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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즐기는 생활
23: 14-19
14.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7.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찌니라
18.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찌니라
19.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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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말씀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매년 세 번씩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시는 내용입니다. 절기는 명절입니다. 명절에는 맛있고 영양 있는 명절음식이 있고, 만나는 반가움이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기 힘들고 고통스런 일을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명절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잔치하면서 살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죄와 고통 가운데 눌려서 평안과 즐거움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모습이 딱해서 안식을 주려고 부르신 분입니다.
눅1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각각 삼위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 때문에 애타다가 찾은 목자는 그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와서 친구들과 잔치를 했습니다.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낸 여인은 자기 친구를 불러 잔치를 했습니다.
잃은 아들이 돌아와 품에 안은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했다고 말씀했습니다.
모두 잔치했다는 말로 끝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잔치하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현장도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칫집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누르고 억압하는 종교가 아니라 밝고 아름답고 즐거운 삶을 살게 하는 종교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시105:3)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너희 필요한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독교는 즐거운 종교, 잔칫집 같은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스런 명령을 내려서 종교가 짐이 되고 신앙이 짐이 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신앙생활이 즐거운 잔치가 되게 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은 항상 쉼을 누리고, 항상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돈을 모아도 허전하고 명예를 권력을 가져도 외롭고 명예를 얻어도 허망하고 불안하며 힘겹고 의미 없는 삶이 이어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생이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는 잔칫집 같은 즐거움과 생기가 있나요? 아니면 침체되고 외롭고 우울하고 의미 없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나요? 잔치 하는 신앙생활을 본문에서 배워봅시다.
17절에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자주 만나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추석이나 설 명절을 만나면 부모님을 찾아가 뵙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선물을 사지 못할지라도 몸으로라도 찾아뵙는 것이 자식 된 도리입니다. 그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년 최소한 세 번은 명절을 정해서 하나님을 찾아뵈러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오라는 명령입니다.
그들이 가나안땅에서 함께 살 때에는 며칠을 걸어서 예루살렘으로 다 모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리가 멀고 교통도 불편하였지만, 성전도 비좁아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는 예루살렘에 가고 얼마는 자기의 고향에서 기도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살 때에는 예루살렘에 올 수가 없었으므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그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읽고 찬양을 드리는 약식 제사를 남의 땅에서 드렸고, 포로기 이후에는 제물로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읽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회당예배가 발전하게 됩니다. 그들은 회당에 모여서 시편을 읊고 기도를 하였는데, 짐승 제사 대신에 기도를 제사로 드렸습니다.
출애굽 여행을 하는 도중에는 회막에 보였습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아무데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텐트를 지정해 주시고 내가 여기서 너희를 만나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텐트가 하나님을 만나는 회막이 된 것입니다. ‘회막’이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불렸는데, 나중에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는 성전이 회막을 대신하게 되었고,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에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성전이며 완전한 제사가 되셨습니다.
사실 구약의 제사용 짐승들은 그것이 인간의 죄를 사하는 효력을 가질 수 없었고,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오셔서 짐승처럼 죽임을 당하실 우리주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겠다.”(요2:19) 하신 것은, 당신 자신이 참 성전이시고, 구약의 성전은 당신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신 우리 성도들이 회막이요, 참 성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참된 접촉점은 예루살렘 성전이나 어느 대형 예배당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께로 가려면 내게로 와야 한다. 내가 구약이 말씀한 그 장소이고, 그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므로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만날 방법이 없다. 그러니 내게로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모일 때에는 빈손으로 오면 절대 안 되고,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 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15, 신16:16 고후 8:3). 그래서 그들은 성전에 올 때마다 손에 예물을 가지고 갔습니다.
