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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말을 합시다 (민 14:1-10)
(요약)
말을 둘로 나누면 사실의 말과 믿음의 말이 있다. 그런데 사실의 말은 종종 믿음의 말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참 신앙의 사람이 되어 믿음의 말을 해야 한다. 믿음의 말이란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요, 기적을 기대하는 말이요, 영의 눈으로 보고 하는 말이요, 성경으로 말하는 것이 믿음의 말이다. 신앙생활을 하였다면 말이 달라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가득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말은 인격과 신앙의 표현이요, 그 말은 그대로 열매를 거둔다. 항상 믿음의 말로 나와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자.
(설교)
우리는 늘 말을 하면서 삽니다. 말을 하지 않고 사는 날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하루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다 각자 정당한 말을 하고 산다고들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의 말을 자세히 들어다 보면 사실의 말과 믿음의 말이 있습니다. 사실의 말이란 보이는 사실 그대로의 말로서 옳은 것 같지만 믿음의 말이 되지 못 할 때가 있습니다.
목포에서 있던 일인데 어느 성도의 병원에 불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실만 보고 참 안 됐다고 혀를 찼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의 원장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병원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더 좋은 병원을 주시려고 그러신 것이라고 믿음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 병원은 그 때를 기회로 더 큰 병원 더 좋은 병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성경 민수기를 보면 유명한 정탐군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나안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군이 있었는데 돌아온 12명은 10대 2로 갈라졌습니다. 10명의 보고는 눈에 보이는 대로 사실의 보고였습니다. 그래서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그 곳에는 거인족들이 살고 있고 악한 민족들이 곳곳에 거하여 우리로서는 가망이 없다는 보고였습니다.(민13;27-33) 이것은 조금도 거짓이 없는 사실의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달랐습니다. ‘우리가 가 보니 여호와께서 예비하신 땅은 아주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장대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떠났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다 얻을 수 있습니다.’(민14;8-9) 하는 믿음의 보고였습니다. 12명의 정탐군들이 같은 사실을 보고했지만 내용이 달랐던 것은 한 부류는 사실의 말을 한 부류는 믿음의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느 편의 말이 더 옳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실의 말을 물리치시고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을 기뻐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제부터는 사실의 말보다 믿음의 말을 하여 하나님께 복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떤 말이 믿음의 말입니까?
1. 하나님 입장에서 하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벧전4:11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그랬습니다.
이처럼 항상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건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실만 보니까 환경이 원망스럽고 남이 원망스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다윗이 여러 난리가 날 때 이것이 누구의 탓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진실로 회개할 수 있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의 사건 역시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는 길에 앞에는 넘실거리는 홍해가 가로놓여 있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실만 보고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것은 앞에 보이는 홍해와 강한 애굽 군대 사이에서 틀림없이 죽음만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 입장에서 보았기에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출14;13) 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눈으로만 자신과 남을 보기 때문에 잘하면 의기양양하거나 칭찬이지만 잘못하면 비판하거나 크게 비관에 빠집니다. 요즘 탈렌트 고 이은주씨 사건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데 왜 죽습니까? 그리고 왜 우울증이 옵니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지 못하고 사람의 관점으로 만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희망이 넘칩니다. 자신이 행복해 집니다. 사랑 받는 귀한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성경이 관점입니다. 성경으로 만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2. 기적을 기대하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막11:23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우리들을 구원하실 때도 말씀으로 구원하셨듯 말이란 중요합니다. 우리의 말이 우리 인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야고보 선생은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약3:3-5) 라고 말했습니다. 벧전3:10-11에도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실만 보고 실망하지 말고 기적을 기대하며 말을 해야 합니다.
오병이어 기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벳세다 들판에서 말씀을 증거하실 때 해가 지고 사람들은 영혼의 배는 불렀지만 육신의 배는 허기가 졌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저들이 허기져서 돌아갈 수 없을 터이니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제자들은 “여기는 빈들이요. 5,000명이나 되니 먹을 것을 구할 수도 없습니다. 사 먹인다 해도 200 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모두 틀림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때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들고 있는 어린이의 손목을 잡고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요6;9) 사실로만 말하는 제자들과는 달리 안드레는 작은 도시락 하나인 오병이어지만 가지고 와서 무언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왔던 것입니다. 안드레를 통하여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실 때 다 배불리 먹고 부스러기만 해도 열 두 광주리나 되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면 다 할 수 있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힘을 주십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믿음 없는 말만 많이 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며 진실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3. 우리의 영의 눈으로 보고 하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히11:1-2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했습니다.
보이는 것을 말하기란 말하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고 듣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육신으로는 보지 못해도 영의 눈으로 보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기도할 때 비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청한 대낮이지만 영의 눈으로 비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도단성의 엘리사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와 아람이 싸울 때였습니다. 아람이 이스라엘을 침략할 때마다 탄로가 나서 크게 졌습니다. 아람 왕은 우리 중에 첩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신하들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이 때 한 신하가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왕하6;12) 아람 왕은 이 말을 듣고 전쟁을 하기 전에 엘리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으로 군대를 보내 포위했습니다.
