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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여섯시까지 영선아랫로타리로 가려하면
일찍 잠이 들어야 되지만 잠을 금방 이룰수가 없구나.
하여야 될일은 많고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끝마쳐야 잠이 들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피곤하면 잠이 금방 쉬이 잠들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구슬은 꿰어야 보배이듯이 요즘은 구슬꿰느라 더 바쁜일상인것 같았다.
구슬에 빠져 있다보면 날이 새는지도 모르듯이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이 시간까지 구슬을 꿰고 있었구나.
오늘은 유난히 힘겨운 날이었던것 같았다.
벌써 며칠째 고가도로 반대 동참으로 인해 새벽부터 집을 나서야 되었으니
집안일은 뒷전으로 한채 이리저리 동분서주하고 있으니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힘겹다는 사실이었다.
내 할일은 뒷전으로 한채
오로지 이일이 가장 우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내 몰라라 할때 누군가는 나를 믿고 따라주시는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하여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들이 주장하는 일이 진정 우리는 영도를 살리는 길이라는 확신을 믿고 있기에
더더욱 더 열심히 하여야 되는 이유이겠지요,
내 영업을 '뛰어야 되는것이 우선이지만 나는 내 영업은 가장 나중이 되어버렸으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나는 올인을 지금은 할수가 없는것이 안타깝다.
아랫로타리에서 우리들이 모여서 함께 힘을 싣는 일을 하는 오늘은
그곳을 지나가는 차들의 매연으로
나는 더욱더 피곤해지는 나의 몸을 느낄수가 있었다.
나쁜 공기의 매연으로 더 피곤해지는 나의 몸에
나는 그곳에서 오래오래 머물러 있을수가 없었다.
애들 아침밥을 챙겨주려 집에 들러서
아침밥을 챙겨먹고 나니 나는 잠시 쉰다는 것이 잠이 들어버렸다.
그저께 두시가 된 시간에 잠이 들어서
다섯시가 넘은 시간에 잠이 깨어서인지 오늘 하루는 천금같은 시간이었다.
동사무소에서 비즈 가르치는 그 시간도 지나가고 싶은 시간이었다.
간신히 몸을 추스리고 나서는 동으로 향했다.
비즈를 가르치고 나서는 백로가든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는데
고가다리 결사반대 시위하는 곳에서 빨리 오라는 전갈때문에
점심도 뒤로한채 공사장으로 향했다.
공사장으로 갔더니 모두들 짜장밥으로 점심을 채우고 있었다.
나도 점심을 그곳에서 메꾸고 난 다음
두시가 된 시간에 비즈를 이제는 배우러 가야 되었다.
틈틈이 데모도 하고 틈틈이 내 할일도 하여야 되었다.
오늘 주어진 그 시간을 그냥 지나친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아니하기 때문이었다.
늦은 지각생으로 동에 가서 비즈를 배우고는 오후에 방송을 하여야 되었다.
어제 방송을 할때는 미광아파트에 들어가는데
경비들이 야단법석을 떠는 통에 한곳은 방송을 마무리를 지을수가 없었다.
밤에 농성장에 가서 미광아파트 운영위원장에게 경비들 단속하여서
방송을 할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전화를 돌리라고 하여서
오늘은 방송을 무사히 마칠수가 있었다..
방송을 마치고 나서는 비즈 주문받은것을 가져다 주고
비즈 살려고 하신분을 위해 비즈를 가지고 윗동네에까지 갔다왔다.
만들어 놓은것이 모자라서 더 팔 물건이 모자라서 주문만 받아왔다.
8월 18일
어제 새벽부터 아랫로타리로 향했다.
아랫로타리로 가 보니 에스케이에서 용역을 돈들여서
젊고 젊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을 끌어 모아 놓고 있었다.
검은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우리들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뒤로 쭉 배치를 시켜 놓으니 아 오늘은 너희들이 우리들을 갇고 놀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너희들을 심심하게 해 줄것이다.
주민들을 굳이 용역들과 몸 대치를 시킬 필요는 없을것 같아서
아랫로타리에서 콘테이너가 있는 곳으로 모두 모이시라고 하였다.
나는 생각했다.
한 할아버지를 그 곳에 배치시켜 놓고서는
모두들 고가다리 반대하시는 분들이 오시면 콘테이너 앞으로 오시라고 전했다.
용역의 돈을 일인당 15만원씩을 주고 불렀으니
열명이면 백오십만원 어제 온 용역사람들을 치면 천만원은 쉬운 돈인것 같았다.
일도 하지 않은채 서서 깡패역할만 할뿐인데 그렇게 받아가니
일하러 오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들은 그 사람들 머리 꼭대기에 서 있는것 같다.
저쪽에서 버티고 있으면 이쪽으로 와서 펜스를 치기 때문에
우리들은 먼저를 생각해서 콘테이너가 있는 곳으로 자리이동을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이쪽으로 에스케이직원들이 몰려오더니만
용역직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자리를 한쪽 끝에서 끝까지 두 줄을 서서
주민이 못 들어가게 손에 손을 잡고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들이 못 들어갈 사람들인가.
팔과 팔사이로 재빠르게 움직여서 들어갈수 있었다.
그럴때에는 가장 민첩하게 행동하여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생각하였다.
검은옷을 입고 줄을 서서 있으니 검은옷이 너무나도 상스럽게 느껴졌었다.
저승사자들도 아니고 젊은 사람들이 지각이 있으면
이렇듯 몰려와서 돈을 벌지는 아니할것인데.
사람들이 돈에 현혹되면 무슨일이라도 하듯이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리저리 분주히 방송을 다른사람에게 맡겼다.
가장 빠른 시간에 뛰어야 될때
내가 방송을 하고 있으면 민첩하게 행동으로 옮길수가 없기 때문이다.
적당하게 이리저리 분주히 차들이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고
포크레인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포크레인을 이리저리 따라 다니는 것은 힘든일이었다.
포크레인이 들어오기 위해서 움직이니 길 가운데에서 사람들은 저지하고 있었다.
농성장 차량도 마주보고 서 있으니 저쪽 에스케이직원이 차량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밀쳐보려 안간힘을 썼다.
어느쪽에서 돌을 던졌는지 나는 그만 돌팔매에도 맞았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분간도 못한채
돌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으니 누가 도대체 돌을 던졌더란 말인가.
그곳에서 포크레인을 해산시켜 놓고서는 다시 안도의 숨을 몰아쉬고는
다시 밭고랑으로 돌아와서 돌을 가려내기 시작하였다.
간간히 이쪽 저쪽의 움직임을 살피고
가장 우선적으론 포크레인이 오는가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포크레인이 영선마트 위쪽에서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나는 뛰고 또 뛰기 시작하였다.
포크레인이 들어오는 자리로 가서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포크레인이 들어오니 빨리 사람들이 오도록 소리에 소리를 질렀다.
나는 생각한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아니한것 같아서 나는 밭에 곡식을 가꾸는 그 시간이 즐겁다
내가 노력한만큼 결실은 맺어지기 때문이었다.
