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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慶尙道)라는 지명은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의 첫자에서 따왔다.
경상도의 대표적 고을인 상주는 한반도의 젖줄 낙동강이 감싸 안고 있으며, 언제나 역사의 중심에 자리해 왔다.
또한 누란의 위급한 국난을 극복할 때에도 충과 효의 선비정신을 앞세운 수많은 충신과 지사가 있어 자랑스러운 역사의 맥을 이어왔다.
상주는 곶감과 누에고치, 쌀이 유명하여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부르며, 특히 곶감은 60%가 바로 상주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제는 '자전거의 수도' 또는 ‘MRF길’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MRF길’이란 산길(Mount Road), 강길(River Road), 들길(Field Road)을 말한다.
태백산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 1,300여리 물길중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고 “낙동강 제1경”으로 불리우는 경천대(擎天臺)는 자천대(自天臺)라고도 불린다.
경천대의 ‘경(擎)’자는 '들 경(擎)'자로 공경할 ‘경(敬)’자에 ‘손 수(手)’자로 떠받들고 있으니 뜻 그대로 풀면 '하늘(天)을 공경한다'는 뜻일 게다.
또 자천대(自天臺)는 하늘이 스스로 만들었다는 뜻.
경천대 바위틈에는 ‘경천대비(擎天臺碑)‘가 세워져 있다.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이라 새긴 비를 세우면서 경천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이름은 조선의 하늘과 땅은 명나라 것이고 해(日)와 달(月)까지도 명(明)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崇禎)의 것이라는 뜻이다.
경천대는 수려한 경관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의 명장 정기룡 장군이 젊었을 때 이곳에서 용마(龍馬)를 타고 수련을 하였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정기룡 장군은 경천대 아래 모래사장 건너편 물이 휘돌아 돌아가는 '용소(龍沼)'에서 뛰어노는 용마를 잡았다고 한다.
이 용마를 타고 임진왜란 중 금산 싸움에서 단기필마(單騎匹馬)로 적을 무찔렀다고 한다.
또 경천대 아래에는 병자호란(인조)으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갈 때 수행했던 우담(雩潭) 채득기(蔡得沂 1604~1647) 선생이 후일
모든 관직을 마다하고 은거했다는 무우정(舞雩亭)이 있다.
채득기가 지은 봉산곡(鳳山曲)은 가사(歌辭)로서 천대별곡(天臺別曲)이라고도 한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갈 때 인조로부터 호가(扈駕)를 명령받았으나 칭병(稱病)하고 거절하자 3년간 보은에 유배되었다가
후일 임금(인조)이 다시 부르자 감격하여 이 가사를 지었다고 한다.
"가노라 옥주봉(玉柱峯)아, 있거라 경천대(擎天臺)야, 요양만리(遼陽萬里) 길히, 머더야 언마 멀며, 북관일주년(北館一周年)이 오래다 한랴마난…."
국제신문 개념도
네비엔 '경천대국민관광지주차장'을 입력하여...
너른 주차장에서 하차. 입구쪽 안내소 좌측 오르막 포장도로로 가면 경천대.
안내소 아래로 조금 내려와서...
안내도와 이정표를 살펴본다.
'MRF 이야기길'이란 마운틴(M), 리버(R), 필드(F)로서 산과 강, 그리고 들길을 말한다.
얼음이 붙어있는 석벽은 인공폭포인 듯하고, 정면에 말 탄 장수의 늠름한 모습이 보인다.
정기룡은 선조 때의 무장으로 호는 매헌(梅軒), 본관은 진양, 시호는 충의공(忠毅公)이다.
1562년 4월 24일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서 출생하여 1581년 20세에 상주로 옮겼으며, 1586년(선조 19) 무과에 급제한 후 선조 임금의 명에 따라
정무수(鄭茂壽)에서 정기룡(鄭起龍)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별장(別將)으로 승진하여 거창전투에서 승전하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그해 10월 김산(현재의 김천)싸움에서는 포로가 된 경상방어사 조경 장군을 구출했으며, 그 공로로 상주 가판관으로 승진했다.
11월 23일에는 화공법(火攻法)을 구사하여 일본군이 점거하고 있던 상주성을 탈환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11월말에는 화북면 용화동전투에서 일본군을 물리쳤고, 12월에는 함창 창의군과 연합전선을 전개하여 일본군을 격퇴했다.
1593년에 전공을 인정받아 회령부사가 되었으며, 1594년에 상주목사가 되고, 그 후에 통정대부에 올랐다.
1597년 8월 7일 정유재란 때 토왜대장(討倭大將)이 되어 여러 전투에서 승전을 거두었다.
