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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1부 29
마슬로바는 저녁 6시에야 겨우 자기 감방으로 돌아왔다. 걸어보지 않던 다리로 거의 16킬로미터나 되는 돌길을 걸어서 지치고 발이 아플 뿐만 아니라 뜻밖에 중형을 선고받아 맥이 풀렸고, 더욱이 쪼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배가 고팠다.
휴식 시간에 경비병들이 그녀 옆에서 빵과 삶은 달걀을 먹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입안에 군침이 가득 고여서 시장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그들에게 구걸하는 것은 치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세 시간이 지났을 때 그녀는 먹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지고 다만 피곤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녀는 그 뜻하지 않던 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처음 순간에는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자기 귀로 들은 것을 곧 믿지 못해 징역수라는 관념을 자기와 결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선고를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인 배심원들과 침착하고 사무적인 재판관들의 표정을 보자, 그녀는 그만 분통이 터져서 법정 안이 떠나갈 듯이 자기는 무죄라고 고함을 쳤다. 그러나 이 고함 소리마저 당연히 그럴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반응으로 받아들여지고 사태를 바꿀 만한 아무 힘도 없다는 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내려진 이 잔인하고도 놀라운 부정에 굴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특히 그녀를 놀라게 한 점은 자신에게 이처럼 잔인한 판결을 내린 것이 남성, 그것도 늙은이가 아니고 젊은 사나이, 언제나 자기를 상냥하게 바라보던 남성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단 한 사람, 검사보만은 그녀도 달리 보고 있었다. 그녀가 개정을 기다리면서 죄수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도, 그 후의 휴식시간에도 이들 남성은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듯 문앞을 지나가기도 하고 방 안에 들어오기도 했으나, 사실은 그저 그녀를 보기 위해 그랬다. 이런 남성들이 무엇 때문인지 갑자기 그녀에게 징역을 선고한 것이다. 더욱이 그녀는 그 범행에 대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데 말이다. 그녀는 울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눈물을 거두고, 아주 넋을 잃은 사람처럼 죄수실에서 호송을 기다리면서 앉아 있었다. 그녀가 지금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담배를 피우는 일뿐이었다. 그녀가 그런 상태일 때 보치코바와 카르틴킨이 들어왔다. 그들도 선고를 받은 다음 같은 방으로 끌려왔던 것이다. 보치코바는 느닷없이 마슬로바에게 욕을 퍼부으면서 징역수라고 불러댔다.
"그래, 어때? 정신이 들었느냐? 어차피 빠져나갈 수는 없단 말이다. 이 더러운 갈보 년아! 제 잘못으로 그렇게 되었으니 할 수 없는 노릇이지. 징역을 가게 되면 몸치장도 다했군."
마슬로바는 두 손을 죄수복 소매에 쑤셔 넣고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두어 발짝의 더러운 마룻바닥을 지켜보면서 다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일에 참견하지 않을 테니 당신들도 내 일에는 참견하지 말아줘요. 나는 아무런 참견도 안 하고 있잖아요." 그녀는 두세 번 이렇게 되풀이하고는 입을 꼭 다물어버렸다. 보치코바와 카르틴킨이 끌려 나간 뒤에 간수가 들어와서 3루블을 그녀에게 주었을 때, 카튜샤는 비로소 약간 기운을 차렸다.
"네가 마슬로바냐?"하고 간수가 물었다.
"자, 이걸 받아. 어떤 부인이 준 거야"하고 그는 돈을 주면서 말했다.
"어떤 부인인데요?"
"잔말 말고 받기나 해. 너희들하고 얘기할 순 없으니."
이 돈은 유곽 주인인 키타예바가 보내준 것이었다. 재판소에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정리를 붙잡고 마슬로바에게 돈을 좀 전해줄 수 없느냐고 물어보았고, 정리는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허락을 얻은 여주인은 통통한 흰 손에서 단추가 세 개 달린 양가죽 장갑을 벗고 비단 스커트의 뒷주머니에서 유행하는 지갑을 꺼내, 집의 수표철에서 갓 끊어 온 듯한 꽤 많은 채권 중에서 2루블 50코페이카짜리 한 장을 고른 뒤에 거기에다 20코페이카짜리 은화 두 닢과 다시 10코페이카짜리 은화 한 닢을 보태어 정리에게 주었다. 정리는 간수를 불러서 당사자가 보는 앞에서 그 돈을 전달했다.
