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에 마을 교육 책자 만드는 워크숍에 우연한 기회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일명 <마을활동가>라는 이름의 부캐를 하나 얻었다. 더불어 워크숍에서 만났던 중학교 선생님 덕분에 중학교 1학년 친구들을 만날 기회도 생겼다. 자유학기제인 1학년 학생들의 진로 수업에 하나의 직업군으로서 내가 하는 일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책방을 한다는 것이 단순히 책을 골라서 파는 일만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더 많은 것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단순히 ‘책방지기’라는 직업 이야기는 지루하고 딱딱한 느낌을 줄 수 있겠으나 여러 사람이 함께 꾸려가는 공동체 책방이라는 독특한 운영 방식은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책방의 운영 형태와 비슷한 내용이 들어 있는 그림책(두더지 마을, 모두빵집)을 읽어주며 시작하기로 했다.
이틀 동안 중학교 1학년 7개 반 아이들을 모두 만나는 시간이어서 조금 떨리면서도 어떤 아이들을 만날지 살짝 기대도 되었다. 진로 수업을 가기로 한 당일 아침 중3 아들에게, 중학교 1학년 동생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아들은 선배 입장에서, 선뜻 본인이 애니고 준비를 시작으로 최종 예고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경험담을 동생들에게 들려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초등학교 내내 만화 캐릭터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아들은 공부에는 크게 흥미가 없었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로 진로를 결정하고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진로를 정한 이후부터 열심히 했으나 결국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실패했지만 그 과정들 속에서 아들은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하는 많은 것을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중학교 1학년 친구들은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본인들과 비슷한 또래인 형의, 도전과 실패에 관한 에피소드를 가장 크게 공감하며 열심히 들어 주었다.
책보다는 영상을 더 선호하는 아들은 그림책 읽어주는 것은 동생들이 싫어할 거라며 반대 표를 던졌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했고, 다행히 일곱 개 반 아이들 모두가 그림책을 읽어 달라고 했다. 책방 이야기는 그림책에 곁들여 간단히 설명하고, 서점과 동네 책방의 차이점 정도만 이야기해 주었다. 아들의 경험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평소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나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책방 이야기와 아들 이야기를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새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쉴 새 없이 말을 해야 하는 선생님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한 번도 공부를 잘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어! 공부는 본인 스스로가 하고 싶을 때, 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겼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러한 말들을 아이들에게 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 안타까웠다. “부모님은 무조건 공부를 하라고 하세요!” “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해야 하는 게 불행해요!” “우리나라의 사교육은 사라져야 해요!” “성장 호르몬이 나온다는 밤 10시에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어요. 그 시간에 학원에 있어요!” 아이들은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첫째 날은 아이들의 이러한 이야기들에 내가 어떤 대답을 해줘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지를 몰라서 너무나도 마음이 쓰였다. 다음날 나는 공부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로 고작,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운동도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방법이 있다는 정도만 말해 줄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말해 주고 있는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의 행복이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지내며 사이좋게 지내는 거야!”라는 말을 강력하게 해줄 수 없었다. 아이들의 겪고 있는 어려움과 그것을 헤쳐나갈 때 힘이 되는 이야기를 잘 전달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다.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 공부하다가 힘들면 언제든 책방에 찾아오라고 했다. 선생님이 음료수랑 떡볶이도 사주겠다는 말과 함께. 그저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준 것이 전부인데, 책방에 찾아오겠다며 연락처를 물어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느덧 마음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졌다. 나의 작은 말에도 공감해 주고 귀 기울여주던 중학생 1학년 아이들에게 오히려 내가 얻은 것이 더 많다. 중학생 아이들을 만나고 나니 더 많은 중학생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고 있는 중학생 아이들이 학업이라는 틀 안에 갇혀, 아름다운 십 대의 순간들을 불행이라는 단어만으로 가두지 않기를 바란다.
“얘들아, 책방에 꼭 놀러 와~ 선생님이랑 더 재미나게 놀아 보자!!!”
첫댓글 많은 아이들이 책방에 꼭 놀러갔으면 좋겠어요^^
큰 위로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