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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예언의 신 인용구들/Ellen G. White Notes)
(1) 이 자료는 대총회 안교부가 매기마다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매일의 공부 내용과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력과 신선한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해 출판하는 보충교재 [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예언의 신 인용구들을 한글판으로 바꾼 것입니다. (아직 한글번역본이 없는 예언의 신 인용구는 게시자가 번역함)
(2) [활용방법] 매일의 교과를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5년 1기 –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God’s Love and Justice>
제11과 내가 무엇을 더할 수 있겠느냐?
예언의 신 보충자료
<3월 8일/안, 서론>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예수님은 자신의 일하는 방법과 그를 참소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방법을 대조하셨다. 이날 한밤중에 폭도들이 예수님을 포박한 일, 그가 기소를 당하여 정죄함을 받기도 전에 당한 심한 조롱과 모욕 등은 그들의 일하는 방법이었다. 그분이 하는 일은 모든 사람 앞에 공개되었다. 그의 가르침 속에는 숨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분은 그들의 태도를 꾸짖으시고 사두개인들이 쓰고 있는 위선의 탈을 벗기셨다.
사람들이 진리가 요구하는 바를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분의 입술에서 진리의 힘이 약해진 때가 없었고 그분의 손에만 진리가 머물러 있었던 적이 결코 없었다. 그리스도는 “내가 이를 위하여 왔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라고 선언하셨다. 강력한 진리의 원칙들이 새로운 계시의 신선함을 지닌 그대로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그분은 진리의 중요성과 그 성공 여부에 좌우되는 중대한 결과에 따라 열렬하게 진리를 말씀하셨다. (화잇주석, 요 18:20~21, 18:37)
◎ 우리의 대리자요 보증인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우리 모두의 죄가 놓여졌다. 우리를 율법의 정죄에서 구속하려고 그분은 범죄자로 헤아림을 받으셨다. 아담의 모든 자손의 죄가 그분의 마음을 눌렀다. 불법으로 인하여 생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하심, 곧 그분의 무서운 진노가 그분 아들의 영혼을 전율하게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온 생애를 통하여 타락한 세상에 아버지의 자비와 용서하시는 사랑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하셨다. 죄인들의 괴수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 그분의 과제였다. 그러나 이제 그분이 지신 죄의 엄청난 무게로 인하여 그분은 화해를 나타내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 최대의 고뇌의 시간에 구주께로부터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돌리심으로 인간이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그분의 마음을 찔렀다. 이 고뇌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분은 육체적 고통을 거의 느낄 수 없으셨다. (소망, 753)
◎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감으로써만 안전하게 된다. 그 길은 점점 더 명백해지고 밝아져서 완전한 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협력해서 일해야만 한다. 혼자서는 겉보기에 가장 안전한 길에서 그의 발은 미끄러질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지혜만으로는 한 걸음도 안전하게 걸을 수 없다. 우리가 두려움 없이 걷고 싶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 우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함으로써만 이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분께 의존하고 있음을 느끼고, 최대한 구원할 수 있는 그 손, 고통받는 인류의 호소에 응답하여 고동치는 그 마음을 신뢰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인간을 의뢰하지 말며, 우리의 육체를 우리의 팔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생명으로 따뜻한 그분의 손안에, 무력한 자를 위한 사랑으로 고동치는 그분의 마음을 신뢰해야만 한다. (하늘에, 258)
<3월 9일/일, 승리하신 그리스도>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그[사단]는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고 그분의 지혜를 의심하도록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는 불경한 호기심의 정신, 하나님의 지혜와 권세의 비밀을 꿰뚫어 보고자 하는 끊임없이 캐묻기를 좋아하는 욕망을 일으키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 많은 무리는 하나님께서 보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신 것들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구원에 필수 불가결한 진리는 간과해 버린다. 사단은 사람들로 그들이 놀라운 지식의 분야로 들어가고 있다고 믿게 하여 그들을 불순종하도록 유혹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기만이다. 진보한다는 생각에 의기양양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요구를 짓밟음으로 타락과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에 그들의 발을 들여놓고 있다. (부조, 54-55)
