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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지혜와 보현행원- 53선지식시즌2, 네 번째 법회 ]
삼보에 귀의 하옵고 _()_
■.법회주제 : 문수지혜와 보현행원.
일 시 : 불기 2565년 5월 28일 (금) 저녁7시~9시:00
장 소 : 조계사 대웅전
법 사 : 대구 삼보사 주지 동훈 스님
사 회 : 수석부회장 현진화 김정미님
참석자 : 총동문회 회장 묘법장 윤청옥님 외 98명 동참
집 전 : 신행부장 혜월 권순석님
반 주 : 정진경 (삼조)님
■. 법회식순 : 화엄경 약찬계 - 공지사항 - 개회사 - 삼귀의 - 한글반야심경 - 음성공양( 연꽃사랑. 연꽃향기 누리 가득히 / 53
선지수합창단 ) - 인사말씀( 회장 묘법장 윤청옥) -청법가 - 입정 - 법 문( 동훈스님 : 문수지혜와 보현행원) - 사홍서원 - 폐회사
- 기념사진 촬영
■.불기2565년5월28일(금) 조계사 대웅전에서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가운데 한국불교1번지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는 대구 삼보사 주지 동훈스님을 초청 “ 문수지혜와 보현행원 ” 라는 주제로 “ 진달래 꽃이 개나리 꽃을 닮으려 하지 않고 부러
워 하지 않고 다만 자기 생명만 할 뿐이라면서 우리 인간도 분별 망상으로 시비하지 않고 중중무진 무애자재하며 조화를 이루
고 장엄하길 바란다.”하시며 한 시간 30분 동안 귀한 법문을 주셨습니다. 특히 이 자리에서 총동문회장(묘법장 윤청옥)님께서는
인사말을 통해 “53선지식 구법여행 시즌 2가 시작된 후 오늘 네 번째 법회에 동훈스님께서 ”문수의 지혜와 보현행원“ 귀한 법
문 들으시고 지혜와 행원이라는 부처님의 진리를 새기며 여러분들과 함께 즐거운 여정속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시며 모든 동
문님과 불자님들 가족들 집안에 화목함이 깃들고 자비광명속에 원만성취 복과 행복이 충만하시길 기원드립니다. ” 하시며 감
사 인사 말씀을 주셨습니다.
■. 53선지식과 함께하는 (화엄경)사경
부처님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행동함으로써 부처님의 가름침을 따르고 공덕을 쌓는 (화엄경) 사경을 53선지식과 함께하시어 사
경의 감로수에 마음껏 취하시기 바랍니다.
법회가 열리는 날 사경하신 사경지를 가져오시면 대웅전 불단에 올리고 법회를 진행합니다.
■. 53선지식 구법여행 시즌2, 다섯 번째 (6월25일(금))는 전국비구니회 회장 본각스님을 초청 “ 선재동자의 여성 선지식 구법” 법
회를 진행예정입니다.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53선지식 구법여행 시즌2, 법사비 보시
(2021년 5월 53선지식 네 번째 법사비 : 총동문회장 묘법장 윤청옥님 보시 )
■.법 문 : 문수지혜와 보현행원 -(대구 삼보사 주지 동훈 스님)
뵙게되서 반갑습니다.
저는 불교TV에서 보살강의를 하고 있는 삼보사 주지 동훈스님입니다.
53선지식 구법여행에 이렇게 법 보시 준비하시느라 총동문회 회장 및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동참해주신 여러 불자님들한테 찬
탄에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53선지식 구법여행 선지식 문수지혜와 보현보살님 행원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전에 화엄경
약찬계에서 말씀하셨듯이 독송했듯이 화엄경은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등장하십니다. 그래서 문수의 지혜에 바탕으로 해서 보현
보살에 실천행을 어떻게 할 것 인가, 대한 화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 중 먼저 화엄의 세계 화엄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부처
님세계는 어떠한 세계인가. 비로자나불이 화엄경에서는 주불로 돼있고 비로자나불은 광명진언에서 나오듯이 ”바이로차나“ 광
명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면 화엄의 세계 화엄경에서 이야기하는 비로자나부처님의 세계는 어떤 세계냐?
광명이 두루 비추는 광명변조 세계다.
우리가 한글로 축원할 때 ” 부처님 아니 계신 곳 없으신 부처님“ 이라 하시죠.
부처님 석가부처님은 화신불로 오셨다가 가셨는데, 어째서 지금도 아니 계신 곳 없으시면서 설법을 하고 계시는가.
방금 말씀 드린 대로 비로자나불에 법신불은 빛의 세계 광명의 세계로서 아니 비추는 곳이 없기 때문에 지금도 부처님 전에 빛
으로 오시는 부처님을 맞이하고는 찬탄하고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화엄의 세계는 꽃으로 장엄한 세계다. 지구의 해와 달이 공존과 자전을 하면서 질서정연하게 법식에 의해서 서로 부딪치지 아
니하고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산에는 꽃이 피네, 산에 꽃들은 각자 자기 생명에 활동하면서, 큰 꽃, 작은 꽃 , 모양이 좋은 꽃, 좋지 않은 꽃들이 어우러저서 조
화를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화엄세계에서 우리 중생들에게 무얼 가리키고 있는가. 지구에 달과 해가 질서정연하게 부딪치지 않고 공존하
면서 질서를 유지하지 하고 있고, 산에 꽃들은 생명활동만 할 뿐 서로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아니하고, 진달래꽃이 개나리꽃을
닮으려 하지 않고 부러워하지도 않고 다만 자기 생명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인간 우리들은 하루 종일 분별망상으로 시비하고 그렇게 나누고 살아가겠는가. 화엄에서 얘기하는 부처님 세계
는 중중무진 법계 자유의 세계 무애자재 하는 세계를 말씀하시고 계신걸, 산에 꽃들이 조화를 이루고 질서정연하게 꽃으로 장
엄 했듯이 이 괴로운 사바세계도 우리 중생들이 부처님 법에 의지해서 각자 여러분들이 다르지만 부처님 말씀에 의지해서 꽃
으로 세상을 가름하며 살아가는 화장세계 연화장세계 부처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화엄세계는 각조의 세계다. 깨달을 각, 비출 조 자,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깨닫고 깨달은 것은 지혜를 깨달은 것입
니다.
