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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계의 위치
손 창 섭
1
이 집에 하숙을 정하고 온 지 근 반년이나 되는 내가 인제야 겨우 뒷집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것은 참말 소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아무래도 나는 좀 주의력이 모자라는 인간인지 모르겠다. 물론 지금까지도 나는 이 뒷문을 열고 밖을 전망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내가 들어 있는 집은 그래도 이층집이었다. 집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창피한 집이다. 그렇지만 내 소유의 집이 아닌 바에야 내가 창피할 건 없다. 집 주인이 창피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그 대가리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주인 아주머니는 조금도 창피해할 줄 몰랐다. 도리어 큰소리를 치며 으스대는 것이다. 누구의 소개로 처음 내가 이 집에 하숙을 얻으러 왔을 때 일이다. 모처럼 따라와 준 신군(申君)이,
“어디 이게 집이야, 아무리 하꼬방이라두 집 꼴이 됐어야 말이지.”
하고 투정을 했던 것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금시 낯이 빨개지면서 당장 우리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여보 입은 가루 찢어졌어두 말은 좀 똑바루 하구 댕게요. 어디서 그 따위 본때 없는 수작을 해요. 그래 당신네는 이런 하꼬방 집이나마 있소? 이래봬두 이층집이야!”
그건 역시 지당한 말이었다. 신군이나 나는 요만한 하꼬방집 한 칸 지니고 있지 못한 신세였다. 그러나 만사에 있어서 나보다는 한결 주견이 서 있고 구변이 능한 신군은 또 한마디를 특 내뱉었다.
“젠장, 나 같음 이 따위 다 썩어 가는 판잣집은 그냥 줘두 일없소!”
언제나 신군은 이래서 탈이다. 속에 있는 말은 튀어나오지 않곤 못 배긴다. 입이 너무 가벼운 것이다. 주인 아주머니가 언성을 버쩍 높여 가지고 더 기승스레 펄펄 뛴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옆에 끼고 있던 어린애를 땅바닥에 동댕이치고 신군의 턱밑으로 바짝 다가서더니, 바들바들 떨면서 악을 쓰는 것이었다.
“뭐라구? 이놈아, 뭐 어쨌다구? 또 한번 주둥일 놀려 봐라. 내 가만 둘 줄 알어! 그래 싫으문 말 게지 남의 집 아무컨 네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응, 무슨 상관야, 무슨 상관야!”
이런 식으로 냅다 발악을 하는 바람에, 시세가 글렀던지 신군도 그만 뭐라고 더 말을 못 하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내가 나서서 사과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방을 구하러 온 것은 신군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분명히 설명하고 나서, 달라는 값을 무조건 다 주고 들 터이니 이 이상 신군의 실언을 탓하지 말고 용서해 달라고 나는 정중히 사정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관계로 그리 마음이 내키지 않는 방을 나는 종시 얻어 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층이라고는 하지만 지붕이 낮아서 곧바로 서서는 머리를 바로 들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참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나는 이 집에서 살아야 되겠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주인 아주머니가 나가도 좋다고 하기 전에는 나는 이 집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섣불리 내가 값도 싸고 좀 깨끗한 집으로 옮기겠다고 신청을 할 말이면, 주인 아주머니는 단박 안색이 변해 가지고, 신군의 실언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 놓고, 다자꾸 트집을 걸려드는 것이다. 