◎ 이 영광스러운 본체[그리스도]는 불쌍한 죄인을 사랑하셨으며 스스로 종의 형체를 취하셨고, 사람을 위해 고통당하시고 죽고자 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왕관과 왕복을 입으신 채 그분의 아버지 오른편에 남아 계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이 모든 부와 영예와 하늘의 영광을 인간의 가난함과 바꾸셨으며, 그분의 높은 사령관의 자리를 겟세마네의 두려움과 갈바리의 겸손과 고뇌로 바꾸셨다. 그분은 슬픔과 질고를 아는 자가 되셨으며, 그분의 고통과 피의 침례로 죄된 세상을 정결하게 하시고 구속하고자 하셨다. …
그리스도께서도 예루살렘 문밖에서 고통을 당하셨는데, 왜냐하면 갈바리는 성벽 밖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히브리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분은 자신이 그들의 구속주가 되시기 위해 오셨으며, 그분이 그들에게 제공하는 구원을 받아들일 것을 강권한다고 타락한 세상에 선포하신다. …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4증언, 121)
◎ 하나님의 정부는 사단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맹목적 굴종이나 무리한 제재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정부는 지성과 양심에 호소한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 함은 조물주께서 그가 만드신 피조물에게 하신 초청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의 의사를 강제하지 않으신다. 그는 기꺼이 그리고 지성적으로 드리지 않는 경배는 받으실 수 없다. 다만 억지로 굴종하는 것은 마음과 품성의 진정한 계발을 방해할 것이요 사람으로 한갖 자동인형이 되게 할 것이다. 이것은 조물주의 뜻이 아니다. 그는 당신의 창조력의 극치인 사람이 가능한 최고 한도까지 발달되기를 원하시는 최고의 축복을 우리 앞에 놓으셨다. 그는 당신의 뜻을 우리 안에서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당신께 바치기를 청하신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죄의 속박에서 놓일 것인가의 여부는 우리 선택에 달렸다. (정로, 43-44)
<3월 10일/월, 의로우시며 의롭게 하시는 분>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그리스도의 속죄는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는 잘 고안된 방법일 뿐만 아니라, 범죄의 치료와 영적 건강의 회복을 위해서 내리신 하나님의 처방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 위에 입혀지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머물러 있게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 수 있는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고, 하나님과 협력할 때 우리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광야에 나가셔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그분은 배고픔이 무엇이며 목마름이 어떤 것임을 아신다. 그분은 육신이 허약하여 힘이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아신다. 그분은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우리의 구주께서 우리의 보석금을 지불하셨다. 아무도 사단의 종이 될 필요가 없다. 주께서는 우리의 거룩하신 모본이요 전능하신 조력자로서 우리 앞에 계신다. 그분은 우리를 헤아릴 수 없는 값으로 사셨다. 누가 구속하시는 사랑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측량할 수 있겠는가. (화잇주석, 롬 5:11; 5:12-19)
◎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바라신다는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증거는 하늘의 선물을 거절한 자들에게 정죄함이 될 것이다. 순종과 불순종에 따라 상급이나 혹은 형벌이 만인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큰 날에 갈바리의 십자가는 온 세상의 재판장 앞에 영원한 선고를 받기 위해 서 있는 자들 앞에 분명히 나타나게 될 것이다. …
하늘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선악간의 투쟁을 주시하고 있다. 순종하는 자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나님의 성문에 들어갈 수 없다. 계속 죄를 범하기로 선택하는 자는 최후에 사형선고가 내려질 것이다. 세상은 그들의 위법과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에서 깨끗해질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의 품성의 사본이다. … 주님께서 주신 생명의 법칙은 사람들을 순수하고 행복하고 거룩하게 만들 것이다. 이 법칙을 수종하는 사람들만 그리스도의 입술에서 "더 높이 올라오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 (하늘에, 361)
◎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능력을 나타내실 때마다 사단은 몹시 증오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역사하실 때마다 사단은 자기의 부하들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세력을 가다듬어 활동한다. … 그는 그들의 경우는 전혀 소망이 없으며 그들의 더러운 얼룩을 도무지 씻어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해서 그들의 심령을 위협하려고 애쓴다. 그는 그들의 믿음을 파괴해서 그들로 자기의 시험에 완전히 굴복하도록 하고 또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절을 버리도록 한다.