포크레인을 저지하기 위해서 포크레인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지만
젊고 뚱뚱한 용역들을 혼자서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내가 예수도 아닌데 나의 두 팔을 양쪽에서 잡고서는 놓아주지를 않았다.
이리저리 빼고 빼려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다면 한다.
어찌 내가 이리도 변모하도록 만들어 놓았던가.
간신히 그 자리를 벗어나서 포크레인 앞으로 가서 우리들은 포크레인을 저지할수 있었다.
포크레인을 저지하기 위해서
온몸을 투신하여야만 하는 수모를 우리들은 얼마나 견뎌왔던가.
목숨걸고 하는 승부에 우리들이 승리할수 밖에 없었다.
나는 재빨리 불법차량을 견인해 가라고 신고하였다.
구청직원은 빨라야 될때는 가장 느린것 같았다.
에스케이직원들이 다 해산해서 흩어지는 그 순간에 불법차량차가 오고 있었다.
약속을 받아두고 우리들은 집으로 향할수 있었다.
용역직원들과 몸 싸움을 하여서 그런지 몸이 너무나도 피곤하여서 움직일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순간 아들에게 라면 하나를 삶아달라고 하고는 늦은 세시에 점심을 먹었다.
다섯시까지는 꼼짝도 할수가 없어서 움직일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섯시에 약속을 하였기 때문에 준비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영업을 하다보니 농성장에 회의가 일곱시여서 일곱시까지 농성장으로 갈수밖에 없었다.
밥도 뒤로한채 농성장으로 향했는데 나는 나의 뜻을 그대로 전했다.
무슨회의가 그리도 길어져서 늦게 마쳤는데
집으로 돌아오려 하니 예전에 함께 동대표를 하신분이
영선마트앞에서 맥주한잔을 친구분과 함께 하고 있었다.
아파트운영위원장이 지나가려하니 이렇듯 저렇듯 이야기가 줄줄이 엮여지고 있었다.
나는 그 분이 이야기하는 것을 지금 동대표를 같이하시는 분께 설명을 하였을뿐인데.
누가 잘하니 누가 못하니 그런이야기가 오고 가길래
나는 알아도 말을 할수가 없었다.
조금시간이 지나니 같이 예전에 동대표하시는 분이 지나가시길래
우리들이 동대표 감사를 해본것과
해보지 않은 지금의 사람들은 참으로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뭐든 알아야 정승을 하지 모르니 어찌 하오리까.
8월19일
드디어 우리들이 일하는 곳에 터질것이 터지고야 말았다.
사람들이 지혜로와야 될때 왜 지혜롭지 못할까.
아침부터 콘테이너박스 앞에서
어제 모인 용역들이 오늘 다시 올지 안 올지 몰라서 대치하러 갔었다.
목소리만 크게 지르면
주동의 대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들은 어찌 해석하여야 될까.
우리들이 지금 이렇게 힘들게 대치하는것도
지역의 대표를 제대로 못 뽑아서 이런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데
지금 우리들이 추진하고 있는 지하차도 대책위원의 대책위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이
주민을 분열시키고 있는것이 눈에 들여다 보이니 너무나 가슴이 아플뿐이다.
우리들에게 협상을 요구하는
에스케이직원과 어떠한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알수가 없지만
제초작업을 할수 있도록 포크레인을 들여다 보내기로
약속이 오고 갔다는 그 자체가 참으로 잘못된것 같다.
제초작업을 하려면 제대로 하여야 되지
굳이 저들이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제초작업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제초작업을 하려면 제초약을 뿌리면 다 죽을것이며.
그것도 아니면 예초기나 낫으로 풀을 베면 되는 일을 굳이
포크레인으로 제초작업을 시키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일이라 생각된다.
어디든 대표를 잘못 뽑으면 모두가 정말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것 같다.
가장 긴박할때에 대표를 맡은 사람은
그 책임을 다 할수가 없는것이 무슨 대표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책임 추궁받지 아니하기 위해서
지금 이일을 실시하는 사람들의 속이 들여다 보여서 나는 너무나도 속상하다.
어디든 현장에서 직접 일해본 사람과
일해보지 아니하면 절대로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알지 못한다.
누구는 힘들여 땅을 일구고
누구는 쉽게 쉽게 수확의 결실을 맡보려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고 싶어졌다.
어디를 가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질세라
아첨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얄밉다.
저마다 내가 사진 찍힐까 두려워서 아무일도 못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용기가 없는 자는 무엇에나 쓸까나.
자기 개인의 사리사욕을 차리기 위해
대의를 버리고 소인배로 돌아가는 것은 어찌 보필하여야 될까.
군중심리를 이용해서 희망적인 말보다는
겁부터 먹인다면 누가 따라와 줄것인지.
누구라도 사소한 개인의 욕심은 버리고 버려야 될 일인것 같았다.
어찌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금의 이곳의 책임자나
대표를 맡고 있는 사람들의 그릇된 생각들을 버렸으면 좋겠다.
워킹하는 곳에서도 실제로 워킹하는 사람들은
임원직 명단에는 등단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고
실제로 워킹을 하지도 아니하는 통반장과 유관단체의 장들을
임원진으로 구성시켜 놓고서는 회비를 내라고 한다면 누가 낼것인가.
우리들이 살아가는 곳에 이렇듯 실제로 일하지 아니한 자들을
임원진으로 구성시켜 놓은것은 잘못된 일인것 같았다.
가장 우선적으로 나서서 일할수 있는 사람이
진정 리더의 책임을 다한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권좌의 자리에서 얼굴 생색내기만 급급한 사람들이
한자리 한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어찌 발전에 발전을 할수가 있을까.
가장 힘들때 함께 할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그곳의 일꾼을 뽑아주는 것이 가장 옳은 일이라 나는 생각한다.
한사람의 잘못된 판단을 하는 리더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 리더자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 한 사람의 판단이 옳은것이라 판단하고
모두들 모른체로 따라 움직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더란 말인가.
누군가는 정확하고 명석한 판단으로 리더자와 다르게 생각한다고
그 사람을 몰아 부치는 그런일들이 우리주위에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것 같다.
잘못된 리더자로 인해 불신의 벽이 깊어지면
다시는 그 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아는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온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혼자서 포크레인을 저지하고 있었으니 모르는 사람들은
혼자서 포크레인을 저지한다고 나를 욕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이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질세라
미리 미리 단속하여야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들이 지키고 있는 땅에 풀한포기 돌한개도
건드리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었다.
포크레인이 들어오게 허락한다는 것은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라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혼자서는 절대 이일을 완성시킬수는 없는 일이다.
같이 함께 동행하면서 잘하는 사람과
그릇된판단을 하는 사람들일지라도 모두 뭉쳐야 산다는 사실이었다.
후에 진실은 밝혀지리라.
지금의 나에게 욕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온다는 그 사실을 안다면
감히 그런말을 꺼낸 사람은 나에게 백번 잘못된일이라 판단할것이다.