1598년에는 명나라군대의 총병관직을 대행하여 경상도 방면에 주둔하던 일본군 잔병들을 소탕했다.
1617년(광해 9) 삼도 수군통제사 겸 경상우도 수군절도사에 올랐으며, 1621년에는 삼도 수군통제사 겸 경상우도 수군절도사에 재임명되었다. [Daum백과]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안내판이 있는 좌측 계단 빨간 화살표 방향으로 90도 꺾어 올라간다.
돌탑이 늘어선 그 길은 솔숲길로 황토 맨발걷기길 등으로 잘 꾸며진 길.
금방 무지산 전망대에 올라선다.
3층 전망대에 올라서면 경천대 앞 회상리(回上里) 벌판을 휘감는 회돌이 물길이 펼쳐진다.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와 함께 낙동강의 3회(三回)라 불린다
3층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장면.
강줄기 우측으로 하늘금을 긋는 봉우리는 건지봉(乾芝峰 421.6m)인 듯하고...
좌측 멀리 문경쪽을 조금 당겨 보았더니...
눈에 익은 인상착의의 돌출된 암봉은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자주 보아왔던 주흘산이 아닌감?
팔각전망대에선 팔방(八方)으로 전망이 가능하다.
전망대에서 되내려와 만난 'Y'로에선 좌측으로...
경천대 무우정 방향을 따른다.
경천대를 내려서면서 내려다보니, 푸른 강물에 길게 목을 드리운 저 모습은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으로 목마른 용마(龍馬)가 물을 마시려 함인가?
정기룡 장군이 용마(龍馬)를 잡은 자리인 전설의 용소(龍沼)가 저 어드메쯤 되는가?
강가 너른 공터에 바위봉우리가 솟아있고, 그 바위봉우리에는 늙은 소나무들이 푸르름을 뽐내고 있다. 경천대다.
경천대 아래에는 팔작지붕의 무우정이 있다.
강변에 솟은 작은 봉우리에서...
예나 지금이나 낙동강은 유유히 흐르고, 400년 전의 정기룡 장군과 우담 선생의 충의(忠義)가 작금의 혼란한 세태에 등불이 된다.
이백(李白)의 시구(詩句)를 패러디하여 '만리창파 일천명일(萬里滄波 一天明日, 만리의 푸른 물결과 온 하늘의 밝은 해)'이라고 읊조려본다.
경천대 바위틈새에 서있는 경천대비엔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이 새겨져 있다.
우담선생이 사용했던 것으로, 좌측의 돌그릇은 연(蓮)을 기른 연분(蓮盆)이고, 중간것은 세수대야이면서 제사를 지낼 때 손을 씻는 관분(盥盆)이며,
우측의 절구통을 닮은 둥근 돌그릇은 약물을 제조하던 약분(藥盆)이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다듬은 다목적 석기는 용마전설과 관련하여 스토리텔링으로 엮어져 있기도 하다.
임란의 명장 정기룡장군의 용마 말먹이통인 말구시라고도 하니...
올려다보는 자천대
우담의 自天臺(자천대)
奇巖斗起自成臺(기암두기자성대) 기이한 바위 우뚝 솟아 저절로 대(臺)를 이루니
翠壁東西碧水回(취벽동서벽수회) 푸른 절벽 동서에 시퍼런 강물이 감돌아가네
矗矗豈容人力築(촉촉기용인력축) 저 우뚝우뚝한 돌을 어찌 인력으로 쌓았겠는가
層層應是化工裁(층층응시화공재) 층층의 저 돌은 아마도 하늘이 만든 것일 거야
雲收玉柱珠簾捲(운수옥주주렴권) 구름이 옥주봉에 걷히니 주렴을 거둔 듯하고
日射丹崖畵障開(일사단애화장개) 햇빛 붉은 언덕에 쪼여 그림장 막 열어 놓은 듯하네
最愛高標千百尺(최애고표천백척) 제일 멋있구나 높이 우뚝한 천백 척은
直擎天闕任無頹(직경천궐임무퇴) 바로 하늘을 받들어 무너짐 없음을 맡겼네
경천대 아래엔 팔작지붕의 무우정이 있다.
무우정(舞雩亭) 편액. 무우정은 춤을 추며(舞) 비를 빈다(雩)라는 뜻.
무우정 마루에 올라 빽빽한 글자의 '무우정중건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무우정 안내판.
이제 좌측으로 낙동강을 겨드랑이에 끼고 갈길을 재촉한다.
목교를 지나고...
출렁다리도 지나며...
좌측 강가의 드라마 세트장(상도)을 살펴보며...
육교를 건너기 전 이정표가 가리키는 좌측 상주보 방향으로 길을 꺾는다.