비춘다, 비출조자는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았으면 비춰라. 그러니까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는 건 지혜를 밝히는 거는 문
수보살이고, 비출 조자라는 보현보살로서 행원을 해라. 어두운 곳마다 다 비춰주고 고통 받는 중생들을 난 몰라라 하지 말고 구
원해 줘라.
그래서 화엄의 세계는 각조의 세계다. 문수보살의 지혜를 바탕으로 조, 비출 조, 보현보살의 행원으로서 괴로워하는 중생들을
비추어 주라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화엄의 세계를 이야기 하는 것은 깨달음의 사유와 우리는 중생으로써 출발해 가지고 중생이 무엇인가 구하고, 구도심을
얻는 게 아니고, 부처님의 말씀에 사이에 목탁을 처 주는 것, 그것을 깨달음에 사유화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루에 10시간씩 앉아서 10년 20년 30년 지나 깨달아서 뭔가 중생을 제도 한다는 것이 아니고, 화엄의 세계는 부처
님이 이미 깨달아 놓은 무진법계 걸림 없는 세계, 보리심 부처님 말씀에 의해서, 법문에 의해서, 경전에 의해서, 지혜를 터득 해
가지고, 현장에서 지금 이 순간, 내가 실천하는 것이, 문수지혜를 보현보살이 실천해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제일 문제 되는 것은, 분별 망상심이예요. 달마 스님과 육조 혜능 스님께서 분별망상심만 없으면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했어요.
화엄경에 부처님이 깨닫고 보니, 지혜를 구족하고 있건만, 분별 망상심으로 여래지혜의 덕담을 개발하지 못하고 드러내지 못하
고 있구나. 그래서 우리는 제가 드리고 싶은 핵심 내용은 뭐냐 하면, 생각으로 세상을 살지 말고 반야로 살아라.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은 분별망상심이다. 생각으로 반야심경에 나오는 조견오온 개공도 색.수.상.행식 수상행식이 생각으로 사
는 세계, 느낌대로 느낌이 좋다, 나쁘다. 살아가는 걸 분별하고,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반야로 살아가는 세상은 어느 세상이냐.? 지혜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 했듯이 반야는 깨달음 진리의 말씀이 반야 이예요.
삼세제불이 반야바라밀에 의지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니라. 우리가 한 가지 의지해서 경험대로 스타일대로 살아가
기 때문에 분별 망상하고 나누며 살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지, 반야바라밀로 살아간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구족되어 가지
고 능 일체개고 벗어날 수 있다고, 경전에서 반야심경에서도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이 알면서도 생각으로 살아 가지고, 반야로 살아가질 않아 반야로 살아간다는 것은, 조견이야 모든 화엄경의
현장에서 모두 일어나는 것을 비추어 볼 줄 알아야 하는데 자기 생각대로 한다 이겁니다. 자기 생각대로 일어나는 대로 취합니
다.
그런데 반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것을 비추어 본 다구 비추어 볼 줄 안다 구요.
예를 들어 말씀하시 건데, 초기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무아 연기 공 중도 초기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거든요. 그러면 무
아다 공이다. 얘기할 때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비춰 볼것이냐? 내가 없다, 내가 없으면 너도 없다. 내가 없으면 너도 없고, 아상
이 없으면, 인생상 중생상 수자상도 없다. 라고 한다면 내가 없으면 네가 없을 때 아공 법공이 되어요.
그러면 미워할 한계가 없어요. 내가 그리고 근심 걱정도 내 생각입니다. 분별망상도 내 생각 이예요. 현재 내가 없다고 했어요.
내가 없다는 것은 근심 걱정할 실체가 없는 걸 가지고, 밤새 공상 망상으로 잠도 못 자고 다음날 남는 건 하나도 없어 요. 인생
살이가 이렇게 생각으로 살아간다고 그러니까, 분별심으로 살아가면 허망하게 집착해서 살아요.
허망 되게 살면 하루 종일, 허망 된 게, 그게 진짜인 줄 알고 옳다. 그르다를 깨끗하다. 더럽다를 계속해서 살아간다고요. 그러다
보면 자기 인생이 없어 그럼 난 뭐야? 내 인생이 없으면 죽을 때 되면 못 죽겠어 객진번뇌 손님을 주인으로 삼고, 살아간다. 말
여 손님에 쫒겨 나가지고, 자기 인생이 없어서, 그러니까 내 삶에 없었으니 죽을 수가 없어. 현재 내 삶이 따로 있느냐, 하면 지
금 내 삶이 안 된 다고,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보면 원각도량이 어는 곳에 있느냐? 그게 부처님의 팔만대장경의 깨달음 도량이
요. 극락세계 지금 여기서 네가 말하고 살아가는 그 곶이 원각도량이다. 이거여.! 그래야 우리는 현장에 지금 여기서 부처님에
의지하는 삶이 가야지 따로 행복이 있고 원각도량이 법 도량이, 저 멀리 어디 있는 거 생각하면, 영원히 허망된 것에 집착하고
자기 인생에 남는 게 없어요.
