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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토사시편(土佐詩篇)
나는
--- 나는 --- 약하다 --- 나는 --- 힘이 없다 --- 나는 --- 작은 존재다 --- 나는 --- 아프다 --- 나는 --- 키카 커서 슬픈 남자다 --- 나는 ---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
바람 속으로 흩어져 날아가 버린
냄새처럼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아파서 누웠는 날에
정확히 六疊房에 쓰러져 있는 날에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니다
(2013. 4. 21. 高知)
빈 房
내게 빈 房 하나 생겼네
오래도록
그리고 꿈꾸던
빈 房 안에는 아무도 없고
아무 재산도 없네
그저 아침 햇살이 찬란하게 불러일으킨
남자의 坐禪만이 가끔 있네
아무 것도 없는 빈 房
참으로
나로서는 사치스럽지만
평생 갖고 싶었던 빈 房 안에서
나는 내 꿈을 보네
빈 房처럼, 明白하고 간단한
걸음걸이 그려 보네
(2013년 5월 6일, 高知)
서울보살님
전생에 부모자식 인연이던가
첫눈에 나를 좋아하신다, 둘째아들
돈상씨랑 닮았다며
편애가 자심하셨다
내 東大 교수도 되기 前
어느 추운 겨울날 저녁
쓰러지셨다, 서울의 경희대 한방병원이
마지막이었다
아예 제사 같은 것은 챙기지도 말라는 것인지
하필이면 설날이 제삿날이라
한번도 제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나를 닮은 둘째 아드님 돈상씨는 잘 살고
있는지, 이제 스님을 뵈어도
안부조차 여쭙지 않는 세월인데
참으로 이십 수년 만에 나를 찾아주셨네
--- 아는 초등학생의 일일이모부가 되어줘요
--- 네, 저도 꼭 들어드리고 싶어요
설날 연휴 지나고, 2월 13일로 약속을 잡았다
--- “능가경”을 설명해 주세요
아니, 초등학생에게 그 어려운 “능가경”을
설명해 주시라니 ---
눈 덮인 山길을 내려오며
내 은인 중의 은인이시고, 어머니 중의 어머니
서울보살님을 노래하는 시를
짓는데, “나 가요, 다시 올게요” 말씀도
없이, 그냥 그만 가시네
새벽녘의 내 눈만 밝혀주시고
그냥 그만 가시네.
(2013년 5월 8일, 高知)
노면전차가 있는 풍경
한때는 시대의 선구자, 첨단을 달리고
있었지, 옛날이야기는 무슨
소용이랴, 새파랗게 젊은
친구들에게, 쭉쭉 빵빵 독점적으로
달리는 현대의 최첨단에
벌써 뒤로 밀려서
이젠 누가 불러주는 이도 별로 없고
알뜰히 찾아와 주는 이도 별로 없는
쓸쓸한 존재
그저 그림자만 길게 드리우는 근대의
遺物
그러나, 슬퍼하지는 말게
보라, 그대 얼마나 정다운 얼굴인가
시대의 총아라 자부하는 청춘들도
흘러간 옛노래만 불러제끼는
힘빠진 老年들도, 그대와 함께라면
천천히 천천히 걸어갈 수
있으니, 함부로 기죽지 말라
아직, 아직은, 할 일이 남아 있지
않더냐, 앞서 달리지는 못해도
갈 수 있는 만큼은 걸어갈 수 있지
않더냐, 아직, 아직은 겁내지도
걱정하지도 말라, 현대에서 脫현대로
달리는 시대라 하더라도
그 어딘가는 그대가 앉을 자리
있으리라, 그대 내 친구여,
이제 後方을 지켜주는 後衛로는
살아갈 수 있으리니
아서라, 아예 실망은 말라
그대, 그대 나름의 속도로 걸어가라
그대, 아직은 거부하라, 시대의 遺物임을
거역하라
(2013년 5월 8일, 高知)
섬
기지개를 켜면서
마루로 나섰는데, 웬 일인가
어제는 안 보이던 크고 작은 섬들
크고도 푸르른
東洋畵 속의 소나무들이
나를 향해 달려든다
겁 많은 나는
내 房으로 숨는다
多幸히도, 나를 태운 섬
둥둥 둥둥
떠나간다.
