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里長城(만리장성)
중국 북쪽에 있는 긴 성. 만 리에 다다를 때 까지 긴 성을 쌓으니 진의 시황제가 흉노족과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크게 증축하였음.
中國(중국)을 統一(통일)한 秦始皇(진시황)은 北方(북방) 民族(민족)인 匈奴(흉노)족 등이 자주 秦(진)나라 국경을 침범하여 국경을 어지럽게 하니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컸다.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대장군 蒙恬(몽염)에게 30만의 군사를 주어 요대를 구축하고 성을 쌓아. 10년 만에 任調(임조)에서 遙東(요동)까지 1만 여리의 장성으로,{戰國(전국), 秦漢(진한) 시대의 1 리는 대략 400m임} 4천km에 해당 되는 만 리나 되는 성이다(萬里長城 : 만리장성).
현재 볼 수 있는 장성은 嘉峪關(가욕관)으로부터 山海關(산해관)에 이르기까지 2,400km이다.
시황제는 지금의 撫順(무순) 근처까지 성을 쌓아 만리장성이라 했다.
秦(진)나라가 통일하기 전부터 燕(연), 趙(조), 秦(진)나라가 성벽을 쌓아 서로 연결하기 시작하여 진이 통일한 후 9년에서야 완성했다.
30만의 군사와 잡역부 70만이 동원되어 많은 남자들이 죽으니 백성들의 고통과, 부녀자들이 남편을 여의는 설움과 아픔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만리장성에 동원 된 사람은 10명 중에서 9명은 죽고 1명만 살아왔다.
그래서 九死一生(구사일생)의 이야기도 나왔다.
萬里長城(만리장성), 秦始皇陵(진시황릉), 阿房宮(아방궁), 焚書坑儒(분서갱유)와 趙高(조고) 같은 간신과 환관으로 인하여, 秦(진)나라 백성은 나라를 원망하고, 나라는 피폐해 지고 곳곳에서 도둑떼와 농민 반란이 일어난다.
이때 陳勝(진승)의 농민 봉기가 일어나더니, 楚(초), 漢(한)의 영웅이 한중을 갖고 싸우니 劉邦(유방)이 項羽(항우)를 이기고 漢(한)나라를 세운다.
성완용/ 법고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