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검단 민간인학살지 원혼비설치및 위령제및 역사탐방에 맞이하여
추분이 지나고 한결 선선한바람이불어오는 가을을맞이하였습니다. 그동안 코로나역병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유족활동을 정상적으로 진행하지못하였습니다. 이제 중단되었던 민간인학살지를 탐방하며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였던 조부모형제의 넋을 찾아 이름없는 원혼백비와 위령제를봉행하고 혼백을 달래주고 진실화해위원회의실체적 진실규명을요구할것입니다.
우리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는 2018년부터 지금까지 전국 50여개민간인학살지에 원혼백비와 위령제를 봉행하였습니다.
인천광역시는 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로 한반도 중서부, 남한 최북서단에 위치하며, 서울특별시, 경기도와 함께 수도권을 형성한다. 그리고 위의 명소들을 보면 알겠지만 대한민국을 찾는 외국인 여행객 대부분이 가장 먼저 발을 딛는 대한민국의 관문이기도 합니다.
삼국시대에는 미추홀(彌鄒忽), 매소홀(買召忽)로 불리다 신라의 삼국 통일에 따라 통일 신라의 9주 5소경에 편입되어 한산주 율목군 매소홀현(買召忽縣)이 되었으며 이후 경덕왕 때 전국 지명 한화(漢化)정책에 따라 소성현(邵城縣)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고려시대에 인천 이씨 가문에서 7명의 왕비를 배출하면서 경원군, 인주 경원부로 계속하여 승격되었으며 인천 이씨의 그 유명한 별칭이 경원 이씨. 그래서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인주군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이후 조선 태종 시절에 군현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인주가 다시 경기도 인천군(후에 인천도호부로 승격)이 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인천(仁川)이란 기록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한말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개화의 도시인데, 인천항은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관계로 서양인들을 비롯한 외국인의 왕래가 잦았으며 현재도 인천 차이나타운 인근에 구한말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1989년 경기도로부터 계양[과 영종도·용유도를 편입했고, 1995년 강화군 및 옹진군, 검단을 새로 편입하면서 시역이 확장되었고 이로 인해 관할 해역이 위도 1도 경도 2도에 달하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인천이 최초인 것들조선 후기,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며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항구도시로 대한민국에서 최초인 것들이 많습니다.
- 짜장면 : 중국 산둥에서 건너온 부두 근로자인 쿠리(苦力·하역 인부)들이 인천항 부둣가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춘장에 국수를 비벼 먹던 음식이 짜장면의 시작이었다. 이후 청조계지를 중심으로 짜장면을 만들어 파는 중식음식점이 많이 생겼는데, 흔히 '원조 짜장면 집'으로 알려진 공화춘은 1905년에 문을 열었다가 83년에 폐업
- 쫄면 : 인천에서 처음 생겼는데 이건 광복 이후 1970년대이다.
- 축구, 야구 : 인천이 대한민국 최초로 도입된 지역이다. 1904년 인천항을 통해 입국한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도입. (앞서 야구를 했다고 기록이 있는 인천의 일본인 학생이 있는걸로 보아 더 빨리 됐을거라는 추측도 있음) 축구도 인천을 통해서 들어온 종목. 축구가 야구보다 더 빨리 들어왔다. 야구에 있어서 구도(球都)가 어디인가를 두고 부산과 다투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한국에서 가장 빨리 야구를 도입한 지역은 인천이라는 점이다
- 경인선 : 인천광역시와 서울특별시를 잇는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
- 경인고속도로 : 인천광역시와 서울특별시를 잇는 대한민국 최초의 고속도로
- 대불호텔: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 2018년에 복원돼 현재 역사 전시관으로 활용 중이다.
- 영화학당: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기관. 1892년 개교, 현 영화초등학교.
