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유 레디?”
“네.”
“세이 예스.”
“예스!”
1997년 3월 4일에 대한민국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른바 초등학교 영어학습 첫날의 광경이다.
“아 유 레디(수업 준비됐어요)?”라고 한국사람 여선생이 유창한 영어로 물은 것이다. 그래서 어린 꼬마들이 “네”라고 한국말로 대답하니까, 선생님은 또 영어로 “세이 예스(예스라고 답하세요)”라고 영어로만 하란다. 그러니 어린애들이 “예스”라고 할밖에.
이따위 기사를 대문짝만한 활자로 모든 일간신문에서 보도해도 누구 하나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이가 없다. 이게 조국이 광복된 지 50년이나 지난 오늘날의 우리나라 현실이다.
일제시대에 초등학교의 어린이들에게 한국어는 쓰지 말고, 일본말로만 수업을 하도록 강요받았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모골이 송연하여 전율을 느낀다.
지난해에 교육부에서 영어교육을 조기에 시킬 것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에 수많은 국민들이 반대를 했었다. 나도 ‘얼빠진 사람들’이란 제목의 글로써 얼뜨기의 발상이라 나무란 바가 있다.
얼바람둥이 같은 한 어른이 ‘세계화’를 내세우자 얼렁거리기 좋아하는 얼치기들이 얼씨구나 하고 손뼉을 치며 장단을 맞추고, 서두른 결과가 요모양 요꼴이 되었다.
그래 이 세계에서 제 나라의 말과 글을 가지고 있는 어느 나라가 아직 제 나라 말글도 익숙하지 못한 애들에게 남의 나라 말부터 가르친단 말인가?
일제의 식민지 정책 아래에서는 총칼의 강압에 못 이겨 성도 갈고 이름도 뺏기고, 말글까지도 버린 채 일본말만 쓰도록 강요당했지만 어엿한 대한민국으로 광복하고 해방된 이 땅에서 영어를 전국민에게 배우라니 얼토당토않은 수작이 아니고 무엇인가?
엄연히 초등교육은 의무교육이다. 의무교육은 전국민이 고루 배워야 할 것을 가르치는 국민양성의 절대적 필요 불가결의 교육연한이다. 앞으로 중학과정이나 고등학교과정까지의 의무교육이 시행된다면 더 좋을 일이나 현재로선 초등학교까지만 배워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제 나라 안에서 충분히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국어와 산수, 사회생활과 자연, 음악과 미술 등 한국 국민으로서 자주적으로 살아갈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러니 초등학교의 교과과정을 충실히 교육하기에도 가정과 학교의 힘이 모자라는 판국에 유별나게 영어가 세계 공용어란 이유를 들어 어린아이들을 얼빠지게 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말의 본질을 얼보고 있는 얼간이어른들 때문에 그릇된 생각이 번지고, 나라 사랑이나 제 얼 지키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외국 것이면 무조건 좋아하는 얼간망둥이새끼들이 생겨나고 있지 아니한가?
‘국어에는 생명이 있다, 국어는 국민정신을 통일하는 기능이 있다, 국어를 끝까지 지키는 민족은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는 말들은 만고의 진리이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읽지 못했거나 이스라엘 민족의 어머니들이 제 나랏말을 자녀들에게 가르친 일들을 모르더라도 우리가 일제치하에서 국어를 지키려고 애썼던 역사를 생각한다면 자명한 이치가 아닌가?
그런데 벌써부터 영어조기교육의 열병이 온 나라에 번지게 되자 또 교육부에서는 ‘초등학생 영어과외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자 일선학교의 교사와 학부모, 외국어학원들이 가타부타 아비규환이다.
어떤 어머니들의 말을 들어보자니 가관이다.
‘다섯 살 때부터 영어를 가르쳐 왔는데 지금 갑자기 학원을 그만두라니 말이 되느냐?’
‘학원을 못 다니면 개인과외나 학습지 과외를 해야 하니 과외비용이 훨씬 많이 들게 된다.’
‘법으로 금지돼 있다는 국어나 수학 같은 다른 과목 과외도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다. 영어만 뚱딴지처럼 금지시킨다는 것은 난센스다’(이 어머니는 제법 유식한 척 ‘말도 안된다’를 ‘난센스’라고. 웃긴다).