우리도 주일마다 주일 헌금을 드립니다. 그 주간이 월급 받는 주간이 아니어서 십일조를 드리지 않을 지라도 주일마다 주일헌금을 드립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모든 것을 주시고 주장하시는 절대자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빈손’이라는 말은 빈 신앙, 빈 마음, 빈 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없는 빈 마음, 하나님을 자기의 생명의 주인으로 고백하지 않는 빈 신앙고백, 마음은 다른데 가 있으면서 빈 몸만 와서 예배하는 빈 몸을 말합니다. 손에 예물을 준비하는 것은 빈 예배를 드리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힘대로” 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물질과 형편을 따라서’ 라는 말입니다. 자기형편에서 최선을 다하는 예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최선을 다하는 헌금을 드립니까? 십일조야 최선을 다하고 말 것이 없지요. 받은 대로 십분의 일을 드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일헌금이나 선교헌금이나 구제헌금은 각자 믿음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대로’ 라는 말씀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커피 한잔도 장소에 따라 5천원 내지 2만원까지 합니다. 서서 주문을 하고 길에서 마시는 스타벅스나 커피빈에서도 사 오천원 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앞에 가서 기도하고 생명의 말씀을 받아먹고 자기의 무거운 문제들을 다 맡기면서 아직도 동전 몇 개나 천 원짜리 한 장으로 주일헌금을 한다면, 절대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너무 값싸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신앙생활을 자판기에서 음료수 빼 마시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너무 잘 아십니다.
너무 가난하면 오백원도 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주일마다 헌금 드리는 것이 아까워서, 수년째 천 원짜리 헌금을 하고 있다면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내가 바로 감사와 헌신이 들어있지 않은 빈 마음, 빈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전능하신 절대자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는 믿음만 말로 고백할 것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인 예물도 주신 힘대로 드려야 합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본문에서 무교절, 오순절, 추장절을 지키라고 하신 이 명령은 시간과 관계가 있습니다.
첫째, 무교절은 구원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절기인데, 이 절기는 과거와 관련이 있습니다.
성도는 항상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을 감사해야 하고, 지난 날에 받은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오게 된 것은 그들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크신 능력으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아무 죄도 없고 흠도 없는 어린 양이 희생당한 대가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날이 유월절 혹은 무교절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양을 잡아서 피를 문에 바르고 그 고기는 불에 구워서 먹되, 누룩을 넣지 않는 빵과 쓴 나물과 함께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누룩은 애굽에서 그들이 지은 죄를 상징했고, 쓴 나물은 지은 죄의 대가로 지금까지 받은 고통들을 의미했으며, 양 고기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는 구원자의 살을 의미했습니다. 일종의 성찬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의미 있는 음식을 먹고 있을 때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내려와 애굽의 피 없는 가정들의 장자를 치셨고, 애굽 왕은 결국 항복하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을 받은 날은 유월절이고, 나중에 그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일주일간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면서 과거의 은혜를 감사하던 절기를 무교절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두 절기는 같은 것입니다.
이 절기의 핵심은 어린양의 희생입니다.
아무 죄 없는 양이 자기들 대신 죽어서 자기를 살렸다는 것을 기억하는 명절인데, 그것은 대대손손 죄의 노예로 살면서 구원의 희망이 없었던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오셔서 죽으실 것을 예고한 사건이고,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은혜의 해방절기를 지켰던 것처럼, 우리도 은혜로 받은 구원을 기억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맥추절을 지키라는 명령은, 정착할 땅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으로, 현재 누리는 은총에 감사하라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성도는 지금 내가 하나님께 받아 누리고 있는 축복에 대하여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없는 것에 대한 불평이 아닌, 주셔서 받은 것에 대한 감사로 살아야 하고, 이것이 내일의 은혜를 준비하는 그릇이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절기는 이름이 많습니다.