그리 되면 나는 거기 대해서 무어라 답변할 말이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실언이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가 생각할 때, 나는 누구 앞에서나 말하기가 무
서워 지는 것이다. 직장에서 매일 만나는 신군은, 자기 잘못은 조금도 생각지 못하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욕사발을 퍼부은 다음, 즉시 박차고 뛰쳐나오지 못한다고 날더러만 바보니 뭐니 하고 야단인 것이다. 노상 입으로는 그러면서도 저 역시 켕기는지, 놀러 오래도 한 번도 우리집에는 오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가장 친근한 신군마저 청할 수 없고, 이 집에서 나갈 수도 없고 해서 난처하고 우울하기만 한 것이다. 그러한 번민을 끄기 위해서 나는 뒤창문을 열어 놓고 암만이구 밖을 내다보고 앉아 있는 습관이 생기었다. 창 밖에는 가시 철사로 둘러막은 공지가 있고 거기에는 잡초가 무성해 있었다. 공지 저편에는 사변통에 파괴되다 만 삼층 건물이 한 채 우뚝 서 있었다. 언제나 나는 그 집을 무심히 보아 왔지만, 최근에 이르러 아무래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아니 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2
나의 관찰에 의하면 삼층 건물은 두 개의 가게로 꾸며져 있었다. 한쪽은 조그만 음식점 간판이 붙어 있었고, 다른 한쪽 가게에는 아무런 표지도 없었지만 역시 그것도 하나의 점포임에는 틀림없었다. 거기에는 언제나 두서너 명의 청년이 지켜 있다가, 지나가는 외국 군인을 끌고 들어가서는 여러 가지 물건을 흥정하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그 가게의 진열장에, 지금은 보기 드문 가죽신이며, 장죽이며, 갓과 외투 감은 것이 놓여 있기도 하고, 혹은 외국 군인이나 그 가족임에 틀림없을 외국인이며 아이의 초상화가 주루루 돌아가며 붙어 있기도 한 것이다. 물론 그러한 것은 나와는 상관이 없으니 아무래도 좋다. 문제는 그 가게의 한 귀퉁이에 놓여 있는 층층다리인 것이다.
일, 이, 삼층을 통해 그 층층대가 놓여 있는 부분의 전면 벽에는, 위아래로 기름한 창문이 있어서, 층계를 오르내리는 사람의 모양이 환히 들여다보이게 되어 있었다. 그 건물의 이층에는 방이 둘, 삼층에는 방 하나가 있었다. 원래는 삼층에도 방이 둘 있었던 모양인데 사변통에 한쪽은 완전히 부서져 버리고, 방 하나만이 간신히 남아 있었다. 그 방의 주인공은 젊은 여자였다. 그 여자는 물론 내 방에서도 충분히 바라볼 수 있는 유리문 안의 층층다리를 통해서 자기의 거실에 드나드는 것이었다. 맨 처음 층층다리를 올라가는 그 여자를 지켜보고 있던 나는, 신기한 발견을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직접 그 여자에 관해서가 아니라, 여자가 사는 그 건물의 내부구조에 대해서인 것이다. 맨 아래층의 입구에서 외국 군인과 이야기하고 섰던 여자는 내 쪽으로 등을 보이며 층층다리를 걸어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삼층에 산다는 걸 여태 몰랐을 때라, 어느 방으로 들어가는가를 나는 상당한 흥미를 품고 주시했던 것이다. 이윽고 이층까지 다다른 여자의 모양이 일순간 보이지 않게 되었다가, 이내 다시 삼층으로 통하는 층층다리에 나타난 것이다. 이번에도 여자는 내 쪽으로 등을 보이며 저켠을 향하고 올라가는 것이다.
“가만 있자!”
