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天上(천상)에서 방금 내려온 듯한 한없이 착하고 순진무구한 얼굴의 미녀가 우아하고 정중하게 손을 살짝 내저으며 예의 그 눈웃음까지 곁들여, 낮지만 나긋한 목소리로 『노 생스(No, Thanks)』라고 말하는, 아주 매혹적인 순간을 상상해 보자.
무슨 부탁을 했든 그녀와 마주 한(대개 남자일 가능성이 큰) 사람은 그 말뜻을 채 알아차리기 전에 그녀의 새하얀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녀가 베푼 친절함과 정중함에 짜릿한 전율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두 단어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이 일으키는 공명과 여운은 점차 그녀의 진짜 의중에 관한 궁금증으로 변하고, 결국 모든 맥락을 알아차린 순간 이상한 치욕감과 절망감이 엄습할 것이며, 이내 그녀와의 사이에 놓인 벽은 더욱 견고해지고 그럴수록 그녀를 향한 욕망은 강렬해질 것이다.
이영애(34)는 말하자면 아직 다 보여지지 않은 이 매혹적인 순간의 가능성을 가진 배우다. 1990년대 「산소 같은 여자」로 상징되는 벼락 같은 스타덤 이후 그녀가 주로 CF에서 體現(체현)하는 이미지란 대개 우아하고 귀족적이며 신비로운 여인이었으나 이영애만의 독특함은 그 속에 섞여 있는 무언의 거부 의사와 접근 불가능성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한때 인터넷 게시판에 돌아다녔던 「이영애의 하루」를 보자.
<아침에 일어나 세이 비누로 세수를 하고, 엘라스틴으로 머리를 감고, 오전에 오기로 한 웅진코웨이 아줌마를 기다려서 정수기 필터를 교환하고 지펠 냉장고에 있는 주스를 마시며 조금 쉬다가, 어제 한 빨래를 걷어 다리미로 다리고 유리창을 좀 닦다가, 참 나의 꿈도 소중해 하면서, 영어 공부를 한다(두 유 해브 애니 익스, 익스피어리언스?). 오후가 돼서 외출준비를 하고, 엘지카드를 들고 나가 펜싱, 헬스, 쇼핑, 나이트클럽 등, 정신없이 보내다 밤이 돼서 돌아오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엄마 생신! 빨간 스웨터를 보면서, 좀 있으면 엄마 생신인데 뭘 사 드리나…. 그리고 새벽에 전화벨이 울리면 그녀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이영애가 출연했던 광고의 브랜드를 조합해서 만든 이 우스개는 CF 이미지가 구현하는 표준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 주는 듯하지만 사실 일반인들로서는 쉽사리 따라 하기 어려운 일상을 동시에 「과시」하고 있다. 그 속에는 평균 이상의 풍요로움과 선천적인 외모의 아름다움, 넘치는 여유로움에 대한 과장과 과시가 숨어 있다. 일반인들에게 이것은 표준적 삶의 모습보다는 `이상적 이미지에 가깝고, 닿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매혹적이고 간절한 욕망이다.
미스코리아들이 뽑은 미인 2위에 올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모든 CF가 이상화된 육체와 일상의 이미지를 구현하려 하지만 전략이 매번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이영애가 광고주로부터 다년간 최고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적인 판타지가 가진 유혹과 거부의 전략을 늘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가장 완벽한 모델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영애를 모델로 기용한 CF의 성공적인 전략은 데뷔작인 「투유 초콜릿」이나 「산소 같은 여자-마몽드」 혹은 「이영애의 하루」가 보여 주듯 대중들이 갖는 강력한 브랜드 인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영애가 CF스타로서 누리고 있는 인기의 근원은 결국 늘 정중하고 친절한 초대장을 발송하지만 접근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 이 기묘한 우아함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특A급 스타로서가 아닌 배우로서 이영애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혹시 「파파」나 「초대」, 「불꽃」, 「파도」, 「로맨스」 같은 드라마를 기억하시는지? 아니면 「내가 사는 이유」나 「의가형제」 등에 이영애가 나왔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비교적 최근 히트작인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나 「봄날은 간다」, 드라마 「대장금」을 제외하고 데뷔 이후 이영애 출연작에 대한 인지도는 CF 브랜드의 그것에 비한다면 이상하리만큼 미미하다. 그것은 이영애를 기용한 대개의 드라마나 영화가 30초짜리 CF에서 보여 준 이영애의 매혹적인 순간을 2시간 이상의 호흡으로 연장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30초의 매혹적인 순간을 극대화시켜 2시간의 러닝타임 속으로 溶解(용해)시키며 배우로서 가진 이영애의 가능성을 재발견한 영화는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가 아마 최초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이혼녀인 이영애는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모호하지만 매혹적인 제스처로 유지태를 유혹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유혹의 마지막 장면이자 결론은 접근을 시도하는 유지태에 대한 거부였다.
이영애가 가진 이러한 우아함의 이미지는 현대성과 고전미의 경계선에 서 있거나 그 둘이 섞인 모호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녀의 얼굴은 「고전적인 동양의 아름다움」이라는 수사와 「도시적이고 세련된 현대적 마스크」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는 그녀의 얼굴이 딱히 현대적이지도 고전적이지도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영애의 이미지는 섹슈얼리티나 현대성, 서구성, 고전미 등 어느 하나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그 사이 어디에선가 모호하고 복합적인 성격을 보여 준다.