섬들은, 모두 바다를 떠돈다
(2013년 5월 17일 부처님 오신 날, 高知)
섬으로 가는 사람들 11
― 신뇨(眞如)스님
그래, 가는 거다
가려면 끝까지 가야지, 겨우
가다가 마는 것처럼
갈 수는 없다
한 번의 出家
황궁으로부터 나오는 것
그것으로 끝일 수는 없다
한 번 더 가는 거다
한 번 더 떠나는 거다
저 끝까지
부처님 계신 그곳
天竺
가서 여쭈어 보기로 하자, 무슨 지혜
무슨 眼目으로
앞날을 다 내다보시고
권력을 내놓아라
왕위를 내놓아라, 누가 말도
하기 전에
다 내려놓고
다 버려두고
길 떠나셨던가, 宮 떠나셨던가
한번은 꼭 여쭈어 보자
시코쿠(四國)라, 토사(土佐)의 땅
여기 비록 유형(流刑)의 땅이라 하나
완벽한 출가는 아니어라
아직, 아직은
저 끝이 남아 있어라
자, 배를 띄우자
天竺이다
권력에서 자유로웠던 님의 숨결
님의 향기
남아 있는, 그곳
天竺을 향하여
길 떠나는 거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땅
다시 돌아오지 못해도 좋을 땅
이 땅
이제는 벗어나는 거다
떠나자, 어차피 떠나온 길
저 길 끝까지 가는 거다
가다가 범에게 잡아먹히더라도
일부러 잡아먹혔던, 저 님과 같이
후회없이 먹히는 거다
아낌없이 먹히는 거다
그렇게 이 키요타키지(淸瀧寺)도 떠나는 거다
맑은 폭포수 물이나 한 잔
마시고 떠나는 거다
저 구름 너머, 天竺으로
내 塔이나 미리 세워두고
떠나는 거다
(2013년 5월 19일, 高知)
* 신뇨(眞如)스님 : 천황의 아들로 태어나서 황태자가 되었으나, 폐위되었다. 이후 출가, 쿠카이(空海)스님의 제자가 된다. 중국을 거쳐서 인도로 갔으나, 가는 길에 싱가포르에서 죽다. 범에게 물려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 키요타키지(淸瀧寺) : 시코쿠 코치현의 다카오카(高岡)에 있는 절. 88개 순례사찰 중 35번. 신뇨스님이 손수 세운 역수탑(逆修塔)이 있다 한다. 역수는 내세의 자신을 위해 미리 공덕을 닦는 일을 말한다.
門
門이 닫혀 있다.
닫힌 門 앞에서, 나는 길을 잃는다.
저 안에 무엇이 있을까? 부처? 천하의 美女? 혹시,
일확千金이라도 ---.
닫힌 門을 향하여
어느새 내 오른손은 달려가고 있다.
애써 내 왼손이 말린다.
아서라,
그냥 두라, 그냥 두고 가자.
어쩌면, 저 門 안에는
아무 것도 없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저 話頭일 뿐.
나는 돌아서 나온다, 닫힌 門은
그대로 닫힌 채 아무
말이 없다.
