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 '페트릭 베이 만' (크리스찬 베일). 이 남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한 번 보자. 완벽한 몸매와 외모에, 1주일에 한번 최고급 스킨 케어를 받고, 베르사체 등 유 명 디자이너의 옷만 입으며,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들에 둘러싸여 식사를 즐기는 하 버드 MBA 출신의 금융합병사 최고 경영자. 넘치기만 할 뿐 부족한 것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이 사람이 바로 '미국의 사이코' 다.
거리의 부랑자를 칼로 찔러 죽이고, 자신보다 더 좋은 명함을 가졌다는 이유로 동료를 도끼로 난도질하며, 힘없는 매춘부와 여자들을 죽인 뒤 시체를 냉장고에 매 달아놓는 그가 '사이코'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의 여류 감독 메리 해론이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잔혹한 살인 장면과 노골적 성 묘사로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이 소설을 메리 해론은 스크린에 현명하게 옮겨 놓았다.
히치콕의 「사이 코」처럼, 낭자한 피나 잔혹한 살인 장면을 생략하면서도 그에 못지 않게 긴장감의 수위를 높였다.
감독은 '레이거노믹스'와 물질주의가 한창인 1980년대, 여피족들의 물질만능 주의와 정신적 황폐함을 한껏 비웃는다.
동료의 이름조차 헷갈려 하고, 최고급 식 당에 예약을 할 수 있는지 여부가 사람에 대한 주요한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며, 회의실에 모여 명함의 질감과 글씨체를 비교하면서 웃고 웃는 여피족들의 모습은 시 종일관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모습으로 스크린에 비춰진다.
베이트만이 살인을 하는 이유 역시 자신보다 더 나은 것을 가진 동료에 대한 열등감, 자신보다 못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속 주인공이 두 시간 내내 밑도 끝도 없이 벌이는 살인 행각은 ' 저 사람은 사이코야'라는 확신을 더해 줄 뿐, 그의 비정상적인 행동과 물질적 풍요 로움, 부러울 것 없는 생활 사이에서 풍자의 연결고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감독은 이게 바로 '의식의 심연에 깊숙이 자리잡은 폭력에 대한 악몽'이라고 말 하지만, 다음 희생자는 누가 될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살해될 것인지에 대한 호기 심이 앞설 뿐, 어떤 본능의 꿈틀거림도, 공감대도 이끌어내기 힘들다.
「식스 센스」의 마지막 반전처럼, 여태껏 있었던 일이 실제 일어났던 일인지 아니면 주인공의 의식 속에서 상상으로 벌어진 일인지 애매하게 처리되는 결말은 관 객을 다시 한번 당황하게 만든다.
지난 87년「태양의 제국」에서 열 세살 미소년으로 등장했던 크리스찬 베일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물리치고 당당히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