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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8년 갑오년(甲午年) 정월 성지순례
서울 강남 수도산 봉은사(修道山 奉恩寺)를 찾아서 ②
-법왕루, 삼층석탑, 대웅전, 지장전까지-
진여문을 들어와 법왕루로 향합니다. 이제 진여(眞如)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진여문에서 바라본 법왕루
법왕루(法王樓)
법왕루는 진여문에서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사이에 있는 건물로, 누각 밑을 통해 대웅전으 로 들어가게 되어 있어 출입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2층 다락집 형태로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법왕루란 말 그대로 해석하면 법의 왕 즉 부처님이 계시는 누각이란 뜻입니다. 이런 형태의 누각은 예전에는 주로 불전사물의 봉안 장소로 쓰여지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봉은사 법왕루는 대법회가 있을 경우 부족한 기도공간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 니다. 따라서 설법전(說法殿)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1997년 완공되었습니다.
법왕루 뒤편의 편액.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선생 글씨
『禪宗宗刹 大道場 佛紀 二千九百七十年 吳世昌』 선종종찰 대도량 불기 이천구백칠십년 오세창
불기 2970년은 지금의 불기(佛紀)로 환산하면 계미년(癸未年) 불기 2487년이며, 서기로는 1943년 입니다.
오늘이 삼일절이고 보니 독립운동가 오세창 선생에 대해서 글을 옮겨 봅니다. 일찍이 정 릉의 흥천사 종각의 글씨를 소개할 때 소개했습니다만 다시 옮겨 봅니다.
『3ㆍ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중명(仲銘), 호는 위창(葦滄). 아버지는 중국어 역관으로 초기 개화파의 한 사람이었던 경석(慶錫)이다. 아버 지의 영향으로 20세에 역관이 되었으며, 김옥균ㆍ윤치호 등 개화파 인사들과 접촉했다.
1886년(고종 23) 박문국(博文局) 주사로 있으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 기자를 겸임했다. 1894년 군국기무처 총재비서관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농상공부 참의, 우정국 통신국장 등의 관직을 거쳤다.
1896년(건양 1) 독립협회의 간사원으로 선임되었으며, 독립문ㆍ독립공원의 건조사업을 관 장하는 임원으로 선정되었다. 1897년(광무 1) 일본 문부성의 초청으로 1년간 일본에 머물 면서 도쿄 외국어학교[東京外國語學校] 조선어 교사를 지냈다. 1902년 6월 개혁당 사건 으로 일본에 망명, 이미 일본으로 망명해 있던 손병희(孫秉熙)의 권유로 천도교에 입교하 고, 이후 손병희의 참모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06년 1월 손병희와 함께 귀국하여, 3월 장지연(張志淵)ㆍ윤효정(尹孝定) 등과 함께 국권회복운동의 일환으로 교육개발ㆍ식산흥업 을 표방한 대한자강회를 조직했으며, 손병희의 후원하에 국민의 지식계발을 목적으로 6월 에 〈만세보〉를 발간하는 등 계몽운동ㆍ언론활동에 주력했다.
대한자강회의 활동과 영향력이 커져 이에 불안을 느낀 통감부가 1907년 8월 신문지법을 적용하여 이를 강제로 해산시키자, 11월에 남궁억(南宮檍)ㆍ장지연ㆍ윤효정ㆍ권동진(權東 鎭)ㆍ지석영(池錫永) 등과 더불어 대한자강회의 이념을 계승한 대한협회를 조직하고 부회 장이 되었다. 1909년 유길준(兪吉濬)과 융희학교(隆熙學校)를 설립하고, 장효근과 함께 협 회의 기관지 역할을 한 〈대한민보〉를 발간하여 일진회(一進會)에 대항했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자, 삼갑운동(三甲運動)을 추진하는 등 천도교 교단에서 활 동했다. 그러던 중 1918년말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등 당시의 세계정세와 국내동향으로 보 아 일대 독립운동을 일으킬 시기라고 생각하고, 최린(崔麟)ㆍ권동진과 함께 독립운동 준비 를 발의했다. 1919년 1월초 국내에 들어온 도쿄 유학생 송계백(宋繼伯)으로부터 도쿄 유학 생들의 독립선언계획을 듣고 손병희ㆍ최린ㆍ권동진 등과 더불어 독립운동에 관해 협의하 여, 운동의 3대기본노선을 대중화ㆍ일원화ㆍ비폭력으로 확정했다. 기독교계ㆍ불교계 인 사 및 학생들과 비밀리에 접촉한 후, 손병희ㆍ최린ㆍ권동진과 더불어 천도교 대표로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고, 일제에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서화에 전념하면서 은둔생활을 했다. 1918년 서화가들의 친목단체인 대한서 화협회가 결성될 때 발기인으로 참가한 그는 서화는 물론 그 감식(鑑識)에도 조예가 깊어 한국서화사 연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아버지와 자신이 수집한 역대 서화가의 사적을 토대로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화가들에 관한 기록을 총정리하여 편술한 〈근 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이래의 서화가ㆍ문인학자들의 날인된 인장 자료를 모아 집성한 〈근역인수(槿域印藪)〉, 수집한 고서화들을 화첩으로 엮은 〈근역서 휘(槿域書彙)〉·〈근역화휘(槿域畵彙)〉 등은 모두 서화사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들이다.
