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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이화령-조령산-하늘재) 1,323회
(2011년 7월 2~3일, 무박, 일산 하나산악회)
구간 ; 이화령(이우리고개, 3번국도, 548m)-조령산(1,025m)-신선암봉-(깃대봉, 812.5m)-조령 제3관문(조령관, 문경새재.650m)-마패봉(마역봉, 927m)-계명지맥 분기봉-동암문-(부봉, 915m)-평천재-탄항산(월항삼봉, 856,7m)-하늘재(계립령,525m) 19km 11시간.
서울로 가져온다면 몇천만원은 되겠죠?
물 묻은 바위가 미끄러워 보이지만 괜찮았어요.
생명력?
오래 오래 살아야 할텐네,,,,,,,,
가이드님님의 銘名.
바람구멍이랍니다.
대간엔 살짝 벗어나 있죠,
배낭의 물은 꺼 내기가 귀찮아 감로수 한잔 했죠,
저 3관문(조령관)이 우리의 식당이었다는 사실 아무도 모르시죠?
같은산 같은장소지만 높이는 모두 틀리네요.
갈때마다 좋아지는 등산로.
아주 큰 소나무 였는데.....
산들모임산악회에서 세웠더군요.
신기하게 얹혀있는 바위.
대간길의 미니 사막?
하늘재
한강유역 진출을 위해 신라에서 고려때까지 사용한 길로 계립령이라고도 하며 지금은 하늘재로 불리운다.
중등학교 교장으로 지내셨던 71세의 동안인 할아버지가 수시로 운영하는 하늘재 산장.
오미자가 영글고 있는 하늘재.
앞으로 가게될 포암산.
(산행후기)
아주 오랜만에 대간 길에 참여하는 기분이지만 밝고 맑은 기분만은 아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우중충한 날씨가 이화령에 도착하자 갑자기 소나기로 돌변 번개까지 번쩍이며 우리의 입산을 거부하는것 같아 많이도 마음을 차갑게 했지만 2시 20분부터 산행은 시작되었다.
일기예보에도 비는 확실히 온다고 했고 사실 좀 늦게 온다고 했는데 일찌기 이렇게 많이 올줄은 몰랐다.
캄캄한 새벽에 도착한 이화령은 안개 자욱한 침묵속의 암흑천지다.
그렇지만 대간 길을 찾는 대원들의 눈빛은 너무나도 밝고 빛나 랜턴이 없어도 길이 보일것만 같은 기세다.
이화령은 548m로 조령산(1,017m)과 갈미봉(783m)사이에 있으며 조령(642m)이 예로부터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잇는 주요 교통로였으나 고개가 워낙 높고 험하여 1925년 신작로를 만들어 이화령이라 불렀다고 한다.
경상북도 돌비석을 오른쪽에 두고 북으로 방향을 잡아 산 능선을 오르기 시작한다.
누구랄 것도 없이 랜턴불빛을 따라 일렬로 대간 길을 따른다.
이른 새벽이라 시원하고 물맛 좋기로 유명한 조령샘물도 마다하고 잣나무 숲으로 오르는데.등산로는 바로 물길이다
헬기장을 지나 정상에 도착하니 3시 40분이다.
후미가 오질 않아 20여분 기다리는데 추워서 더 오래 기다릴수 없어 천천히 이동하기로 했다.
이화령에서 이곳까지 1시간 20분 걸린 셈이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암릉 길이다.
문경사람들의 수고로 위험지대에는 로프가 적당하게 걸려있어 조심만 한다면 전혀 걱정 않고도 통과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세미클라이밍이 무엇인지 잘은 몰라도 두발 두 손이 모두 필요한곳이 이곳 조령산 암릉 구간인 것이다.
우측 아래로는 태조 왕건을 촬영했던 셋트장이 있어 안개속이지만 불빛이 가물거리기도 한다.