내가 왜 고행 하는가 삼세제불의 의지하는 바람에 반야바라밀에 의지하며 살아가야지 아뇩다라샴막삼보리 일체 고통에서 벗
어난다 했단 말 이예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살아 왔습니까? 나는 좋은 사람 내편, 너는 나쁜사람 네편, 이렇게 좋은사람, 나
쁜 사람 다시 말해서, 더럽고, 깨끗하고, 예쁘고, 안 예쁘고를 분별 망상 생각으로 나누고 살아가면서 어떻게 행복을 꿈 꿈니
까 ?
같이 사는 가족도 미워하면서, 응 ~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지요.
행복이라는 건, 많고, 나쁘고, 좋고, 잘 나가고, 못 나고 하면 절대 못 되요.
갈등이 없고, 시비가 없고, 근심 걱정이 없고, 자승자박 벗어나지 못 하고 산다. 이겁니다.
오늘 주제 핵심부분은 “생각으로 살지 말고 반야로 살아가자.”는 말씀을 드립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범소유상 개시허망의 모든 일체 유의법은 개시허망이다. 했습니다.
그런데 허망이라는 것은 모든 사물은 허망 되다 했어요. 허망된 것은 여러분들이 진짜가 아닌 것을 진짜인 줄 알고, 허왕된 것
이지, 부처님의 상호나 명호를 부처님 말씀도 허망된 것이다, 하면 안되요. 허망된 것이다 해서 물질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상호
는 부처님의 진리를 부처님의 원만 상호로 나타난 거예요. 화신불 이예요.
경전에 말씀은 부처님 진리의 법신 세계에 문자화 한 게 경전이고, 제가 강의 하는게 언어화 해 놓은 게 말씀이고요. 그런데 허
망 되다 하니까, 부처님을 말씀을 허망 되었다. 말씀 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뭐가 허망 된 거냐 하면은, 집착해서는 안 될 것, 후
회할 것, 반성할 것, 진짜가 아닌 것을 진짜인 것처럼 거기서 온갖 고통을 받거든요. 그것을 허망 되다.
아~ 자기 부처님 반야에 의지하지 않고, 객진번뇌 밖에서 들어온 것에 휘들려요. 휘들려서 살아요. 쫒아가요. 욕하면 욕해야 되
고, 세 번 욕해야 되고, 객진 번뇌는 다시 말해서 밖에서 온 손님이기 때문인데, 주인공 인줄 알고 객진번뇌를 자기화 해서 자승
자박 외치고 살아간다 이겁니다. 이것을 벗어나자. 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위법망구를 많이 쓰지요. 법을 위해서는 내 몸도 버릴 수 있어야 된다.
진리를 위해서는 내 몸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부처님 과거 전생에 몸 이렇게 버리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위법망구를 진리를 추구하는 수행에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보
시 바라밀은 여러분들의 지갑에 돈을 주고 나서 후회할 수도 있고 손해죠. 봉사를 하고도 손해라고 생각하는데, 문수지혜의 보
리의 행원은 손해가 아니고 공덕이다. 공덕이 된다. 부처님 경전에 공덕은 도적맞지 않는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보시바라밀의 완성, 지혜바라밀의 완성, 도피안 반야바라밀, 행복의 세계로 보시바라밀을 하던, 반야바라밀
을 하던, 완성의 발원문을 해야 되는데, 봉사자로 생각하고 손해 본다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바라밀 행이 못 되 복이 안 되
요.
여러분들은 복 짓는다고 무루복에 유루복을 짓고 있단 말여,
제가 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불자들의 삶은 기준은 어디에 둬야 되겠느냐?
부처님 말씀에 기준을 두어야 겠다. 부처님 말씀에 경전에 기준을 둬야겠다.
보현행원에 부처님 말씀에 기준을 둬야겠다. 보현행원품에 나오는 십선계(십지품) 부처님 말씀에 둬야겠다. 우리 불자님들이
경전 글 안 읽어요. 강조하고 싶은 건데 십전대원에서 만수공양은 널리 공양을 베풀어라.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도 공양이요. 촛
불공양, 등공양, 육법공양, 나오잖아요.
그런데 법공양 진리의 공양 말씀에 공양 여덟 수행공양 부처님 말씀과 같이 행동하는 수행공양 그게 보현행원이다. 지혜라고
경전에 말씀이고요. 그렇잖아요.
지혜의 경전 말씀의 부처님 말씀을 수행 하는 게 보현행원인데 자~ 부처님 말씀이 기준이 되고 표준이 된다 면은 금강경에 나
오는 말씀, 나는 항상 세계에 존재해 있는 실상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배우자 실효자다.
나는 항상 진실 된 사람이다. 다른 말을 하지 아니한다. 10년 전에는 이런 말하고 10년 후엔 이런 말 하고, 그게 내로 남불이다.