"꼭 좀 전해주세요"하고 카롤리나 알리베르토브나(키타예바)는 간수에게 말했다.
간수는 자기에 대한 불신에 모욕을 느끼고 그 분풀이로 마슬로바에게 퉁명스럽게 대했던 것이다. 마슬로바는 돈을 보자 매우 기뻐했다. 이 돈은 지금 그녀가 바라고 있는 단 한 가지의 소원을 풀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담배를 한 대 구해서 피웠으면'하고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모든 생각은 그저 한 대 피우겠다는 이 일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담배가 그리운 나머지 다른 방에서 복도로 흘러나오는 담배 냄새를 맡자 게걸스럽게 그 공기를 들이마실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오랫동안 더 기다려야 했다. 왜냐하면 그녀를 돌려보내야 할 서기가 피고는 잊어버리고 변호사 한 사람과 금지된 논문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마침내 논쟁까지 벌였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과 늙은이 몇 명이 재판이 끝난 뒤에 그녀를 보러 와서는 뭐라고 서로 수군댔으나, 그녀는 그런 무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4시가 넘어서야 거기서 풀려 나왔다. 니즈니노브고로드 사람과 추바시 사람인 두 호위병이 재판소 뒷문으로 그녀를 끌고 나왔다. 재판소 현관에서 나오기 전에 그녀는 그들에게 20코페이카를 주면서 빵 두 개와 담배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추바시 사람은 웃으면서 돈을 받고, "그래, 사다 주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실지로 정직하게 담배와 빵을 사 오고 거스름돈까지 주었다. 도중에 담배를 피울 수 없었으므로 마슬로바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불만을 품은 채 감옥으로 왔다. 그녀가 문 앞까지 왔을 때 기차로 실려 온 백 명쯤 되는 죄수가 도착했다. 그녀는 감옥 입구에서 그들과 마주쳤다.
턱수염을 기른 죄수, 수염을 깎은 죄수, 늙은 죄수, 젊은 죄수, 러시아인 죄수와 외국인 죄수(그중에는 머리를 반만 깍은 자도 있었다)들은 족쇄를 철커덕거리면서 먼지며, 시끄러운 발소리며, 말소리며, 코를 찌르는 땀 냄새 등으로 통로를 가득 채웠다. 마슬로바 옆을 지날 때 죄수들은 모두 힐끔힐끔 돌아다보았고, 개중에는 옆으로 다가와서 만져보는 자도 있었다.
"야, 꽤 미인인데"하고 한 사람이 말했다.
"아가씨, 안녕하시오"하고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또 한 사람이 말했다.
뒷머리를 빡빡 깎아버리고 면도질한 얼굴에 콧수염만 남겨둔 검은 얼굴의 죄수 하나가 족쇄를 철커덕거리면서 달려들어 그녀의 몸을 껴안았다.
"아니, 옛 애인도 몰라보기냐? 시치미 떼지마!" 마슬로바가 떠다밀자 그는 이를 드러내고 눈을 번들거리면서 고함을 쳤다.
"아니, 이 자식, 뭐 하는 거야?"하고 뒤에서 다가온 부소장이 소리치자, 죄수는 몸을 움츠리고 급히 물러섰다. 부소장은 마슬로바에게도 꾸중을 했다.
"넌 왜 여기 서 있는 거야?"
마슬로바는 재판소에서 이제 막 끌려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너무 지쳐 있어서 대꾸하기도 싫었다.
"법정에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고참 호위병이 지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나와 거수경례를 붙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빨리 간수장에게 넘겨줘. 이게 무슨 추태냐 말이야!"
"네, 알았습니다!"
"소콜로프! 데려가"하고 부소장은 소리쳤다.
간수장은 곁으로 와서 화가 난 듯이 마슬로바의 어깨를 툭 치고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여자 감방 복도로 끌고 갔다. 복도에서는 그녀의 온몸을 더듬으며 구석구석까지 검사를 했으나,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으므로(담뱃갑은 빵 속에 쑤셔 넣었다) 오늘 아침에 나온 그 감방으로 밀어 넣었다.