지금의 시련이 닥친것은
훗날의 밝은 미래가 보이기 위한 단계라는 사실이었다.
누구라도 다 잘해보려 애쓴다는 사실이었다.
에스케이직원들의 달콤한 말을 그대로 믿고 전했던 사람이
그 사람들의 논간에 휩쓸려서 그렇지 그 사람이 나빠서도 더더욱 아니다.
나의 체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인것 같았다.
내 체면은 가장 나중의 문제인것 같다.
지금의 내 체면이 조금 손상될지라도
진실은 그 체면을 그 사람을 우뚝서게 할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릇된 일과 잘한일은 분명코 정확하게 인지할 필요성이 있는것 같다.
사람들이 금방 눈에 보이는 작은일만 생각하지
그 후의 파장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의 생각은 작은 그릇에만 그치는 것 같았다.
작은 그릇과 큰 그릇의 차이점은
지금의 사소한 감정에 얶매이지 아니하고
먼훗날의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생각의 차이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릇 사람은 지금 당장의 이익에 눈 멀것이 아니라
먼 훗날의 앞날까지 내다보는 투시력으로 본다면
지금 나에게 조금의 힘든 역경이 버티고 있을지라도
그것을 박차고 이겨나간다면 많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러올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내 가까운 이웃까지도 좋은 파장을 불어올것이다.
내 이웃을 행복하게 한다면
나에게도 또한 좋은 복으로 돌아올것이란 사실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8월20일. 일요일...
아침 일곱시에 친정에서 전화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이 총 동창회 날이었다.
행여나 딸이 올까.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은 마음인것 같았다.
총 동창회를 열심히 참석하는 나이기에 당연히 오겠지.
하는 그런마음으로 기대하고 기다리신 모양이신것 같았다.
총동창회를 참석하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았는데
요즘 일어나는 일때문에 나는 내 개인의 일을 다할수가 없었다.
언제쯤 지하차도에 앞장서는 일에서 물러설수 있을까.
이제는 멈추고 싶은것이 나의 마음이다.
법원판결이 빨리 떨어져서 지하차도로 가는 방향으로
마무리를 잘 지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그저께 일어난 일 때문에 나는 집에서 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오늘 부모님께서 감자와 고춧가루를 팔기 위해 우리집에 가져다 줄겸.
우리집 이사하고 처음으로 오신 나들이였다.
이 집으로 이사온지 이년만의 일이었다.
우리집이 너무 좁기도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시골에 고추도 더 따야 된다고
점심을 드시고는 저녁무렵 집으로 돌아가셨다.
늘 바쁘게 생활하시는 것이 생활화 되신탓에 어디 진득하게 계시지를 않으신다.
우리집도 몇년꼴로 한번 오실까 말까 하시니
늘 바쁘시다는 핑계와 지금은 주무실 공간이 없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집이 안서방 머리가 천장에 안 닿는것이 용하다는 말씀을 하신다.
비좁은 집이라서 여름은 그야말로 정말 덥다.
감자와 고춧가루를 배달하면서 아이존빌로 들어가니 우리가 예전에 살았을때처럼
베란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도 시원하다 못해 춥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파트는 여름은 더 시원하고 겨울은 더 따뜻해서 살만한 곳이다.
우리집 아파트 하자보수 수리도 하여야 될것인데
언제쯤 하게 될까나.
처음 아파트를 지을때 제대로 지었더라면
입주했을때 누진으로 인해 차단기가 내려가는 일도 없었을것인데
입주하고 나서 처음은 누진으로 인해 차단기가 자꾸만 내려갔었고
안방의 불은 비가 내리기라도 한다면 반짝반짝이는 통에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마음이 불안해지니 어찌하겠는가.
관리실에 직원을 불러 수리를 하였다.
안전핀을 뽑은 상태에서 형광등을 달았더니 반짝이는 것은 사라졌지만
그것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는 나는 알수가 없다.
비가 오면 불이 반짝일것 같으면 다른곳도 반짝거려야 되지만
오로지 한곳 안방만 반짝거렸기 때문이다.
안방위에는 다락방이 존재하고 있다.
다락방 사이사이 어디에서 물이 스며드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처음부터 안방에 불이 반짝거렸다면 이해가 될것인데.
몇년을 살고 난 어느날부터 그런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처음입주해서는 컴퓨터의 인터넷이 이십층까지는 안 올라와서 몇번을 오르내렸던가.
그리고 우리들이 처음 입주할때의 설계도면에는 보일러도 동파이프로 해 준다고 하였는데
그 동파이프는 애초부터 설계가 되어 있지도 아니한채 설계가 나면서 준공허가를 내 주었다.
아파트에서 나오는 하수관의 배수물도 요즘은 한번씩 터져서 줄줄줄 흘러내린다.
그것은 왜 그럴까.
똥통도 역류하는 오차도 범했었다.
우리아파트에는 놀이터가 있다.
그 놀이터는 한 개인의 땅이 절대 아니다.
아파트 전세대가 공유하는 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트 전세대의 동의를 구한뒤에 그 땅을 어찌하는 것이 나는 맞다고 본다.
이땅을 사려면 아파트 전세대를 다 사들여야 가능한 일이라 나는 생각한다.
내가 열심히 우리들이 주장하는 정당한 주민의 권리를 행사하려
지하차도 일을 열심히 일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 놀이터땅이 없다면 나는 처음부터 이일에 개입하지도 아니 하였을 것이다.
내가 믿고 있는 유일한 땅 어린이 놀이터가 있기에 내 주장을 과격하게 말할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층간소음으로 층간소음 측정을 하였던 기억이 지금도 가물거린다.
아랫층의 소음이 윗층으로 들려오는 것을 어떻게 해석 할 것인가.
윗층에서 아랫층의 서랍장 문 여는 소리에 시끄럽기까지 하니 어찌하여야 되었을까.
한참 그때만 하여도 방송을 틀다보면 층간소음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었다.
우리아파트도 그 방송에 제보를 한번 해 볼까 싶어서
어느방송사인지 방송을 하려 방송제보로 방송국에서 파견을 나왔었다.
그래서 우리들이 지금 살고 있는 건설주의 잘못 만들어진 것을 몇몇의 동대표분들이
층간소음측정과 함께 방송을 완성시키고 나갔었다.
그길로 그 방송국에서는 창원에 있는
동부산의 전화를 받아서 어떻게 무모화를 시켰는지
허사로 돌아가 버렸었다.
이래서 있는자와 없는자의 차이가 심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처음 입주해서 아파트 전기요금을 우리들이 쓰지도 않고
건설주가 쓴 전기요금도 주민이 낸 아파트 선수금으로 지불되어 있었다.
남의 돈에 함부로 주민의 전체의 돈인 선수금으로 전기요금을 낸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인것 같다.
이것은 어디에 해당될까.
우리들이 아파트 감사를 맡고 난 다음 나는 그 사실을 밝혔다.
