인간을 찾아온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남루한 농부로 변장한 주피터와 머큐리 신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이 신들이 쉴 곳을 찾을 때 사람들이 악해 그들을 거절했지만, 가난한 바우키스와 빌레몬이 환대한다.
인간은 주인이 되어 그 손님을 환대함으로 자신의 덕을 수련하고 발휘한다. 크세니아에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주인은 손님이 원하는 모든 것, 특히 음식, 목욕, 숙소를 제공하고 떠날 때는 선물을 준다. 둘째, 손님은 주인에게 공손하게 존경을 표시한다. 손님도 주인에게 그 집을 떠날 때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
아이스킬로스의 세 번째 비극 ‘탄원하는 여인들’은 바로 그리스인들 삶의 원칙인 ‘크세니아’를 아테네인들에게 교육한다. 민주주의는 다름과 낯섦에 대한 수용이며 배려다. 아테네 자유인들은 외국인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함께 원형극장에 앉아 ‘탄원하는 여인들’을 숨죽여 관람하였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그리스 아르고스로 찾아와 집단 난민 지위를 신청한 50명 여인들에 대한 흥미진진한 비극에 몰입하고 있었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배철현 칼럼] 인간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배철현 on January 30, 2014./더 아시아N
[나는 누구인가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성’ 탐구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의 유전인자가 발견되기 전,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인간을 모호한 개념들로 정의해 왔다. 하지만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 유전인자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인문학자들은 인간본성을 탐구하기 위해 유전자연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과학자들이 주도한 인간본성에 관한 연구는 인간을 종족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적자생존의 영웅으로만 해석한다. 인간은 정말 이기적인가? 인간은 자기 자신, 자신과 관계된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동물인가? 과학은 인간이 이기적이며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답다고 우리를 현혹하고 있다.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92)도 이런 인간본성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의 그리스도교 신앙이 과학의 발전으로 흔들리는 심정을 절친 아서 헨리 핼럼의 죽음을 기리며 시로 토로하였다. 이 시는 핼럼이 죽은 1833년부터 17년간 틈틈이 기록해 1850년 <인 메모리엄 A.H.H>라는 제목으로 발표한다. 그는 이미 자신이 맹목적으로 신봉해 온 신앙이 지질학, 생물학, 특히 진화론에 크게 흔들리자 ‘과연 이 세계는 신의 질서가 지배하는가 아니면 무자비한 자연의 투쟁인가?’라고 질문한다.
테니슨은 <인 메모리엄 A.H.H> 시구 56에서 외친다. “Who trusted God was love indeed. And love Creation’s final law. Tho’ Nature, red in tooth and claw. With ravine, shriek’d against his creed. (신은 진실로 사랑이었다고 누가 믿겠는가? 그리고 사랑이 창조의 마지막 법이었다고 누가 믿겠는가? 자연은 이빨과 발톱이 피로 물들고, 계곡에서는 인간의 신조를 아랑곳하지 않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 시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산 지식인의 종교와 과학의 상반된 세계관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찰스 다윈은 1859년 <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기원>을 출간하면서 테니슨의 <인 메모리엄 A.H.H> 시구 56에서 “Nature, red in tooth and claw”를 서문에 인용한다. 20세기 다윈의 추종자인 영국 옥스퍼드대학 교수 리차드 도킨스도 <이기적 유전자>에서 다시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모든 생물의 행동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 원칙에서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적자생존’이란 문구는 다윈의 ‘자연선택’을 대체하는 용어로 영국 생물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생물학의 원리>(1864)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스펜서는 ‘적자생존’ 이론을 자연과학을 넘어 사회과학, 특히 경제이론에 접목시킨다.