나의 두뇌로는 이해키 곤란한 점이 있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중얼거리었다. 그것은 이층과 삼층으로 통하는 그 층층다리의 위치에 대해서인 것이다. 이층에 올라갈 때 여자가 이쪽을 등지고 저켠을 향하고 걸어올라갔으면, 삼층에 올라갈 때는 반대로 저쪽에 등을 대고 이편을 향해 걸어올라가야 할 게 아닌가. 그리 되면 당연히 층층다리에 가리어서 삼층에 올라갈 때는 내 방에서는 보이지 않게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이층이나 삼층이나 다 층층다리가 저쪽을 향하고 놓여 있는 모양이다. 그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층층다리의 위치에 대해서 나는 연구해 보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건축가는 아니다. 도리어 그런 방면에는 아주 백지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나의 고심은 한층더 컸던 것이다. 나는 우선 내가 살고 있는 이 하숙집의 층층다리를 세밀히 검토해 보는 데서부터 시작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나는 이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이층의 내 방에 통하는 층층다리를 자세히 뜯어보았다. 그러나 이것을 층층다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나무사다리에 불과했다. 이 사다리도 오르내리기 편하게 제법 엇비슷이 놓여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직선에 가깝게 까꿉서 있었다. 그러기 내 방에 올라가려면 흡사 전기공이 전봇대에 올라가는 것과 비슷한 동작과 노력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자칫 다리를 헛디디거나 손을 놓쳤다가는 문제가 없다. 문제가 없다는 말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뻔한 의미다. 그러나 높이가 겨우 한 길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중턱에서 떨어진대도 엉덩이나 팔꿈치가 좀 얼얼하다든가, 정강이의 피부가 쓸칠 정도요, 허리를 삐거나 모가지가 부러지거나 하지 않아서 다행한 일이다. 물론 최근의 나는 상당한 훈련을 쌓았기 때문에, 한 손에 물그릇을 들고 한 방울도 엎지르는 일 없이 냉큼냉큼 오르내릴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기 나는 그날도 민첩한 동작으로 몇 번이나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층층다리가 놓일 수 있는 이치를 연구해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나의 전 지능을 짜내어 궁리해 보아도, 이층에 올라가는 층층다리와 삼층에 올라가는 층층다리가 같은 쪽을 먕하고 동일한 상태로 놓여 있을 이치가 없다. 나는 정말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몇 차례나 그 까꿉선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층층다리의 위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주인 아주머니는 눈이 농그레 가지고 무슨 영문이냐고 물었다. 나는 어떤 구원을 기대하면서 나의 괴로운 심경을 솔직히 호소한 것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잠시 동안 멍하니 선 채 내 설명을 듣고 있다가 마침내 나를 여지없이 냉소해 버리고 말았다.
“아이구 주접이야! 난 또 무슨 큰일이나 났다구. 온 별꼴도 다 있지.”
특히 마지막 한마디는 내게 대해서는 가혹한 말이었다. 나는 대번에 돌아서 들어가는 아주머니를 붙들어 놓고, 그 모욕적 언사의 취소를 강경히 요구하려 하였으나 다음 순간 나는 분을 참기로 하고 잠자코 있는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만일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에, 주인 아주머니는 으레 신군의 실언 사건을 거들고 나와 여지없이 나를 면박할 것이며, 그리 되면 나는 참말 아무런 할 말도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실언이 이렇게까지 두고두고 남을 구속할 수도 있는가 생각하며, 나는 기운 없이 이층의 내 방으로 올라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3
요즈음은 해가 길어서 퇴근하고 돌아와도 어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있는 것이다. 이리로 이사 온 뒤의 당분간은, 그 시간이 몹시 주체스러워서 나는 쩔쩔매다시피 한 것이다. 한가해서 쩔쩔맨다면 웃을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사실인 것이다. 머리를 꼿꼿이 펴고는 설 수도 없을 만큼 천장이 낮은 판잣집 이층이라, 저녁 여섯시나 일곱시가 되어도 방 안은 훅훅 열기가 서리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누워 뒹굴며 시간을 보내기란, 일종의 고역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볼일 없이 건들건들 거리를 휘젓고 나다니기도 싫다. 인쇄소 직공 노릇이나 해먹는 내가 뭐 잘난 듯이 거리를 빼고 다닐 주제도 못 되지만, 꿈쩍하면 돈을 써야 하는 게 더 아프기 때문이다. 이 더운데 나가 다니노라면 아무래도 시원한 것도 마시게 되고, 쉬 배가 꺼지니 자연 군것질도 하게 마련이다. 사십 평생을 뼈에 사무치도록 돈 없는 설움을 맛보아 온 내가, 어디라고 단 십 환을 허수로이 쓸 수 있느냐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공장에서 돌아오면 늘창 집에만 붙박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학자라든지, 지식계급이 되어서 더위를 무룹쓰고까지 무슨 책을 들여다봐야할 필요나 흥미가 있을 수도 없다. 고작 활자에 눈이 간대야 신문 정도다. 그렇다. 퇴근할 때 나는 공장 사무실에서 신문을 살짝 한 장 훔쳐 가지고 오는 버릇이 생기었다. 그것은 이 좁고 무더운 방에서 누워 뒹굴며 심심풀이로 신문이라도 떠들어 보자는 거다. 그것도 시시콜콜히 다 뒤져 읽는 게 아니다. 그저 큼직큼직한 제목을 주워 나가다가 흥미가 당기는 기사만 골라 읽는 것이다. 한동안은 온통 선거에 관한 기사로 꽉 찼기 때문에 차라리 안 보는 거보다 더 골치가 아팠다. 나도 물론 당당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정치에 아주 관심이 없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국회나 선거 기사를 읽고 있노라면, 도무지 어떻게 된 판국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 나 자신 더 어리벙벙해지기 때문이다.