부활 1부 30
마슬로바가 수감되어 있는 감방은 길이 6.4미터에 넓이가 4.8미터나 되는 긴 방으로, 창문 두 개와 벽에서 튀어나온 칠 벗겨진 페치카, 그리고 방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판자 침상이 있었다. 문 건너편 한가운데 꺼멓게 그은 성상이 걸리고 촛불이 켜져 있었으며, 그 밑에는 먼지가 앉은 국화 다발이 드리워져 있었다. 문 왼쪽에는 마룻바닥이 꺼멓게 된 곳이 한 군데 있고, 그곳에 냄새 나는 오물통이 놓여 있었다. 방금 점호가 끝나고, 여죄수들은 벌써 밤을 맞으려고 수감되어 있었다.
이 감방에 있는 사람은 모두 열다섯 명으로, 여자 열두 명에 아이가 셋이었다.
아직 밝았으므로 두 여자만이 침상에 누워 있었다. 한 여자는 죄수복을 머리에 쓰고 있었는데, 여권이 없어서 구류된 백치로 줄곧 자기만 했다. 또 한 여자는 절도범으로 형을 받고 있는 폐병 환자였는데,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죄수복을 베개 삼고 눈을 크게 뜬 채 누워 있었다. 그녀는 목구멍이 간지럽게 끓어 오르는 가래를 참으면서 기침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다른 여자들은 맨머리에 거친 무명 셔츠를 입고 침상 위에 앉아 바느질을 하거나 창가에 서서 마당을 지나가는 남자 죄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느질을 하고 있던 세 여죄수 가운데 한 사람은 오늘 아침 마슬로바를 전송해준 바로 그 코라블료바라는 노파였다. 키 크고 건장한 그녀는 주름투성이의 찌푸린 얼굴에 턱 밑으로 살가죽이 축 늘어지고 음울한 표정을 한 노파로서, 관자놀이 부근이 희끗희끗해진 아마 빛 머리칼을 조그맣게 틀었고, 한쪽 볼에는 털이 난 사마귀가 붙어 있었다. 이 노파는 도끼로 남편을 죽인 죄로 징역을 선고받고 있었다. 남편이 자기가 데리고 온 딸에게 집적거렸다고 해서 살인을 저질렀던 것이다. 노파는 감방장이었고, 몰래 술도 팔고 있었다. 안경을 쓰고 바느질을 하는 그녀는 노동자의 손처럼 큼직한 손에 세 손가락으로 바늘을 쥐고는 바늘 끝을 자기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노파와 나란히 앉아서 굵은 삼베 자루를 꿰매고 있는 여자는 키가 작고 납작코에 거무튀튀하고 눈은 조그맣고 까만, 사람이 좋은 수다스러운 여자였다. 이 여자는 철도 건널목지기였으나, 기차가 들어올 때 신호를 하지 않아 사고를 냈기 때문에 3개월 금고형을 받고 있었다. 세 번째로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여자는 페도시야라고 하는, 동료끼리는 페니치카라고 불리는 흰 얼굴에 발그레 화색을 띤 여자였다. 그녀는 아이들처럼 밝고 파란 눈을 하고 있었고,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서 조그만 머리에 칭칭 동여 감은, 무척 젊고 상냥한 여자였다. 그녀는 남편 독살 미수범으로 수감되어 있었다. 열여섯 살 때 시집가서 곧 남편을 독살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8개월 동안 보석되어 재판을 기다렸는데, 그동안 남편과 화해했을 뿐만 아니라 남편을 사랑하게 된 나머지 공판이 시작되었을 때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재판소에서는 남편과 시아버지, 특히 그녀를 사랑하는 시어머니가 있는 힘을 다해 그녀를 변호했는데도 시베리아 징역형을 선고받고 말았다. 마음이 착하고 쾌활하며 언제나 웃고 있는 페도시야는 판자 침상에서 마슬로바와 이웃 친구였으며, 마슬로바를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걱정하고 시중드는 것을 자기의 의무처럼 생각했다. 그밖에도 마흔쯤 돼 보이는 두 여자가 아무 하는 일 없이 앉아 있었는데, 한 사람은 창백하고 파리한 여자로 한때는 상당한 미인이었겠으나 지금은 야위고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한 손에 어린애를 안은 채 희고 길게 늙어진 젖을 먹이고 있었다. 그녀의 죄는 그녀의 마을에서 신병이 징집되었을 때 농민들이 그것을 부당하다고 여긴 나머지 경찰관을 방해하여 신병을 탈취했다는 사건에 관련되어 있었다. 이 여자는 불법으로 소집된 청년의 숙모였으므로 맨 앞에서 신병을 태운 말의 고삐를 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하는 일 없이 침상에 앉아 있는 또 한 여자는 키가 작고 주름투성이인, 머리가 하얗고 등이 구부러진 마음씨 착한 노파였다. 