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행화타(自行化他)의 실천
‘자행(自行)’이란 자기 자신을 위한 신심의 수행에 면려하는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화타(化他)’란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어본존의 공덕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행위입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께서는 어서에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지금 니치렌(日蓮)이 부르는 바의 제목은 전대(前代)와 달라 자행화타(自行化他)에 걸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신편어서 1595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행’과 ‘화타’의 양면에 걸친 신심의 실천이 있어야만이 숙업전환 · 일생성불의 실현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자행’에 해당되는 근행과 창제의 실천은 자기 자신의 생명을 연마하여 빛내기 위한 기본의 실천입니다. 불법에서는 어떠한 사람들의 생명에도 본래, 풍부한 생명력과 지혜 그리고 훌륭한 인간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굉장한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그 가능성을 개발해서 발휘하는 노력과 실천의 지속이 없으면 언제까지나 가능성을 숨겨진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개인적으로 행복경애의 실현을 목표로 실천에 면려하는 일이 ‘자행’에 해당되는 나날의 진지한 근행(覲行)과 창제(唱題)의 지속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생명을 정화(淨化)하며 연마하고 단련하는 것이 불도수행입니다만 우리들은 자칫하면 이기적인 면인 강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남의 행복을 희생해도 무방하다’라고 하는 생활 태도는 그 자체가 불행한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평상시에는 그것을 억제할 수 있어도 여유가 없고 쫓기는 생명의 상태가 되면 무심코 추한 이기적인 생활 태도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칫하면 이기적인 경향에 빠지기 쉬운 자기의 한계성을 타파하여 보다 높고 넓은 경애로 자기 자신을 변혁해 가는 실천이 ‘화타’에 해당합니다.
이 ‘화타’의 실천은 불행과 고뇌에 시달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불법의 자비의 정신을 일분이라도 나타내려고 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화타’의 행위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절복(折伏)과 홍교(弘敎)의 실천이 됩니다. 진실한 행복을 실현케 하는 근본법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어본존을 신수(信受)하게 하는 이외에 없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도 이상적인 인생이란 자기 자신이 나날이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성장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생활 태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께서는 ‘자행’과 ‘화타’ 중에 어느 것이라도 실천이 결여되면 인간의 진실한 행복은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올바른 성장과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 이상적인 생활방식을 관철할 수 있는 신심이야말로 ‘자행화타에 걸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다’라고 가르쳐 주신 대성인의 불법의 올바른 실천입니다.
2024년 『진정묘흥(眞正妙興)의 해』 삼대활동목표에 ‘자행화타(自行化他)의 실천으로 묘법(妙法)을 흥륭[(興隆): 기운차게 일어나 매우 번성함]시키자’라고 있듯이 자행(自行), 진지한 근행과 창제를 지속하고, 화타(化他), 절복과 홍교를 실천하여 묘법을 흥륭(興隆)시키는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