그러기 당분간은 신문도 보지 않고 정치에도 머리를 쓰지 않기로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 자연 퇴근하고 나서 어둡기까지의 시간이 더욱 지리할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도 뒤창문으로 바라다보이는 삼층 건물의 내부구조에 대해서 회의를 품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서 또한 그 연구에 분망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선 나는 좀더 면밀히 그 삼층 건물을 관찰하기로 했다. 퇴근하는 길로 겨우 내 대가리가 드나들 정도의 창문을 열어젖히고, 나는 그 밑에 바싹 지키고 앉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삼층 건물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의 새로운 사실들을 나는 발견할 수가 있었다. 삼층과 마찬가지로 이층에도 젊은 여자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층에 사는 여자들도 삼층에 사는 여자와 똑같이 야단스런 차림새를 하고, 외국 군인들과의 교제가 빈번함을 알 수가 있었다. 이충이나 삼층의 이인용 침대 위에서는 내가 상상만 해왔을 뿐, 한 번도 경험해 본 일이 없는 가지각색의 광경이 가끔 벌어지곤 하는 것이었다. 그네들은 자기네 방이 안전한 비밀장소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층 건물의 주변에는 상당한 간격을 두고 온통 성냥갑 모양 납작납작한 판잣집 지붕들만이 내려다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설마 그 중에는 이층으로 된 판잣집이 있고 그 속에서 내가 요렇게 엿보고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다만 내게 있어서 한 가지 유감인 것은, 삼층 방은 이층 방들처럼 그 내부가 완전히는 건너다보이지 않는 점이었다. 그만큼 삼층은 내 방의 위치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것이다. 이층 삼층의 실내에서 전개되는 가치가지의 진기한 광경을 엿보면서, 나는 그때마다 느닷없이 나를 버리고 달아난 누이동생을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달아난 것이라면 모르거니와 여동생이 오빠를 버리고 나갔다는 것쯤이야 생각하면 하나도 문제 될 사건은 아닌 것이다. 그러기 나는 어떠한 자신을 가지고 통쾌한 판단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를 버리고 달아난 누이동생도, 저 삼층 건물에 살고 있는 여자들과 똑같이 꽤 찬란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는 단정이다. 이러한 단정을 내리는 나의 심경은 한편 약간 불안하고, 미안하고, 억울하기조차 하지만, 역시 결론적으로는 무척 통쾌하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신기한 통쾌감이나, 마주 건너다보이는 이층 삼층의 실내 광경에만 나는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중대하고 긴급한 과제로서 내게는 저 삼층 건물의 내부구조를 연구해야 할 일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두뇌와 대결하는 장쾌한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판에 여기 이러고 앉아만 있을 수는 없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용감히 삼층 건물의 내부에 뛰어 들어가서 나는 직집 층층다리의 위지를 조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별안간 생기를 얻어, 나는 자신만만히 아래층으로 해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4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유연히 삼층 건물 앞으로 접근해 갔다. 간판이 없는 가게 쪽에선 이십 전후의 두 청년이 마주 앉아 장기를 두고 있었다. 나는 태연히 가게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막 위층으로 통하는 층층다리에 한 발을 올려 디디자,
“여보, 여보.”
하고 한 청년이 쫓아오더니,
“뭡니까?”
그렇게 날카롭게 물었다. 별안간 나는 대답할 말에 궁해서 머뭇거렸다.
“뭐 허러 거긴 올라가는 거요?”
청년은 나의 한쪽 팔을 잡아 낚으며 사나운 눈초리로 쏘아보는 것이다.