그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 그 돈이 그때에 충당되었다.
그리고 아파트에 나오는 각종 잡수입은 어디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것은 어디에서 찿아야 될까.
회계사무소에서는 관리실에서 제공된 자료만 가지고
회계장부를 완성시켜서 제무제표를 만들어 놓았다.
그 돈에 짜맞추는 장부를 해 놓은 것은 잘못된 일이라 본다.
회계를 맡은 사람이 제대로 회계를 이행하지 못했다면 그곳에도 책임이 따라야 되는 것일까.
처음부터 아파트에 살지 않았다면 아무 내막도 모른체로 넘어가겠지만
처음 입주때부터 살아왔기 때문에 아파트 일을 더 잘 안다.
우리들은 아파트에 나왔던 관리비 고지서를
차곡차곡 모아 두었던 것으로 나는 회계를 계산했었다.
다소 틀린곳도 나오는 곳도 있었지만
어찌 하겠는가.
좋은것이 좋은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알고도 모른체로 넘어가야 하는
8월22일.월요일
아침부터 어제 있었던 일로 분주하였다
우리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 아파트 놀이터로 인해서 나는 처음부터 힘을 얻고 시작하였다.
아파트 놀이터가 있기 때문에 더 열심히 나설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민이 반대하면 절대 세울수 없는 것이 고가다리인것 같다.
나도 생각해 보았다.
내 집앞의 일이 아니면 누구라도 모른체로 지나간다는 사실이었다.
나 역시 수변공원을 만들때 반도보라에서 그런 데모를 하였지만 그때는 무관심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직접 나에게로 그 피해가 돌아오지 아니하면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콘테이너가 있는 곳에서 밭고랑을 일구고 있었다.
하나의 밭고랑을 일구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나하나 호미로 밭을 일구고 그곳에서 수많은 돌을 걸러내어 가려내어야 되기 때문이다.
누가 그 노고를 알것인가.
그 밭을 일구어 보지 아니한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할것이다.
쉽게 쉽게 밭이 일구어지지는 아니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할일을 다 할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밭고랑을 다 일구고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이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있었다.
좀처럼 화를 내지도 아니하는 남편인데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을 때에는 나의 책임이었다.
늘 나에게 지하차도 하는 곳에 못 가도록 극구 말리고 말린 남편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내가 동대표 일을 맡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지하차도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도 않았을 일인것을
누구라도 개인의 힘은 법의 지배를 받게 만들어 놓으려 하는 우리나라 법이 참 잘못된것 같다.
공권력은 법의 테두리에서 먼저 불법을 저질러도 넘어가는 그런법은 없었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고가다리로 행하려 했다면 아이존빌 아파트 준공허가를 내 주지 말았어야 되지 않을까.
아파트 준공허가를 내어 준 상태에서 주민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곳에
공권력을 개입시킨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잘못된 일이라 나는 본다.
내가 하는 지금 이일에 남편에게 해가 되게 만든다면 그또한 잘못된 일이라 본다.
부부가 한집에 살아도 각자 의견차이가 날수도 있는데
남편이 아무리 말려도 고집불통인 아내가 이일이 정당한 주민의 권리라고 주장하면서
나가는 일을 남편인들 왜 붙잡지 않았겠는가.
부부가 싸움을 하면서 영도의 발전을 위해서 내가 힘든 역경에 빠져가면서
내 집안일 다 책임질수 없을만큼 내 생계도 뒤로한채
이일에 가담하는 것을 어찌 말릴수가 있을까.
남편이 죄가 있다면 아무리 싸움을 하여도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아내를 둔 죄밖에 더 있을까.
이런일로 남편에게 또 다른 불이익을 준다 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남편은 성실하게 근무 잘 하고 사는 죄밖에 없는데/.
우리나라법은 참 잘못된 부분이 많다.
경찰직원이 어떠한 혼자의 개인이 음주로 인해 사고를 냈다면
그 곳에 책임을 맡고 있는 윗사람부터 시작하여서 서장까지
목을 자르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법을 적용시키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일이라 본다.
서장이나 윗사람이 어찌 일일이 쉬는 날까지
그 사람의 하나하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 감독할수가 있을까.
돌아다니는 씨씨티이비도 아닌데 이런곳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법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것 같다.
문제성직원을 잘못 둔 죄밖에 없는데
누구는 처음부터 그런 문제성 직원인줄 알것인가.
아무도 모르는 일인데.
한순간에 그 사람의 순간적인 실수로 인해 엉뚱한 사람이 근무 잘 하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사표수리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처사인것 같다.
경찰공무원은 이런 룰을 적용시켰다면
그러면 영도구에서 매립지에서 그 많고 많은 사람들의 사고사로
죽은 희생자들을 그 누군가는 책임을 지는 것이 맞지 않는가.
잘못된 허가로 인해 허가를 내어 주었다면 사고로 이어졌다면
이것 또한 같은 죄목이 되어야 마땅하거늘
공무원이라고 하여도 다 똑같은 공무원이 아닌 불합리한 법을 적용시키는 것도 참 잘못되었다.
피해가는 법도 있고 아무죄도 없는 사람도 피해갈수 없도록 규정을 정해놓고
그러면 국회의원들에게 지급되는 연금도 사실은 없애야 되는 것이 맞는것 같다.
왜 모두들 국회의원이 되려 안간힘을 쓰려 하는가.
내가 그만두어도 평생토록 연금이 나오도록 그렇게
국회에서 자기들 좋은 법안을 통과시켜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사실 명예를 중시하여야 됨으로 인해
연금보다는 봉사로 하는것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리를 사표수리하고 난 이후에 연금 나오는 것도 없애야 되지 않을까.
이런 제도가 있으니 그렇게 돈들여 가면서 국회의원이 되려 하는것 같다.
경찰의 룰이 잘못되었다면 나는 바꾸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단합도 중요하겠지만 억울한 일은 당하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도 한 가정의 가장이기 때문이다.
같이 일하는 직원을 잘못 가까이 둔 죄로 함께 불구둥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몇사람의 생계가 달린 한 집의 가장을 사표수리하는 것은
한가정을 송두리째 뿌리를 흔드는 것과 같다고 보아진다
.
나는 오늘 또 느꼈다.
우리들에게 정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정보를 잘 활용하면 좋은것을 배울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는 사실이었다.
오늘은 남편에게 근무하는 곳의 상사가 전화가 걸려왔었다.
아내를 잘못두었다고 남편에게 전화를 돌린다.
사진찍힌사람은 잡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이 같이 동참하였다면
주민들 전체를 다 잡아가야 되지 않을까.
누구는 허용되고 누구는 어찌하고
주민이 무슨죄가 있단 말인가.
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나라 헌법에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이 있다.
윗사람들이 잘못 만들어 놓은 고가다리를 우리주민의 정당한 권리로 인해
지하차도로 만들어야 되는것이 나는 맞다고 생각한다.
고가다리를 만든 사람은 끝까지 고가다리밑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쉽게 그것을 허락하였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람들이 한번 쉽게 내린법을 계속 살아갈 사람은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나는 본다.
