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기법(20)-맥주 세 병 안주 하나
-시키지 말고 하라 -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번거롭고 귀찮은 일은 몸소 하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시키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이가 들고 몸이 고달플수록, 직급이 올라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진다. 이런 생각이 은연중 반영된 것일까? 문장에서도 ‘~시키다’가 자주 등장한다.
①천연자원이 빈약한 한국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자금을 집중시켜야 한다.(→…자금을 집중해야 한다) ②민주당이 통일·환경부 장관의 사퇴를 관철시키기 위해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준동의안 처리를 미뤘다.(→…관철하기 위해…) 접미사 ‘~시키다’는 어떤 명사 밑에 붙어 ‘(남으로 하여금) ~하게 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자기가 직접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키다’형의 문장에는 주어 이외에 실제로 행위를 하는 다른 주체가 있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하다’면 충분할 자리에 ‘~시키다’를 쓰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어렵게 주차한 뒤 “주차시키느라 힘들었다”고 흔히 말한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다른 사람에게 시켜 주차하는 것이 힘들었다’는 뜻이다. 대신 주차한 사람이 운전에 미숙했거나, 아무도 주차를 대신해 주겠다고 나서지 않아 사람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을 때 쓸 수 있다. 취지대로라면 “주차하느라 힘들었다”가 올바른 표현이다.
엄마가 아이를 혼내면서 하는 말 “거짓말시키지 마”도 마찬가지다. 글자 뜻으로는 ‘내가 거짓말을 하게 하지 마’가 된다. 거짓말의 주체가 아이가 아니라 엄마가 되는 것이다. ‘~시키다’를 바르게 사용한 예문을 보자. 이제 아이들을 결혼시킬 나이가 됐어. 인종 편견과 차별이 심한 미국 사회에서 흑인 대통령 탄생은 생각만으로도 여러 사람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아이들을 제대로 공부시키려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
‘~시키다’가 붙은 말 중에서 잘못 쓰기 쉬운 예를 알아보자.
개선시키다,
격추시키다,
금지시키다,
불식시키다,
압축시키다,
연결시키다,
연장시키다,
유출시키다,
전파시키다,
접목시키다,
접수시키다,
제외시키다,
차단시키다,
척결시키다,
폐지시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