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서 나오자 나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화물오토바이. 이런 오토바이가 있어야 배달이 가능한가 보다.
니콜라와 나는 버스에서 내려 각자의 숙소에서 짐을 풀고 3시에 '약국'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동행이 생기니까 훨씬 더 여행이 액티브해지고 동기부여가 되는 느낌이었다. 지난 3일간 받지 못하던 이 느낌..
내가 묵는 리아드 '달 에모시옹'은 인터넷 예약 사이트 상에서 가격이 꽤 되어서 만족스러울 것 같았는데, 막상 방에 들어가 보니 실망스러운 점이 여럿 있었다. 특히 지나치게 어두운 실내와 80년대에나 덮었음직한 화학소재의 붉은 털이 숭숭한 담요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저 담요는 도대체 마지막으로 세탁을 한 게 언제일까? 하는 의구심이 가시질 않았다. 더군다나 뉴욕에 빈대가 상륙하여 온갖 호텔과 가정을 습격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평상시에 그리 예민하지 않는 나였지만 그 담요는 정말 싫었다. '저 담요를 어떤 사람이 덮었는지 알게 뭐람.'
하지만 사장은 침구류를 교체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 싶었고, 오히려 자신의 웹사이트가 좀 더 '사막의 바람'이라던가 뭐 그런 감성적인 소구를 해야 한다며 나의 dslr을 보고는 사진을 찍어줄 수 없겠냐고 요청을 해왔다. 진 헤크만같은 얼굴에 안경을 끼고 혀가 짧은 프랑스 인 사장님은 고객의 니즈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방이 마음에 드냐는 말에 그냥 얼버무리고, 더운 물을 좀 얻어서 라면을 한 젓가락 먹고는 밖으로 나왔다.
리아드의 홈페이지 http://www.riademotion.com/en/index.html
그림을 찍고 있는데 어느새 뛰쳐나와 혼꾸녕을 내는 주인 아저씨.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줄행랑을 쳐야 했다.
현대 모로코 인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ARMANI.
니콜라와 만나기로 한 3시까지는 시간이 좀 있었다. 나는 시내를 좀 걷기로 했다. 시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작은 동네.
처음 에싸위라에 도착하여 지나쳐올 때 파란문들이 너무나 환상적이어서 입을 다물지 못했던 그 곳. 내가 잠시 짐을 풀고 온 사이에 이곳은 시에스타 시간인지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마침 레스토랑에서 퍼져 나온 생선굽는 연기와 뒤섞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모로칸 패턴.
골목길을 누비다가 어시장 앞의 향신료 가게 앞에서.
거리를 쏘다니다 3시 즈음 약국 앞으로 가보니 니콜라가 나와있다. 정확한 사람이다. 반갑고 유쾌하다. 우리는 시내를 더 쏘다니기로 한다.
니콜라에게 뭐했냐고 물었더니 점심 먹고, 이메일 좀 확인하고, 여친과 채팅을 좀 하다가 왔다고 한다.
붐비는 메인 스트리트인 '알 아카바' 거리의 모습. 좌우에 빼곡하게 들어선 상점과 사람들.
도로 끝에 나있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더니 여느 모로코의 도시들처럼 올드 벤츠 택시들이 가득하다. 에싸위라는 해안도시답게 시원한 블루 컬러로 맞춘 듯 했다.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길가에 서있는 차들도, 대화를 나누는 여인네도, 손님을 기다리는 손수레꾼도.
푸른 문. 한 때는 사람이 출입했지만 이제는 다니지 않는, 못이 쳐진 문. 들여다보자니 그 사연이 궁금해지는 문.
열린 푸른 문과 닫힌 푸른 문. 그리고 푸른 옷을 입은 여인.
내가 쏘다니는 곳, 낯선 곳. 과연 나는 어디에?
낡음 = 아름다움
세상에서 가장 낡은 동네이지만 한 폭의 점묘화같은 이 곳.
내게 소리를 쳐 깜짝 놀라 돌아보았더니 다름 아닌 자신을 찍으라는 소리. 모로코에서 자기를 찍으라고 하는 분은 처음.
자신을 지미 헨드릭스라고 소개하신 어르신. 이내 농담이었다며 저 너머에 지미가 실제로 살았다고 하시던 이 분.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지미는 실제로 에싸위라에서 얼마간 머물렀던 것으로 되어있었다.
아랍권의 초승달 모양 약국 표지.