맙소사. 다섯 살이면 어머니의 젖꼭지를 빨아야 할 나이에 누구 좋으라고 혀꼬부라지는 연습을 시켰단 말인가? 그애는 어머니의 욕심 때문에 놀지도 못했을 것이니 장차 커서 무엇을 하며 놀 것인지 안타깝다.
그 다음 어머니는 한 술 더 뜬다. 그래 학원과외를 시키지 말라면 고액과외 시킬 수밖에 없다고? 제 남편의 월수입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과외망신, 과외망가, 과외망국도 불사할 얼간이가 아닌가?
국어나 수학이나 미술이나 모두 학교공부의 예습과 복습을 어린이의 옆에서 지켜봐 주면 그만인 것을 자기는 딴 곳에서 놀고, 애만 볶아대는 꼴이니 어린이의 심성이 바로 자랄 수가 있겠는가?
이러구러하니 개학 첫날에 학교 계단에서 엉켜 넘어지면서 한 명이 깔려 죽고, 10여 명이 크게 다치는 참상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영어를 가르칠 시간에 서로 양보하고 질서를 지키는 공동체생활의 집단훈련이라도 가르쳤어야 했다.
그런가 하면 학원측에서는 또 입을 모아 이렇게 불평한다.
‘전국 초등학생 3백 80만여 명 중 사설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는 학생은 10퍼센트 정도로 이 비율은 90년대 들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95년 이후에 외국어학원에는 성인과 대학생보다 초등학생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런데 그 바로 다음에는 ‘전국 1천 9백여 개에 이르는 외국어학원들은 연간 3천억 원 규모의 초등학교 영어시장을 놓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동정인지 빈정거림인지 모를 기사가 있다.
수요공급의 원칙은 불변의 진리이다. 꼬마들을 억지로 끌고 오는 어머니들의 욕망을 채우기에는 오히려 학원의 의지가 모자랄 것이다. 평생교육의 마당이 되어야 할 학원이 어린이의 놀이터로 바뀌게 되었으니 주객이 전도된 셈이로되 어찌할 것인가?
그러나 천하태평 교육부는 근엄한 목소리를 가다듬고 일갈하고 계신다.
‘법률에 따라 정규 교과로 편입된 영어의 과외교습을 금지했으며, 이는 초등학교에서의 영어교육 정착과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 감소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다.’
‘초등학생의 영어과외 허용여부를 놓고 여론을 수렴했으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단계적 금지라는 절충안을 채택한 것이다. 초등학교 영어교과 진행을 지켜본 뒤 상반기 중 영어교육에 관한 종합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라고 아리송한 말을 하고 있다. 국어공부를 소홀히 한 사람의 현학적 표현이다. 먼저 말씨부터 쉽게 풀어보자.
‘법률로 교과목에 넣은 영어의 과외공부를 막았으며, 이것은 초등학교에서 영어교육이 바로 되고, 학부모의 사교육비를 덜어드리기 위해 한 일’이라고 하면 좋을 것을 뭐 그리 어렵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또 ‘초등학생의 영어과외를 인정해도 좋은지 여론을 들어보았으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잠시 그만두게 한 것이다. 초등학교의 영어교육을 지켜본 뒤에 8월까지 이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상반기중 … 할 계획이라’니 그런 아리송한 말로 얼버무릴 수야 없지 아니한가?
아무튼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교과목에 넣은 것이 큰 잘못이었다.
이는 한보사태로 나라의 경제가 휘청거리게 된 것보다 더 근본적인 과오였다. 이 나라 국민들의 얼빼기에 나선 얼뜨기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저지른 잘못 때문에 모든 어린이들이 골탕먹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영어를 배웠다고 “헬로 마미!”라고 제 어미에게 말을 걸어왔다고 치자. 그때 “오우, 마이 도터”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그 어머니를 능멸하지 않겠는가?
영어는 중학교 때부터 배워도 늦지 않다. 일본사람들도 초등학교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우리나라를 알 수 없는 나라라고 한다.
물론 미국이나 영국에서야 나면서부터 영어를 배워야 하겠지. 그러나 비영어권의 어느 나라가 자국어의 교육을 소홀히 하고 영어교육에 혈안이 되고 있다는 말인가?
