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무얼까?
내가 사는 아파트 5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이마를 마주 대고 동자못을 마당처럼 사용하며 도란도란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 보인다. 나는 그냥 동자마을이라고 부른다. 검버섯이 핀 기와집 마당도 보이고 꽃분홍색으로 담을 칠한 2층 양옥집 정수리도 보인다. 새로 지은 빌라는 이방인으로 멀뚱하니 낯설게 서 있다.
3층 양옥집 옥상에서는 낯선 사람들 옷가지가 바람에 펄럭인다. 5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지붕만 보이는 집이 대부분이지만 수줍게 돌아앉은 장독대도 보여주고 볕 좋은 날이면 하늘정원에 빨랫줄을 만들어 소꿉놀이하듯 알록달록한 옷가지를 빨래집게가 꼭꼭 물고 있는 아련한 풍경도 볼 수 있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동네로 마실 나간다. 최근에 동네로 들어가는 신작로가 생겨서 쉽게 접근을 할 수 있다. 마을 고샅길을 둘러보는 여행은 가을날 땅바닥에 떨어진 홍시를 먹는 맛이다. 동네 속길로 들어서면 철 대문 사이로 빼꼼하게 보이는 마당 한쪽 꽃밭이 보일 때면 주인장 허락도 없이 안마당을 훔쳐보느라 정신이 없다. 백일홍, 맨드라미, 채송화, 분꽃들이 집 떠난 자식들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할머니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고사태 끝 집에는 어깨 한쪽이 무너진 감나무에서 올해도 주먹만 한 감이 등불을 켜고 밤새 할아버지 집을 밝혀주고 있다. 담벼락 가장자리 손바닥만 한 땅도 내버리지 않고 콩이며 옥수수를 심어 놓았다. 시집간 막내딸 장가간 큰아들에게 바리바리 싸서 보내려고 페트병에 연못물을 떠 담아 카트에 싣고 일일이 물을 주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가슴이 찡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날도 있다.
수십 년을 이웃해서 살다 보니 온기가 느껴지는 집이 있고 활기가 넘치는 집이 있다. 모두가 떠난 빈집에는 잡초들이 무성해서 으스스한 기분이 들지만 오래 지켜보고 있으면 슬픔도 전해지고 아픔도 즐거움도 행복도 느낄 수 있다.
모두 어디로 떠났을까? 지나갈 때마다 담장 안을 들여다보며 한때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도 먹고 학교도 다니고 잔치도 하면서 웃음소리가 담 너머로 넘쳐나던 곳이었을 텐데, 세상에서 제일가는 건축가 거미가 허공에 멋진 집을 짓고 주인행세 하며 살아간다. 새들의 보금자리로 잡초들의 천국으로 바람의 집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실골목 여행이 주는 행복감은 따스하고 정겹고 솜사탕처럼 폭신하다. 골목 어디서든 주저앉아 사진 찍어도 나를 예쁘게 만들어준다. 내가 풍경인지 골목길이 풍경인지 모를 만큼 자기의 전부를 내어준다. 함께 걸어주고 이야기해주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마음씨 착한 이웃이다. 기쁨으로 충만해져서 아파트 샛길로 들어서는 순간, 가을이 무얼까? 나를 시인이게 한다. - 2022년 9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