주민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는다면 더이상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독재국가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8월23일 화요일.
오늘은 내가 태어난 날이었다.
가족과 따뜻하게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함께 모여서 식사할수 있는 시간이 허용되지 아니하였다.
각자 따로 따로 밥을 챙겨먹어야 되었다.
나는 나 나름대로 할일이 많고 바빠서
따로국밥으로 각자 따로 먹었다.
아침부터 시청으로 간다하길래
나는 콘테이너앞으로 가 보아야 되었다.
혹여나 또 쳐들어 올까 노심초사하여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빌린 돈을 갚아야 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농협으로 가서 돈을 부쳐주고 나니 아시는 분을 부황을 뜨러 가신다고 하셨다.
어디서 부황을 뜨는지 나는 사실 궁금하였다.
부황은 절대 혼자서 완성시켜서 뜰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부황을 옆에서 떠 주어야 되기 때문이다.
부황을 뜨면은 혈액순환을 원할하게 시켜주기 때문이다.
많이 아파보지 아니한 사람은 부황의 효과를 피부로 금방금방 느끼지 못한다.
어혈이 많은 사람일수록 부황을 뜨면은 검고 검게 피부의 색깔이 변한다.
부황보다도 더 좋은것은 내가 지금 입고 있는 보정속옷이란 사실이다.
일반사람들은 쉽게 쉽게 그것을 깨칠수가 없을것이다.
혈액순환이 원할해지면 몸안의 피가 원할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살이 빠지면서 에스라인으로 변모할수 있는것이다.
살도 있을곳은 적당히 있어야 된다는 사실이다.
마른것이 좋아보일지 몰라도 근육이 없으면 사랑받을수 있는 비법에서 제외된다.
사람은 자고로 근육이 있어야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근육은 그 사람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근육이 있어야 될곳에 근육이 있는 것과 없는 곳은 천지차이이다.
그래서 자고로 운동은 열심히 하여야 되는것이다.
몸이 유연한 사람은 다른사람들보다 순환기 계통이 더 원할하게 돌아간다.
그러하니 모든면에서 가장 좋은 생각의 긍정적 사고를 가질수 있는것이다.
몸이 삐뚠 사람들의 생각이 사랑받는 법에서 유연한 사람이 백프로 받는다면
그것의 절반에 밖에 미칠수가 없을것 이다.
그 유연함의 차이점을 사람들은 알지 모를지
나는 그 차이점을 너무나도 잘안다.
스스로 그 유연한 몸으로 되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하였던가.
아직도 완성되어갈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그런몸으로 완성시켜야지 하는 그런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몸의 균형이 맞지 아니한 사람들은 워킹화를 즐겨 신을수가 없다.
그것은 몸의 불균형으로 인해 자꾸만 넘어지려 하기 때문이다.
몸의 균형이 유연한 사람들은 그 유연한 동작으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신을수 있는것이다.
워킹화도 자꾸자꾸 신다보면 나도 모르게 균형을 맞추는 그런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시행착오는 반드시 있을수 있다.
아침부터 나는 부황뜬 곳에 가 보았는데 언니가 부황을 뜨고 있었다.
처음 나에게 침을 맞는곳을 소개시켜 준 분이다.
그것은 그 언니가 너무도 많이 아파왔기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도 더 잘안다.
언니도 나의 속옷을 입으면 더 건강해질것인데
그렇게 될날도 올것이다.
누군가는 알아야 옷을 입어볼것이 아닌가.
말로 열번하면 무엇하리요.
한번 옷을 입어보고 느껴보아야 알것이다.
열시에 아파트운영위원장을 만나보려 아파트로 향했다.
그 시간에 전부 시청으로 향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파트 운영위원장을 혼자서 만나지는 않았다.
세사람이서 만나서 놀이터 일을 상의하였다.
처음으로 내가 안 사실이 있었다.
동부산건축주가 아파트 놀이터의 시설물들이 낡아서 새로이 지어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이야기 하였다.
행정소송이 끝날때까지 놀이터를 헐어서는 아니된다는 말을 하였다.
그런일은 차후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지금 고장난 놀이터 시설을 원상복귀시켜야 된다고 강력히 말하였다.
돈이 들어간다고 말하였다.
돈이 들어가도 하여야 할것은 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내집에 아이들이 없다고 이렇듯 방치해 두었다는 것은 너무도 잘못된 처사인것 같았다.
일을 맡고 있으면 최선을 다하여야 된다는 사실이다.
아파트 하자부분도 주민들이 몰라서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이야기도 누구에게 말하여서 수리하여야 될까.
수리를 해 주면 좋은일인데
그냥 시간만 끌어서 하자보수자금을 그냥 종결하듯이
그냥 건축주가 가져간다는 사실의 법도 잘못된것 같다.
잘못된 부분을 완전히 완성하여야 됨에도 불구하고
옥상의 끝에 샤시를 하여야 사고의 위험을 방지할수 있는데
처음 허가를 내어줄때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누구라도 사고가 발생되고 난 다음에 외양간을 고치려 하는것일까.
처음부터 위험하다고 감지되는 그 순간 법을 집행하여서 만들어야 된다는 사실이다.
처음 건축주가 담을 쌓을때에도 아파트 공유부지 땅이 있으면
그곳까지도 다 담으로 둘러쌰야 되지 않을까.
왜 담을 쌓아야 될부분은 남겨두었을까.
허가를 내어주는 곳에서 고가다리로 가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허가를 내어준 것처럼 내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처음 건물을 짓기는 힘이 들기 때문에 왜 담 너머로 내 땅을 쓸수 없도록 하였다면
이것도 원상복귀시켜서 복원해 주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땅의 넒이라 하면 자전거가 몇대 놓일 자리였다.
아파트 자전거 전용구간도 없는데 처음부터 그 자리를 만들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파트 운영위원장이라면 어찌하면 주민이 편리하고
안락한 거주지로 생활할것인가를 먼저 생각하여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누구를 위해 지금 직책을 맡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여야 될것이다.
모든 사람을 대변할수 있는 그런 지도자로 거듭 태어나야 될것이다.
알아도 모르는척 수수방관하여서는 더더욱 안 된다는 사실이다.
8월 25일 수요일...
좀 쉬려 하여도 쉴수가 없다.
아침부터 공터로 가야 되었다.
영선마트에서 나에게 집에 라일락 꽃을 심지 않을란가 하셨다.
나는 생각했다.
얼른 나무를 심기로 작정하였다.
처음 나무는 식수를 심었다.
그 나무는 내가 아파트에 살때에는 정원에 심어놓은 나무이다.
빨간 열매가 달리는 길거리에 심겨져 있는 나무이다.
그 나무를 삼년을 키우고 나니 나무가 어찌나 컸던지 너무커서
한해는 산소에 벌초하려 갔을때 산소에 심을려고 세그루를 심었는데
여름에 나무를 심고 난 이후에 물을 주었어야 되었는데
물을 못 주어서 그만 그 세그루가 죽고 말았다.
