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293호 불이 꺼지면 어둠이 들어온다 (요14:12~26)
백곰이 나타나 갑자기 방아쇠를 당겼는데 총알이 없어. 어두워서 스위치를 올렸는데 불이 안 들어와. 계산을 하려는데 지갑에 돈이 하나도 없어. 급히 가야할 일이 생겼는데 차에 기름이 없어. 급히 전화를 해야 하는데 핸드폰에 배터리가 없어…. 그러니 곰에게 물려 다치고, 넘어져 아프고, 도적맞고, 가난하고, 일에 진척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거 아십니까? 쌍권총은 찼는데 실탄이 없는 자, 지갑은 명품인데 돈은 하나도 없는 자, 차는 좋은데 기름이 바닥난 자, 최신형 핸드폰이건만 배터리가 없는, 디모데후서 3장 말씀을 빗대자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들이 교회에 많다는 사실 말입니다. 목사요, 전도사요, 장로요, 권사요, 집사요 하며 폼은 있는 대로 다잡고 있으나 실제로는 성령을 못 받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자들이 많단 말입니다.
‘교회에 나와 구원받았으면 됐지, 굳이 성령을 받아야 하냐?’ 하시는 분들! 여러분, 붕어빵 속에 붕어가 없어도 붕어빵이고, 곰탕 속에 곰이 없어도 곰탕입니다만, 심령 안에 성령이 없으면 그는 교회는 다니나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바로 성령인데, 그 성령이 심령 안에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구원인들 장담하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고 단호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수양(修養)이요, 취미라면 성령을 받고 안 받고가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은 원수와 싸워야 하는 영적 전투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마귀와 그의 졸개인 귀신들과 싸우는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말하는 것이거든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싸우려면 무엇보다 무기가 있어야죠. 무기가 좋아야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봐도 어떤 무기를 소유하느냐에 따라 전투의 승패가 갈리지 않습디까? 최고의 영적 무기는 바로 ‘성령’입니다.
마귀와 그의 졸개인 귀신은 우리를 가난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힘들게 하고, 망하게 하고, 불행하게 합니다. 원수죠. 그것들을 내쫓으려면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칼로도, 총으로도 안 되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내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성령을 받은 후에 원수인 마귀와 귀신들을 진멸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자들에게 성령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 것도 무기가 지급될 때까지, 곧 성령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행1:4).
여러분, 총을 보고 곰이 도망가는 게 아니죠. 총알이 나가야 도망가는 겁니다. 목사, 장로라는 직분을 보고 귀신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총알, 성령을 받아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야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총알이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어떤 권능이냐? 바로 총알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이는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이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요14:12). 왜냐? 예수님이 받은 성령이나 우리가 받은 성령이나 동일한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총에 총알만 장전되어 있으면 아이가 방아쇠를 당겨도, 노인이 당겨도 총알이 나가 적을 죽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늘 성령충만함을 입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은 적을 쫓아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보내주신 또 다른 보혜사이기도 합니다(요14:16~17).
‘보혜사’는 한자어인데, 지킬 보(保), 은혜 혜(惠), 스승 사(師)로 ‘지켜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이미 우리를 지키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치신 분이었다는 말씀이며, 예수님이 천국으로 가시면서 예수님과 똑같이 우리를 보호해줄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면 무엇이 두렵고 망설여지겠습니까? 성령이 지키시고, 은혜를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장래 일을 알게 하시고, 갈 길을 예비하사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데요.
그렇다면 성령충만함을 어찌 받습니까? 그것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고, 더욱이 방언으로, 즉 성령으로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방언기도를 왜 하냐고 합니다. 맞습니다. 방언기도는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요즘 비화폰이라고 들어보셨지요? 대통령과 그 아래 중직들이 비화폰으로 비밀대화를 나누었다는 기사를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건 암호화되어 있기 때문에 해독이 안 되고 도청도 안 된답니다. 방언기도가 하나님과의 비밀대화를 나누는 비화폰입니다. 악한 것들도,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방해공작을 펼 수 없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전14:2).
또한 방언기도는 지뢰탐지기와 같습니다. 지뢰를 밟으면 순간 터져서 신체 일부가 날아가기도 하고, 사망에까지 이릅니다. 이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보니 탐지기를 이용해서 그것을 색출해내야 합니다. 방언기도를 하면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것들, 망하게 하는 것들을 색출해낼 수가 있습니다. 제 40년 목회 인생에 머리털 하나 다치지 않은 것은 방언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하루 최소 4시간, 집회 때는 7시간 기도를 하는데, 대부분이 방언기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 알려주시고, 막아주시고 지키십니다. 또한 방언은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해서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6~27).
아주 오래전의 일인데, 그날 유독 방언기도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계속 방언기도를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큰아들이 사당동 지하철역에서 내리다가 지하철과 플랫폼 사이에 발이 끼는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아이의 말에 의하면 그 상황에 누군가 자기를 번쩍 들어 올려서 살았다는 겁니다. 성령은 이미 아시고 탄식하며 기도하신 것입니다.
또 방언기도를 하면 마음에 상쾌함이 옵니다(사28:11~12). 물을 끓이면 그 안에 있던 유해성분이 다 끓어올라 넘쳐 나가듯, 방언으로 기도를 계속하면 내 안의 나쁜 것들이 다 넘쳐 몸 밖으로 빠져나가게 되니 내 몸이 상쾌해집니다. 제가 70이 넘은 나이에도 이렇게 왕성하게 교회를 이끌고, 또 지구 반대편인 코스타리카까지 갈 수 있는 것도 다 방언기도를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중고등부 예배 때 아이들에게 “왜 공부를 못하냐? 아침에 일어나 한 시간씩만 방언기도하고 나가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해되게 하시고, 기억나게 하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럼요, 방언기도를 하면 성령이 지혜롭게 하실 것입니다.
방언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그러면 악한 것들이 쫓겨나가고, 만사가 형통하며, 고통과 병과 가난이 물러갈 것입니다. 방언기도는 하나님의 선물이며(고전12:10), 인생의 마스터키입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빈 총인지, 빈 지갑인지 나를 점검해보십시오. 영혼이 잘 돼야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법, 방언기도로 성령충만함을 입으십시오. 만사형통(萬事亨通), 난사형통(難事亨通)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 충만만이 인생의 답이다
방언기도는 비밀을 여는 만능열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