하는 거예요. 여기서 저기서 말 다르고, 이사람 한 테 말 다르고, 저사람 한 테 말 다르고 한 되요. 그런데 부처님 말씀은 똑같아
야 된다. 말 이예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아요. 허튼소리 엉뚱한 소리를 하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 진리의 말씀 부처님 말씀을 의지해야 된 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이 여러 공양이 있어, 육법공양도 있고 있지마는 제일 큰 공양은 삶의 현장에서 부처님 말씀을 그냥 실천하는 말하
고 행동하는 그러한 것이 진짜 공양이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 최고의 공양이다 그래서 법
당에서 기도를 하고, 염불을 하고, 독송을 하고 진리의 말씀을 들었잖아요? 들었다면 일주문 밖을 나가서 삶의 현장에서 “요익
중생” 중생을 이롭게 하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해야 되는데 법당 안에서는 불자로서 평온하고 다 모범생인데 일주문밖을 나가면
부처님 말씀은 떠나있고 어떻게 대응하느냐 불자로서. 부처님 앞에서 지금 이 순간 공양 올리고 법문을 들었으면은 부처님한테
그렇게 했으면 집에 가서 시부모나 누구에게나 부처님께 하듯이 지심귀명례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아픈 시어머니나 친정어
머니 친정아버지한테 똑같이 예를 들어 삼배를 하고 공양을 올리고 씻겨드리고 이러한 부처님의 삶이 현장에서 보현행원을 해
야 되는데 법당 안에서는 보살님이고 거사님이고 불자인데 밖에 나가서는 일반인과 다를 게 없다면 그래서 집에서 남편이 ‘여
보, 절에 그렇게 열심히 나가는데 3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어떻게 말하는 거나 행동 하는 게 변하는 게 없으니 어떻게 된 거
냐?’고 묻는 일이 생긴단 말야! 부처님 앞에 지심정례공양 대지문수보살 대행보현보살 대원본존지장보살마하살 했으면, 당신의
원력을 내가 닮아가겠다고 외치는 소리, 당신의 원력대로 나도 그렇게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겠다는 그런 맹세이고 큰 외침이
여, 그것이. 그런데 법당에서는 지심정례공양이고 밖에 나가서는 ‘아이고, 오랜 병에 효자 없다고 언제 가시려나 낫지도 않고,
그러면은 그런 삶이 어떻겠어요?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전생에 이분 하고 내가 빚을 많이 지었나 부다 하는 어차피 정성으로 지심귀명례 하는, 마음으로 받들어
모시면, 그게 중생공양 내공양이란 말이야. 부처님한테 올리는 거하고 똑같애, 부처님께 과일 올리는 것처럼, 정성껏 깎아서 모
실 때 그 공양이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과 똑 같애, 사방으로 차별 없이. 그러니 여래공양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요. 금강
경에 또 나오는 말씀이 있지요? 구류중생 약란생 약태생 약습생 약화생 즉 알로 낳는 것, 태로 낳는 것, 습기로 생하는 것, 화하
여 생하는 것, 약유색 약무색 빛이 있는 것, 빛이 없는 것, 약유상 약무상 약비유상 비무상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
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 이 모든 걸 금강에서는 구류중생이라고, 하는 거잖아. 구류중생을 내가 능히 무
여열반 이멸도지 하리라.
또 하나는 구류중생을 내 몸 하나로 알고 그렇게 받들어 모시는 것인데, 구류중생을 놔두고 인간중생이 같은 한 몸으로써, 더불
어 사는 공동체 중생으로,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되는데, 생명의 존중이 똑같다는 말씀이 부처님 말씀 아녀?
금강경에서는 구류중생으로 말씀하고 있고, 화엄경에서는 정이 없는 거나 한마디로 둥글게 원만하게 지혜를 구족하고 있다. 금
강에서는 구류중생, 그러면 우리가 정이 있는 거나 정이 없는 거나, 모두 다 똑같은 생명체, 우리 인간과 하나도 다를 게 없이
그러한 생명체라는 것이 부처님 말씀이란 말여.
그런데 여러분들이 깨닫고 나서 봉사하고 나서 세상의 안목이 내 육안으로 보는 형상에 현혹된 집착으로 봐서 더러운 세계, 깨
끗한 세계, 예쁜 세계, 안 예쁜 세계, 많고 적은 세계, 이런 세계에서 깨닫고 보니까, 정이 있는 중생은 수행 할 수가 있어. 그런
데 부정중생은 어떻게 성불하겠어요? 부처님이 성불케 한다 했거든, 유정무정 사람은 수행해서 깨달을 수가 있어. 그런데 정이
없는 식물이나 이런 모든 동물이나 지렁이 같은 것들은 어떻게 깨닫나 이거여, 얘기는 내 세상을 깨닫고 나니 세상이 모두 다
깨달아 있더라. 그래서요, 깨달은 사람은 기준을 본다면 답이 금방 나와, 시험보다 간단해,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않은 사람 개
의 눈에는 개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 깨달은 사람은 모든 걸, 정이 있는 중생과, 정이 없는 중생을 모두 다
하나로 보는 말과, 행동 언행일치가 되는 사람, 그러면 그것은 깨달은 분이에요. 하나로 볼 수 있는 거, 여러분들이 사람을 보는
눈도 자기가 어두우면 세상 사람들도 다 어둡게 보여요. 자기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불평불만이 많아지고 사람들이 모든 게 밉
게 보이고 증오스럽고 미워요.
부처 눈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엔 돼지만 보인다, 이거에요. 개가 깨달았나 공부가 되었나, 이걸 알려 며는 조계사 마당에 모
인 모래가 다이아몬드로 보여야 돼, 그러면 깨달은 사람이야, 미운사람, 싫은 사람이 없어. 시제법공상으로 봤을 때 불생불멸 불
구부정 부증불감 아니요? 더럽고 깨끗한 게 없어. 그거 금방 점검이 되잖아요, 공부가 됐는지 안됐는지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
는 항상 금이 금에서 나왔고, 팔찌도 금에서 나왔고, 벼이삭은 볍씨에서 새끼가 나왔고, 가마니가 나왔듯이, 한 법식 본체에서
자기 업대로 차별 돼서, 나왔을 뿐 근본으로 돌아가면 똑같은 바닥이고 혹여 이 사람이 깨달았다 면은 차이가 있고, 나와 생각
이 틀리 고 나의 사상, 이념이 틀리더라고 그 사람 그 복을 지어서, 그래 차이점을 인정해야 돼. 차이를 인정해야 소통이 되지.
나는 이런데, 너는 왜 그러냐 하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시비만 걸고 싸우다 허망하게 인상은 끝나고, 죽을 때 죽지 못하고 있어.
내 인생을 못 살았기 때문에. 시비만 걸로 허망케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 인생을 살아야 되는데, 여러분들 스마트 폰에 빠
져서 살면 은요, 그게 남의 정신에서 나는 거 에요.