조령관문까지 7km, 약 4시간 걸린다는 이정표가 겁을 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 정도에 두려워하거나 걱정 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미 옷은 젖을대로 다 젖었고 더 이상의 많은 비가 온다해도 하나도 문제될것 없다.
조령관문이다.
조령, 문경새재, 새들이 넘나드는 고개란 뜻인데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던 제1, 제2, 제3관문길이 지정된 것은 조선 태종 때이고 예전엔 이곳에 박달나무가 많아 박달령이란 옛 이름도 있었다고 하는 곳이다.
가뭄이 심하면 이곳 샘도 마르는데 지금은 충분한 샘물에 마음의 여유까지 생겨난다.
백수영천(白壽靈泉)감로수인 조령 약수이다.
한잔의 감로수로 갈증을 달래고 시간이 이미 8시라 이곳 관문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럴 땐 일기예보가 틀려도 괜찮은데...........
그렇지만 백두대간 종주자는 전천후 산꾼 아닌가!
그래서 눈, 비는 물론 산의 높낮이에도 여념하지 않으며 오로지 종주에만 전력을 추구하는 백두대간 종주대원인 것이다.
조령관은 새재 정상의 北敵을 막기 위해 선조 때 쌓고 숙종34년 1708년에 중창을 한 것이다.
★조령 제 1관문 (주흘관)
조령 제 2관문 (조곡관)
조령 제 3관문 (조령관)
물을 보충하고는 사진을 찍으며 성길을 따라 마패봉으로 오른다.
마패봉 북쪽 사문리 쪽 으로는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하고 남쪽 문경 쪽은 문경새재 도립공원이며 충북 쪽은 조령산 자연휴양림으로 나눠지는 제법 의미 있는 봉우리이기도 한 곳이다.
곧 이어 계명지맥이 분기하는 곳을 지나 동암문으로 향한다.
동암문은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라 잠깐 쉬었다가 부봉으로 오르며 주흘산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급하게 내려서면 안부가 바로 평천재이며 곧 월항삼봉이다.
월항삼봉은
산삼이 많아 충북 미륵리 쪽에서는 삼봉으로 불렀는데 경북 문경 평천리 월항마을에서 자기 마을 이름을 넣어 월항삼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급경사를 또 지나면 커다란 선바위도 만나게 된다.
이런 멋진 바위에다 불상이라도 새겼더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곧 이어 사막같이도 생긴 모래언덕도 지나는데 하늘재 길도 보인다.
멀고먼 어려운길을 걸어온 우리에게 오늘의 마지막 지점도 보이지만 다음구간에 지나게 될 포암산을 바라보며 마지막 남은 힘을 아낌없이 가하면서 고르지 못한 일기에도 꾸준하게 종주를 마친 대원들에게 격려와 감사를 전하며 산행후기로 가름한다,
아름다운강산,
다음글은 1차 종주때의 산행기인데 참고삼아 첨부함,
追憶 속에 살아 있는 꿈의 白頭大幹(2009년 5월 10일)
구 간 ; 梨花嶺(이우릿재.548m)-鳥嶺山(1025m)-신선암봉(937m)-깃대봉(치마바위봉,812,5m)-조령(조령관,제3관문.642m)
일산 하나산악회 백두대간 종주대
이화령에 도착한 45명의 대원은 준비운동을 한 후 대간 진입로에서 제지를 당했다,
아직 경방기간이라 어쩔수 없단다(5월 15일까지)
산행대장의 순발력으로 연풍쪽에서 어프로치하여 종주를 무사히 마쳤다.
대간 길목 고개마다 이런 대형 돌비석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이제는 희소가치도 없고 오히려 신성한 백두대간이 흐려지며 혼탁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존엄성이 없어진다.
수십개의 백두대간 비석을 제작 하는데 그 예산 모두 국비 아니겠는가!
내돈만 아끼려 하지말고 우리 예산도 아끼는 그런 공직자가 많았으면 하고 바래본다.
대간 종주자마져 없다면 이 고개는 비어있는 고개일 것이다,
옛날의 영화는 어디로 가고 사람구경하기도 어려울까.