주의 백성은 그들 스스로 사단의 비난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 그들이 자신을 바라볼 때 낙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의 중보자께 탄원하고 구주의 공로를 의지하여 간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롬 3:26)라고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께서 사단의 참소를 침묵시키고 그의 계책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주께 부르짖는다. …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크신 공로를 내세우셔서 대담한 참소자(사단)를 침묵시키신다. (실물, 168~169)
<3월 11일/화, 나의 사랑하는 자의 노래> 예언의 신 보충자료
◎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사 열매를 찾으셨으나 얻지 못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땅을 황폐케 하는 자들이었다. 이 백성의 존재가 오히려 저주가 되었다. 그 이유는 이 백성이 열매 맺을 다른 나무가 차지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백성이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시는 축복을 빼앗아 갔다.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올바로 소개하지 못했다. 그들은 단순히 쓸데없는 물건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의 결정적인 방해물이 되었다. 그들의 종교는 사람들을 너무나 잘못 인도해서 그들을 구원하는 대신에 멸망시키고 있었다.
비유 속에서 포도원지기는 그 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어 버리겠다는 선고에 대하여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열매 없는 나무에 대하여 포도원 주인의 관심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 나무가 잘 자라서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을 보는 것보다 그를 더 기쁘게 해주는 것은 없었다. 그는 그 포도원 주인의 요구에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라고 하였다.
포도원지기는 그처럼 희망이 없어 보이는 나무이지만 가꾸기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나무에 더 많은 손질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포도원의 환경을 가장 좋게 만들고 온갖 주의를 다 기울일 것이다. (실물, 215-216)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팔레스틴 언덕에 이 좋은 포도나무를 심으시고 그분은 친히 농부가 되셨다. 많은 사람이 이 포도나무의 아름다움에 이끌리어 이것은 하늘에서 온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는 이것이 마른 땅에서 솟아난 뿌리처럼 보였다. 그들은 이 나무를 꺾어서 그들의 거룩하지 못한 발로 짓밟았다. 그들의 생각은 이것을 영원히 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늘 농부께서는 그분의 나무를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다. 사람들이 저희가 이를 죽였다고 생각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취하여 성벽 다른 편에 다시 심으셨다. 포도나무 그루터기가 다시는 더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사람들의 난폭한 공격으로부터 감추인 바 되었다. 그러나 포도나무의 가지들은 성벽 위에 걸렸다. 이것들은 포도나무를 대표해야 할 것이었다. 그 가지들을 통하여 접붙이는 가지는 아직도 그 포도나무에 연결될 수 있었다. 그것들로부터 열매를 얻어 왔다. 거기는 통행인들이 따먹을 수확이 있었다. (소망, 675)
◎ 이와 같은 고난을 겪도록 그분의 아들을 주신 것보다 더 큰 사랑의 증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겠는가?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은 값없이 제공되었고 그분의 사랑은 무한한 것처럼 우리의 신뢰, 순종, 온 마음과 풍부한 애정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도 무한하다. 그분께서는 인간이 바칠 수 있는 것은 모두 요구하신다.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의 선물에 비례 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완전하고 부족한 것이 없어야 한다. 그분은 우리 자신을 즐겨 완전한 희생 제물로 드리지 않고는 충족될 수 없는 요구를 우리에게 하신다. 그분은 신속하고 즐거운 마음에서의 순종을 요구하시며, 이보다 못한 것은 아무것도 받지 않으실 것이다. (3증언, 369)
<3월 12일/수,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이 비유는 주님의 사업에서 책임을 부여받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한 백성을 택하셔서 그리스도의 교육을 받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저들을 광야로 데리고 가 당신의 봉사를 위해 훈련을 받게 하셨으며 그곳에서 최고의 도덕법, 곧 당신의 거룩한 율법을 저들에게 주셨다. 저들은 하나님의 교과서인 구약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는 구름기둥 속에 둘러싸이신 채 저들을 광야 여행으로 끌어들이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권능으로 들포도를 애굽에서 당신의 포도원으로 이식하셨다. 하나님께서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사 5:4)라고 하신 말씀은 일리가 있는 질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가 기록된 것은 세상의 끝을 가까이 두고 있는 우리에게 경고와 교훈을 주기 위해서이다. 이 마지막 날에 믿음 안에 굳건히 서서 마침내 하늘의 가나안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경고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광야에 있는 교회에 주어진 이 교훈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세대를 거쳐 영원히 연구하고 귀담아들어야 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경험하는 것은 이 시대에 하나님 백성의 경험이 될 것이다. 성도들에게 한 번 전해진 진리는 믿음을 굳게 붙잡는 자들에게 모든 시대에 안전장치이다. (하늘을 향하여, 232)
◎ 유대인들도 마음만 있었으면 회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독선의 옷을 입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주장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언약을 그들의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회개한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아브라함의 혈통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늘을 향하여, 80)