손님의 삶, 객진번뇌로 사는 거 에요. 세상은 재미로 사는 게 아니에요. 재미는 한 때에요. 느낌으로 사는 게 아니야, 세상은 반
야로 진리로 변함없는 여여부동 더럽고 깨끗한게 분별 안 되는 차이가 없는, 그러한 삶을 사는 게, 반야바라밀에 의지해서 사는
삶이다. 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화엄의 세계는요, 나와 너, 이웃하고 어울려서 사는 세계다. 화엄장엄의 세계다. 이게 말야 얼마나 아름다운지 합창단원 옷
입은 거나, 남성분들 곤색 옷 입은 거나 마스크 쓴 거나 이런 거, 저는 부지기수로 조화롭고 아름답게 보이거든요. 그런데 그렇
게 조화롭고 아름답게 차이를 인정하고 소통하며 살면 되는데, 너는 못나고 틀렸다 구 맨 날 더럽고 깨끗하고, 예쁘고, 안 예쁘
고, 따지고 사니까 부처님 말씀대로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해서 살아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는 거요.
그래서 우리 중생과 전형적인 나를 객관화 시켜야 돼, 그다음에 세계를 자기화 시켜야 돼. 어떤 보살이 질문을 하더라구요, 법
문하는데. “나는 다음생에 남자로 태어나서 스님이 되서 깨닫고 싶은데 남자로 태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어휴, 갑자기
질문을 받아서 어떻게 답변할까 하다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살아가지 마라, 거기에서. 엄마는 나라의 기둥이다. 선이
굵게 살아라.” 그냥 사치하고 시기질투하고, 이쁘다, 안 이쁘다, 이바구만 하면 또 여자로 태어나요. 그런데 여자로 태어나야지
여자의 업을 벗어나야 할 거 아니요? 수처작주 이생기심 가는 곳 마다 주인공이 되고, 가는 곳마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가 진리
의 자리요.
오늘 저 조선호텔에 있더라도 그 집이 오늘은 내 집이요. 왜냐하면 샀기 때문에, 호텔 사장 것이 아니고, 변화해야 한다. 수행은
변화해야지, 말은 지심귀명례 공양~ 하고, 지장경 독경하고, 금강경 독송하면 뭐 하냐고.. 나는 나를 버려야 세상을 얻어, 그런
데 나는 이 유위법에 집착하는 나, 환상의 나, 허망한데 집착하는데, 집착하지 말고.. 나는 나를 버리지 못해. 나는 나를 버리면
세상을 얻어. 생각으로 사는 나를 버려야 반야로 사는 바라밀다행을 하는 보현행원행자로서 살 수 있는, 얻을 수 있단 말이야.
나는 나를 버려야 세상을 얻느니라.
얘기를 하자 면은, 꽃은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고, 강은 강물을 버려야 바다를 얻고, 나는 나를 버려야 세상을 얻느니라.
그래서 우리가 수행자우리 불자들이 반야바라밀에 의지해서 수행하는 분들은 무엇인가 자기의 안목이 바뀌는 변화되는 삶. 세
상은요 의보정보로 규정되어있거든요. 무슨 말이냐 하면은 심청정국청정. 내 마음이 청정하면 세상이 청정해. 내 마음이 청정
하면 국토가 청정해 그렇듯이 내 삶 각자마다 자기의 수행을 잘 해서 불자들이 오백만, 천만, 이천만, 사천만, 오천만이 늘어날
때, 이 세계는 유토피아 연화장세계 화장장엄세계가 되지, 그렇지 않으면 그건 안 되요,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법문을 들어야
되고 이 날씨도 좋지 못한 날 또 어렵게 90분 동안 앉아서 법문 들어야 되고 그런 거 에요. 왜 어렵게 삼천배를 하고 그러는 거
요?
내 스타일 내 거라고 생각하는 거, 이념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색안경 뭐냐 그런 거 전부 깨고 뭔가 얻으면서 밝음으로
뛰쳐나오려고 하는 거 아니요?
90분 앉아있으라고 그러면 못 앉아있는 다고 그러지만 자꾸 반복되게 해야 되는 거요. 이치가 그런 겁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내가 깨달았나 못 깨달았나 확인 하려 면은, 세상을 보는 안목을 나누지 말고 이분법으로 이쁘다. 안 이쁘다, 좋
다, 나쁘다, 더럽다, 깨끗하다. 이거 말로만 하지 말고 진짜 실지에서 여여부동하자 이거에요. 여여부동하게. 아침에 너무 좋아
춤을 추다가 오후에 전화 한통에 울고 말이야, 이거 언제 내 행복을 찾느냐 이거요, 내 행복을. 그렇게 살고 머리만 하얘가지고
주름살 생기고, 그러면 내 삶이 어디서 살았어, 내 인생은 뭐야 그때를 잊었단 말이야. 그러기 때문에 오늘 지금 여기서 반야의
삶을 살자는 말씀을 드리고 아까 얘기 꺼냈던 보시바라밀, 우리가 주고 받았잖아요? 범부중생들이 주고 받는 거 보시 하는 거,
무주상 보시 하면 되요. 금강경은 공덕경입니다.
보시바라밀을 하는데 어떻게 보시해야 공덕이 되느냐? 금강경은 조계종의 소의경전이지만 저는 금강경을 보시복덕경이라고
그래요. 보시 공덕경, 보시하는데 시원찮게 현상계에 집착해서 보시하는데, 유루법의 보시는 하지 말고 무루법에 보시를 한다
면은 무주상보시를 하면 되요. 응무소주 이생기심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은 재물보시가 법보시가 되는 거 에요. 물질보시
로 공양물을 올려놓으면 이 공양물이 물질이야. 물질인데 부처님한테 올리는 순간 에너지로 변해. 물질은 먹잖아요?