“조사하러 갑니다!”
나는 참말 의외로 효과적인 의사 표시를 했다. 청년은 약간 부드러운 표정으로 내 차림새를 훑어보았다. 장기판 앞에서 이쪽을 보고만 있던 다른 청년이 다가오더니,
“무슨 조살 하러 오셨습니까?”
하고 은근히 물었다.
“이 건물의 내부구조를 좀 조사하러 왔습니다.”
“어디서 오셨는데요?”
무척 까다로운 청년들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잠시 망설였으나 역시 바른 대로 대답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요 앞에서 왔습니다!”
해두었다.
“요 앞이라뇨? 직장이 어디시냐 말입니다.”
“인쇄소에 다닙니다.”
“네? 인쇄소요?”
두 청년은 저희끼리 얼굴을 한번 마주 보았다.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그들은 이내 도로 거친 얼굴이 되어 나를 다시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대뜸 말투가 달라졌다.
“뭐 이런 게 있어!”
한 청년이 떼밀다시피 나를 밖으로 내몰았다.
“이 자식 정신 바짝 차려. 그 주제에 어디서 함부루 까실 노는 거야.”
한 청년이 벼락같이 내 엉덩이를 냅다 차는 바람에 나는 하마터면 꼬꾸라질 뻔했다. 청년들의 거친 기세로 보아 도저히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다고 나는 깨달았다. 할 수 없이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하숙에 돌아와서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마침내 나는 한 가지의 연구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것은 내일부터라도 거리를 돌아다니며 임의로 출입할 수 있는 삼층 건물을 물색해 가지고 그 건물 내부의 층층다리의 위치를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나는 곧 실행에 옮기었다. 이튿날부터 나는 퇴근하여 돌아오는 길에 서울 거리를 두루 헤매었다. 그러나 좀처럼 마참한 삼층 건물은 눈에 뜨이지 않을 뿐더러, 두어 군데 발견해 가지고 올라가 보기는 했지만, 하숙집 뒤에 있는 삼층 건물과는 근본적으로 그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도무지 짐작이 서질 않는 것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며칠 동안 거리를 싸다니다가 어두워서야 하숙에 돌아오곤 했으되, 별반 신통한 보람을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무엇을 한 가지 연구한다는 일이 이처럼 괴롭고 어려운 줄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육체적인 피로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다. 정신적인 고통을 이기기가 더 어려웠다. 공장에 가서도 이사람 저사람에게 나는 삼층 건물의 구조에 대한 회의와 고민을 이야기해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나의 이야기를 그리 중대시해 주지 않았다. 끝까지 귀담아들어 주는 사람조차 몇 없었지만, 다 듣고 나서도 일소에 부치거나, 그렇지 않으면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 양공주들의 육체미에 반해서 속이 푹푹 썩는 게 아니냐고 농담으로 돌려 버리기가 예사였다. 아무 데서도 나의 이 고민을 해소시키기 위한 연구의 협조를 얻을 길이 없음을 알았다. 퇴근하고 나서 어둡기까지의 지루한 시간을 나는 또다시 창문 앞에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건너다보이는 삼층 건물에는, 다름없이 세 명의 젊은 여자가 외국 군인을 끌고 자주 오르내리었다. 물론 이층에 올라가는 층층다리와, 삼층에 올라가는 층층다리가 동일한 방향으로 위치하고 있는 사실에도 변함이 없었다. 우뚝 솟아 있는 그 건물은 마치 거대한 생물체로서 고의적으로 나를 조롱하고 있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분해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끝장을 보고야 말리라고 이를 갈았다.