(2013. 6. 24, 高知)
섬으로 가는 사람들 12
― 콩코 즈에(金剛杖)
지팡이가 간다
탁, 탁, 탁
지팡이가 간다
산 넘고
물 건너
지팡이가 간다
다리 위는 그대로
소리도 없이
대사님이 깨실라
뒤꿈치 들고서
지팡이가 간다
나보다 한 발 앞서
풀을 헤치며
지팡이가 간다
탁, 탁, 탁
우리 님이 간다
(2013. 7. 1 高知)
섬으로 가는 사람들 13
― 꿈속의 오대산
佛心 깊은 임금님의 눈앞에
오대산이 나타났다
꿈이었다
문수보살님 발밑에 엎드려서
울었다
꿈이었다
덕 높은 스님을 불러, 꿈에 본 오대산
찾아보라 부탁하신다
꿈이었다
중국의 오대산 닮은 산을 찾아
문수보살님, 꼭 모셔오리라
꿈이었다
동대도 없고, 서대도 없으며, 남대도 없고, 북대도 없으며,
중대마저 없는 오대산
모두 다 꿈이었다
(2013년 7월 16일, 高知)
야습
― 김상현 선생님의 급서(急逝) 소식에
우린 언제까지 당하기만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가
하필 밝아오는 햇빛 찬란한 아침에
싸늘하게 식어버린
주검
부여안고, 울어야 하는가
목놓아 울어야 하는가
다 어디로 갔던가
우리의 불침번들은, 뜬금없이 찾아와
울어대던
검은 까마귀들은 다 어디로
갔더란 말인가
아무런 통보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언제까지나 사라진 적들의 발자욱만
헤아리면서
우리는, 우리는
아직도 시위를 당길 수 있는
전우를
목놓아 부르면서
울어야 하는가
다음에는 또 우리 중에 누가
희생이 되려나, 불안에
떨어야 하는가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기만 하고
울기만 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아무런 대책도 없이
(2013. 7. 22. 高知)
무지개
불기둥,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丈夫의 꿈이여
잠시, 허공에 걸렸다가
사라지고 만
붉은 꽃이여
(2013년 9월 4일, 高知)
스물 여덟의 그대
― 一條房基
그대, 겨우 스물 여덟이로구나
그래, 나 그대만 했을 때
장가를 갔지
아무 철이 없을 때였지
높고도 귀한 家門의
公子로
태어난, 그대
아버지 이름으로 이쁜 여자들 득실거리는
酒店에나 가서
女子들의 엉덩이나 두드리고 있어야
딱 좋았을 그대
그래, 스물 여덟의 그대
깨달았을까
운명, 이라는 것이 있는데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라를 선택할 수는 없다는
그 저주 말일세
겨우 스물 여덟의 그대
무슨 힘이 있었을까
무슨 경륜이 있었을까
戰爭의 時代 한가운데서
그래도, 장하구나
남들처럼, “나를 따르라! 戰士들이여,
내 그대들을 위해서
이 戰爭을 勝利하리라“
큰소리치지는 않았구나
차라리, 차라리, 그렇게 허세라도 부리지
그랬나
긴 긴 밤을 둘로 자르고
셋으로 잘라놓고
번민과 고뇌로 시간을 먹는 대신
지나치게 착하고
지나치게 여렸던 지도자여
젊은 그대여
그대, 스물 여덟의 英雄이 되는 대신
戰場의 한가운데서
自死의 먼 길
떠나고 말았구나
그대, 여리기 지나쳤고 착하기 지나쳤던
스물 여덟의 청년이여
슬픔 한 자락, 남겨두고
떠났구나
먼 길 가고 말았구나
(2013년 9월 11일, 高知)
* 一條房基(이치죠 후사모토, 1522-1549) : 전국(戰国)시대의 공경(公卿), 무장(武將). 조부, 부친을 이어서 20세에 나카무라의 영주가 되었으나, 28세에 생을 마쳤다. 자살했다고 하는데, 암살 당했다는 설도 있다.