반찬으로, 빵을 먹고 그러잖아, 먹는데 그 물질이 대변으로 소화가 되면 에너지가 돼서 내 생명력이 되고 내 삶의 원천이 된단
말이야,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는 모든 거 색 이야 물질이야. 그것이 부처님한테 반야바라밀 행에 의해서 보시를 할 때는 그
게 물질이 아니고, 색이 아니고, 색즉시공 공이 돼서 공덕에 에너지가 된 단 말이야. 내 삶에 에너지요. 행복의 에너지가 되는
거요. 다시한번 말씀 드릴께요 .물질보시를 바라밀행을 한다면 내가 너에게 주는 게 아니라 너와 내가 똑같은 한 생명체야, 내
가 너에게 주는 게 아니야. 어떻게 보면 내가 나한테 주는 거야,
따지고 보면. 여러분들 예경제불을 하잖아요? 자 보현행원품에 예경제불은 모든 부처님께 예경을 한다고 되어 있어요. 부처님
께 지심귀명례공양 하는 것이 예경이야. 예경을 저는 세 가지로 나눠 봐요.
첫째가 불보살님한테 법당에서 예경하는 것이 예경이고, 둘째는 구류중생한테 예경하는 거야, 부처님한테 예경하는 것처럼 똑
같이, 중생공양이 예불공양이라고 했어, 똑같이 다 하는 것이 예경입니다. 이거 이해가 되요?
일체 밖에 나가서 이렇게 해야 된다는 거요. 세 번째는 내 공덕 부처님 무량공덕 -세계화? 나의 여래장한테 예경하는 거 에요.
그래서 나의 여래장한테 예경 하면은요. 내가 무한히 존경스러워, 나는 부처님의 공덕으로 구족하고 이런 존재야, 모자란 존재
가 아니야 라고, 나를 인정하며 절을 할 때, 내가 부처님 씨앗이 싹 틀 수 있고, 공덕이 밖으로도 드러날 수가 있어요.
여래장한테 부처님이 갖춰진 존재란 말이요. 모자란 존재가 아니고. 그래서 삼천배, 백팔배나 천배나 해보세요. 처음엔 불보살
한테 예경하는 건데, 뒤에 가서는 내가 나한테 절하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어요. 불자라면 그런 환희심과 신심과 원력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 이거요. 부처님말씀에 우리가 의지해서 살아가야한다 해서 말씀드리는데 제가 방송에 오래전부터 강의하다보니까
저한테 찾아와서 말씀하는 게 무슨 얘기 인지 아세요? 불교를 이제야 알아서 후회스럽습니다. 불교를 젊어서 빨리 알았으면 내
가 얼마나 더 성장해 있을까? 부처님 가르침에 의한 가치관을 세우고 부처님 가르침에 의한 인생관을 세워서 살았다면 지금쯤
내가 얼마나 잘 살고 있을까? 과거에 나는 이러하지 못하고 우울증 걸리고 불면증 걸리고.. 부처님 가르침을 알고 살았다. 면은
내가 이런 삶을 살지 않았을 텐데, 온갖 고생을 다하고 이제 와서 부처님 법을 만나니까 늦었다 이거에요. 그래서 저는 뭐라고
답변 하냐면
‘이제도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도 늦지 않았으니 열심히 하거라, 부처님 말씀에 진짜 표준이 되고 기준이 되도록 진짜 삶의 현
장에서 부처님 말씀대로 말과 행동을 하도록 노력해라’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고 행복을 꿈꾸고 이러는 거 전부다 공염물이요. 모래로 밥을 짓는 거나 똑같애, 여러분들! 법당에서는 지
심정례공양~ 하고 밖에서는 지심 안 정례공양~ 하고 가는 사람들은 그거 모래로 밥 짓는 거요. 수고스런 고생만 하고 있다 그
말이요. 부처님 법안에서 살면서도 부처님 말씀인 반야심경은 30년 외워도 한 소절도 이해를 못 해. 반야심경은 대다라니가 아
니잖아요. 신묘장구대다라니는 그건 신주가 아니잖아?
반야심경, 금강경을 그냥 외우기만 해서 되겠어요? 이러한 삶을 지양하고자 하는 것이 제가 조금 강조해서 드리고 싶은 거 에
요. 제가 염불얘기도 하고 기도얘기도 하고 열심히 1년 동안 해서 많은 불자님들이 좋아하는 거 알고 있는데 이 염불은요 왜 부
처님 염불이 중요하냐면, 그런데 염불을 자기 소원성취 하는 신행만 하니까.. 염불이 수행이고 공덕 닦는 거고 소원성취라고 통
불교가 염불이에요. 염불이 왜 좋은지 아세요? 나무아미타불 얼마나 좋아요? 광명이 무량하고 신행이 무량한 부처님께 귀명합
니다. 화엄경은 부처님을 찬탄한 내용이 전부요. 39품 거의 다 칭찬 찬탄하는 거 에요. 부를 것도 많고 말할 것도 많고, 외울 것
도 많은데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지장보살, 이렇게 부르겠어요? 찬탄 하는 거요.
내가 들으면서 당신의 지혜공덕이 나한테 비춰지길 바라고 당신이 내 빛으로 존재한다 이거지. 햇빛에 비쳐서 아미타 면역력이
강해지는 거지, 부처님의 말씀도 내 불성에 비쳐져가지고 직사광선을 쐐가지고 적외선을 쐐가지고, 같이 동화되도록 해지이다.
염불을 왜 해야 되냐 면은,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는 거요. 독경은 무한히 환희심을 기쁜 마음으로 부르면 부를수록 힘이 나죠.
