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속의 너트
정숙자
꽃 속에 너트가 있다(면
혹자는 못 믿을지도 몰라. 하지만 꽃 속엔 분명 너트가 있지. 그것도 아주아주 섬세하고 뜨겁고 총명한 너트가 말이야.)
난 평생토록 꽃 속의 너트를 봐 왔어(라고 말하면
혹자는 내 뇌를 의심하겠지. 하지만 나는 정신이상자가 아니고 꽃 속엔 분명 너트가 있어. 혹자는 혹 반박할까? '증거를 대 봐, 어서 대 보라고!' 거참 딱하구나. 그 묘한 걸 어떻게 대 볼 수 있담.)
꽃 속에 너트가 없다면 아예 꽃 자체가 없었을 것(이야!
힘껏 되받을 수밖에. 암튼 꽃 속엔 꽉꽉 조일 수 있는 너트가 파인 게 사실이야. 더더구나 너트는 알맞게 느긋이 또는 팍팍 풀 수도 있다니까.)
꽃봉오릴 봐 봐(요
한 잎 한 잎 얼마나 단단히 조였는지. 햇살 한 올, 빗방울 하나, 바람 한 줄기, 먼 천둥소리와 구름의 이동, 별들의 애환까지도 다 모은 거야. 그리고 어느 날 은밀히 풀지.)
꽃 속의 너트를 본 이후(부터
'꽃이 피다'는 '꽃이 피-였다'예요. 어둠과 추위, 폭염과 물것 속에서도 정점을 빚어낸 탄력. 붉고 희고 노랗고 파란… 피의 승화를 꽃이라 해요. '꽃이 피다!' 그렇죠.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늘을 지우는 꽃(을
신들이 켜놓은 등불이라 부를까요? 꽃이 없다면 대낮일지라도 사뭇 침침할 겁니다. 바로 지금 한 송이 너트 안에 한 줄기 바람이 끼어드는군요. 아~ 얏~ 파도치는 황홀이 어제 없던 태양을 예인합니다.)
-전문,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중에서
<다시 읽는 시 /감상 한 마디>
이 시는 꽃의 생명력을 공구의 기능으로 상상한 시입니다
(너트는 볼트에 끼워 고정하는데 쓰는 공구입니다.)
물질문명 속에 사는 인간에게 식물의 생명력에
물질적 상상력을 부여한 시인의 사유는
놀랍습니다. 이질적인 이미지를 결합하고 있습니다.
물질에 생명을 불어넣는 범신론적인 정숙자 시인의 세계에서
생명을 물질로 변환시킨 물질세계도 보여주므로
물질 속에 사는 인간들에게 생명력을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물질주의자들이 증거를 대라고 하니 그들을 위해 너트로 비유할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햇살 한 올, 빗방울 하나, 바람 한 줄기, 먼 천둥소리와 구름의 이동, 별들의 애환까지 다 모은 거야"
조이는 것이 너트 아니더냐?
그리고 어느 날 조였던 것이 푸는 것을 보았다.
"피의 승화를 꽃이라 해요. '꽃이 피다' "
피는 피어나는 것입니다.
이 은유 속에는 언어적 유희를 너머서
생명에 대한 애착과 신념이 깃들어 있습니다.
꽃이 피는 것은 너트가 아니라 피의 힘이라고 합니다
물질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또 한 번 놀라게 합니다,
시인은 물질적 사고에서
다시 생명적 사고로 전환을 하고 있습니다.
"한 송이 너트 안에 한 줄기 바람이 끼어드는 군요"
"아~얏~ 파도치는 황홀이 어제 없던 태양을 예인 합니다"
시인은 예술성과 완결성에서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2023. 12. 19
감상자 이구한 드림
첫댓글 니튼 볼트 우리사이에 많이 있는데 외면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글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