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국회에서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었다. 이날 투표는 무기명비밀투표방식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개표과정에서 무효표 논쟁때문에 개표결과가 무려 한시간 20여분간 지연 발표 되었다.
무기명투표용지 가부 란에 ‘가’ 나 ‘부’만 적어야 하나 ‘부(不)’자가 불명확하게 쓰인 두 표가 문제 였다. 더불어 민주당은 ‘우’ 로도 읽힐 수 있는 이 표들을 모두 ‘부’ 라고 끝까지 주장했다. 격론 끝에 김진표 의장은 두표 중 한 표는 ‘부’, 다른 한 표는 무효표로 판정하여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로 부결을 선포했다. 당초 더불어 민주당지도부는 압도적 부결을 공언했지만 반대표가 민주당의석 169표를 크게 미치지 못하여 민주당내 이탈표가 많이 나온 것으로 분석됐다.
체포동의안이 통과되려면 재적의원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 즉 149표가 필요한데 10표가 모자라 이날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것이다. 민주당내 이탈표는 반 이재명계에서 나온 것으로 향후 이대표 리더십에 타격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의 이탈표 중 반대표는 적극적인 소신, 기권과 무효는 소극적인 소신의 권리행사로 분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부 또는 무효표를 판단하기 힘든 2장을 투표한 의원은 어떻게 분류해야 할까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알쏭달쏭 소신파’ 라고 해야만 할까요!?
우리나라 야사(野史)에도 알쏭달쏭 못난 소신파의 양면적인 복선이 구전되고 있다.
조선조말 을사늑약 체결을 위해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의 대신들을 모아 놓고 일본에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어떻냐고 논의를 했을 때 총리대신 한규설은 종이에다 ‘불가불가(不可不可)’ 네 글자를 써 보였다 한다. 이 말은 세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불가 불가’ 라고 끊으면 ‘안돼 안돼’ 라고 해석되고, 만일 ‘불가불 가’로 끊으면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다’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불 가불가’로 끊으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오리무중의 뜻이 된다. 그처럼 절박한 시간에 조선 총리대신의 개인의 영달을 노린 잔꾀가 실로 놀랍기만 하다.
또 비슷한 이야기가 하나 더 전해 내려오고 있다. 경술국치 당시 중추원 의장이던 김윤식이 왕의 하문에 대하여 같은 대답을 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내 마음 나도 몰라’의 알쏭 달쏭 소신파가 양심고백을 하고 스스로 국회의원직을 사직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야비한 이중 플레이 행태에 대한 국민들의 들 끓는 비난과 불신은 저절로 없어 지지 않을 것 같다.
말이 난 김에 더불어 민주당에서 반 이재명 계로 ‘체포 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도 소신을 지켰다고 대놓고 자랑만 할 일이 못된다. 이들도 박근혜 전대 통령 탄핵 소추의결시 찬성표를 던저 당시 야당 의원과 야합한 친여 쿠테타와 무엇이 다른 가. 국민의 힘 의원들도 야당의 찬성표에 대해 마냥 좋아 만한 일이 못된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이해 관계가 걸린 일에 지도부와 의견을 달리하는 ‘꿍꿍이 속셈’을 가진 여당 의원들이 지금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선공후사(先公後私)여야를 불문하고 그림속에 떡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 살면서 보수니 진보니 하며 이름을 붙이며 열을 올리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이런 견해와 괘를 같이 하는 글이 있어 아래에 인용하려고 한다:
‘보수란 기본적으로 안보를 소중하게 여기므로 내나라는 내가 지킨다는 자세로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 또한 시민사회의 기본인 세금도 제대로 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수라고 알려진 저명인사들은 군대도 가지 않았고, 납세문제에도 깨끗하지 않다. 국방의무와 납세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이 보수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보수는 30-50대의 월급쟁이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넓게는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 스스로는 자신들이 진보적이고 사회개혁을 희망하는 세력이라고 생각 할 것이다.
이른바 민주화 세대로 불리는 이들도 진정한 의미의 진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 성향이 짙다. 민족주의야 말로 보수의 기본 철학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진보 세력은 서양식 기준으로 보면 ‘건전한 보수세력’으로 규정되는 것이 더 타당 할 지 모른다.’ 문소영 지음 ‘못난조선’ (나남출판사) 432-433쪽 참조)
야당을 외부의 적으로 규정하며 단결을 외치던 박근혜 전대통령시절 여당도 실패했고, 현재 야당인 이재명 대표도 무도한 윤석열 정권의 마녀사냥식 수사로부터 자신을 지켜 달라는 눈물겨운 호소에도 불구하고 동료의원들이 상당수 이탈표로 반기를 들었다. 따라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또다른 체포 동의안이 제기되면 그때에는 부결을 장담하지 못할 만큼 더불어 민주당은 체포동의안 표결 후 극심한 혼란과 진통을 겪고 있다. 아무튼 더불어 민주당의 이재명 리스크는 계속되고 있다.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으로 맺고 싶다. 이유불문하고 근혜 전대통령이 소속당 의원의원들로부터 불신을 당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재명 의원도 소속당의원들의 불신을 당한 옛 여당 지도자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두사건의 공통점은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다른 점을 깡그리 무시하고, 타협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수렴하고 존중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왕당파 위주로 패거리 정치를 시도하다 내부 총질을 자초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 결과 메울 수 없는 상호 불신이 깊은 계곡 마냥 서로를 갈라 놓았다. 그나마 박근혜전 대통령은 자초한 위기에 정점에서 권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내려 놓는 결단’을 하지 못하여 더욱 더 치욕을 당했다. 박전대통령에게 ‘내려 놓는 결단’을 촉구하지 못한 참모들도 역사의 죄인으로 함께 기록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재명 대표의 ‘내려놓기’는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 궁금하다. 죽음의 계곡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하여 제일 좋은 해결방안은 당사자가 스스로의 냉철한 현실 판단으로 과감하게 내려 놓을 때 돌파구가 생기고 살길이 생긴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야당의 이탈표 사태를 여당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즉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바로)설수 없다’는 명언은 윤석열 대통령과 권력에 취한듯한 대통령의 측근들도 새겨 들어야 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재명 대표에게 더불어 민주당 의원이 국회체포동의안 표결전에 이 대표면전에서 마태복음의 구절을 낭송하며 이재명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종용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상관없이 필자가 생각하기에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마태복음의 구절을 패러디(parody)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
원문.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패러디. ‘국민에게 주인님, 주인님!’ 한다고 모두 국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은 국민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국회에 들어간다.
국민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의원들의 행태를 마음속 장부에 차곡차곡 기록하고 있다. 평소 정쟁에만 몰두하고 의정 활동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여든 야든 국민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임을 감히 단언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