글씨는 특히 전서ㆍ예서에 능했는데, 전서와 예서를 혼합한 글씨나 와당(瓦當)ㆍ고전(古 錢)ㆍ갑골문 형태의 구성적 작품도 시도하여 독특한 경지를 이루었다. 그의 글씨는 합천 해인사의 〈자통홍제존자사명대사비 慈通弘濟尊者四溟大師碑〉의 두전(頭篆)을 비롯하여 전국 여러 곳에 남아 있다. 8·15해방 후에는 〈서울신문〉 초대사장ㆍ명예회장, 민주의원, 대한민국촉성국민회장, 전국애국단체총연합회장 등 언론ㆍ사회단체의 원로로서 활동했 다. 6·25전쟁 중 피난지인 대구에서 죽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삼층석탑의 풍경
법왕루를 지나 대웅전으로 가려 하니 대웅전 앞 삼층석탑이 나타나고 연등이 우리를 맞이 합니다. 석탑 일대는 가건물이 세워져 대웅전의 시야를 가리니 답답한 모양새입니다. 가 건물 위에는 연등이 가득 걸려 있고 석탑을 중심으로 왼편에 아미타불 괘불이 걸려 있었 습니다. 금방 큰 법회가 베풀어질 예정인 것 같았습니다. 바닥에 바닥재를 깔고 자리를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순례 다음날인 2월 24일 베풀어질 42대원 성취 천수 다라니기도 일환으로 법회가 이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삼층석탑(三層石塔)
삼층석탑에 대한 정보가 없어 상세한 설명을 할 수 없네요. 다만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 니다.
『대웅전 앞마당에 세원진 전형적인 3층 석탑으로서 부처님 사리 1과가 모셔져 있다.』
석등(石燈)
석등(石燈)은 석탑을 밝히는 등이지요. 좌우 한 쌍으로 똑 같습니다. 석탑과 같이 조성되 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사각 지대석 위에 팔각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하대석(下臺石)은 복련(覆蓮)을 새기고 그 위의 간주석(竿柱石)을 세우고 상대석(上臺 石)은 앙련(仰蓮)을 새겼고, 그 위에 팔각 화사석(火舍石)을 올렸습니다. 그 위에 옥개석 (屋蓋石)을 올리고 상륜부(上輪部)에는 보륜(寶輪)과 보주(寶珠)를 올렸네요. ^^
아미타괘불도(阿彌陀掛佛圖)
괘불은 큰 법회가 열릴 때 내걸게 됩니다. 봉은사에는 이 괘불도 말고,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231호 봉은사 괘불도 (奉恩寺 掛佛圖)가 있습니다. 역시 큰 법회가 있으면 이 아미타괘불도와 양 옆으로 걸리도 합니다. 아직 내걸지 않은 것이지도 모릅니다. ^^
아미타괘불도(阿彌陀掛佛圖)를 더 당겨 봅니다.
가운데 하단에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부분을 확대해 보니 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그 글씨는 다음과 같습니다.
『阿彌陀佛 本心微妙眞言 怛也陀 唵 我里多羅 娑婆訶』 아미타불 본심미묘진언 다냐타 옴 아리다라 사바하
봉은사에서 청년부장을 맡고 계신다는 묘법님 지인의 따님입니다.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알고 인사라도 전할 겸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저도 면식은 있어 알 고 있습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바쁘신 것 같아 인사만 하고 이내 헤어졌습니다.