엘리사의 종이 새벽에 성벽에 올라가 보니 수많은 군사들이 도단성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큰일났습니다. 아람 군대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왕하6:16) 이 얼마나 서로 차이나는 말입니까? 종의 말은 조금도 틀림이 없는 사실의 말이었습니다. 잘못한 것 없게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 때 엘리사는 종의 눈이 열리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영의 눈이 열리고 보니 아람 군대수보다 더 많은 천사들이 도단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의 눈으로 보고 말해야 믿음의 말이 됩니다.
4. 성경으로 말하는 것이 믿음의 말입니다.
요16:13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오직 자의로 말하시지 않고 듣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만을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오직 성경이 기록된 말씀을 말한다면 그것이 믿음의 말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실 때 보세요. 마귀가 이렇게 저렇게 꾀어도 오직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말하는 것이 성경과 다를 때는 절제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가감 없이 의심하지 말고 믿고 그대로 말하고 행세요. 다른 것이 능력이 아닙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율법 학자 중 한 명이 힐렐이라는 랍비입니다. 그가 율법 공부를 할 때에는 가난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가 한 푼도 벌지 못해 토라 학교에 갔지만 수업료 때문에 교실에는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빛이 들어가게 만든 지붕창에 올라가 그 창에 얼굴을 대고 공부를 하다가 몸에 눈이 쌓이는 것도 잊어버리고 공부에 빠졌습니다. 아침이 되어 지붕창이 하도 이상해서 쳐다보니 힐렐이 거기 엎드려 공부하다가 그만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 공부에 힘썼기 때문에 힐렐은 당시 최고 학자가 되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신앙은 하나님 말씀에서 옵니다. 성경에 입각한 사고를 가질 때 믿음의 말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한지 얼마나 됩니까? 이제부터 우리의 언어를 바꾸십시다. 사실의 언어가 아닌 믿음의 말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는 말, 기적을 믿는 말,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하는 말, 성경으로 하는 말을 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쓰시듯 귀히 쓰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민 14:1-10)
현대사회를 정보화시대라고 한다. 일본은 IT에서 2류 국가가 될 수 없다고 선포-총력.
임진왜란/일본의 수신사로 갔던 사절단의 보고-선조-상반된 두 견해/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정확한 정보 부재-적절한 조치를 내리지 않음으로 조선왕실과 민중들의 운명이 엇갈리는 분깃점이 되었다. 조선의 땅은 왜적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선조는 평양으로 의주로 도망가야 했다.
민수기에도 스파이들의 활동이 등장한다. 각 족장의 대표로 구성된 12명의 스파이들이 모세 총사령관의 명령으로 가나안 지역을 샅샅이 조사, 결론이 두 가지로 서로 엇갈렸다.
12명의 스파이들의 공통된 견해/
1)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들은 우리보다 신장이 크다. 그들은 강하다.
2)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다.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주변국가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만 소유할 수 있는 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10명/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우리는 작고 보잘것없고 약하다/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있다/2명/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그러나 우리는 강하다/이길 수 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 같은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는지?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그들의 문제점들을 통해 우리의 신앙과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
1.약속의 땅/무혈입성하듯 순적하게 들어갈 수는 없는가?
편안하게 쉽게 손 안대고 승리하고 이길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예수 믿으면 모든 문제가 순적하게 술술 풀려야 하는데 때로는 더 꼬이고 말리고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 계시는가? 나를 도우시는 분인가?
*장미/가시가 없으면 더 이상 장미가 아니다. 가시 없는 장미 매력이 없다.
*축구/국가대표팀:다른나라=시합 약한 팀을 불러서 100전 100전 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강한 팀들과 싸워서 이겨야 그 승리가 의미가 있고 값지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들이 강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백성, 용사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약속의 땅/가나안에는 아낙 자손들이 있어야 정상이며 제격이다. 장애물을 뛰어넘고 또 극복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대하시고 원하는 사람으로 되어져 가는 것이다.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성도들은 신분상으로는 이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천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 땅위를 살면서 치루어야 하는 댓가가 있다. 과정들을 통해서 인내의 사람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소망의 사람으로,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신다.
2.이스라엘 10명의 스파이들은 왜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보고를 했는가?
그들은 객관적이고 사실에 충실한 보고를 했다. 40일 동안의 정탐을 기다리고 기다린 이스라엘 회중들에게 "그들은 비실비실한다. 우리가 가기만 가면 된다. 아니 한번 해 볼만한 상대이다. 힘을 내면 될 것이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이다. 그와 같은 기대를 했을 것이다"라는 보고가 아닌 우리는 죽은목숨과 다름없다. 어찌 그 땅을 우리가 차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밤새도록 통곡을 하고 울며 부르짖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보고한 내용과 표정하며 끼친 영향이 얼마나 절망적었는가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13:28~29
*한숨만 팍팍 내쉬었다. 얼굴은 굳었고 잿빛, 목소리는 기어 들어가는 잘 알아 듣지도 못할 만큼 맥빠진 소리였을 것이다. 충격적인 내용을 접한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이 부정적이고 음습한 사실은 온 회중, 청장년 이상은 그들의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6.25 이승만 대통령/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국군이 북한군을 용감하게 물리치고 있습니다.