나무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나는 마음이 짠하다.
그 나무를 심기 위해 길옆에다 심기로 하였다.
내대신 나무들이 포크레인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구덩이를 파려니 지금 우리들이 있는 땅에는 돌도 너무 많이 나온다.
그 땅을 다 파서 나무를 심기는 정말 힘이 들었다.
그 나무를 한그루 심고 있으니
땀도 나오고 아이스크림이 생각이 나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누어 먹고 있으니
새마을 금고 이사장님께서 점심을 사 주신다고 하시길래 통장과 나 그리고
부녀회부회장님과 함께 가서 오리고기를 맛나게 구워먹었다.
자고로 줄을 잘 서면 먹을것도 잘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난 이후에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
같이 함께 나무를 심은 언니도 점심을 먹으러 잠시 가고 없었다.
나는 라일락을 영선마트 사장님과 함께 절에 가서 뽑아와서
라일락을 심기 시작하였다.
생탁한잔을 지하차도 사람들과 함께 한잔하고는 나 혼자 라일락을 심으려
자리선정을 한뒤에 라일락 나무를 열심히 심었다.
땅속에 돌들때문에 그 구덩이를 파기가 정말 힘이 들었다.
그래도 금요일날 용역 쳐들어 온다는 생각에 뭐라도 심어야 될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생각을 알기라도 할지는 몰라도
내 힘든부분을 충당해줄수 있는 그 라일락 꽃나무가 있어서 행복했다.
라일락꽃 향기 흩날리던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네.
노래를 불러가면서 동창회 모임을 안간것도 생각이 났고
같이 함께 나무를 심은 그 언니도 우리학교 선배여서 고등학교가 생각이 났었다.
우리학교도 동창회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내가 다닌 학교는 사라져 버렸다.
그때 한참 힘든 시기에 우리들이 열심히 일하고 공부한
우리의 교정에 장미동산의 그 아름다웠던 곳에 물을 주던 그시절이 생각이 났었다.
그때에 힘든 가정에서 힘들게 이런 학교를 선택했어야 했던
우리학교의 선후배들이 힘들때 덩굴나무아래에서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던 생각.
장미동산에서 장미꽃을 보면서 하루의 시름을 달래었던 그 시절이 지나갔었다.
팔도잔디로 교정을 매웠던 교정의 운동장에서
졸업사진을 찍을려고 리어커에서 한컷 하던 생각도 나네.
내가 지금 이렇게 할수 있는 계기도 그 시절의 그 어려웠던 시절이
나에게는 버팀목으로 발돋움할수 있는 힘의 원천력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래도 그 시절보다는 힘들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주야 교대로 일하면서 공부하는 그시절은 정말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면서 엄마한테 학교 그만두고 일반고등학교 보내어 달라고 사정사정하였지만
우리집 형편이 그것을 용납하지를 못했다.
맏이로 태어나서 희생을 강요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우리집 딸로 맏이라는 이유로 지금 일을 하면서 대학교를 다닌다.
사실 엄마로써 정말 미안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 형편대로 살아가야 되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는것 같다.
언젠가는 내 딸에게 보상도 해 줄수 있을까.
힘들다고 하면서도 꾿꾿하게 일하는 딸이 대견스럽다.
다른 친구들은 힘들다고 모두들 일을 해 보고는 포기를 해 버렸다.
나는 라일락꽃을 심느라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나무를 심고 있었다.
가지고 온 라일락 꽃은 다 심어버리고 영선마트 사장님께서 더 심을련가 하실적에
나는 시간이 그렇게 흐른줄도 모르고 나무를 더 캐 와서 심다보니 다섯시의 시간을 향하고 있었다.
집에 얼른 돌아와서 대충 씻고는 남편보고 오토바이로 태워달라고 하고는
그 라일락 심은 곳으로 가서 아침에 이만원을 들고 와서 아이스크림 나누어 사 먹고 난
돈을 잃어버려서 그 돈이 있는지 한번 찾아보라고 하고는 중앙동에 세무교육을 받으려 갔었다.
삼일동안 세무교육을 다섯시부터 아홉시까지 들었다.
오늘은 조금 지각한 시간으로 들어가서 들었다.
화요일과 수요일은 공터에서 일하다 갔기 때문에
다소 깔끔하지 못한 상태로 갈수 밖에 없었다.
세무교육을 마치고 다시 콘테이너가 있는 회의 장소에 갔다가
열시가 다 된시간에 집에 와서 나는 늦은 저녁밥을 챙겨먹었다.
저녁밥을 챙겨먹고 나서는 다시 윗동네로 향해야 되었다.
이지스 상조 보험서류를 가져다 주러 갔다.
일을 하다보니 나에게 참으로 짐도 많이 지우고 살아가게 되었네.
나는 국민상조를 들어 놓아서 어머님께서 돌아가실때 그 혜택을 받았었다.
국민상조와 이지스 상조의 차이점은
이지스 상조는 만일 안 찾아먹었을때 백프로 환급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늦은 시간에 그곳에 갔더니 아시는 분이 비즈의 줄이 늘어져 있길래
줄을 다시 제자리로 만들려 하였더니 줄이 오래되어 낡아서 터져버렸다.
그래서 그 줄도 다시 고치고 반지도 가지고 돌아왔다.
그 작품을 보고 그대로 만들어보려 가지고 왔다.
나는 요즘 비즈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
비즈 만드는 일은 재미난다.
아무생각없이 무상무념으로 돌아갈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지나가 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열두시가 다 되었다.
이리저리 피곤하여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하루였다.
낮에 일을 많이 하고 저녁엔 교육을 들으니 첫시간은 항상 졸린다.
그 졸리는 시간을 없애려 나는 커피를 마신다.
그래도 커피를 마시고 나면 졸음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초코파이와 과자를 주어서 간식으로 먹었다.
다섯시에 교육을 들으러 오니 저녁시간이 배가 고플것 같아서
나는 집을 나서기 전에 미숫가루를 마시고 가니 그래도 속이 든든하였다.
안 그러하다면 배가 너무도 고프기 때문이다.
속이 든든하여야 무슨일이라도 할수 있기 때문이다.
8월 26일 목요일.
아침 아홉시에 아이존빌 놀이터에서
놀이터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아파트 놀이터에 아이들이 놀수 있도록 고장이 나면 빨리 고쳐 놓아야 됨에도 불구하고
운영위원장의 책임을 다하지 아니하고 있었다.
내 아이가 어리지 아니하다고 빨리 수리를 해 놓지 아니하면 어찌하는지.
의도적으로 계획된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놀이터로써의 기능을 못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어찌하랴,
동부산에서 새로이 놀이터 시설을 뜯고 새로이 고쳐준다는 그 말이 잘못된것 같았다.
지금 고장이 나 있으면 바로바로 수리를 하여서 쓰도록 만들어 주는것이 맞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방치를 해 놓았을까.