- 성공회 내동성당: 대한민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
- 내리교회 : 대한민국 최초의 개신교 감리회 교회
- 제물포 구락부 : 대한민국 최초의 외국인 사교클럽
- 애관극장: 대한민국 최초의 극장
- 팔미도 등대 : 대한민국 최초의 등대
- 하와이 이민: 대한민국 최초의 근현대적인 이민. 101명의 한인들을 실은 최초의 이민선은 1902년 12월 22일 인천을 출발해 1903년 1월 13일 호놀룰루에 도착하였다. 이후 1905년 일본의 제지로 미국으로의 한인 이민이 중단되기까지 총 7,226명의 한인들이 하와이에 도착하였다. 인하대학교도 인천시민들과 하와이 교포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학교로 인천의 ‘인’과 하와이의 ‘하’자에서 따왔다. 월미도에 한국이민사박물관도 있다.
- 조선인촌회사: 대한민국 최초의 성냥공장.
- 동양연초회사: 대한민국 최초의 담배공장.
- 인천탄산수제조소: 대한민국 최초의 사이다공장. 우리나라 최초의 탄산음료다.
- 존스톤별장: 대한민국 최초의 별장. 6.25전쟁 때 파괴됨.
- 통제영학당: 대한민국 최초의 해군사관학교.
- 인천기상대: 대한민국 최초의 기상대.
- 월미도 조탕: 대한민국 유일의 원조 조탕 해수탕.
- 주안염전: 대한민국 최초의 천일염전.
- 전화소: 대한민국 최초의 시외전화.
- 훈맹정음: 인천 출신 송암 박두성 선생이 만든 최초의 한글 점자.
- 새나라자동차: 대한민국 최초의 현대식 승용차 제조공장. 현 한국GM 부평공장의 전신.
- 인천시립박물관:대한민국 최초의 공립박물관.
인천으로 칭하는 단어로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한 것은 미추홀(彌鄒忽)이며] 미추홀의 홀(忽)은 고구려와 백제의 특징적인 지명어로서, 한자어 ‘성(城)’으로 쓰인다. 따라서 미추홀을 미추성으로 바꾸어 표기해도 무방한데, 실제로 광개토대왕릉비의 제2면 1행에 ‘미추성(彌鄒城)’이라는 표기가 나오고있습니다.
이후 고려 숙종(1095~1105) 때 숙종의 어머니인 인예왕후 이씨의 내향(內鄕)이었던 관계로 경원군(慶源郡)으로 개칭·승격되었다. 그 뒤 인종(1122~1146) 때에는 인종의 어머니인 순덕왕후 이씨의 내향이라 하여 인주(仁州)로 승격되었으며, 이자겸의 난으로 인주 이씨가 몰락하다시피 하였으나 공양왕 2년(1390)에 이르러 ‘칠대어향(七代御鄕)’이라 하여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는 7대 동안 고려의 왕후를 배출한 지역이라 하여 경원부(慶源府)로 한 번 더 승격되었는데, 이는 공양왕이 신종을 매개로 하여 왕권의 정통성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지만 조선왕조가 개창되면서 경원부는 고려왕조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하여 다시 인주군(仁州郡)으로 강등되었고, 태종 13년 주(州)자를 가진 도호부 이하의 군·현의 이름을 산(山), 천(川) 두 글자 중 하나로 개정토록 하여 현재의 인천으로 탄생하게 되어, 그날 (1413년 10월 15일)을 기려 ‘인천시민의 날’ 이 제정되었습니다
인천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역사에서 가장중요한 지리적조건이었기때문에서구열강의침략을 제일먼저 받은항구도시로서 우리민족의 애환을 상징하는 역사적고장입니다. 또한 한국전쟁시 가장많은 인명피해와 산업시설이 파괴되어 아픔을 겪은 비극의도시입니다. 이번 검단 민간인학살지 원혼비설치와 위령제봉행을 통하여 고혼을 달래주고 인천지방 역사탐방을 통하여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계기가되기를 바랍니다. 뜻깊은 하루되시기바라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9월월28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상임대표의장 윤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