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남수의 ‘고향의 봄’
봄이면 그리운 곳, 나이들면 들수록 회상에 잠기는 그리운 고향,
이름 지울 수 없는 숱한 그리움이 나의 험난한 인생역정에 애수같은 그림자를 띄우고 초점 잃은 눈망울로 영원한 나의 요람의 곳을 찾아 헤멘다.
버들가지의 부드러운 입김에서 산마루의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계곡이 먼저 봄을 노래하면 나는 잊었던 내 고향 사천(泗川)을 생각하게 된다.
지리산의 혈기와 와룡산의 정기를 한몸에 지닌 내 고향 사천은 뒤로 유서깊은 남강이 감싸고 서남으로 국내 팔경으로 아름다운 한려수도가 있어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곳.
봄이 되면 노스탈저에 젖어 나의 마음은 고향으로 달음박질하고, 동심의 세계를 맴돈다.
누구나 고향이 없을까 마는 그 옛날 나의 어린 고향의 그 가을은 밤 줍던 즐거운 성묫길에서둥글고 환한 달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바느질해주시던 새옷 때때옷을 입고 소작농이 대부분이던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따뜻한 인정 속에서 자라 지금도 그 구수하고 착하디 착한 마을 사람들의 냄새, 그 고향의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가을이 지나 고향의 거울은 또 옛 이야기로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도란거리는 사랑방, 태고연한 창속의 풍경도 나의 옛집에는 있었다.
그러나 고속도로가 뚫리고 산 뒤부터 숱한 박덩굴이 올라간 초가을,
그 초갓집 속에 빨갛게 익어가던 고추도 볼 수 없게 되었고, 한 여름 숲 속에 놀던 베짱이가 개미집을 찾던 외로움도 사라져 버렸다.
갑순이와 갑돌이가 서로 자주 만나던 물레방아간도 자취를 감추었고, 사랑방에서 담뱃재를 털던 구수한 할아버지의 긴 담뱃대 소리도 사라진지 오래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인정들이 사는 도심지보다는 시골 처녀들이 정답게 빨래하는 그 조그만 냇가라도 찾아가고 싶다. 그 냇가에는 엄청난 하늘이 펼쳐져 있고, 시보다 아름다운, 아니 낭만적인 흰구름이 흐러가고 있어 그 얼마나 아름다운 계절이 꽃피고 있겠는가 말이다. 거기에는 시골의 순박함이, 아직은 풍부한 인간미가. 아직은 따뜻한 봄진달래처럼 아련히 피고 있다.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내 고향은 지금도 남풍이 불고, 푸른 보리밭에는 아직도 소꿉장난하던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놀고 있겠지.
영원한 땅, 낯 익은 옛 벗들이 하나씩 둘 씩 떠나가버린 뒤, 그 그리운 고향의 냇가에서 퍽이나 외로워진 내 마음을 달래며 문득 타다 만 짚더니와 흙 냄새 그윽한 농촌의 초가에서 다시 그 ,옛널과 같은 오래도록 잊혀진 옛 동무와 살고지고.
고향의 봄은 나의 향수요, 니의 회상의 시첩(詩帖)이다.
*빈남수 선생님의 나의 선배로소 포항에서 개원하신 내과 의사 선생님이시다.
내가 모시고, 수필모임을 운영하셨고, 살아계셨더라면 100세도 훨씬 넘어셨을 것이다. 돌아가진지도 30년(?) 쯤 되었으리라.
이 수필을 읽으면, 지금 세대들이 농촌을 고향으로 두었더라도 이런 회상을 할 수 있을까.
우리 농촌도 이때의 농촌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 세대는 아직까지 이런 고향이 마음 속에 담겨있다.
**그림은 손일봉이 1946년에 경주의 남산 아래 마을을 그렸다.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나의 고향과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다.
첫댓글 글과 그림이 환상적으로 잘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