다윈과 허버트 모두 모든 생물은 치열한 경쟁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적자만이 생존하는 잔인한 투쟁의 영원한?회로에 빠져있다고 생각했다. 다윈과 허버트의 과학이론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적자생존 이론은 나치와 공산주의의 핵심사상으로 변질되고 19세기 말, 아니 오늘날까지 풍미하고 있는 ‘무자비한 자본주의’ 탄생을 촉진시켰다. 적자생존-약육강식에 의거한 자본주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이며 혈연주의다. 특히 자본주의 경제 틀을 통해 대기업은 인간에게 별 필요 없는 물건을 생필품이라고 광고와 미디어를 통해 세뇌한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개념은 거대한 시장경제를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이게 하는 이데올로기로 그 덮개 아래 우리는 하루를 연명한다.
자유방임주의 경제이론에 의하면 강력하고 거대한 기업이 작고 연약한 회사들을 갈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이들의 행위는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주장하는 자연이론에 의해 정당화된다.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은 당시 영국에서 소수집단의 욕심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열렬히 수용되었다. 독일의 역사가 오스발트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이란 책에서 “경제학을 생물학에 적용함으로 자연선택이 영국에서 진리로 수용되었다”고 기록한다. 그는 “자연선택은 자본주의 윤리와 맨체스터 경제학이라는 빅토리아 시대 ‘욕망의 철학’의 완벽한 표현이다”라고 개탄한다.
적자생존 이론, 경제로 확대 적용
실증주의 창시자이자 ‘이타주의’ 개념을 만들어낸 오귀스트 콩트(A. Comte, 1798~1857)는 자신이 그토록 열정적으로 찬양했던 과학의 시대와 이타심은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록 그는 공포로 가득 찬 유럽의 혁명시대를 살았지만, 깨달음을 얻은 사회적 질서의 도래를 자신했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 후손들, 동료들에게 의미를 지니고 태어났다.”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는 것은 행복과 의무의 공통자원인 자비를 향한 본능의 직접적 요구”라고 주장한다.
과학이 진리의 유일한 기준이라고 믿는 오늘날 과학근본주의자들은 인간의 유전자가 불가피하게 이기적이며, 라이벌에 대항해 무슨 수를 써서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주장해왔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은 모두 ‘나-자신’을 최우선으로 놓도록 프로그램 돼있다. 그러므로 이타주의는 환영에 불과하며 인간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치인 것이다.
많은 사회생물학자들은 이타심도 실제로는 이기적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이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타적이 된다는 것이다. 엄마가 위험에 빠진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즉각적인 행위도 결국은 유전적으로 이기적인 행위이다. 그런 행위의 표면적인 의도는 이타적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혈연을 종속시키기 위한 ‘혈연선택’에서 출발한다. 이타주의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예외로 자연선택의 실수이다. 인간에게 유용한 생존 메커니즘이었던 것이다. 협동하는 법을 배운 인종들은 자원에 대한 절박한 경쟁에서 유용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윌슨도 “이타주의자는 스스로 그리고 가장 가까운 동족에게 보답을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선한 행위는 종종 완전히 의식적이며 계산적이고, 그의 술책은 사회의 복잡한 승인과 요구에 따라 세밀히 조직된다.” 이렇게 ‘덜 노골적인 이타주의’는 거짓말, 가식, 자기기만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왜냐하면 배우는 자기 행동이 실제라고 믿고 연기할 때 더 설득력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타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은 그 당시 자신의 이기심을 줄이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우선하지만, 내심 상대방도 그와 같은 이타적인 행위를 자신에게 하기를 바란다.
이 연재는 ‘인간은 정말 이기적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시도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정말 도킨스나 윌슨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기적일 수밖에 없나? 우리 주변의 소방관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불타는 집으로 뛰어든다. 하루 종일 시청에서 쓰레기 수집 일을 하면서 주말에 양로원에 가서 노인들에게 봉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종종 읽는다. 이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7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를 시작으로 오늘날 현대인까지 인류사의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이 이루어낸 위대한 문명을 찾고, 오늘날 우리 삶의 지표를 더듬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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