이는 각종 설문조사에서 확인된다. 「징기스칸」 2월호가 역대 미스코리아 입상자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역대 최고 미인」에 대한 인터뷰와 설문조사 결과에서 이영애는 고현정에 이어 2위에 랭크됐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포털 사이트 다음이 `대한민국 최고의 미인을 묻는 설문조사에서는 김태희가 1위를 차지했으며 역시 이영애가 그 뒤를 이었다.
역대 미스코리아 입상자들이 1위를 꼽았던 고현정은 일반인들의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3위를 차지한 반면 일반인들이 최고 미인으로 평가한 김태희는 미스코리아 입상자 설문조사에서는 4위로 내려앉았다. 이영애는 두 조사 모두에서 2위에 랭크됐다.
수만 명이 참여한 일반인들의 설문조사 결과가 가장 최근 유행을 반영하고 역대 미스코리아 입상자들의 그것은 보수적인 심미안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면 고현정은 고전미가, 김태희는 현대성이 도드라지는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이영애는 어느 하나가 이들보다 도드라지지 않지만 두 가지 이미지를 고루 갖춘 얼굴로 평가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에서 방영 당시 일었던 「대장금」의 폭발적인 인기는 드라마의 소재나 완성도에 기인하는 바도 크지만 이영애가 가진 이 두 가지 복합적이고 모호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끌어낸 전략에도 크게 빚지고 있다.
홍콩 파파라치들이 몰린 영화 촬영장
보잘것없는 출신 성분의 여인이 신분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강한 의지와 합리적이고 독립적인 태도로서 최고의 의녀로 성공하게 된다는 다분히 현대적인 여성 성공 스토리, 조선시대 배경이 갖는 고전적이고 단아하며 순정적인 분위기가 성공적으로 결합될 수 있었던 것은 이영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궁궐 내의 이야기라는 지역적, 시대적 제약성에도 불구하고 「대장금」이 홍콩과 일본에서도 국내 못지않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국성뿐 아니라 이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현대성과 보편성 때문이다.
특히 「대장금」과 이영애는 현재 홍콩에서 `신드롬을 만들어 내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1월24일부터 홍콩 TVB를 통해 매주 월ㆍ화요일 밤 11시에 방송됐던 「대장금」은 골든 타임이 아닌데도 방송 3주 만에 시청률 30%를 돌파했고 40%까지 넘나들며 전체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지난 3월31일 이영애의 차기 출연작이자 박찬욱 감독의 신작인 「친절한 금자씨」의 경기도 파주 촬영장에서 만난 홍콩 TVB의 리포터인 송지렝씨는 『가수 비나 탤런트 송혜교씨도 인기가 높지만 요새는 이영애씨가 최고』라며 『이영애씨의 일상에 대해서도 아주 관심이 높다』는 말로 현지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있었던 촬영장 언론 공개 행사에는 일본에서 파견된 70여 명의 기자들 외에 홍콩 취재진 40여 명이 참석해 포토라인을 무너뜨리는 등 부산을 떨었다. 원래 이날 공식 초청 리스트에는 17명의 홍콩 기자 이름만이 올려져 있었으나 무작정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인천공항에 내려 영화사 측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촬영장을 가겠다』고 몰려든 취재진이 23명이었다.
마침 이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오늘 홍콩 인기스타들을 쫓아다니는 파파라치들이 안 보인다며 한국에 가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23명의 파파라치들이 이영애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갔다』고 보도했다. 3월 말일, 200여 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공개된 「친절한 금자씨」는 이영애에게 새로운 도전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기대는 영화전문지 「스크린」(3월호)의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2000~2004년 활동을 기반으로 흥행 성적, 국내외 수상경력, 해외지명도(한류 등), CF 파워, 개런티, 사회공헌도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배우, 감독, 방송PD」에서 이영애는 여배우 부문 1위(전체 배우 부문 6위)에 뽑혔다.
박찬욱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를 『이영애라는 배우에게 집중하는 영화』라며 『이영애는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고 한 배우가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늘 살짝 눈웃음을 치는 얼굴로 조용하고 얌전한 여성, 말할 때도 목소리 높이는 법 없이 조근조근 말하는 이 미녀가 만약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정교한 방법으로 한 남자에게 복수를 하게 된다면?」이라는 설정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박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이 영화는 이영애가 살인귀보다 더 섬뜩할 때도 있고, 누구보다 우스꽝스러울 때도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이영애의 멜로와 이영애의 코미디, 이영애의 휴먼드라마, 이영애의 액션활극, 이영애의 호러, 그 모두가 될 것이다. 『영화를 보시면 알게 될 것』이라며 내내 「친절하지만 모호한 태도」로 말을 아끼던 이영애는 『한 장면 한 장면에서 나도 모르는 낯선 나의 모습에 놀란다』고 85% 가량 촬영을 끝낸 소감을 밝혔다. 이 영화는 오는 7월 개봉 예정이며, 일본에 300만 달러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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