주민이 아이가 없는집에서는 관심이 없으니 아무말도 없었나보다.
내가 직접 살고 있지 아니하니 이런곳도 관심이 덜했구나 하는 생각이 미쳤다.
아이존빌 회장은 왜 놀이터에 줄이 그어져 있는지 이야기 해 달라고 하니
다른곳에서 그랬나 하시더니 제차 다시 물으니 관리실직원과 함께 그어놓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찌 이런 중대한 일을 이랬다 저랬다 하실까
왜 의심받을 말씀을 하신단 말인가.
주민들에게 명확하게 설명을 해 주어야 되는데 혼자서 알고도
말씀을 안해주시니 주민들이 오해할수밖에 더 있을까.
누구라도 알수 있도록 설명을 잘 해주어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새로이 안 사실은 놀이터 담장너머로 보이는 돌담이 있는곳도 아파트 땅이라는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영도구에서는 의도적으로 허가를 그렇게 내어 주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정확하게 55미터 되는 지점과 나란히 교차되어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주민의 누군가는 따지고 할 사람이 없을것이라고
그 시절엔 그렇게 판단하였을지도 모를일이었다.
하기야 내 역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내가 하는 일이 맞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언제나 내 소신껏 일을 추진해 나간다.
아침부터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전화가 걸려왔었다.
고춧가루를 빨리 가져오라는 말에 애 아빠보고 전화를 걸어서
고춧가루를 가져오라고 해서 고춧가루를 팔았다.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고춧가루값이 하늘높은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다.
하루를 전전근근하면서 내 할일을 다 완수할수가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돈도 벌러 다녀야 되는데
지하차도 일때문에 내 할일을 다 할수 없는 영도에 살고 있는것이 너무 힘겹다.
이리저리 배달도 하러 다니고 하다보니 시간이 저녁시간대가 되었다.
아이존빌에서 저녁시간에 다시 놀이터에서
반상회같이 행사를 한다고 하여서 다시 놀이터로 가야되었다.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하면 한번 걸러야 되는 것은 걸러서
이야기를 하여야 되는데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주민을 선동하는 말보다는 주민이 겁을 먹고 나올수 없도록 말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앞자리에 서면 사실 그대로
주민이 함께 뭉칠수 있도록 하여야 되는것 같았다.
그런데 리더자를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서
더 잘 뭉칠수도 있고 흩어질수도 있는 것이다.
주민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는 곳에서는
주민의 뜻을 강경하게 펼쳐야 되는 의무도 따라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아파트 운영위원장은 내일 에스케이에서 용역이 이백명이 온다고 주민들에게 이야기 하셨다.
그냥 용역이 쳐들어 온다는 말만 하여도 될일을 이백명이 온다는 말을 하면 주민이 기가 죽는다.
그리고 또 김성모씨는 폭행이 몇건이라는 말을 여러번 사람들이 많은곳에서 이야기 하고 계셨다.
폭행이 여러건으로 걸려 있다면 차후에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벌금이 매겨질것이고
경찰서로 간다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고 계셨다.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가는데 주민이 어디 겁이 나서 나설수 있을까.
내 같은 인간은 알면서도 나가는 데
남편이 아무리 말리고 말려도 도저히 감당이 안되기 때문이다.
남편 앞에서는 앞에서 나서서 안 한다는 말만 한다.
우리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일은 경찰이 대신 막아주지도 아니한다.
우리는 우리들이 이곳에서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앞장서서 내 집앞을 지켜야 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살고 있는 주위환경이 우리들에게 적합한지 부적합한지는 우리들이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직접 거주하는 사람들이 살아갈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 아무 이득도 없이 그냥 나라에서 자기들 편리한
방식대로의 고가다리는 절대 수용해서는 아니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무 이득도 없이 오히려 손해를 받으면서
환경이 파괴되어지면서 우리의 건강까지도 위협 당하면서
고가다리로 가야 할 의무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앞에선 사람이 주민들에게 겁을 주면서 주민의 발목을 잡는
사람을 앞자리에 내세워서는 더더욱 안된다는 사실이었다.
가장 긴박할때에 가장 앞에 나서서 일할수 없는 사람이 어찌 주민의 대표를 맡을수 있을까.
에스케이쪽에서 펜스를 치도록 내버려 두게 수수방관한다면 어찌 설명할것인가.
나는 벌써부터 느꼈다.
주민들을 다른곳으로 유인한뒤 주민이 없는 틈엔
혼자서 지키겠다고 말하고서는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전에 아는 언니와 둘인 알아버렸기 때문에 끝까지 그곳을 지키면서 있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우리들이 안 지켰다면
지금 생각하여도 그날은 그 자리를 빼앗겨버렸을것이다.
그 뒤로 항상 주시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앞에 나서서 이야기 하면서 막상 피해가 올까 두려워서
먼곳에서 먼 발치로 구경만 하고 있을뿐이다.
행여 사진이 찍힐까 두려워서
피해가면서 콘테이너에 와서는 큰소리를 치는 사람도 있었더라.
하기야 세상은 별별 사람들이 다 있는 장소였더라.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의 감시를 하기 위해서
우리의 정보를 알아내려 파견된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가장 선동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딴 생각을 품고 있으니
어딜 가나 이런 사람들이 있기는 있다.
사람이 양심을 속여서는 더더욱 안 되는 일이다.
우리구에 잘못 되어가는 일은 바로잡아야 된다
남항시장 번영회 회장을 맡고 있는 사람은 우리 아파트 살림을 엉망으로 살아서
우리 동대표들이 모조리 그 책임의 댓가를 물어서 옷을 벗긴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데 다른 사람들이 행여나 알까
쉬쉬하면서 그냥 묻어두고 덮어주고 지나갔으면
잠잠하게 반성하면서 살아가야 될것인데.
그 무슨 직책이 그리 좋은지 번영회회장의 타이틀이 맡고 있으면
남항시장이 번영은 할지 의문스럽다.
처음부터 그런 직책을 맡을 인물이 안 되는 사람들이
그런 자리들을 차지하고 있으니 영도구에 무슨 발전이 있을까.
새마을 지회장을 한 사람도 잘못된 판단으로 그 잘못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잘못되어도 정말 잘못된 영도구의 현실정이다.
절영산책길은 미리 예고된 인사사건이라도 나는 생각한다.
송도의 길은 먼저 만들어 졌지만 절영해안 산책로길에 비하면 정말 더 잘 지어진 길이었다.
영도의 산책로는 그야말로 돈낭비의 산 장소인것 같았다.
하나를 지을려면 제대로 짓든지 아니면 차라리 손을 안 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뙤약볕아래에서 열심히 일하였을 그 사람들은 그냥 돈벌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무엇이든 투명한 일이 가장 현명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8월 27일 금요일.
아침에 용역이 쳐들어 온다면 문자로 알림이 날아올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아침밥을 챙겨먹고 집을 나섰다.
구르마에 물통두개에 물을 가득 담고서는 라일락꽃에 물을 주러 갔었다.