초실절, 맥추절, 77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초실절 혹은 맥추절이라고 하는 이유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거기서 곡식을 거두고는 감사해서 지킨 명절인데, 보리와 밀로 제물을 삼아 드렸기 때문에 초실절 혹은 맥추절이라 하고,
77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하는 것은 어린양이 대신 죽은 유월절부터 계산하여 일곱 주간이 되는 때였기에, 일곱 주간이니까 칠칠절이라 하고, 일곱 주간이면 첫날까지 합해서 50일째니까 오순절 이라고도 부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절기도 주님의 죽으신 뒤에 후속조치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예고하는 절기입니다. 신기한 것은 인류의 어린양 되신 예수님은 그 유월절 날, 즉 어린양 잡는 그날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50일 후,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거둔 곡식을 먹으면서 새 생활을 시작한 것처럼, 어린양 되시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가 새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성령충만 이라는 영적 양식이 필요하고, 그것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구약에서 오순절은 이스라엘이 정착지의 곡식을 먹으며 영토를 가진 국가로서 새 출발을 한 날이고, 신약에서의 오순절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성령이 주시는 새 마음과 능력으로 출범한 날입니다.
따라서 이 맥추절 혹 오순절은, 오늘의 바르고 힘찬 생활을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신 은혜를 감사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날마다 필요한 것으로 채우시고 함께하시며 인도하려고 성령을 보내주신 은혜에 대하여 날마다 감사하며, 성령 충만하여 살라는 명령입니다.
셋째, 수장절은 미래와 관계가 있습니다. 수장절은 이스라엘이 가을걷이를 마치고 지키는 축제로서,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도 인도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과거 애굽에서 살 때는 노예로 살았기 때문에 소유가 없었으니 자기 양식을 쌓아 놓고 편하게 쉴 꿈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광야생활을 하던 40년 동안도 날마다 이삿짐 보따리 싸들고 여행을 해야 했기에 창고를 짓고 추수한 곡식을 쌓아 놓고 여유 있게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에 들여보내 주셔서 정착했습니다.
농사를 지어 곡식을 거두어 창고에 넣었습니다. 이제는 내일 먹을 양식을 염려하지 않고 발을 쭉 뻗고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래가 보장된 이런 삶을 누가 만들어 주셨습니까?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컸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내일도 지켜주실 것을 생각하니 감사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키는 절기가 수장절 혹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러니까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확신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절기를 지킬 때는 각자 집안에서 편안히 소파에 앉아서 지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집에서 나가서 밖에 천막을 쳤습니다. “우리는 과거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런 생활을 했지,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안락한 생활을 하게 해 주신거야, 얼마나 감사하니?” 하면서 자녀들에게 과거의 은혜를 들려주고, 하나님께서 앞날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집 밖에 나가서 초막을 짓고 일주일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풍요와 평안을 내일도 지속하려면, 오늘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더 철저히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자녀에게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장절, 혹은 추수감사절은 미래를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를 일부러 잊으려고 하고 감추려고 합니다. 지독한 고생을 한 사람이 조금 살만 해 지면, 옛날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면서 자기 과거를 누가 알까 봐서 아무도 모르는 동네로 가서는,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라도 되는 듯이 행세합니다. 그러면서 옛날에 자기처럼 오늘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짓밟으며 하나님께 등을 돌립니다. 그래서 축복이 대를 잇지 못하고 쉽게 끝나는 것입니다. 그 누구라도 과거의 고난과 은혜를 잊어버리면, 당연히 사치와 방종과 무분별한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에 과거를 묻어두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쉽게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사는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에 새겨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사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고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축복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이런 명절들이 이스라엘이 생각해 내서 지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셨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계속해서 은혜 받는 백성이 되게 하려고, 어리석고 배은망덕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려고, 후손에게도 복을 계속해서 주시려고, 이런 제도들을 자세히 만들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복된 민족이 된 것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한다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단 마음으로 순종합시다.
이런 명절을 지키며 제사를 드릴 때에 주의할 몇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희생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라.”