◎ 몸과 마음이 다 가장 격심한 고통을 겪으시면서도 다른 사람만을 생각하시고 참회하는 영혼을 믿도록 격려하시는 무한하신 사랑의 예수님을 천사들은 놀라움으로 바라보았다. 그분은 굴욕을 받으시면서도 선지자로서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말씀하셨고, 제사장과 대언자로 그분은 당신을 살해하는 자들을 용서해 주시도록 아버지께 간청하셨다. 그분은 또 사랑하시는 구주로서 참회하는 도둑을 용서하신 것이다. …
이제 영광의 주께서는 인류를 위한 대속물로서 운명하고 계셨다. 그분의 귀중한 생명을 거두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승리의 기쁨으로 들뜨지 않으셨다. 모든 것은 숨이 막힐 듯이 침울했다. 그분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죽음의 공포가 아니었다. 그분에게 말할 수 없는 고뇌를 자아내게 한 것은 십자가의 고통과 치욕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통당하는 자 중에 제 일인자이셨으나 그분의 고통은 죄의 유해성을 느끼는 데서 오는 고통, 인간이 죄에 익숙해 있기에 죄의 흉악성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고통이었다. 죄가 인간의 마음속에 너무나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과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나오려는 사람은 너무도 적다는 것을 그리스도께서는 아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인간이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셨고, 수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셨다. (소망, 752-753)
<3월 13일/목, 하나님의 이름을 입증함>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죄로 인해 타락한 인류는 더 이상 자신들의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직접 갈 수 없게 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죄가 거룩한 하나님과 범죄자 사이에 통과할 수 없는 장벽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의 선고가 대속물에게 내리도록 한 계획이 세워졌다. 구속의 계획에는 피 흘림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죽음은 인류의 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희생 제물로 사용되는 짐승은 그리스도를 예시하는 것이다. 희생 제물을 통해 인류는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희생 제물에서 흐르는 피는 또한 속죄를 나타낸다. 동물의 피에는 아무런 효력이 없지만, 그 피는 인류의 죄를 위하여 장차 이 세상에 오셔서 돌아가실 구속주를 가리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하늘 아버지의 율법을 완전하게 증거 하실 것이다. (대결, 21)
◎ 그분의 수고와 희생의 생애 동안 무엇이 하나님의 아들을 붙들어 주었는가? 하나님의 아들은 당신의 영혼의 수고의 결과를 보시고 만족히 여기셨다. 영원을 내다보신 그분은 당신의 굴욕을 통하여 용서와 영생을 얻을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보셨다. 그분은 구속받은 자들의 환호성을 들으셨다. 그분은 구속받은 자들이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으셨다.
우리는 장래 즉 복된 하늘에 대한 계시를 받을 수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그 광경을 손수 그리신 미래의 영광의 계시가 나타나 있는데 이 계시들은 당신의 교회에게 귀중하다. 믿음으로 우리는 영원한 성읍의 문 어귀에 서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협력하고 그분을 위하여 고통당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긴 자들에게 주어질 정중한 환영사를 들을 수 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오라고 하는 말이 들릴 때 그들은 구속주의 발 앞에 그들의 면류관을 내려놓고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고 부르짖는다. (마 25:34; 계 5:12~13). (행적, 601-602)
◎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사명의 결과를 보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지상 생애가 어려움과 자아 희생으로 충만해 있었지만, 그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기뻐하셨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침으로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에게 회복해 주실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진토에서 건져내어 당신 자신의 품성을 따라 우리의 품성을 새로 형성시키고 당신의 영광으로 그것을 아름답게 꾸미실 것이다. …
비록 피의 침례를 먼저 받아야 하고, 세상의 죄가 흠 없는 그분의 심령을 무겁게 누르고, 말할 수 없는 저주의 그림자가 그분 위에 덮였을지라도,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자 그 길을 택하셨다. (치료, 504)
<3월 14일/금, 더 깊은 연구>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행적, 14–16)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당신의 품성을 알리시려고 이스라엘을 택하셨다. 그분은 그들이 세상에서 구원의 샘들이 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늘의 명령, 하나님의 뜻의 계시를 위탁하셨다. 이스라엘의 초기 시대에 세상 열국들은 부패한 행습으로 인하여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한때 하나님을 알았으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롬 1:21)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셔서 그들을 멸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통하여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그분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셨다. 제사 제도의 교훈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모든 민족 앞에 높이 들릴 것이었으며 그분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은 생명을 얻게 될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사 제도의 기초이셨다. 모든 표상과 상징들의 체계는 복음이 압축되어 있는 예언이었고 구속의 약속들이 묶여져 있는 표상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대표자로서의 그들의 고상한 특권을 분별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었으며 그들의 거룩한 사명을 완수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들은 받은 축복을 세상에 나누어 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 모든 이점을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들은 유혹을 피하려고 세상과 담을 쌓았다. 