香山寺
香氣로운 이름
香氣로운 香煙은 다 어디로
날아갔을까
천년 뒤를 기약하며
태평양 너른 바다 속에 묻히기라도
했을까
三番 千手千眼 觀音
西國 三十三所 관세음보살들
참으로 허망하구나
아무런 힘도 못 썼구나
그렇게도 중생제도는 잘 하시더니
스스로 머무시던 집 하나
지키지 못했구나
가혹한 폭력 앞에
타오르는 증오 앞에 살아남은 것은
불도 태우지 못한 돌
뿐이었구나
돌판에 浮彫한 쌍둥이 부처님은
쑥쑥 자란 풀 속에 누워있고
가마쿠라 시대의 작은 고린토(五輪塔)들은
너무나 이뻐서
너무나 애잔하게 心琴을
흔드는구나
차라리, 폐허는 폐허로 두기나 하지
3층이나 5층의 목탑도 아름다웠을 그 자리
하얀 시멘트의 전망대라니
아무리 시만토가와(四万十川)의 청류가 검푸르다 해도
아무리 토사(土佐)의 산들이 첩첩이라 해도
그래도 그렇지
차라리 목탑을 닮지나 말지
그랬구나, 한 번 죽는 것은 두 번 죽는구나
이제 겨우 백년이 지났다
말하는 것인가
아직은 바닷속에 묻힌 香木을
되찾을 때가
香山을 香山으로 되돌려줄 때가
아니라, 말하는 것인가
그런 消息인가
그것도, 佛國土의 나라 일본에서
이름만이 香氣로운 香山寺로
존재하려 하는가
不在하려 하는가
(2013년 9월 11일, 高知)
* 향산사 : 일본 시코쿠의 나카무라(中村)에 있었던 옛절
섬으로 가는 사람들 14
南國 土佐의 열여섯 도량들
그 중에 제일로 높은
산 위에 올라앉은
神峰寺
一望無際의 태평양은 은빛 은어가 춤추고
날아가는 하얀 기러기 한 마리
가을 하늘은 더욱 높고도
푸른데
십일면관세음보살님께
꿈, 못다 이룰 꿈
맡기고 왔네
잠시만 연기해 달라, 내 꿈을
놓아두고 왔네
그것으로 다 되었지 않은가, 싶은데
그것이 아니었네
꿈은 놓아둘 수 있었는데
맡길 수 있었는데
그는
안심이 안 되는지
내 그림자를 따라오네
불이 켜지면서 다가오는
소리
또각 또각 또각 또각
(2013년 9월 28일, 高知)
불타는 잇펜(一遍)스님
이제 가시는 것입니까
팔백년 미뤄두셨던 길, 往生의 旅程
떠나시는 것입니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두 손 모아서
온 중생을 향해서
허리 굽혔던 그 자세
이제는 解制
自由로이 떠나시는 것입니까
작년 여름, 뜻밖에
뵈었을 때
깊숙이 파였던 깊은 炯眼
그 모습
한 번 더 뵈어야지, 하면서도
四國 高知까지 와서도
차일피일하던 중생
더는 더 기다려주지 않으시고
이제는 내 길 가련다
가시는 것입니까
붉게 타오는 불꽃 속에서도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念佛소리로 저 서쪽 하늘 향해서
날아가시는 것입니까
팔백년을 미뤄오시던 그 길
이제는 내 길을 가련다
떠나시는 것입니까
그동안 남겨두었던 마지막 그 길
기어이, 기어이
가시는 것입니까
(2013년 9월 29일, 高知)
탈고 안 된 전설
코치대학 이발소 아저씨는 소설적 인물이다
이발소라는 게, 말이 이발소지
그 입구부터가 복잡다, 무슨 락스통 같은 것도
대걸레 같은 것도
이런 저런 소도구로 바리케이드
쳐져 있다
그래도 언제나 영업 중이다
이발소 총천연색은 쉬는 날이 없다
코치대학 이발소 아저씨, 내가 언제나 걱정하는 사이다
저 아저씨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밥은, 어떻게 해서 먹고 사나?
도무지 손님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
학교 밖 이발소 보다 더 비싼
커트 2,600엔
나는 언제나 1,000엔 짜리 이발소를 다녔다
어느 날 빼꼼 열린 이발소 안
역시나 그랬다, 그 안에도 무슨 도구로
복잡했다
도무지 손님이 앉을자리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코치대학 이발소 아저씨, 학교 직원일까?
학교에서 월급을 받는 것일까?
아침에 출근 시간이면 정문 앞에서
수위 아저씨 곁에 나란히 서서
"오하이요 고자이마쓰"
인사를 한다
자전거를 타고서 학교를 둘러볼 때는
경비 아저씨 같고
잔디 깎는 인부들과 작업 일정을 의논하는 듯도 하고
자주 자주
자전거를 분해 해체해서 수리도 하고
어느 날은 또 컴퓨터를 가져오는 학생도
있었다 한다
도대체 코치대학 이발소 아저씨, 그는 누구인가?
끝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까지나 잊히지 않을
인물이다
소설적 사나이다
내 코치의 반년 동안, 내게 가장 많은 말을
걸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센세이, 교우 혼또오니 아쯔이데스네"
(2013. 10. 25. 서울)
"오하이요 고자이마쓰" : 아침인사.
