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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체험(信仰體驗) 터닝 포인트〉
투혼을 울리는 샤미센(三味線) 연주자
2021년 1월 1일
그대에게 닿아라! 감사여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여!
전국을 순회 공연하는 여행가 일가에서 태어난 아베 타카히로(安部高廣)는 3살 때에 첫 무대에 섰다. 아버지는 대중연극의 좌장(座長). 학교는 매달 바뀌었다.
초등학교 시절. “포켓몬을 하자!”고 동급생에게 권유받았지만, “그게 뭐야?”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게임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다.
친구가 있었으면. 모두와 친해지고 싶다. 공부를 잘하면……. 무대 대기실에서 교과서를 펼치고 있으면, 선배로부터 “그런 시간이 있으면 예능 하나라도 더 배워라.” 샤미센, 춤, 살진(殺陣:연극이나 영화에서 칼싸움의 장면), 연기를 철저히 주입받았다.
9세 때 아버지가 병으로 타계(他界)했다. 슬픔을 참고 기예(技藝)를 닦아서 15세에 좌장이 되었다. 하지만 3년 후, 불황(不況)의 여파로 해산(解散). 그 후에는 홀로 각지의 극단을 떠돌았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뿐.” 그 신념으로 살아왔다.
2011년 3월 11일의 동일본 대지진. 예정됐던 공연이 모두 다 취소. 심지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도 당했다. 비참하고 속상했다. 마음이 꺾여 예술의 길을 떠났다.
“언제 죽어도 좋아.” 싸움으로 매일을 보냈고 술에 빠져 살았다. “이렇게 된 것은 나를 ‘상품(商品)’으로 이용해 온 어른들 때문이다.”
방 한구석의 샤미센(三味線)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때 쓰던 연습용. 손가락이 닳도록 튕겼었다. 반가워서 현을 만졌다. 소리가 울고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역시 나에겐 이것밖에 없다…….”
하카타역(博多驛)의 고가(高架) 아래 섰다. 손에는 샤미센. 감정이 부딪쳤다. “나는 무엇인가?”
여윈 볼에 귀찮아 깎지 않은 제멋대로 난 수염. 너덜너덜한 셔츠와 바지. 얼핏 다가오기 힘들었지만, 어릴 때부터 해 실력은 좋았다. 갈수록 갤러리가 늘어났다.
“천리의 험난한 길을 호랑이처럼 달린다”라는 마음으로, 쓰가루샤미센(津輕三味線) 연주자 ‘토라타카(虎高)’라고 자칭했다. 이벤트 등에도 불리어져 연간 100곳 이상에서 연주했다. 하지만 회장(會場)이 손님으로 가득 차도,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위문(慰問)차 방문하게 된 간호시설. 책임자인 마유미(まゆみ) 씨는 성실하고 밝아 안심감을 주었다.
휴식 중에 그녀에게 문득 말을 흘리고 있었다. “살아 있는 의미를 잘 모르겠어서…….”
마유미 씨는 창가학회원(創價學會員)이었다. 젊어서 남편을 병으로 잃은 일, 빚을 많이 진 일, 그것 모두를 극복했다고. 그리고 “어떤 절망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이 신심(信心)입니다.”
좌담회에 참석했다. 일때문에 고투하는 아저씨, 병에 지지 않은 아주머니. 모두가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 주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한 장년에게 질문했다. “이 신심으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여러 신사(神社)와 불각(佛閣)에 다니며 절을 해 왔지만 승려는 고설(高說)을 늘어놀 뿐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평범한 아저씨’는 달랐다.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고, 마지막에 말했다.
“그동안의 고생은 모두 행복해지기 위한 양식입니다. 저도 아직 신심을 공부 중이니까 같이 신심을 배워 나갑시다. 우리는 창가가족(創價家族)이니까.”
장년의 눈에서, 목소리에서 진심이 스며들었다. 가족이란 말을 들으니 눈물이 글썽거렸다.
“내가 원하는 건 옆에서 같이 고민해주는 사람이다.”
학회활동에 힘쓰다 보니 고민이나 불안감에 휩싸이지 않았다. 길가에 핀 꽃의 아름다움도 깨닫게 되었다.
한 가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지구리더가 되어 부원의 집을 방문할 때에 격려 편지를 쓰는 일. 초등학교에서 공부한 것은 ‘히라가나’뿐. 게다가 글씨는 무너지기 쉬웠고, 네모나기도 했다.
남자부 선배는 “겉모습이 아니야. 마음은 상대에게 닿으니까. 꾸미지 않고 나답게.”
방문·격려를 하는 날. 오전 4시에 일어나 멤버들을 기원하며 편지 내용을 생각했다. 휴대전화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찾아본다. 몇 번이나 고쳐 썼다. 훗날, 멤버가 남자부 대학교에 입교할 것을 결의해 주었다. 유례없는 기쁨이 마음속에서 복받쳤다.
어느 날, 타카히로를 좌장으로까지 키워 준 은인(恩人)과 13년 만에 재회했다. 입을 열자마자, “당신 바뀌었군요!” 타카히로가 샤미센을 튕겨 보이자 눈시울을 붉혔다. “많이 늘었네.”라며 기뻐해 주었다. “자네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네. 대단한 신앙(信仰)이다.”라며 학회(學會)에 입회(入會)했다.
타카히로는 재작년, 소화관에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는 후생노동성 지정 난치병인 ‘호산구성 소화관 질환’이 발병. 아내가 된 마유미 씨가 헌신적으로 지탱해 주었다.
지난해는 신종 코로나의 영향으로 예력(藝歷) 30주년 기념 공연이 중지. 고경(苦境) 속에서 이케다 선생님의 말씀에 얼마나 격려를 받았는지.
“‘고독(孤獨)’해져서는 안 된다. 사람을 고독하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고민에 기대어주고 그 괴로운 ‘심음(心音)’에 귀를 기울여 주어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실은 자기 자신이 치유되어 가는 것이다.”
옛날에는 고독했다. 외로움을 메우고 싶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신심(信心)에 면려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구하고, 기대하는 것만으로는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혼자가 아닙니다. 지지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로 마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들어주신 분들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격려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소리는 아직 ‘고난을 타고 넘은 기쁨’을 전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싸우는 혼’을 울릴 수는 있으니까.”
타카히로의 마음이 담긴 음률이, 당신에게 전해진다….
아베 타카히로(あべ・たかひろ)
1986년생, 2016년 입회. 후쿠오카현(福岡縣) 다자이후시(太宰府市)에 거주. 대중연극의 떠돌이 일가(一家)로서 3살에 첫 무대에 서고, 15세에 좌장(座長)으로. 극단 해체 후엔 ‘토라타카(虎高)’라는 예명(藝名)으로 어릴 때부터 단련한 쓰가루샤미센(津輕三味線) 연주자로 활약했다. 재작년에는 약 140곳에서 공연을 했으며 지난해에는 예력(藝歷) 30주년을 맞이했다. 지부남자부장. 예술부원.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동입니다
노고많으셨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