조령샘물
계속되는 가뭄이라 수량은 아주 적으나 그래도 목을 추길 정도의 물은 나오고 있다.
이 우물은 부산의 산꾼 준희(최남준)씨가 손수 만들었으며 관리도 하고 계신다.
남겨둔 백두대간,
백화산(1063,5m)과 갈미봉(770,1m)을 잇는 산줄기가 아름답다.
조령산 정상에서 만난 몇몇 대원들,
196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2004년 9월 14일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하산 카라반길에서 운명을 달리한 여성산악인,
보기도 아름답고 웅장한 백두대간의 능선들,
연록의 산들이 건강해 보이며 힘이 있어 보이지만
봄 가뭄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 걱정이다,
대간 마루금에서 내려다 본 바위 절벽,
새로 세워진 신선암봉
아래 계곡 새재길과 왕건 촬영장, 멀리 문경 시가지도 보인다.
바위 벼랑에 서있는 분재같은 소나무,
이러한 곳을 수없이 오르 내렸다,
대간에는 살짝 벗어나 있지만 깃대봉을 다녀왔다.
깃대봉에서 바라본 조령산의 아름다운 모습,
성의 흔적이 아주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3관문 내려가는 경사길에도 목재 테크를 설치하여
등산객의 편의를 많이 봐주고 있다.
조령 제 3관문
문경새재 과거길.
조령산 휴양림 표지석
여러 가지 사정상 구간을 조정 편성했다.
경방 기간도 있고 해서 속리산 구간을 남겨두고 몇 구간을 건너 띄어 이화령에서 조령구간을 종주하게 되었다.
원래 이 구간은 하늘재까지 해야만 한 구간이 되는데 당일 산행으로는 약간 무리도 되고 특히 위험한 암릉 구간이 많아 임원진에서 사정을 감안 구간을 줄인 모양이다.
그러나 이화령에 도착한 우리는 당황했다. 15일 해제되는 통제기간 때문에 산행대장(보리숭어님)의 순발력으로 편법 산행을 시작했다.
이화령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계에 있는 고개로서 조령산과 葛味峰(783m)이 맞닿은 안부에 위치하고 이화령의 남동부에는 조령천의 지류가 흐르며 북서부에는 쌍천의 지류가 흐르는 산자분수령의 대간 안부이다.
過去에는 이화령의 북쪽에 있는 조령이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이용 되었으나 이화령보다 산세가 험준하기 때문에 이화령을 따라 국도가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조령은 괴산군 연풍면의 고사리마을과 문경시 문경읍의 상초리를 연결하는 통로로 이용될 뿐 차량은 물론 인적도 매우 드문 곳이나 요즈음엔 옛길 찾는 사람이나 관광객이 상당히 來往 하는 목이 좋은 곳이 된 반면 이화령은 아래에 1600m터널이 개통함에 따라 완전 옛길로 탈바꿈 되어 버렸다.
조령 제1관문(주흘관)에서 제2관문(조국관), 제3관문(조령관)으로 이어지는 새재길이 지정된 것은 조선 태종때(1400-1418년)의 일이고 이곳에는 박달나무가 많아 박달령이라고 불리었다고도 한다.
이곳의 박달나무로 만든 다듬이방망이나 홍두깨가 전국으로 팔려 나가기도 해서 새재 박달나무는 복도 많아 큰 애기(처녀)손길에서 놀아난다는 민요가 나올 정도 였다,
*문경새재 민요*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홍두깨 방망이는 팔자 좋아 큰 애기 손길에 놀아난다.