희생제물이란, 죄인을 대신해서 비참하게 죽는 짐승을 말하는데,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비참하게 제물로 드려진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제물을 드릴 때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유교병이란 누룩이 들어간 떡, 즉 죄가 제거되지 아니한 삶, 아직도 죄로 범벅이 되어있는 생활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희생제물을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라는 말씀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죄악을 회개하지 않은 채로, 죄로 범벅된 모습 그대로 가지고 와서 예수를 믿는 척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교회에 나오면서 죄도 회개하지 않고 더러운 몸으로 거룩한 주님을 만나는 것은 모독하는 짓이며,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절기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마지못해서 하지 말고 예배드리기를 힘쓰라는 말이며,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고는 뒤로 미루며 질질 끌지 말고 하나님의 일부터 먼저 하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네가 염려하는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등의 문제는 내가 책임져주마”하시는 말씀입니다. 자기에게 돈이 되는 일은 열심히 하면서 헌신해야 하는 하나님의 일은 게을리 미적거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있으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당연히 복음을 전하여 이웃의 영혼을 구하는 일입니다. 전도 먼저 하는 성도가 됩시다.
19절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리라”
이 말씀은 무엇일까요?
열매를 거둘 때마다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고, 이것은 십일조를 드리는 정신과 같은 것입니다.
처음 익은 곡식을 하나님께 바치면 곡식은 ‘소제’ 라는 제사에 사용했는데, 소제는 많은 곡식제물 중에서 한웅큼만 제단에 태워 제물로 삼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어 양식으로 먹게 하셨습니다. 즉 소제라는 것은 자세히 알아보면 그 당시 제사장들의 양식으로 바치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만 아닙니다. 번제나 화목제는 짐승을 바치는 제사였는데 그때도 짐승을 전부 태워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기름과 간과 꺼풀을 태웁니다. 그리고 오른쪽 넓적다리 같은 좋은 고기는 제사장에게, 나머지는 레위인에게 드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양식이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짐승 고기를 잡수시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백성들을 이끄는 당신의 종들이 먹을 것은 챙기십니다. 우리도 명심해야 합니다. 구제 봉사 선교도 중요하지만, 내 교회에서 일하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공급해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백성들이 십일조와 제물 바치기를 게을리 했을 때, 제사장은 먹을 것이 없어서 제사에 전념하지 못하고 남의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야 했고, 그러면 자기 집 일을 하며 품삯 받는 제사장을 존경할 리가 없고,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리 없습니다. 결국 백성들은 하나님을 점점 떠나서 죄악에 빠졌으며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말았습니다. 제사장들의 생활을 책임지는 일은 자신들의 축복을 위한 당연한 일입니다.
“염소 새끼를 그 어미젖으로 삶지 말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요즘 TV는 맛있는 음식 소개하는 코너가 점령했습니다. 얼마나 호들갑스럽게 별미를 소개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염소 새끼 요리를 소개하면서 어미젖으로 삶아서 이렇게 맛있다고 소개하면 대박을 터뜨릴지도 모릅니다. 염소 새끼를 삶아 먹으면서 제 어미의 젖으로 새끼를 삶는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행동입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상식을 벗어나는 비인격적이고 무자비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레 22:28에 보면 “암소나 암양을 무론하고 어미와 새끼를 동일에 잡지 말지니라.”하셨고,
신 22:6에는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성도가 세상을 살면서 물질이나 세상 환경을 남의 물건 대하듯이 하지 말고 내가 세상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행동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남의 수박밭에서 서리하는 사람은 수박 넝쿨이 밟히든지 말든지 수박 한 덩이 훔쳐 먹으면 되지만, 농부는 넝쿨이 상할까봐서 얼마나 조심하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관리를 맡은 인간이 하늘과 바다와 환경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주인답게 처신하라는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바다의 생선을 잡으면서도 다 자란 것만 잡아서 어장이 고갈되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모든 생활에서 품위 있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며, 불신자에게도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만 잘 드리면 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서 그의 생활이 하나님께 제사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지난날의 은혜를 잊지 말고, 오늘의 축복을 감사하며, 미래도 하나님께 맡겨 드리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라는 명령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이 귀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면 누구나, 매일, 명절처럼 행복해집니다. 늘 감사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로 날마다 마음속에 잔치의 즐거움이 계속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