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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교회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88~1860)】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씨알 추천 0 조회 60 24.11.05 13:48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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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11.05 16:44

    첫댓글 붓다는 '일체(一體) 즉 세계는 12입처(十二入處)'라고 했다. 십이입처는 대상인 외육입처와 인식주체인 내육입처를 말한다. 내육입처는 안이비설신의 입처이며 외육입처는 색성향미촉법 입처를 말한다. 중요한 것은 육입처나 내입처 모두 머리 속에 이미지로 자리 잡은 표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의입처는 외부의 대상이 아닌 내적 표상이다. 이것이 표상인데 표상의 대상과 인식주체를 연결하는 것이 의지이다. 이 의지는 대상과 주체에 같이 작용한다는 것이 쇼펜하우어의 주장이다. 쇼펜하우어가 불교에 심취했던 이유로 유식무경의 유식사상을 바탕으로 입처의 이미지를 표상으로 대상을 향한 갈애와 탐착을 의지로 설명한 것이다. 철학적 존재론과 인식론이 의지와 표상에 다 담겼고 이는 이천오백년 전의 불교 교학에서 충분히 다뤄진 것이다.

  • 작성자 24.11.05 17:43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을 읽고 그의 고독과 고통을 들여다 보았는데 장로님이 말씀하시는 내육 외육 입처가 표상의 실재임을 알게 되며 그의 의지와 표상의 세계가 불교의 인식론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평안하소서.

  • 작성자 24.11.05 17:52

    장로님 말씀대로 쇼펜하우어는 유럽의 불교 수용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서양 최초의 불교사상가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서양인들이 불교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체계가 놀라울 정도로 불교와 일치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를 ‘불교철학의 해설자’ 혹은 ‘불교적 염세주의자’로 불렀다. 특히 르네 게농은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가 그의 제자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이나 다른 유럽 학자들에 의하여 불교와 동일시됨으로써 ‘불교적 염세주의’라는 개념이 정착되었으며, 이로써 불교의 무아사상을 쇼펜하우어의 극단적 비관주의 사상과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 작성자 24.11.05 17:54

    나와 세계가 표상이고, 그 배후에 의지가 도사리고 있으며, 삶의 의지의 긍정은 고통을 유발하므로, 고통을 벗어나려면 의지의 완전한 부정을 통하여 동고(同苦)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분명 불교의 중심사상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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