"센세이, 교우 혼또오니 아쯔이데스네" : 선생님, 오늘 진짜 덥네요.
이상한 교수님
--- 하라자키(原崎)선생 전
이상한 교수님을 만났다. 지난 여름의 일이었다.
청바지에 목 없는, 고동색 T샤쓰를 입고서
강단에 나타나신 것이다.
슬리퍼에 양말도 신지 않아서
더욱 놀랐다
어떻게 교수가 그런 폼으로 강단에
설 수 있다는 말인가
충격이었다
듬성 듬성 흰머리가 적지 않았으되
배는 하나도 나오지 않은
중년으로
날렵하기가
부럽기 짝이 없었는데
철학교수가 명상을 시킨다길래
수업에 참여해 보니
백 여명이 넘는 학생들 중에
거의 구십 다섯 명은 졸거나
스마트폰 삼매
어찌 나라고 예외일손가
쏟아지는 잠 속에서 꾸벅구벅
과연 명강의였다
한때는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운동을 논하던 헤겔의 제자
였다는
슬리퍼 교수님
무슨 이유로 전향하셨던 것일까
이제는 몸, 몸을 말씀하신다
"몸을 느껴라", 설법이시다
몸을 느끼는 것이 바로 릴랙스Relax다
릴랙스의 철학, 릴랙스의 과학, 릴랙스의 심리학, --- 릴랙스의 다이어트를
소리 높여 외치시면서
강단 이곳 저곳을
슬리퍼로 어슬링 거리신다
릴랙스를 보이신다
그래, 그렇다, 문제는 몸을 느끼는 것이다
몸에 주의를 집중하는 일
거기에 릴랙스가 있다
휴식이 평화가, 안심이, 선정이, 참선이
깃든다
내 몸 속에
내가 몸을 느끼는 순간
국립 고치(高知)대학의 공통강의동 202호 강의실에서
청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강단을 어슬링거리는
이상한 교수님을 만났다
나는
내 교수인생의 후반전을 이끌어줄
롤 모델을
만났다
(2014. 1. 5. 서울)
高知
--- 장진주사(將進酒辭)
아무도 인정할 수 없다, 믿을 수 없다 했다.
말이 되느냐, 오히려 반문했다. 그 많던
전국대회에서 한번도 4강은 물론, 8강에도, 16강에도
들어가보지 못한 高知의 팀인데
무슨 종목인지는 몰라도
그럴 수는 없다 했다. 아주 잘해봐야 26위
였다. 살아보고 싶은 현(縣) 순위에서였다
했다. 그 나머지는 뒤에서 2위를 도맡아 했다.
어른들 돈 벌이가 시원찮기로 뒤에서 2위였고
(꼴찌는 저 멀리 오키나와), 어린 학생들 공부순위마저
뒤에서 2위였다(꼴찌는 저 멀리 오키나와).
그런데 어찌, 갑자기, 앞에서 2위라니? 가당키나
하더란 말인가, 믿을 수 없다 했다.
할 수 없었던지, 마침내 출제관은 감추었던 패를
내다 보였다.
酒
일순, 12년차 高知맨 교수님도
高知에서 태어나 자란 스무살 여학생도
자칭 高知家의 一員도, 모두가 묵묵부답
서로 얼굴을 마주본다. 그리고는 異口同聲
항변이다. 그럴 리는 없다 했다.
高知가, 술에 관한 시험이라면 당연히
마땅히도, 전국에서 1위였을 것이라 했다.
어찌 감히 그 종목마저 2위로 물러날 것인가
했다. 그 많던 술집에 가라오케에 미장원에 이발소에
그런 高知에, 책방은 점점 더 줄어드는 高知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 했다. 어찌 술에서
2등을 하랴, 더 이상 불명예를 뒤집어쓸 수는
없다 했다.
高知에서, 나도 반년 동안 술만 마셨다. 비틀비틀
거리는 지금의 걸음걸이를 배운 것도 酒토피아
高知에서였다. 高知덕분이다.
(201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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