공덕을 찬탄하는 거니까.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대원본존 지장보살, 광명으로 순응하신 나무아미타불, 이걸 게송 하는 것이 그
명호를 택해서 부르는 것이, 찬탄해하기 때문에 그게 반복적으로 하게 될 때 여러분들 염불 하면서 미운사람 생각하면서 안 하
지요? 기도시간 염불시가 이 시간이 소중한 것은 분별할 시간이 없어, 잡생각이 없어. 잡생각이 없으려고 노력하잖아. 잡생각이
계속 올라오면 전생에 공부를 조금 덜 한 걸로 알면 돼, 연습을 해야 돼, 자꾸 반복적으로, 안된다고 때려치치 말고, 그러기 때
문에 잡생각이 많이 나면은 전생에 내가 선근종자 공부를 안 했구나. 이생에 더 정진해야 되겠구나. 용맹정진 그러한 마음으로
하면은 된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염불은 명호를 찬탄하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기도시간에 얼마나 순수하
고 아름다우냐. 그렇게 아름답고 좋아요. 왜냐 그 시간에 누구 미워하고 화내면서 죽으라고 염불하는 사람 없어요. 그렇죠? 다
만 여러분들이 너무나 기도나 독경이나 진언이나 사경이나 이런 것을 신행이나 수행으로 삼지 아니하고 기복 같은 기복에 매
달리니까 말을 좀 듣는 거 에요. 그러니까 염불할 때 염불하면서 찬탄하면서 염불 부르다가, 야! 염불하는 자가 누가 부르는 거
야 예불할 때 누가 부르는 거야, 염불하는 사람이 무엇이 염불하고 있지, 염불자가 누구지, 이것이 수행과 복덕과 공덕과 가피
수행 소원성취가 같이, 다 병행하자는 말씀을 제가 염불과 기도하자는 말씀 드리는 입장에서 한 말씀 짚고 넘어 갑니다.
다시 말해서 반야부에서는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지 않고는 반야부에서는 공통으로 사라졌고 화엄부에서는 보리심에 의지하
고 보현행원에 의지하고 문수지혜에 의지하면 성불할 수가 있다고 했어. 세세상행 보살도 보살도는 뭡니까? 세세상행동안 전
생이나 내생에나 난 보살도를 하겠다고 그러고 여러분 축원할 때 세세상행보살도 많이 하지요? 세세상행보살도 하면서, 보리
심이 뭔지 부처님 말씀 중에서 확실히 이해하고 삶의 현장에서 발심하고 자비심 가지고 보현행원을 하자 이겁니다.
그래서 저는 보현행원을 강의하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불교는 명사를 싫어해요. 명사, 이름 이건 상이라고 하자, 이건 마이크
라고 하자, 이건 시계라고 하자, 그러니 금강경에 이름이 중생이지 이름이 중생이라 이거요, 이름이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명사를 좋아하지 말고 동사를 좋아해야해. 동사 액션. 찾고 좋은 말하고 보시바라밀해서 현장에서 봉사하고 반야행도 하고 자
꾸 움직여야 돼, 아니 자기얘기도 아니면서 슬프다고 연속극보고 그러고 죽어가는 거 슬프다고만 하지,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
들 액션! 불쌍하다고 하면서 혼자서 운다? 울면서 자비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액션을 안 해, 불자는 이름에 쫒아가지
말고 동사 액션을 취하는 그러한 불자가 됐으면 하는 말씀을 드리구요.
세상을 살아갈 때 반야로써 내 색안경 내이치대로 내경험대로 내 스타일 대로 그렇게 살려고 하지 말고, 욕이 나와도 이거 나
쁜 거야, 화가 나도 화를 많이 내면, 죽어서 구렁이 된대, 업이 된대 그러면 삿띠, 알아차리고 마음 챙겨서 하지 말아야지 하면
서 자꾸 고쳐가는 삶, 그러한 삶을 살기를 불자로서 좀 권해봅니다. 기도하고 염불하고, 이 모든 수행이 이렇게 생각하세요. 나
는 부족한 존재니까 불보살님 가피를 주십시오. 하는 것도 기본적인 신앙심에 맞지만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내 생명에 내가 가
지고 있는 부처님 될 수 있는 무량공덕 생명을 드러내는 모든 수행이다.