우리는 성곽 내부를 벗어나 항구로 향했다. 널디 너른 광장을 지나 앞에 펼쳐진 부두, 그리고 바다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던 갈매기도.
니콜라는 위의 사진을 갈매기가 마치 양탄자를 깔고 서있는 것처럼 촬영을 했다. 그것이 그와 나의 차이점 중의 하나였다. 그는 사물을 이용하여 사진을 구성할 줄 아는 것이다. 아랍 패턴의 양탄자와 항구도시에서 만난 갈매기, 그리고 양탄자를 깔고 선 우연한 배치까지 더하면 하나의 완벽한 사진은 구성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거였구나.'
날아오는 갈매기의 모습. 예전같으면 만족했을지 모르지만... 뭔가 부족하다, 심심하다.
일렬로 늘어선 갈매기?
모로코 국기 옆에 도열해있는 갈매기. 마치 수병을 보는 듯 하다. 그래, 이것이 완성이다.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한데 모여 있는 보트들의 모습을 보더니 닉이 한마디 한다.
"It's your time."
나의 24-85mm 광각 표준 줌 렌즈에 딱 맞는 화각을 만났다는 뜻이었다. 닉의 70-200mm는 기껏해야 앞에 보이는 배 서너대를 찍으면 많이 찍는 것이니까. 그는 허리춤에서 자신의 G11(캐논의 하이엔드 카메라)을 꺼내 얼른 한 장을 찍는다. 우리가 렌즈를 교환하느라 2, 3분을 보내고 나면 대부분의 피사체는 이미 사라져버리고 난 후일테니까 그것은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닉에게서 개인 레슨을 받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70-200mm 렌즈부터 구입해야 겠군. 하지만 그거슨 280... '
첫댓글 와우, 얼마만의 포스팅입니까! 그전 여행기는 이제 기억도 안나-_-;;;그래도 기대했던만큼 멋진 사진들이군요. 그리고 에싸위라의 상징색은 블루?(그래서 지중해게시판도 푸른색으로 새단장 하셨나?ㅋㅋ) 올해들어 아프리카 나라들의 정세가 워낙 불안정해서 이집트니 아프리카 여행 계획했던 주변 지인들이 대부분 포기했던데 소년님은 아주 적절한 시기에 잘 다녀오셨네요 ^^근데 마지막의 280은 설마 280만원?그렇다면 제가 평균 한번 유럽여행갈때의 총여행경비보다도 더 나가는데 저런 지출을 마린님이 허락하신단말입니까!!만약 허락하신다면 업고 다니셔야 할듯 ㅋㅋ
맞아요, 그렇네요. 정세불안.. 자스민 혁명.. 저도 잘못했으면 혁명의 수렁속으로 빠질수도.. 쿨럭.. 상징색은 블루 맞죠. 게시판이 너무 색이 히끄무리해서 바꿔봤어요. ㅎㅎ 아 , 280은 저 렌즈가 280만원이라고요. 크웩.
정말로 모로코는 저런 파란색이 공식 컬러인가봐요, 배도, 문짝들도 온통 다 저런 파란색이 대세네요~~~
폴리아나님, 저런 렌즈값는 도저히 수용이 불가능해요 ㅋㅋㅋ
모로코... 분명 매력적인 곳 같긴 한데... 아직 전 엄두가 안나는 곳이네요... 넘 이국적이라... 흠... 어려워요!!!
파란 색, 너무 이쁘죠. 어려워도 언젠간 한번 도전해보세요~~
진 해크만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ㅎㅎ
모로코라는 나라가 이국적이고
멋지기는 하지만 저도 갈 엄두는 안나요 ^^
오늘도 멋진 사진과 글 잘 보았어요 ~
님이라면 잘 하실 수 있을거예요. 언젠가는 도전해보세요~ 고마워요.
언제나 유쾌하고 행복하게하는 여행기예요. 음...저희 집과 반대현상이...ㅎㅎ 전 저 망원렌즈를 사겠다고 으르릉거리고 남편은 저 말리느라 으르릉거리고...저도 아빠백통 지르고 싶어요~~
저와 동행한 닉이 아빠백통이예요. 사진이 정말 환상+몽환으로 나오죠. 하나 질러보세요. 후회는 안한답니다.
아웃포커스,팬포커스 전부 예술작품 같습니다.잘 보고 갑니다.모로코 가고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