삼층석탑 주변의 가건물 때문에 대웅전 모습을 전혀 담을 수가 없어 부득이 옆에서 살짝 담아 봅니다. 이제 대웅전에 들어가 예배할 차례입니다. 예배(禮拜)라 하니 기독교 용어 같지만 사실은 불교용어입니다.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합장하고 절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禮拜)는 오정행(五正行)의 하나로 불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수행법의 한 가지입니 다. 참고로 오정행(五正行)은 독송(讀頌)ㆍ관찰(觀察)ㆍ예배(禮拜)ㆍ칭명(稱名)ㆍ찬탄공양 (讚嘆供養)을 말합니다. 이 오정행은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바른 행업입니다. ^^
대웅전(大雄殿)
대웅전 앞 마당 삼층석탑 일대가 가건물로 앞을 가리어 대웅전 정면찍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담아 봅니다.
이 대웅전은 1970년대까지만해도 정면 3칸의 건물이었으나 1982년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다포집 팔작지붕 건물로 중창하였습니다.
대웅전(大雄殿) 편액 추사(秋史) 선생의 글씨 모각본.
이 글씨는 삼각산 진관사(津寬寺) 대웅전의 글씨를 모각(模刻)한 것이라 합니다.
불단의 모습입니다.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미소님 사진-
이와 같은 삼존불 형태를 일부에서 삼세불(三世佛)이라 하는데 이는 잘못된 명칭입니다. 삼세불은 연등불ㆍ석가모니불ㆍ미륵불을 이르는 것이지 이와 같은 삼존불은 아직 정확한 명칭은 없는 상태입니다. 이는 병고를 겪고 있는 분들을 위하여 약사여불을, 정토왕생을 발원하기 위하여 아미타불을 모신 것이니, 저 같으면 신행삼존불(信行三尊佛)이라고 부르 고 싶습니다.
이 삼존불은 모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26호인데 제작년도는 조금 다릅니다. 석가모니불좌상은 1700년경(숙종년간)이며, 약사여래불좌상과 아미타불좌상은 1651년 (효종 2년)이라 합니다.
삼존불 뒤에 있는 후불탱화는 삼여래회상도(三如來會上圖)인데, 중앙에 석가여래를 중심 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가 앉아 계시는 형태입니다. 이 불화는 서울시 유형문 화재 제234호이며 1892년(고종 29년 光緖 18년)에 봉안했다고 합니다.
신중탱화(神衆幀畵) 유형문화재 제229호 1844년(순조 10년 道光 24년)
화면 가운데는 제석(帝釋天)과 범천(梵天)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협시와 권속들을 가득 배 치하였습니다. 화면 상단에는 제석천과 범천을 경배하고 있는 천중상(天衆像)들이 있고, 화면 하단에는 동진보살(童眞菩薩)을 중심으로한 팔부신중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이 불화는 1844년 인원당(仁源堂)ㆍ퇴은당(退隱堂) 유인(宥仁)ㆍ송암당(松岩堂) 대원(大園) 스님 등이 그렸다고 합니다.
영단에 음식을 진설해 놓고 재를 지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감로탱화(甘露幀畵) 서울시 유형문화재 236호 1892년(光緖 18년)
감로탱화(甘露幀畵)는 영단(靈壇)에 모시는 탱화로, 정토신앙과 밀교신앙을 반영한 불화인 데 조선시대에 성행했다고 합니다. 상단에 7여래(七如來), 좌우에 인로왕보살도(引路王菩 薩圖)와 관음ㆍ지장도(觀音地藏圖)를 묘사하여 정토(淨土)와 정토인접내영(淨土引接來迎) 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중단에 재의식단(齋儀式壇)과 그 앞에서 재의식하는 모습 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하단에는 중심부에 아귀(餓鬼)의 모습을 크게 묘사하였고 주변 에 육도(六道)의 중생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단은 온갖 욕계의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범하기 쉬운 죄업의 과정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지옥의 고통에서 헤매이는 중생들이 반승의식(飯僧儀式)을 통해서 극락세계로 인도되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통 속에 빠져 있는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재의식(齋儀式)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재의식을 행한 공덕으로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권선징악적인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대웅전 옆 모습
지장전(地藏殿)
지장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예전엔 명부전이란 이름으로 정면 5 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42년에 중창되었었다고 하는데, 2002년 6월 불의의 화 재로 전소되어 본래 12평이었던 전각을 40평으로 2003년 12월에 중창했다고 합니다.
우보처 무독귀왕 대원본존 지장보살 좌보처 도명존자 -참고 사진-
지장전을 찾아 예를 올리고 촬영을 하려던 찰나..... 내부 사진을 담지 못했습니다. ㅠㅠ 대신 벽화를 담았습니다. 지옥 문전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지장보살님.
남녀의 망령(亡靈)들이 줄줄이 지옥으로 끌려가는 장면이네요. 험상궂은 옥졸에게 "한 번 살펴 주십시요." 하며 손을 싹싹 비비며 사정을 해보나 사정을 봐줄 옥졸들이 아닙니다.