이 지점의 이정표.
육교에 올라서 돌아본 이정표에 비봉산(5.3km)을 가리킨다.
솔숲길을 따라가다...
뒤돌아본 모습에 무지산 전망대가 보인다.
도로에 내려서면...
진행방향으로 이정표가 길을 안내하고 있고...
돌아보면 데크로드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놓여져 있다. 우리는 우측 산자락에서 내려왔고...
도로 옆엔 2차선 자전거도로가 개설되어져 있다.
상주자전거박물관은 나중을 기약하고...
자전거 형상물이 설치된 경천교를 건넌다.
경천교의 이정표. 다리 건너 나즈막한 산자락에 활공장이 보이고, 그 산정이 덕암산인 듯.
경천교를 건너며 바라보면 우측 강변을 따라 도로가 보인다. 그 도로 200여m 지점에서 본격 비봉산 들머리가 있다.
경천교를 건너자마자 비봉산은 우측으로 휘익 꺾어서 강변도로를 따라야 한다.
그 곳에 회상나루터도 있고...
상도 드라마 셋트장도 있다.
낙동강생태탐방로 안내판도 참고하고...
강변로를 따르면 이내 좌측으로 비봉산 들머리를 만난다.
들머리의 이정표와...
청룡사등산로 3.1km 이정표가 붙어있다.
역시 이 길도 솔숲길.
승천을 못해 돌이 되어버린 이무기 바위를 지나고...
상큼한 솔숲길을 기분좋게 걷다가 뜬금없이 파헤쳐진 산길을 만난다.
이건 아예 중장비가 올라와서 마구 자연을 파헤쳐 놓았는데, 처음엔 영문을 몰라 의아해 했지만 곧 그 실태가 드러났다.
바로 이놈.
'상주시자전거연합회'에서 '상주시민자전거대행진'이란 이름으로 자전거 전용길을 만들고 있었던 것.
비행기는 하늘길로! 배는 바다길로! 차는 차도로! 자전거는 자전거 길로! 오솔길 산길은 사람이 가는 길~
여름에 장마가 닥친다면 파헤쳐진 곳으로 토사가 흘러 내리며 온 산을 황폐화 시킬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생태터널이 있는 생태교를 건너며...
터널 전후좌우를 살펴보니 온통 포장을 입혀 자전거도로화 되어 있는데, 또 무엇이 부족하여 산 정수리를 깎아내며 자전거도로를 만들려 하남.ㅉㅉ
산짐승이 다니는 생태터널을 자전거가 길을 놓으면 나중엔 산악오토바이나 사륜구동이 나서게 될 것.
적어도 상주에선 자전거만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화장실을 지나고...
구절양장(九折羊腸) 구불구불한 길을 이제는 질러 올라...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이끼낀 체육시설을 지나고...
다시 포장임도에 들어서 질러 오르려다 엉킨 잡목으로 포기, 임도를 따르기로 한다.
좌로 꺾이는 펜스쳐진 곡각지점에서 우측 산길로 진입하면...
금방 데크전망대가 있는 비봉산 고스락에 올라선다.
날으는(飛) 봉황(鳳)이라는 비봉산 데크전망대에서, 필자는 봉황의 눈으로 산하(山河)를 내려다 본다.
산 아래 낙동강변에 청룡사가 자리잡고 있고, 낙동강이 구비돌아 강폭이 넓어지며 유속이 느려지는 지점에 모래톱(경천섬)이 형성되어 있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만경창파에 배 띄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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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강물아 너 불지 말아라
우리님 고운눈에 눈물 고인다<노랫말>
비봉산 아래로 난 임도는 비봉산을 휘어돌아 '상주보'로 향한다.
상주는 산의 고장이지만 낙동강700리의 중심으로 평야가 발달해 있어 예로부터 전통농업이 발달해 왔다.
중동면사무소에서 세운 비봉산 정상석 앞에서 셀프로 기념 shot.
데크 전망대 옆 바위 전망대에서 역시 셀프로 촬영.
비봉산을 거꾸로 내려와 임도를 따르면 우측으로...
이정표를 만나 청룡사 방향 우측으로 90도 이상 꺾어 내려간다. 임도를 계속 이어가면 상주보(2.3km) 방향.
청룡사로 내려가는 너른 MTB길에 데크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경천섬 전망대다. 경천섬은 인도교가 개설되어 있지만 섬 전체가 모래톱으로 숲이 없어 황량해 뵌다.
비봉산 정상에서 본 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우리는 강변 우측 도로를 걸어서 낙동강을 가로지른 경천교를 건너 원점회귀 할 것이다.
청룡사 뒷쪽으로 들어가 범종각과...
극락전 앞마당을 가로질러...