내가 심은 나무가 잘 살아나도록 물을 주어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용역이 쳐들어 온다는 말은 하루가 지나보니 거짓말이었다.
이렇듯 내분에 갈등을 조장하도록 거짓말로 유인하는
에스케이직원의 말도 더 이상 믿어서는 안된다.
에스케이에서는 사람의 심리전으로 이제 들어갈 모양이었다.
주민을 상대로 고소고발하고 있으니 경찰서로 가야 하는 실정에 접어들었다.
자기네들이 하는 일은 합법적이지 아니하면서
용역을 불러서 주민들을 강압적으로 한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용역이 쳐들어오는 것도 부산시도 한몫 거든다는 사실이었다.
주민들에게 겁을 가한뒤 주민들의 생각을 접게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한사람 두사람 나왔다가 용역이 없어서 모두들 집으로 향했더라.
그곳엔 몇몇 사람들만 있어도 용역이 긴박하게 쳐들어 올때에 알리면 될일이었더라.
남편이 월요일부터 휴가였지만 우리집엔 휴가를 갈수가 없었다.
행여나 용역이 쳐들어 올까봐 산소에 벌초를 하러갈수도 없었다.
남편 혼자서는 가기가 싫었나 보았다.
함께 벌초하러 갔어야 되는데 아내가 안 가니 갈수가 없으니.
어찌하노.
내가 할 일은 많고 많은데 내 할일도 할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아침부터 나와서 이왕 있어야 된다면 밭을 일구는 일을 하였다.
포크레인이 쳐들어 올곳을 미리미리 점검하여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버려진 땅을 다시 일구고 일구느라 밭을 일구는데 그곳의 돌은 다른곳보다도 더 컸었다.
돌 몇개를 지렛대를 이용하여서 깊고 깊게 박힌 돌을 끄집어 내었다.
그 돌을 끄집어 내는데에도 혼자의 힘으론 절대 안된다.
여러사람들이 합심하여서 일을 하여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옛날 사람들은 어찌 그 큰돌들을 만들었을까.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큰 돌을 운반할려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밭을 일구고 고춧대를 세우고 들깨를 다른곳에서 뽑아낸것을 나는 열심히 심었다.
아직 더 딸 들깨가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열무나 배추는 지금 심어야 추석때 나물을 해 먹을수 있기때문에 뽑는다.
일을 하다보니 점심때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는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너무 일을 많이 한 나머지 힘이 지칠대로 지쳐 버렸다.
쉬어야 재충전을 할수 있는것이다.
잠을 잔다는 것이 깊이 잠이 들어버려서 세시가 넘은 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세시에 전단지 홍보한다고 하였는데 그만 늦어버렸네.
시간이 좀 늦었지만 농성장으로 향했다.
아직 전단지를 뿌리러 가지는 않았었다.
몇사람이 모여서 그곳에서 한분은 일일시위를 하고 다른 사람들은 전단지를 뿌렸다.
전단지를 뿌리다가 나는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고가다리 반대의 옷을 입고 복면을 하고 들어가니까 못들어가도록 하는것이었다.
나도 영도구 주민이라서 들을 권리가 있다는 말을 하였다.
경찰들이 사복을 입은채로 짝 깔려있었다.
뉴타운 홍보와 체결식을 하는 부영에서 공사를 맡았나 보았다.
제대로 잘 선정된 곳을 골랐는지는 모르겠다.
주민의 편에 서서 일할수 있는 그런업체여야 되는데 그것이 정말 맞을까.
이런 홍보와 체결식을 협약하면서
주민의 수는 몇 안되고 홍보도 잘 안 된 상태에서 각 동 유관단체원들과 공공 기관공무원들이었다.
이러하니 주민은 정작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한 행정인것 같았다.
홍보물도 며칠 안 되는 사이 붙여놓았으니 어찌 알수가 있을까.
혹시 사람이 적게 올새라 그 많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제공을 한다는 문자와 함께 날아왔다.
이런 체결식을 하면서 주민들도 어느정도 많이 모였다는 말도 하여야 되기 때문이다.
유관단체원들이 말을 안하면 그냥 모른체로 넘어가는 그런 행정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뉴타운 사업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이 맞는것 같다.
작은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새로이 집을 건설하면 그 집으로 들어갈수가 없는것이 현실정이다.
그런 사람들이 살수 있도록 작은 규모의 집도 그냥 그 평수만큼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래도 내가 살고 있는 집이 그 사람에겐 가장 큰 이상의 집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좇겨나면 오고 갈 집이 없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 원망을 늘어놓을수 밖에 더 있을까.
주민이 살수 있는 터를 제공해 주면서 집도 지어져야 되기 때문이다.
잘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른것 같다.
잘사는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들여다 본다면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부지런하고 근면하다는 사실을 나는 알아버렸다.
못 사는 사람들은 임시 살 생각에 빠져 있으면서
내일이란 기대보다는 그냥 하루살고 하루 지내는 데 전념한다는 생각이었다.
있으면 있는데로 쓰고 없으면 없는 소리를 한다.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도 그냥 무상급식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하나의 일거리를 제공한뒤에 급식을 나누어 주어야 될것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다 똑같은 존재이다.
일할수 있도록 보조를 해 주고 난 다음에 도움을 주어야지
무턱대고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들이 쉽게 쉽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었다.
일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냥 쉽게 쉽게 밥을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 될것이다.
일하는 농부의 노동을 생각한다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해서 일한 노력의 댓가인지를 알아야 될것이다.
농부의 노력의 결실이 맺어지기까지는 그만큼의 노고가 따르게 되어있다.
농부는 힘들여 일하고 그 결실을 쉽게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어제의 가격과 오늘의 고춧가루의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아침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었다.
고추를 그냥 꼭지도 따지 아니한 상태에서 한근에 만 칠천오백원을 한다고 장삿군들이 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고춧가루값이 폭등하면서 고춧가루값을 처음은 제대로 받지를 못했다.
이렇듯 농산물은 중간상인들만 좋은일을 시킨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누구라도 김치는 먹기 나름이다.
고춧가루를 만들기 위해서 농부들이 뙤약볕 아래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일을 하여야 될까.
그래도 농사지은 것이 가격이 좋기라도 한다면 괜찮은 일이지만
그 가격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서비스 가격과 우리들이 사치로 바르는 여기는 것들은 비싸게 측정되어 있고
실제로 힘들게 일한 노동의 댓가는 적기때문에
귀농하려는 사람이 자꾸만 줄어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또 정부가 나서서 땅을 그냥 버려두면 돈을 주는 정책을 펼쳤는지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니 점점 농사를 안 지으려 하는것 같다.
사치는 안하고 살수가 있지만
밥은 안먹고는 못사는 것을 생각한다면 정책도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야 되지 않을까.
글쓴이...임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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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들의 삶 중에서 가장우선은 남을위해 힘든일에 앞장서는것 보다는 각자가 보장받아야 할 가정의 행복 아닐까...
고생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