문경새재 넘어 갈재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조령산은
기암 괴봉으로 변화무쌍한 산세를 지닌 주흘산(1106m)과 나란히 자랑이라도 하듯 양립해 있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흐뭇한 장관의 일면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장송이 곳곳에 진을 치듯 바위봉에 수를 놓은듯 한 것은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느낌이지만 어찌 좁은 소견의 머리로 그 아름다움을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산이 험한 만큼 매력 있는 산이라 등산애호가 들로부터 사랑과 애무를 독차지 하고 있는 명산중의 명산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十里不同音이면 百里不同俗이라고 십리 간에 말이 다르고 백리 간에는 풍속도 다르다했다. 고개 하나로 경상도와 충청도를 가르니 말 그대로 말씨와 모든 풍습도 많이 틀린다.
조령산은 대부분 암벽지대이지만 산림이 울창하고 능선 남쪽 백화산(1063,5m)과의 경계에는 이화령이 있고 능선북쪽 마역봉(마폐봉,927m)과의 경계에는 조령 3관문이 있으며 관문 서편엔 조령산 자연휴양림이 조성 되어있다. 그래서 이곳을 예로부터 문경새재라 하였으며 이로 인해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이 연결되어 교통의 요지였을 뿐 아니라 험난한 지세를 이용할 수 있어 군사상의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근래엔 영화 촬영장까지 생겨 좋은 산과 유적지 를 겸한 복합적인 관광지로 발돋움 하고 있다.
주 능선상의 북쪽엔 신선봉과 치마바위봉을 비롯하여 大小암봉과 암벽지대가 많고 능선의 서편으로는 수옥폭포와 용수골, 절골, 심기골등 아름다운 계곡이 발달되어 있고 멀지 않은 곳 에 유명한 금란서원이 명당자리에 터를 잡고 있다. 문교부 장관과 이화여대 총장을 역임한 김옥길여사가 지은 집으로 요즘에는 이대 교직원 휴양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동쪽으로 흐르는 조령천 옆으로 만들어진 길은 조선조 제3대 태종이 국도로 지정한 간선 도로였으며 윈터, 교구정터등의 사적지가 있으며 완만하게 흐르는 계곡에는 와폭과 潭이 산재하며 이 일대를 문경새재 도립공원으로 지정 하였으며 수안보 온천과 월악산 국립공원과도 가까운 거리이다.
정상에 오르는 시간과 그 고생에 비하면 정상에서 머무는 시간은 언제나 인색하다.
버릇처럼 한번 둘러보고 필요한 사진 몇 장 찍으면 더 있을 필요가 없다.
험하고 머나먼 길이 나에겐 언제나 도사리고 있기에 항상 쫒기는 심정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때로는 동료의 원망도 받는다. 쉬어 가지 않는다고 말이다.
허지만 인생의 마지막 보루(堡壘)는 결국 나 자신 뿐이다.
누가 대신 걸어 주는 것도 아니고 또한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 이 대간종주는 언제나 열심히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 백두대간 종주인 것이다.
기우는 해는 우리보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빨리 이동해 늦기 전에 하산하여 뒷사람을 기다려야지 나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나친 여유와 자만심은 때로는 화를 불러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는 친하다고 생각하는 산신령과 하느님 부처님 모두 찾아봐야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오로지 자신이 알아서 결정하고 해결해야 하기에 산에서는 항상 여유만으로 해결 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입산을 일찍 하게 되면 자연 하산길이 여유롭게 되는 것이다.
산에서는 시간을 맞추려 하지 말고 시간을 아껴 비축하는 습관을 하게 되면 절반의 사고는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등산이나 사회생활 모두에 제일 중요한 것은 基本이다, 그 기본은 지나쳐도 안 되지만 모자라도 안 되는 것이다. 기본이란 보통이고 구분을 지운다면 중간쯤이다.
그러니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꼭 알맞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본을 중요시 하여 지키는데 신의를 걸어야 할 것이다.
바위벼랑에 외롭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보면 그 끈질긴 생명감에 감탄할 것이다.
우리 인간사회에서도 서로서로 주고받는 대화에 미소가 흐른다면 고목나무에 꽃 피는 것과 같다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메마른 세상이라고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좋은 사람이 더 많은 살만 한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간종주는 본인의 노력과 뚜렷한 사고방식에서 결정 되어 지겠지만 무엇보다도 주변의 진심어린 관심과 격려가 큰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니 만큼 같이하지 않는 회원이라 할지라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고 陰陽으로 많은 응원 부탁드리고 싶다.