맞배지붕의 두 당우를 스치며...
절문인 철문을 벗어난다.
곧 좌측으로 임도를 벗어나 산길을 따라 길을 단축하여...
주차장인 듯 단장된 강변도로에 합류한다. 이 길은 아까 지나간 생태터널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우측 산자락에 우뚝 '학전망대'가 보인다. 나중에 '한덤'님은 학전망대에 있다고 하였지만 필자는 요즘 '발 병(?)'이 나서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도로에 올라서 뒤돌아보면 주차장 태양광 발전소 뒤로 비봉산이 보이고, 도로 끄트머리인 고개마루에 생태터널이 있다.
앞서간줄 알았던 일행들이 바쁠 것 없다는 듯 봄날을 즐기고 있다.
산책길이 나있는 강변쪽으로 드라마 '상도'세트장이 보존 관리되고 있다.
강변을 따라 나있는 세 갈래길. 사람과 자전거와 자동차 길.
뒤돌아보면 우측 멀리 비봉산과 좌측 동봉인가?
강변을 따라 포장도로를 걸어 아까 올랐던 비봉산 들머리를 지나고, 다시 경천교를 건너...
자전거박물관에 도착을 한다.
상주자전거박물관은 상주시에 있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자전거 박물관으로 2002년 처음 건립되었다가 2010년 이곳으로 확장 이전하였다.
잘 꾸며진 박물관엔 자전거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전거 선수 엄복동.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굽어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 1926년 유행하던 노래였다.
하늘에서는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 땅에서는 엄복동으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한껏 일깨웠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자전거 가게에서 배달점원으로 일했던 엄복동(1892~1951)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까지 통틀어 자전거를 가장 잘 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해방후 말년엔 집이 없어 의정부 동두천을 떠돌다가 한국전쟁 중 동두천 야산에서 폭격을 맞아 사망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미야타 자전거(1947년 산). 우리 집에도 일제강점기 시절의 오래된 짐자전차가 있었는데, 쯥
오만가지 다양한 모델들의 자전거가 아래 위층으로 빽빽히 진열되어 있다.
창문으로 바라보는 경천교와 활공장. 그리고 활공장이 있는 덕암산.
복도에도 온갖 모양의 자전거와 사진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자전거박물관을 나와 육교를 보고 도로를 걷는다. 우측 경천대 이정표는 아까 경천대에서 내려왔던 길.
조각공원으로 들어왔다.
목공예 작품들인 달마 10점과 포대화상 10점을 ‘길손 조각가’로부터 기증을 받아 설치하였지만 제작비와 관련하여 잡음이 무성하였다.
인간의 희노애락을 해학적으로 표헌하였다지만 특정종교와 관련이 있다하여 종교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였다.
공원에 드문드문 설치된 조각품.
차로 귀환하면서...
살펴보는 조각공원.
달마와 포대화상의 해학적인 모습이다.
화장실에서 간편 화장을 하고...
셋팅이 완료된 뒷풀이 마당에서 떡국을 안주로 소주 큰 잔 두 잔.
덕천동에 내리자마자 오랜만에 오신 병두 형님의 간곡한(?) 권유로 '코다리 집'에서 섭섭주.
'족저근막염((足底筋膜炎, plantar fasciitis)을 아시는가?
오래 서서 일하는 사람이나 무리한 운동으로 발꿈치 부분에 하중이 가해져서 생기는 질환이란다.
이로 인해 '지금 나는 우울해.'
조선 청백리 1호 안성(安省)의 題詠尙州(제영상주) -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상주에 와서
二十年前奉使還 (이십년전봉사환)
閭閰城郭古商山 (여국성곽고상산)
街童共道新觀察 (가동공도신관찰)
邑老皆稱舊判官 (읍노개칭구판관)
細雨斜風吹醉帽 (세우사풍취취모)
落花飛絮惹征鞍 (낙화비서야정안)
紛紜來往憑誰說 (분운래왕빙수설)
露滿庭中獨依欄 (로만정중독의란)
이십년 만에 관찰사의 명을 받들고 돌아왔더니
고을과 성곽은 변함없는 옛 상산(현재 상주)이로다
거리의 아이들은 새 관찰사를 함께 따라 다니고
고을의 노인들은 모두들 옛 판관을 칭송하는구나
빗겨 부는 가랑비는 취객의 모자를 적셔주고
흩날리는 버들개지 나그네의 말안장에 엉기어 드는구나
사람들은 어지러이 오고가는데 누구를 잡고 이야기하랴
밤이슬 내리는 뜰 안에서 홀로 난간에 기대여 서있노라
-경천대 시비에서-
첫댓글 구경 잘 하고 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