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5월 3일 목요일 맑음
“나 죽겄는디 왜 안 일어나” 외마디 절규가 들려온다.
‘이 게 어디서 들려오는 소린가 ?’ 선잠을 깨서 그냥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지금 멫 신디 아직 안 일어나” 또 한 번 외침이 들려오더라.
언뜻 시계를 보니 6시밖에 안 됐다. ‘이 거 장모님 소린데..... ?’
후다닥 일어나 안방에 들어가니 장모님께서 끙끙 앓고 계신다.
“아이고 어머니 많이 안 좋으세요 ?” “으응, 더 아퍼” 다 사그러지는 목소리다. ‘어제 정산 현대병원에서 주사를 맞으시고 약도 받아 드셨으니 괜찮으실 거다’ 생각하고 마음 편히 잠들었던 게 실수였다. 잠귀가 어두운 것도....
“어머니 안 되겠어요. 오늘은 공주 병원으로 가야겠어요. 식사는 하고서요”
부리나케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고 가슴이 타는디 왜 물 안 주는 거여 ?” 또 외마디 고함이시다. “예, 어머니 물요 ?” 장모님께서는 평소 거의 물을 잡수시지 않으셨었다. ‘열이 나시나 보다’ 머리를 만져보는데 거의 정상이더라. “어머니 아침 식사를 드시고 병원에 가셔야 할 텐데요 뭘 드릴까요 ?” “밥에다 물을 넣고 끓여서 물만 줘” ‘아하 미음이구나’ 밥에 물을 많이 넣고 센 불로 끓이다가 약한 불로 오래 끓여대면 된다. 그 사이에 나도 밥을 급하게 밀어 넣었지.
그런데 갑자기 “아이고 이놈아 네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어, 이놈아.” 아들 이름을 부르시면서 악을 쓰시듯 울어대신다. 처음 보는 장모님의 흩으러진 모습이라 많이 당황이 되었다. 평생을 일만하다 온몸이 망가지시고.... 얼마나 한이 되시면 저러실까 ? 상당히 강한 분이신데.... 가슴이 찡하더라.
“네놈 땜이 사위만 고생 시키고.... 어구 어구” 통곡을 하시더라. ‘아이 나는 또 왜 거기에 끼오 들어가는 거야 ? 민망하게 시리....’
“어머니 여기 미음 가져왔어요. 이 걸 드시고 병원에 가요” 그것도 입에 당기지 않으시는지 입에 댔다가 그만이다.
“병은 아녀, 그런디 온몸이 녹작거리고 가슴이 구진거려” 무슨 말씀이니 모르겠지만 원래부터 식사는 안하시고 일만 하시더니 몸이 탈진되고, 감기까지 덛치니 이젠 견딜 수가 없으신 거다.
공주로 가는 길에 “어머니. 모든 병은 시작할 때 잡아야 돼요. 사나흘 전 병원에 가시자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어도 괜찮다고 고집을 부리셔서 병을 키우신 거예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고 하잖아요” 사위 말이 맞았다고 생각하시는지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
공주 현대병원에 도착하여 열을 쟀더니 38도나 된단다. “아까 머리를 만져봤을 때는 열이 없었는 데요” “열이 일부에만 몰려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 ?
“몸이 많이 쇠약해지셨는데 우선 X-ray부터 찍어 보시고 오세요” 가슴이 덜컥 댄다. ‘혹시 다른 데가 많이 편찮으신 건 아닌가 ?’ ”다행히 폐렴은 아니세요. 열 내리는 주사 맞으시고, 몸이 많이 쇠약해 지셨으니까 영양제 한 대 맞으세요. 집에 가셔서도 낫지 않으시면 또 오셔서 사진 다시 찍어 볼 게요“
영양제 주사는 두 시간이 걸린다고 하네. ‘이 거 어디서 기다리나 ? 정산에 다녀올 수도 없고....’ 공주 친구에게 전화를 했지.
“우리 동창들 9명이 지금 우성면 한천저수지 뒷산으로 고사리를 뜯으러 왔어. 15분 걸리니까 이리 와” 잘됐다. 친구들 얼굴 보고 오면 시간이 딱 맞겠구나.
찐빵을 사들고 찾아갔지. 물 맑고 경치좋은 곳이더라.
친구들과 옛날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었다. 점심을 같이 하자는 권유였지만 장모님께서 기다리신다.
“어머니 점심시간인데 뭐라도 드시고 가시죠.” “나는 아무 것도 못 먹어. 사위나 먹어” “죽은 드실 수 있지요. 시금치 죽, 콩나물 죽 같은 거요 ?” “그런 거는....” 공주 본죽집에 차를 댔다. 어머님이 드실 만한 게 호박죽, 녹두죽, 팥죽이 있더라. 호박죽을 두 그릇 싸들고 집에 왔지. 많이 드시라고 성화를 드려도 반 정도를 드시고는 자리에 누으신다.
“어머니 저 일 하고 올 게요, 오늘은 아무 일도 하시면 안 돼요” “그려”
빨리 원기를 회복하셔야 되는데....
불당골로 가서 사람이 다닐 수조차 없이 우거진 잡나무를 베었다. 아카시아 찔래나무 등 가시가 있는 나무들은 왜 이리 잘 자라냐 ? 꼴도 보기 싫은 것들이.... 예초기로 사정없이 잘라댔지. 속이 다 시원해진다.
그런데 문득 문득 지난 번에 접을 붙인 접순에서 새싹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라
“어머나 이쁜 거”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저렇게 예쁠 수가 있나 ?
요즘 바람난 야옹이가 새끼를 낳아도 저만하진 못할 거다. 접붙인 곳 여기저기를 찾아보니 100%가 다 싹을 밀어내고 있더라. “야. 만세 !” 신바람이 나더라. 잘 자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