이 노파는 페치카 옆 침상에서 배가 불쑥 나온 사내아이가 깔깔 거리면서 옆으로 달리는 것을 붙잡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는 셔츠 바람으로 그녀의 옆을 달리면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거봐, 못 잡았지!" 방화죄로 아들과 같이 복역하고 있는 이 노파는 동시에 수감된 아들만을 걱정했으나, 그보다도 늙은 남편 일을 더 걱정하면서 세상에서 드물게 보이는 착한 태도로 금고형을 견디고 있었다. 며느리가 도망가버려 빨래를 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영감은 이투성이가 되지나 않았을까 하고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이 일곱 여자들 말고도 네 여자가 열린 창에 서서 쇠창살을 붙잡고 막 입구이ㅔ서 마슬로바와 마주친 죄수들이 뜰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손짓하고 소리를 지르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 중에서 절도범으로 복역 중인 한 여자는 뚱뚱하고 큰 육중한 몸으로 머리칼이 빨간 데다가 누르께한 얼굴에 손은 주근깨투성이었으며, 그 살찐 굵은 목은 다 떨어진 옷깃 사이로 몰골사납게 비어져 나와 있었다. 그녀는 창밖을 향해 쉰 목소리로 상스러운 말을 크게 뇌까리고 있었다. 그녀와 나란히 서 있는 것은 키가 열 살짜리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허리가 길고 다리가 짧은 여자였으며, 전체적으로 균형히 잡히지 않은 거무죽죽한 여죄수였다. 그녀의 붉은 얼굴은 기미투성이였고 까만 두 눈 사이는 넓었으며, 두껍고 짧은 입술은 앞으로 비어져 나온 흰 이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당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가끔 째지는 듯한 소리로 키득거리고 있었다. 멋을 부린다고 해서 '멋쟁이'라고 불리는 이 여죄수는 절도와 방화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이었다. 그들 뒤에는 몹시 더러운 셔츠를 입고 바싹 마르고 초라해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아이를 배서 배까지 부른 이 여자는 장물 은닉죄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마당에서 일어난 일에 재미있다는 듯이 시종 감탄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창가에 서 있는 네 번째 여자는 술 밀매죄로 복역 중인, 키가 작은 딱 바라진 시골 여자였으며, 노파와 같이 놀고 있는 사내아이와 또 감옥 생활을 함께하고 있는 일곱 살 난 계집아이의 어머니였다. 아이들은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어머니를 따라온 것이었다. 그녀도 다른 여자들처럼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으나, 양말뜨는 손은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죄수들이 뇌까리는 말에는 외면하면서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의 딸, 희끄무레한 머리를 흐트러드린 일곱 살 난 계집아이는 셔츠 바람으로 붉은 머리 여자와 나란히 서서, 마르고 조그마한 손으로 그녀의 치마를 잡아 쥔 채 한 곳에 눈을 박고 여죄수들과 남죄수들이 주고받는 상스러운 욕설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외기나 하듯이 나직한 소리로 되뇌곤 했다. 자기가 낳은 어린애를 우물에 집어넣었다는 열두 번째 여자는 성당 수사의 딸이었다. 그녀는 키가 크고 몸매가 아름다운 여자였다. 툭 불거져 나온 두 눈은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고, 짧고 도톰한 아마 빛 머리채에서는 헝크러진 머리칼이 더부룩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그녀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러운 회색 셔츠 바람에 맨발로 벽까지 걸어가서는 재빨리 휙 몸을 돌리면서, 감방의 빈 곳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