백두대간이란 하루 이틀에 종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심심풀이로 장난삼아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장장 4-50일 걸려야 하고 경비도 보통으로 드는 거 아니다;
그런 장기계획을 세워 우리 큰 산줄기를 답사해 보려면 장애물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형적인 장애물은 슬기롭게 대처 하고 다른 준비적인 장애는 환경에 맞추어 적응하면 쉽게 해결 되지만 험한 산길도 아니고 경제적인 문제도 아닌 국립공원지역이 제일 큰 장애이다.
북한산과 지리산에 케이블카(산악열차)설치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볼 때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구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안 그래도 휴일이면 발 디딜틈이 없을 정도의 이용객수에 과부하가 걸려있는 판에 산악열차 마저 설치한다면 지리산이나 북한산은 국립공원을 떠나서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파괴될 것이며 산을 단순한 관광자원으로 생각하는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을 하루빨리 고쳐야할 것이라 보아진다.
공단에서는 휴식년제니 하면서 길 막으며 돈 물리는데 이력이 나 있고 이제는 그들이 앞장서서 자연을 파괴하려하니 이런 문제는 누가 단속을 해야 하나?
대형 훼손은 국영업체에서 다 하고 1m폭도 안 되는 대간 길 막아가며 돈 물리는 행정 앞뒤 안 맞는 語不成說 이 아니고 무엇인가!
작은 것은 기를 쓰며 지키고 큰 것은 방치하니 오히려 경제적 타산이 맞지 않는 행정 하루빨리 결단 시정해야할 일이라고 보아진다. 설악산 황철봉 구간과 속리산 문장대구간 그 암벽길이 어떻게 종주꾼 지난다고 훼손 된단 말인가. 아무리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산을 찾는 다는 것은 영혼을 쥐어짜는 극치의 예술구도가 아닌 순수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운동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또 어찌 보면 아직도 꿈을 키우며 고목에 꽃을 피워 보겠다는 不斷의 노력하는 모습은 젊은 사람에게도 귀감이 되어 지리라 보아진다.
허지만 그저 소박한 道樂에 지나지 않는다.
혼자라도 즐길 줄 알고 자연과 함께하는 방법도 연구하며 실행하는 것에 그 뜻을 둔 삶이라 할 것이다. 다시 말 하자면 자연과 미리부터 얼굴 익혀놓고 훗날 만날 때 쉽게 정 붙이려고 준비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것은 시장 논리를 떠난 생활을 꿈꾸어 보지만 지금 세상은 어떻게 살아도 경제적 동물의 틀을 벗어날 수 없는 생활환경이기에 가급적 가능한 그 시장논리에 구속 받지 않으려고 노력 하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 백두대간에서 하루를 보낸 우리 대원들과 무사산행을 자축하며 다음 구간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오늘의 산행 얘기를 접는다.
아름다운강산,
追憶 속에 다시 찾은 꿈의 白頭大幹(2009년 5월 24일)
구 간 ; 제 3관문(642m)-마폐봉(마역봉,마패봉,마구산.927m)-釜峯(916m)-탄항산(월항삼봉.856,7m)-하늘재(525m)
일산 하나산악회 백두대간 종주대
차에서 내리자 말자 신발끈 조이고 안내도 사진도 찍으며 바쁘게 준비중입니다.
가득찬 좌석 기분 좋구요 백두대간 활성화 되어 절로 힘이 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10시 출발 ,
조령산 자연 휴양림,
온천관광지 수안보에서 6km지점에 위치하여 숲과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루며
마폐봉으로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등산로와 사계절 썰매장은 이용자의 각광을 받고 있다.(T,043-833-7994)
조령 3관문에서 바윗길을 약 40분 오르면 정상에 도착한다.