‘언 손 불기’와도 같은 영어조기교육을 집어치우자. 교육부가 얼밋얼밋 엉너리를 부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얼을 지키고, 어린이의 건강을 지키고, 어머니의 자애를 지키고, 가정의 경제를 지키고, 나라의 독립을 지키고, 역사와 전통의 광영을 지키자.(1997)
얼빠진 사람들
얼빠진 사람들
요즈음 국제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이제는 국제화에 맞추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면 일찍이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갖는 이들이 전체 국민의 몇 퍼센트나 될지 엄밀히 따져 보아야 하겠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른바 지도자로 자처하는 이들 중에 어려서 영어를 배워야만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얼간이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며 잇속을 챙기려다 실속을 잃는 결과를 짐작할 수 없는 바보들이다.
초등학교의 교육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 무엇보다도 국민으로서의 사람됨을 기르는 것이다. 한국사람을 길러내어 올바른 국민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국어, 산수, 사회생활, 자연, 음악, 체육, 미술 등 교과 과목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민성을 터득하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국어의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를 충실히 가르침으로써 모국어에 대한 사랑과 아울러 나라사랑의 마음을 심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예절과 도덕을 가르쳐 세계의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도 당당한 국민성을 지니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초등학교의 모든 교과 내용은 국민정신의 함양과 국민적 자질의 향상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
아직 제 나라의 말과 역사에도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한 어린이들에게 외국어와 외국문화를 서둘러 가르치자는 것은 성급한 장사꾼들의 얄팍한 잇속챙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 어린이들이 영어를 잘 배웠다고 치자. 크게 잘못되면 외국문화를 숭배하는 사대주의자가 되고, 작게 못되면 껌팔이나 외국인의 길잡이 노릇이 고작이 아니겠는가?
국제화란 말뜻부터 알아야 한다. 국제화란 국가와 국가간의 대등한 관계유지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결코 다른 국가에 대한 자국의 예속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국제어인 영어를 잘해야 할 사람들은 외국인과 자주 접촉하는 한정된 사람들이다. 지금도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영어, 독어, 불어 등 필요에 따라 교육은 해오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는 교육 방법의 잘못으로 외국어의 실용성에 결함이 있었다고 치자. 그럼 그들에게 가르치는 방법을 개선하면 될 것이다.
어린이들에게까지 그 굴레를 뒤집어 씌워 국적없는 국민을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구판 모화주의자들이 상존하고 있는 터에, 이젠 영어를 가르치자는 신판 사대주의자들이 대두하고 있다. 이건 한국의 비극이요, 얼빠진 사람들의 잠꼬대이다.
대체로 한자나 영어를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치고 한글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제대로 아는 이가 많지 않다. 그들은 제나라 말글을 모르면서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른다. 그러면서 언필칭 국제화를 외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분명히 안 다음에 다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제것을 똑바로 알고서 남의 것을 배워야 한다. 제 나라 역사와 문화를 익히기도 전에 남의 나라 역사와 문화를 배운다면 그 사람의 국적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 것인가? 어엿한 한국민의 긍지를 저버리고 영어권의 노예로 전락시키려는 발상을 실천하려는 얼빠진 사람들이 있는 한, 이 나라의 독립성은 항상 위협을 받을 것이다.
독립과 고립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제 겨레다운 모습으로 홀로 우뚝 서는 일은 자주독립이요,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끊고 홀로 외로워하는 것은 고립이다. 그러나 한국민이 스스로 독립된 자리에서 이웃나라들과 대등하게 교류해야지 고립을 면하려고 자주성을 잃고 남에게 빌붙는 것은 망국민의 처신이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은 우선 한국민으로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자주독립하여 정정당당히 국제사회에 대처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1994).
첫댓글제가 쓴 한자통일 관련 글을 읽으시고 이상보 교수님께서 전에 쓰신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한자파와 재벌들이 한 통이 되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중국에 갈 때 강택민에게 한자통일을 말하게 했는데 보기 좋게 거부당했지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자파들은 끈질기게 그 일을 추진했습니다. 김영삼도 그 편을 들고요. 두 김씨가 정권 잡을 때 한글은 더 힘들었습니다.
첫댓글 제가 쓴 한자통일 관련 글을 읽으시고 이상보 교수님께서 전에 쓰신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한자파와 재벌들이 한 통이 되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중국에 갈 때 강택민에게 한자통일을 말하게 했는데 보기 좋게 거부당했지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자파들은 끈질기게 그 일을 추진했습니다. 김영삼도 그 편을 들고요. 두 김씨가 정권 잡을 때 한글은 더 힘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