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을 모시고
김광선(본지 편집인)
필자가 미국에 와서 불교잡지 편집만 5년을 했다. 책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 것이 뉴욕 원각사에서 발행한 <원각>이었다. 〈원각>을 2년 동안 만들고 시작한 것이 <미주현대불교> 편집일이었다. 이 일을3년이상 했으니 도합 5년을 불교잡지 편집을 한 셈이다.
5년여에 걸쳐 불교잡지 편집일을 하면서 수많은 스님들과 불교계 인사들을 만났고 그들의 행위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필자에게 이상적인 스님의 상은 선승도 학승도 아닌 삶의 현장 역사의 현장에 서있는 스님들이었다. 지선. 진관, 법성(학담)스님들 처럼 통일운동에 뛰어든 스님, 인권문제, 재소자문제, 환경문제, 평화운동에 관심있는 스님들과 선우도량 회원 스님들 처럼 수행과 한국불교 개혁에 관심이 많은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주된 관심이었다.
그런데 본지의 창간 3주년 뉴욕기념법회에 설법을 하러 오신 강청화스님과의 만남은 필자의 스님에 대한 관점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가 청화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나성의 권대광명보살로부터였다. 한때 오렌지카운티 정혜사에서 주지대행을 하던 권대광명보살은 나성에서 서울까지 다니면서 스님을 자주 찾아뵙던 보 살님이었는데 청화스님이 아주 훌륭한스님이라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권보살님 의 이야기로는 스님에 대하여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본지 편집실로 오는 한국의 불교잡지에서 청화스님의 기사를 보았다. 서울 무역회관에서 가진 큰스님의 법회장면이었다. 필자는 무역회관을 가 본적이 없어 법회규모를 알 수 없었지만 기억이 나는 건 수 십년을 밖으로 잘 나오시지 않는 수행스님이 서울에서 처음으로 법회를 가졌다는 기사와 법회장소가 꽉 차 입장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저 멀리 서서 있었다는 것, 그리고 큰스님의 법문을 듣는 사람들의 환희에 찬 표정이었다.
그리고 조계종 총무원이 강남총무원과 강북총무원으로 쪼개져 사회적인 비난이 불교계로 쏟아지고 불교계안에서도 이 현상에 대하여 여론이 들끓었을때 〈대중불교>에서 신행단체장들과 지도자들 을 초청하여 좌담회를 가졌는데 그 모임의 참석자 중의 한 분이 전라도지역에서는 청화스님이 계셔서 다른 스님들의 귀감이 되고 정신적지도자로 존경을 받는다는 요지의 말을 한것으로 기억된다.
그 기사들이 난후에 불교신문들을 보니까 큰스님 모시고 수계법회를 한다는 광고문구와 큰스님을 초청하여 법회를 한다는 기사가 자주 눈에 띄었다. 법보신문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 특집으로 동국대학교 정병조교수가 큰스님을 찾아가 대담한 내용을 내보냈다.
또 월간정토의 "염불선 강좌"를 본지에서도 내보냈는데 이 글을 쓴 현장스님이 〈대중불교>의 10월 표지에 실리고 크게 소개
되었다.
이 기사에서 현장스님은 염불선 운동은 청화스님께 큰영향을 받았고 청화스님이 계신 태안사에서 2년을 지냈다고 한다.
현장스님은 청화스님을 뵙기 전에 약 7개월간 티벳 인도를 성지순례를 했는데 티벳트 명상에 깊은 강동을 받고 귀국했는데 귀국 후 청화스님을 뵙고 깊이 매료됐다고 술회했다. 현장스님은 청화스님의 눈빛을 통해서 스승이 지니신 사랑의 마음을 읽었고 “ 청화스님을 한국의 밀라레 빠라고 하죠. 겸손과 청빈의 덕을 그대로 지닌 전통적인 고행자상을 그대로 지니신 스님이세요." 라고 평했다.
큰스님이 미국에 오시기 며칠 전에 필자는 미국을 방문중인 김남선씨를 만났다. 김씨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현재는 〈전교조〉 서 울지부 부위원장으로 일하던 재야의 중요한 인사다. 큰스님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태안사에 가서 한번 뵈었는데 조그마한 몸이지만 그윽한 눈에서 광채가 나더라고 친견소감을 피력했다.
과연 어떤 스님이실까?
어떤 스님이기에 신자도 민중운동가도 또 한국불교계에서 <해인〉 〈불일회보> 등을 만들어 한국불교의 문서포교에 큰 족적을 남기고 글도 잘 쓰는 스님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청화스님을 칭송할까?
선을 많이 하신 분이고 또 묵언을 수 년을 하셨다는데 덮어놓고 무작정 〈불교는 불립문자(不立文字)〉 라고 말씀하시면서 책따위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시지는 않을까? 또 현실참여는 가치없다고 하면서 선만이 최고라며 법문이 횡설수설하여 아무 논리가 없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과 실망에 대한 두려움이 청화스님을 뵙기 전에 필자의 마음에 공존하고 있었다.