인간의 한없는 욕심에 상처입은 소나무,
이젠 많은 소나무가 치료되어 가고 있었다.
아직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성
동암문이다,
부봉에서 바라본 포암산(961.7m)과 만수산(983,2m)
암릉미를 자랑하는 釜峰
백두대간 줄기인 조령산(1.026m)과 주흘산(1.106m)사이에서
갈래친 부봉은 암릉미와 균형미가 극치를 이룬 대 자연의 걸작품이다.
저마다 독특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여섯봉우리가 어우러진 풍광 속에는 수려한 선경이 알알이 박혀있다.
즐거운 점심식사 시간.
백두대간에서는 약간 벗어난 부봉 정상에서 ,
마폐봉에서 부봉까지는 길이 좋았으나 부봉에서 부터는 암릉길이다,
바위에 뿌리 넣어 살고 있는 소나무가 클수록 몸이 약해지는 모습이다,
그 전에는 정말 토실토실 했는데.......
주흘산쪽으로 가다 뒤돌아본 부봉,
오늘은 이곳 대간종주산악회가 많았다.
탄항산, 이름을 보면 석탄과 관련이 있는것도 같고,,,,,,,
전면이 반반한 큰 바위, 불상이라도 새겼으면 ,,,,,,,
유일하게 백두대간에서만 볼수 있는 사막,
산림청 예산 정말 많은가 본다,
고개마다 이런 대혐 비가 있는걸 보면 .........
앞으로 가야할 포암산,
2017년까지 통제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니
산양과 구렁이를 방사했기에 보호차원이란다.
하늘재 옛길.
깨끗하고 맑은물과 새 소리가 청각은 물론 시각 후각까지 즐겁게 해 준다,
대형 주차장까지의 4km가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넘어보랴!.
미륵리 佛頭
높이 1.38m 넓이 1.18m의 대형 화강암 불두로 이목구비가 뚜렸하다,
미완성 석불로 추정되며 고려시대 불상 양식을 살필수 있는 문화재이다.
彌勒里 石佛立像(보물 제96호)
높이 10.6m로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거불의 하나로 화강암 5개를 연결하여
거대한 불상을 조성하고 머리에 팔각형의 판석 을 올려 놓아 갓으로 삼고 있다.
석굴은 거대한 돌을 이용 쌓아 올린뒤 목조건물을 세웠던 곳으로 추정
이곳의 지명이 미륵리로 되어있는 점으로 보아 이곳을 彌勒大院으로 추정하고 잇다.
공기돌 바위
자연석 바위에 약간의 人工이 가미된 작품이다
바위의 생긴 모양이 거북이와 비슷하여 거북바위로 불려지며
정상부분에 좁은 폭으로 홈을 파 물이 고이지 않게 하였다.
직경 1m의 둥근돌은 고구려 평원왕때 온달장군이 신라군과 싸우기 위해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을때 이돌로 힘자랑을 하였다는 전설이다.
5월의 숲은 놀라운 심리 치료사라 했다.
엊그제 피어난 연초록 이파리가 제법 성년이 됨 짓한 짙은 녹색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이때 세파에 시달린 답답한 몸과 마음을 이런 숲에서 머물고 싶어 하는 기본적인 마음이 우리를 더욱 가슴 조아리게 한다.
登山은 사계절 全天候 형이라야 한다.
날씨에 연연하지 않고 계획대로 운행해야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조금 더워도, 추워도 망설이며 만약 눈이나 비가 온다면 아예 꼼짝도 하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데 진정한 등산의 妙味는 고통 끝에 느끼는 희열 바로 그것이 등산의 참맛인 것이다,
힘든 산행 중 한 모금 마시는 샘물이나 하산 후 갈증 날 때 마셔보는 시원한 맥주 한잔은 이 세상 그 어떤 술보다도 맛있고 바꿀 수없는 참맛이라 할 것이다.
