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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갈다 / 정진희
칼은 그 예리함에 가치가 있습니다.
칼의 날이 무뎌지면 쓸모없는 무쇳덩이로 전락할 것입니다. 칼은 언제나 날카로움을 자랑하며 무엇이든
찌르고, 잘라버림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무사의 칼은 사람을 죽이는데 그 목적이 있고, 부엌의 칼은 음식
재료를 자르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 사용에 따라서 칼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요리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집기로 변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칼은 칼날의 날카로움과 강함으로 인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아내가 요리를 하는데 칼은 없어서는 안 될 주요 필수품, 칼날이 예리하여 쓱싹 잘라져야 맛있는 김치도
담고, 동태나 생선류도 잘 잘라져야 일하는데 힘이 들지 않습니다. 요리를 하는데 칼은 주부에게 매우 귀한
물건일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고급 음식점의 주방장 셰프(chef)에게도 칼은 제일 소중한 물건이 될 것입니
다. 한 사람의 셰프는 보통 여러 개의 칼을 자신의 보물처럼 귀하게 여긴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칼은 요리
하는데 매우 중요한 집기입니다.
집안의 요리용 칼 두 개를 갈았습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아내가 혼자서 칼을 갈아서 썼었는가 봅니다. 요즘에는 백수로 놀고 있으니 이런저런
가정의 사소한 일도 제가 찾아서 해야 아내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요……
지난번 제가 갈아줬던 칼이 엄청 예리하여 맘에 쏙 들었다면서 다시 갈아 달라네요.
칼을 가는 방법은 칼날을 한쪽으로 하여 약 98°정도 눕혀서 갑니다. 물을 끼얹혀 주면서 일정한 방향으로
갈아주기를 몇 번 하고 나서 손으로 칼날의 날카로움을 느껴보고 다시 반대 날을 갈지요. 칼날이 만족스럽
다고 느껴질 때까지 번갈아 갈아주면 되겠지요. 2개의 부엌칼을 가는데 약 20여분 정도 소요되었나 봅니다.
칼날을 만져보는 손의 느낌에 예리함이 전해져 옵니다.
칼을 잘 갈기 위해서는 숫돌의 성능도 좋아야겠지요. 숫돌의 좋고 나쁨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만,
언젠가 아내가 시장에서 구해온 숫돌을 벌써 수십 년째 사용하고 있는데 이 숫돌의 품질이 괜찮은가
봅니다. 제가 갈아준 칼이 잘 든다고 하는 것을 보니까…ㅎㅎㅎ 자,
이제 칼은 갈아놓았고 아내의 품평만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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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갈면서 저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칼의 예리함을 마음속에 숨겨두고 혹여 남에게 시퍼런 말을 쏟아붓지 않았는지, 얼굴은 부드러우면서
어딘가 숨겨둔 칼날 같은 날카로움으로 남을 판단하지 않았는지…
저마다 마음속에 칼 하나 품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친구와 게임을 하다가 졌을 때 다음에 이기기 위하여 그동안 “ 칼을 갈았다” 고 말하지요.
칼을 간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연마하고 힘써서 다음에는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진정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나의 마음속
의 예리한 칼날을 보다 무디고 둥글게 갈아야 될 것입니다. 거친 품성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기 때문
이며 예리한 칼을 품은 사람을 이웃이 좋아할 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사실 말로써 베이는 것이 칼로써 베이는 것보다 더 상처가 크고 오래갈 수 있습니다. 칼을 갈면서 그동안
나의 말로써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하니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지금까지 닦지 못한 마음공부를 이제 늙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만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
까요. 늙어가면서 전보다 더욱 자신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아야겠습니다. 혹시 친구들에게 거친 말로써
상처 주지 않았는지, 혹여 노탐(老貪)이 생겨 사소한 것에 욕심이 앞서지 않았는지,늙어가면서 추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니 비록 늦었지만 마음공부는 죽을 때까지 해야 될 것입니다.
공자님의 말씀에 “여절여차(如切如磋)하며 여탁여마(如琢如磨)하다” (자르고, 벼르고, 쪼으고, 갈은듯
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줄여서 절차탁마(切磋琢磨)라고 하지요. (論語 學而篇)
거친 원석을 갈아서 아름다운 玉을 만들 듯 다듬지 않은 거친 성격을 갈고닦아 훌륭한 덕성을 함양하는
修德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公子와 제자 子貢과 나누는 대화에 나옵니다. 자신이 가난하든 부자든
처한 상황을 즐기고 남에게 禮를 잃지 않는 군자가 되기 위하여 자신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하라는
내용이겠지요. 그러나 말처럼 자신을 닦는 것이 쉬운 일인가요?
사주 명리학으로 보는 저의 日干은 병화(丙火)입니다.
陽中의 陽이라고 합니다. 불 같은 성질이지요. 게다가 더운 여름에 태어났으니 뜨거움이 가세하여 그
불의 성질은 더 커지겠지요. 하여 불 같은 성격으로 인하여 종종 남에게 상처를 준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 순간이 지나면 곧바로 후회하고 사과하고 일을 마무리하지만 결국 상처는 남게 되겠지요. 겉으로
순해 보이는 제게 이런 성격이 숨어 있다는 것은 마치 마음속에 예리한 칼을 숨겨놓은 것은 아닐까요?
타고난 급한 성격으로 인하여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힘이 든 때가 있습니다.
칼을 갈면서 내 마음의 날카로움도 함께 갈려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첫댓글 칼은 예리하게 갈아야 하지만 마음은 무디게 갈아야겠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산문까지 찾아서 읽어주시고, 댓글로써 격려해 주시는....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