"빨리 들어가지 못해!" 하며 호통이 대단합니다.
지장보살님께서 이 기막힌 장면을 보시고 눈물을 훔치고 계시네요. 지장보살님은 지옥 문 전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노라."
발뺌하는 망령들
이 장면은 염라대왕에게 판결을 받으려고 망령들이 붙들려 왔네요. 우측엔 염라대왕이 판 관 녹사와 함께 있는데 판관은 죄상을 들여다 보고 있군요.
그런데 염라대왕 앞으로 간 망령들이 살펴 달라고 애걸하기도 하고 발뺌하기도 합니다. 기가 막힌 옥졸이 소리칩니다. "네 이~~놈! 저래도 부인할 테냐~~~!"
기막힌 옥졸이 정파리경(淨玻璃鏡)이란 업경대(業鏡臺)를 가리키며 기가 멍멍하도록 소리 치네요. 이 거울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지은 온갖 죄들을 비추는 거울이지요. 거울을 보니 복면을 하고서 한 손에 칼을 들고 남의 담을 넘고 있네요. 딱 걸렸습니다. 발뺌할 수가 없습니다. 한 망령이 삼십육계를 놓으려 하나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ㅠㅠ
이 장면은 목련존자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하여 지옥을 찾는 모습 같습니다.
생전에 선업을 닦은 이는 관세음보살의 인도를 받아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갑니다.
극락세계에 와서 아미타불의 설법을 듣는 장면이네요.
극락세계의 모습입니다.
관음ㆍ세지 양대보살의 협시를 받고 계신 아미타불, 천동천녀(天童天女)는 부처님게 꽃과 과일을 공양하려 하네요. 극락세계에 오신 스님들은 장차 성불할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 菩薩)입니다.
천진난만한 동남동녀의 모습입니다.
큰 천도복숭아를 들고 무엇을 하려 할까요? 부처님께 공양하려고 하겠지요? ^^
연좌(蓮坐)하신 아미타부처님과 관음보살님, 지장보살님의 모습입니다.
천녀(天女)가 과일을 공양하려고 하네요. 죄를 지어 지옥에 빠지는가 하면 선업을 많이 하 여 극락에 가네요. 죄를 지어 고통을 받을 것인가, 선업을 닦아 기쁨을 이룰 것인가는 우 리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심전경작 작선수복(心田耕作 作善受福) 합시다.
다음은 영산전으로 향합니다. 제3탄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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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삼](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7.gif)
층석탑이 있는곳 철탑으로 지은 가건물로 인해 대웅전앞쪽이 갑갑해 보였습니다.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3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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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건물이 미관을 많이 해치더군요.![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6.gif)
앞으로 무슨 계획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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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앞의 석탑은 대웅전과 어울려야 제 멋이 나지요.
오세창선생의 약력.. 대웅전과 지장전 사진글 잘 봤습니다.![^0^](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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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창 선생은 3.1운동의 주인공이라 이번![삼](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7.gif)
일절을 맞아 의미가 있는 분이라 상세히 소개해 보았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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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전 벽화는 재미있으라고 이야기를 꾸며 보았습니다.
이쁘게 잘 찍으시고 설명는 최고!!
즐감하고 갑니다....나무묘법연화경()()()
묘법님 감사합니다. 설명을 잘 읽으시면 나중에 다른 이와 이곳을 방문하셨을 때 들려 주실 이야기가![^-^](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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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으실 것입니다.
심전경작 작선수복(心田耕作 作善受福) 선업을 짖기를 게을리 해선 앙돼요~~_()_
화광님, 선업을 지으면 무시무시한 지옥체험 대신 선학이 노니는 극락에 노닐게 되겠지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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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자가 없지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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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기를 읽으면 늘 감탄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는 곳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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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액을 하나를 놓고도 그 주인공을 공부하게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오세창 선생에 대해서는 들어는 봤어도
가물가물한데 3.1운동의 주역이었군요. 감사합니다. 대웅전 앞이 복잡하군요. 대웅전에 유형문화재가 많군요.
잘 보았습니다. 지장전 벽화의 설명 재미 있게 잘 읽었습니다. 여기가지 보는 동안 시간이 많이 지나서 다음에 다시
시간을 내어 감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견님 댓글은 언제나 기다려집니다.![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6.gif)
자세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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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설명을 많이 올렸지만 참을성 있게 읽으시는 분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할 때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많이 적어보는 것은 뒷날이라도 누군가의 궁금증을 해소시키기 위함입니다.
지장전 벽화는 제가 이야기를 만들어 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