등산도 하면 할수록 그 진미를 느끼듯 백두대간도 하면 할수록 숨은 베일이 벗겨지며 그 매력에 매료되어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또 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일반산이나 명산도 찾아보지만 백두대간만큼 진한 매력을 느끼는 산은 없을 것이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한계에 도전하는 벤츠 정신이야말로 나이 들어가는 사람일수록 권 하고 싶어지는 것 중의 하나가 백두대간종주라고 말하고 싶다.
대간 종주라는 것은 하루 산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으로 연속되는 계획과 설계가 필요하고 꿈을 실현하는 생활의 지침서이기 때문에 당일 산행으로 끝나는 일반 산행과는 그래서 다르다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 백두대간종주대원은 많이도 참여했다,
지난 조령산 구간에 이어 이번 구간에도 많은 관심 가져준 대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성황 이뤄주시길 부탁드리고 위험구간임에도 사고 없이 100% 완주해 그 기쁨을 배로 느낀 종주산행이었다.
오늘역시 대원 여러분의 적극적이고 결집된 마음으로 즐겁게 산행을 마침에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조그마한 바위에 있는 마페봉 정상석에서 사진 한 장씩 찍고는 모두들 바쁘게 내려들 간다.
대간 길은 오른쪽으로 나있고 왼쪽으로는 신선봉(967m)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북암문을 지나 725m봉에서는 왼쪽으로 지맥하나가 분기한다.
계명지맥인데
백두대간(725봉)-지릅재-망대봉(731,8m)-대미산(681m)-남산(636m)-계명산(775m)-대문산(110m)-달천(左)까지의 37km 이지만 실지거리는 40km가 훨씬 넘는 거리로 상당히 힘이 드는 구간이었다.
이곳의 오래된 소나무 밑둥치를 보면 이상한 상처자국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 송진을 채취 하기위해 입혔던 상처인데 지금은 자라면서 많이 치유가 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그때의 상처를 지금도 안고 있는걸 보면 좀 안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암문에서는 부봉쪽으로 오르지 않고 사면길로 질러가는 길도 있다.
그러나 대간 종주자는 부봉을 둘러보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돌아가게 된다.
주흘산(1075m)갈림길(959m)에서는 왼쪽으로 급하게 내려간다.
안부로 내려가게 되면 동암문에서 오는 길과 만나게 되며 이곳에서 탄항산을 지나게 되면 사막 같은 모래등도 만나게 되며 모두들 신기 해 한다.
하늘재 내려가는 길은 마사길 이라 조심해서 이동해야한다,
하늘재다.
오늘구간의 종점이다,
문경 동노를 거쳐 이 고개 까지만 포장이 되어 있고 넘어 미륵리 쪽은 비포장이며 옛길로 보존중이고 산경표에는 鷄立嶺으로 되어 있으며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지대로 문경시 관음리에서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관음세계에서 미륵세계로 또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 南에서 北으로 , 現世에서 未來로 가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는 고개이기도 하다.
또한 하늘재는 역사가 기록하는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계립령이란 말이 나오고 신라본기에는 아달라왕 3년(156년)여름에 길을 열었다는 기록도 있으며 영주와 죽령옛길은 아달라왕 5년에 개척되었으니 그보다 2년 앞서 생긴 셈이다.
고려 시대에는 이 길을 대원령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미륵대원에서 따온 이름이며 아래 미륵사가 있었기에 자연스레 붙여진 이름이라 추축된다.그러나
군사적으로나 사람의 來往길로나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하늘재도 문경새재가(조선 태종 14년(1414년))생기면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 역사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2008년)국가지정 명승지에 이름을 올리면서 다시금 주목 받게 되었으며 그 명성도 조끔 찾은 셈이 된다.
하늘재는 하늘에 맞닿아 있다고 해서 조선시대부터 불리어 온 이름이다,
오늘 이렇게 역사의 현실을 짚어보는 대간종주 아주 뜻있게 생각하며 우리 종주대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과 행운이 함께해 줄 것을 기원하며 잠깐이나마 역사와 같이 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