그들은 이방인의 행습에 동화되는 것을 막는 방편으로 하나님께서 우상숭배자들과의 교제에 가하신 제재를 그들과 다른 모든 민족 사이에 장벽을 쌓는 데 사용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신 예배를 도둑질하였으며, 동료 인간들에게 신앙적인 지도와 거룩한 모본을 제공하지 않았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의식 존중의 틀에 매여 있었다. 율법적인 신앙에 만족하였으므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늘의 산 진리를 전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그들의 신앙이 새롭게 되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그들의 공로와는 상관이 없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선행의 공로와 연결시켰다.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순결하게 하는 믿음은 의식들이나 인간의 명령들로 이루어진 바리새인들의 신앙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렇게 선언하셨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렘 2:21). “이스라엘은 열매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호 10:1).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 하셨으니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사 5:3-7).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여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겔 34:4).
유대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지도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지혜롭고 구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의로우며,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광이 필요 없을 정도로 큰 영광을 가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구주께서는 그들이 남용한 특권과 그들이 경시한 사업을 그들에게서 거두어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셨다.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나야 했고 당신의 말씀은 확증되어야 하였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세상에 세워져야만 하였다. 하나님의 구원이 무수한 도시들에 전파되어야 하였으므로 유대 지도자들이 실패한 그 사업을 하도록 제자들이 부르심을 받았다.
◎ “내가 무엇을 더 해주랴?” (높힘, 216).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마 21:37).
우리가 영원한 세계의 변경에 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우리의 감각을 붙들어줄 만한 능력은 없는가? 우리는 다른 편에 우리의 마음을 둘 수가 없는가? 우리 백성들을 깨우기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환난의 경한 것은 왜 있으며 어떻게 그것에 대해서 우리는 말하고 있는가? 바울은 그것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매맞음과 밤낮으로 바다의 깊음 가운데 있고 배고픔과 추위와 헐벗음의 고생을 당하며 거짓 형제로부터의 위험, 이러한 모든 것이 가벼운 환난인가? 그러나 그는 “이 환난의 경한 것들”이라고 하였다. …
필요 이상으로 자기 자신이 살아 있다. 우리가 자신을 죽이고 그리스도 안에 숨고자 하면 낙심천만의 말을 하지 않을 것이며 역경이나 그와 유사한 하찮은 곤경 등의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위대한 구속의 경륜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며 이 세상에 오셔서 인성을 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할데 없는 능력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높이 들어올려져서 그분의 오른편에 앉게 되는 것도 그분의 능력 때문이다.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만일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면, 하늘은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내 양을 위하여 무엇을 더 해주랴.” 무엇을 더 하실 수 있을까? 그분이 우리를 버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향한 그대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일을 하실 것이다. 우리가 받은 빛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시니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자. …
악한 추측과 악한 말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 자신만 생각하고 우리 자신이 행한 일만 입에 올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하고 계신 일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 두 분께서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 그분들은 성소를 정결하게 하고 계시다. … 우리는 마땅히 이 사업에 참여해서 그분과 함께 우리 영혼의 성소에 있는 불의를 모두 정결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아름다운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쓰여지기를 바라기 때문에도 그렇고 주님의 임재하심으로부터 새롭게 함이 이를 때에 우리의 죄가 도말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도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죽을 인생에게 가장 중대한 일이다.
그대에게는 자아를 찬양할 시간이 없다. 지금은 [오직] 예수님을 높여야 할 때이다. 오 그분을 높이자!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구원하고 우리 자신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가? … 양 떼의 목자가 말한다. [인용구 누락]. 그는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인가? 목회자들?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아는 모든 사람이다. …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을 그대에게 주셨으며 당신의 신성을 우리 인간의 노력과 결합시키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운 마음과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다. 사단이 저항하거나 전복시킬 수 없는 것이 이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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