케네디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대합실안으로 들어서는 스님들중에는 나성에서 뵌 적이 있는 정귀스님도 보였다. 필자의 고향인 시골에서 어렸을 때 뵌것 같은 천진난만한 모습에 친근감을 주는 할아버지 모습의 스님 8~9분을 미국의 공항에서 봤을 때 필자에게는 묘한 감동을 주었다. 스님들의 모습을 본 순간 긴장감은 없어지고 자애스러운 다정한 느낌을 받았다. 하루빨리 한국의 절에가서 많은 스님들을 만나고 싶었다.
청화스님은 이 스님들과 더불어 손수 가방을 들고 걸어 나오셨다. 우선 필자를 소개하며 인사를 드렸다. 숙소에 가서 여장을 풀고 나니 밤10시가 넘었기 때문에 삼배만 올리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음 날은 뉴욕전등사에서 아침 공양이 있었다.
스님들의 공양이 끝난 후 스님께서 본지의 발전을 위하여 글을 한점 주셨다. 글을 쓰실 때는 화선지와 붓과 스님이 삼위일체로 하나로 되는 듯한 느 낌이었다.
뉴욕에서 이틀 밤을 지내고 원각사로 들어갔다. 원각사에서 수계법회를 집전하실 스님을 모시러 가 스님을 친견하면서 보니 일반 스님들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현장스님 표현대로 고행자의 상이 보이는 스님이 이 날은 표정에서 빛이 나는 것 처럼 보였고 거인처럼 느껴졌다. 평소에는 사물을 관조하시면서 말씀이 별로 없으신데 법문을 하실때 들어보니 저 깊은 곳에서 나오는 굵직한 목소리로 사자후를 설하시었다. 원각사 수계법회 때는 약 사백여명 이 참석하였고 일백여명이 보살계를 받았다.
수계법회가 끝나고는 장소를 옮겨 뉴욕시 퀸즈에서 본지 창간 3주년 행사가 약 일백 오십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부 청화스님 법문 2부 박초선씨의 공연으로 진행됐다. 청화스님 법문이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진지한 태도로 경청하는 가운데 약 1시간 가량 진행됐다. 식사가 끝나고도 2부 공연이 끝날때 까지 무려 4시간을 자세 하나 흐트르지 않고 앉아 계신 청화스님 이하 같이 오신 스님들의 뜻은 어렵게 미주에서 불교를 포교하고 활동하는 본지와 본지의 구독자, 후원자들을 격력하고 함께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본지의 창간 기념행사가 끝나고 하루를 뉴욕에서 신도들을 만나 다음에 보스톤의 범어사,문수사 필라델피아 원각사 . 워싱턴 D.C.의 보림사에서 법회를 가졌다. 청화스님의 법문은 불교교리에 기본을 두고 자연과학의 지식과, 세상살이를 깊은 통찰을 통하여 정확하게 파악하여 불교근본사상을 강조하셨다. 여기에 성경구절이든 조사님들의 어록이든 인용하는 구절은 그 출처를 확실하게 말씀 하시면서 인용하였으며 미국에 관한 견해도 조금의 가감도 없이 마치 사회학자 같이 정확했다.
"불교는 아주 논리적이어서 유명한 선지식 치고 논리적이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들은 아주 한치의 틈도 없이 논리적이다."는 어느 불교학자의 말을 필자는 청화스님을 통해 확인했다. 청화스님은 평소에 말씀이 별로 없으시지만 필요한 말씀은 꼭 적당한 때에 하셨다. 고승이라 불리우는 분들에 대해 갖는 재가불자들의 상식으로 이해 못할 특이한 행동도 없었다.
"근래에 들어보지 못한 아주 좋은 법문을 들었다. 왜 많은 스님들이 미국까지 청화스님과 함께 오신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스님이 원각사에 오셔서 설법을 하고 계를 주신다는 것은 원각사에 큰 복이다."라는 원각사 휘광스님의 말과 '새로운 선사의 상을 보았다. 보통 선사라 하면 불교교리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법문도 비논리적인데 청화스님은 다르다. 아주 훌륭한 분이다.'는 나성 관 음사 주지 도안스님의 말씀은 앞서 거명한 권보살,현장스님등과 일맥상통한다.
청화스님은 전남 무안에서 출생하여 젊은 시절 고향에서 학교를 설립 운영하였으며 24세에 입산하여 그 동안 수 십년을 지리산 두륜산 월출산 등지에서 수도했다. 스님은 선승이라하여 교리를 무시하지 않았다. 어느 학승보다도 교리에 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선과 더불어 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선이나 간경이나 주력이나 어느 하나에 쏠리어 그것만을 주장하며 다른 것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것을 경계하셨다.
이 세상에는 불의에 항거하여 떨쳐일어나 정의를 구현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또한 자라나는 세대를 교육시키는 사람도 필요하고 자기 분야에서 정통을 지키고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도. 미래를 준비하는 일도 또한 필요하다.
청화스님은 그동안 쌓아올린 계행과 정진의 힘으로 존경도 받고 권위도 있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겸손하고 대하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여 상대방의 인격을 감화시키는 스님이다. 그러면서도 한국 불교의 방향을 잡고 불교의 장래를 걱정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스님.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필자는 청화스님으로 부터 새로운 스님의 상을 본것이다.
1992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