5
공장에서 돌아오는 길로, 빈 도시락을 주인 아주머니에게 디밀어 주고 나는 이내 또 밖으로 나갔다. 삼층 건물이 서 있는 방향으로 스적스적 걸어갔다. 간판이 없는 가게 안에는 오늘도 사람이 있었다. 잠시도 비지를 않는 것이다. 주인인 듯한 노파가 안방의 장지문을 열고 가게 안에 앉아 있는 청년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외면하고 그 앞을 슬쩍 지나가 버렸다. 수일 전부터 나는 이 건물의 주변을 배회하면서 침입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좀체로 그러한 기회가 오지 않았다. 가게에는 잠시도 사람이 비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대개는 깡패 비슷한 청년이 두세 명씩 버티고 있었고, 거기에 주인 노파까지도 얼리어 야단스레 떠들어 대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기어이 나는 목적을 이루어야 했기 때문에 쉽사리 단념해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며칠 동안 이 근방을 서성거리면서 이삼층에 사는 여자들을 나는 퍽 가까운 거리에서 자세히 관찰할 수가 있었다. 여자들은 가게 앞에 나와 서기도 하고 가게 안에서 청년들과 농담을 씨부리기도 하다가, 지나가는 외국 군인과 얼려서 해들거리며 올라가 버리는 것이었다. 삼층에 사는 여자를 가까이서 보았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여자는 나의 여동생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불시에 가슴이 두근거리었다. 그렇지만 그 여자는 나의 여동생보다 확실히 더 예뻤다. 그때 나는 실없이 지나치게 홍분해서 그대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었다. 그러나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홍분해서는 안 되겠다고 나는 스스로 다짐했다. 마침내 나의 노력과 정성은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갑자기 집 뒤란에서 철썩 하고 뭐가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불이 붙은 듯이 아이의 울음 소리가 터졌다. 그러자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우 몰리어 갔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번개처럼 스쳐갔다. 순간 나는 잽싸게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이층으로 통하는 층층다리로 몸을 날리었다. 마침내 나는 성공하고야 만 것이다. 가슴이 삼십 평생 처음 경험해 볼 만큼 놀라운 속도로 뛰었다. 나는 금방 기절할 것같이 숨이 가빴으나, 참고 간신히 층층다리를 올라갔다. 이층에 척 올라서자 활짝 열려 있는 문으로 한쪽 방 안이 통째로 들여다보였다. 침대가 대뜸 눈에 들어오고 그 위에 무엇이 있었다. 나체에 가까운 여자와 외국 군인이 꽉 껴안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 비켜섰다. 얼결에 나는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고 도망치
듯 삼층으로 뛰어올라가고 말았다. 견딜 수 없이 숨이 가빴다. 가슴은 더욱 세차게 터져 버릴 듯이 방망이질을 했다. 삼층의 방문도 열려있었다. 마침 실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아무런 분별도 없이 덮어놓고 방 안에 들어서 보았다. 내 하숙방하고는 너무나 달랐다. 우선 코를 간지르는 야릇한 향기와, 벽에 걸려 있는 짙은 색깔의 옷들, 그리고 침대 위에 펼쳐 있는 푹신해 보이는 이불을 보았다. 나는 꿈속을 헤매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정신없이 나는 비틀비틀 침대 위로 다가갔다. 그러자 누가 떼다밀기나 하듯이 내 몸은 저절로 쓰러지듯 침대 위에 누워 버렸다. 귀가 와앙 울도록 뛰는 가슴을 두 손으로 누르고 나는 한참이나 생각 없이 누워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졸지에 정신이 펄쩍 들어 뛰어 일어났다. 층층다리를 조사해야 할 것을 그만 깜빡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험을 해가면서 내가 여기까지 올라온 중대한 목적은 거기에 있었던 것이 아니냐! 나는 날쌔게 도로 방을 뛰어나갔다. 층층다리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누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질겁을 해서 뒤로 돌아왔다. 할 수 없었다. 피한다는 것이 나는 무의식중에 방으로 되들어와 벼리고 말았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 왔다.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방문을 닫았다. 다행히 안으로 고리가 있었다. 급히 그놈을 잠가 버렸다. 다음 순간 나는 모든 것을 단념한 듯이 천천히 걸어서 침대 위에 가 누웠다. 이불 속에 몸이 푹 잠기었다. 문 밖에서는 황급히 문을 흔들어 보고 아래층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법석이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체념했다. 이 삼층 건물의 내부구조와 함께, 사회의 일 분자로서의 나라는 개체가 풍기는 생명의 비밀이, 외부와 차단된 채, 영원히 이대로 누워있어도 좋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낙서족』, 일신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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