내가 저들을 위해 출애굽, 반석에서 물, 만나, 메추라기,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고 보호했는가? 탄식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그 언덕에서 5천명을 먹이신 이후에 하신 말씀/그들은 나를 쫓은 이유는 떡을 먹고 배가 부른 까닭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간증할만한 놀라운 이적과 기적을 나의 생애에 베푸시는 이유는? 자랑거리나 무용담이나 추억으로 여기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위대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증거하며 나타내라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을 참조/10명의 정탐군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적인 안목을 가지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40여 년을 동행하시면서 그들의 가슴에 생애에 생명의 씨앗들을 뿌렸다. 그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비롯한 극소수만이 그 씨앗들을 옥토 밭처럼 간직하고 생명 기운을 싹틔웠다. 나머지는 돌짝 밭, 가시밭, 뜨거운 태양에 생명을 피워 올리지 못하고 말라 시들어 죽었다.
*김병종 화가/노르웨이 여행-죽기 전에 소원 10가지를 들라면 그 중에 한가지. 3개월간 아름다운 통나무집에서 지내는 것.
가나안 지역을 정탐한 스파이들은 비옥한 땅을 보았다. 광야생활을 한 그들의 분에는 참으로 눈이 휘둥그레지지 아니할 수 없었다. 경이로운 광경에 넋을 잃었다. 기름진 비옥한 삼림이 울창하고, 초원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물댄 동산과 같이 아름다운 땅이었다. 팔레스틴 땅을 비유하기를 비옥한 초생달 지역이다. 그곳은 40년 광야 여정의 말미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였다. 광야에서의 그리고 애굽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땅이었다.
3.여호수아와 갈렙/여느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는 관점은 특별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들은 동일한 조건과 세계를 접했다. 이들은 절망과 불평과 낙담이 아닌 가능성을 찾았다.
40일 동안 가나안을 샅샅이 정탐하면서 마음이 움츠려 들고 주저하고 두려움에 빠지지 아니했다.
그들의 마음 속에도 분명 절망과 낙심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신뢰하고 순전하게 받았다.
1)나는 현재 의식주 해결에도 전전긍긍-부자가 되게 해 주겠다. 너로 창대케 되리라 약속-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1)있을 수 없는 일. 현실을 보아라. 헛된 소리지. 2)꿈을 가진다. 솔깃해진다. 사기 당하고 망상에 사로 잡힌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분은 누구인가? 하나님은 지난 40년 동안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을 먹고 마시고 살았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의 힘을 덧입어서 살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생존이 불가능한 세계에 살고 있다.
2)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갈렙에게만 비밀한 것을 보여주셨고 들려주셨는가?
비옥한 땅을 보았다. 눈으로 손으로 입으로 온 몸으로 체험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라는 것을 믿고 그에 맞는 믿음의 반응과 행동을 해야 했다. 그 땅과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만 보았다.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하시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없는 세상은 죽은 땅이다. 아무리 척박하고 광야와 같은 땅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땅은 천국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못지 않다.
여호수아와 갈렘은 백성들을 진정시키고자 백방으로 수고했다. 13:30, 14:6~ 역부족
4.백성들의 폭동/현실에 사로잡혔다.
사실에만 머무르고 말았다. 현재에 지배당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 가운데서 뻗어 나갈 수 없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졌다. 그들이 할수 있는 행동은 울고 통곡하고 지도자를 교체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애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최선의 결론이었다. 지난 40년의 시간 속에서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기르셨던 하나님은 어디로 가셨는가?
1)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돌아가자! 애굽으로! 역사적으로 상징적으로 불 신앙과 배교의 말!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애굽은 과거로의 회귀, 세상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
아브라함-애굽으로 내려가려는 것을 하나님은 실패하시는 하나님, 거짓말하는 하나님, 무능력한 하나님, 책임감이 없는 하나님, 자기 백성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같은 모습을 바라보시며 절망하시고 좌절하지 아니할 수 없다.
2)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7~8
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국론이 분열됨/위기/10:2=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여,갈 소수의견으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아니함.
엘리야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결을 벌였다. 450:1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물리적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환경과 조건에 의해 반응하고 제약을 받는다. 이 땅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 죽는다.
믿음의 세계/영원 무궁을 지향한다. 현실과 사실에 족쇄에 매여 있지 않다. 꿈을 안고 현실과 사실의 세계를 뛰어넘는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물리적인 환경과 조건을 초월한다.
아니 물리적인 환경과 조건들이 굴복 당한다.
아무리 좋은 조건과 환경에 둘러싸여 있어도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아니하면 그곳은 죽은 땅이다.
악한 환경과 척박한 땅도 하나님과 함께 하시면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역사의 주도권은 꿈을 가진 자들에 의해 움직인다. 가야교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눈앞에 당면한 현실과 사실은 부인될 수 없다. 그것을 보는 눈이 다르다. 해석하는 관점이 차이가 난다.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지자.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