염불을 하든, 참선을 하든, 뭐든 내가 부처님의 공덕 생명을 여래장으로써 감춰져서 부족하게 있던 것은 드러내는 그러한 생명
활동으로써 여래의 행동을 드러내는 행으로써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보현행원품에 나오는 말씀을 좀 드렸는데 조금 더 부처님 말씀에 의한 수행을 하라고 했듯이 그냥 조금 중요하다고 하는
부분만 조금 소개 드릴께요
그러므로 이 십대원을 외우는 사람은 세상은 사는데 조금도 장애가 없어, 마치 공중에 달이 구름과 하온 것과 같으니라. 그러므
로 모든 불보살이 칭찬하시며 일체 인간이나 천상사람이 마땅히 예배하고 공경하며 일체중생이 마땅히 공양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한다는 것은 온 법계 허공계 시방법계 일체 불 국토 그 미진 수, 모든 부처님을 내가 보
현행원의 원력으로 눈앞에 뵈 온 듯이 기쁜 믿음을 내어서 청정한 몸과 말과 뜻을 다하여 항상 예배하고 공경하되
부처님 계신 곳마다 말로 할 수 없이, 많은 부처님세계에 미세한 먼지처럼 만수에 몸을 나타내고 그 부처님들께 예배하고 공경
하는 것이 허공계가 다하면 나의 예배하고, 공경함도 다 하려니와 허공계가 다 할 수 없으므로 나의 예배하고 공경함도 다함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하여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면 나의 예경하고 공경함도 다함이 없어 생각생각
이어져서 끊임없이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이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 나무아미타불 _()_
부처님 보현행원 법문을 독송할 때는 어떤 때는 법문으로 나오고, 어떤 때는 춤을 추듯 기쁘고 그렇습니다. 자~ 중생이 괴로워
하는 것을 보고 중생 업이, 다하지 못함을 보고 중생의 번뇌가 끝이 없는 것을 보고, 나의 예배하고 공경함도 다하려니와 중생
의 번뇌가 다함이 없으므로, 나의 공경함이 다함이 없이 생각생각 이어져서 끊임이 없어. 온갖 말과 뜻으로 짓는 일에 지치거
나, 싫어함이 없을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보현행원품을 실천하는데 너희들이 그렇게 부처님 법과 등지고 중생계 과 한 망상이
나 집착에서 살았나, 내가 그것이 다 소멸될 때까지 싫어하지 않은 것이다. 중도에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공부하면서도 공부
안 된다고 물러서잖아요, 그만 때려치잖아요, 그런데 여기 뭐라 그래요, 중생이 괴로워하니까, 지치거나 싫어하지 않겠다, 물러
서지 않겠다, 이것이 보현행자 에요. 어떻게 보면 보현행품이 상당히 입법게품 으로, 중요 한 건데, 끄트머리 나오잖아 몸과 말
과 행동으로 그치지 않고 싫증내지 않고 하겠다. 이게 되겠느냐 이말이요. 스님말씀은 다 옳고 하지마는 지금 내 코가 석자니까
할 수 없습니다. 하는 사람들은 뭐 조금 반성해야 되요. 내 코가 석자인 이유가 있어, 인과응보 내가 전생에 업이 있어 그런데
나는 내 코가 석자라고 하면 당신의 나쁜 업이 쌓여서 열매가 익어서 밖으로 드러 나오는 현상이야, 스님 보현행원품 말씀하신
것은 다 좋은 말씀이라지만, 나는 내 코가 석자라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라고 한다면 불교공부 다시 해야 돼, 관음신앙
하고, 지장신앙하고, 빠져있는 분들은 불교는 저는 문수와 보현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에요.
문수와 보현에 조금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야 돼, 53선지식의 법문을 들을 때 우리가 또 큰 스님들 법문
들을 때 그러한 돼야 되겠다. 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그래서 반야와 관조의 삶을 살면 반야로 빛을 비쳐진 그 깨달음의 사유와
목탁소리를 내는 실천을 하면은 복이 들어가고 진리가 들어가는 삶이되면서 새로운 삶으로 건너가요.
나는 내가 만들어요.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젖을 주고요. 독사가 먹으면 독을 이루잖아요. 같은 사람은 동업 중생 이예요.
나를 어떻게 만들거냐? 이거예요. 반야의 삶을 살거냐? 허망덩어리 집착이나 붙들고 괴로워하는 삶을 살거냐, 이 차이란 말이
요.
나는 내가 만든다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밖에서 들어온 경계에 끄달리지 말고, 우리가 고향에 간다면 설레이잖아요.
고향이 왜 그리운 줄 알아요. 우리 마음이 근본이기 때문에 고향이 그리운 거예요. 이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지금 코로나19 때
문에 밖에 못나가서 답답하잖아, 그러면 이때 불자들은 공부할 수 있는 불자들은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원숭이처럼 밖에 나
와서 뛰어다녀 놀고만 싶어 해요. 그런데 우리는 부처님 법문 경전에 많이 나오는 얘기처럼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들여
보내라. 그걸 뭐라고 그래요. 회광반조 밖으로 빛이 나가는 걸 내보내지 말고 나에게 유턴해라. 내 삶이 잘 못되어서 불행하다
고 생각하면 빨리 보아 유턴해라, 새 삶을 살아라. 밖으로 탐.진.치 삼독을 향하는 마음을 코로나19로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까,
집에서 그 쫒아가며 향하던 마음을 안으로 비쳐보는 거 섭심내조 그런 마음을 포섭한다는 거요. 누구 섭외한다고 그러잖아. 포
섭해서 안으로 비치는 삶. 이런 활동을 작년부터 우리가 좀 해야 되지 않겠어요? 섭심내조 회광반조 많이 쓰잖아요?
우리 불교 수행에서 자기 살림살이 하는 거죠. 그렇게 말씀 드리고 싶고 부처님 말씀이 표준이 되고 기준이 돼야 되고, 불자들
의 삶이 부처님 말씀에 반야바라밀의 환희심을 내고 기쁜 마음으로 사명의식으로 살고, 법비 충만한 마음으로 부처님 법문을
들으면은, 보현보살을 만나서 도반님들 모두 배고프지 않아요. 그 관심을 나 혼자 가지지 아니하고, 밖으로 나와서 모든 중생계
도반들 게 공덕을 배운 지혜를 회향하고자, 동원정지 하는 것이 문수지혜요. 보현보살의 행원이라는 말씀으로 제 법문은 마치
겠습니다. 귀한 법문 감사드립니다.
[ 불기2565년5월28일 금요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
▤. 업은 들판이고 인식은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입니다.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묶이어 저열한 세상에
인식을 확립합니다.
이와 같이 내생에 다시 존재하게 됩니다. - [앙굿따라 니까야] 3:76
[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부회장 법연 이동엽 합장 ]
첫댓글 동훈 스님 감로법문 감사드립니다.
반야지혜로 세상을 살아가겠습니다.
늘 옥체 건강하십시요._()_
법연부회장님,
수고가 많으세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동훈스님의 법문을 다시금 새기며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불자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_()_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법문을 완벽히 정리를 해 주셨네요 정말 놀랍습니다 감사합니다 ~^^()()()
매 법회마다 꼼꼼하게 법사님의 법문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애쓰셨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