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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6. 4. 26. 일요일.
봄하늘이 온화하고 맑고 밝고 환하다.
나는 요즘 은근히 지쳐서 낮잠을 많이 잔다. 왼쪽 아랫배도 은근히 아프다.
굽혀진 등허리뼈가 더욱 휘어지고, 조금이라도 움적거리면 나도 모르게 외마디 고함을 내지를 듯이 아프다.
벌벌거리며 발걸음을 떼야 하는데도 이번 금요일(5월 1일 노동절)에는 충남 태안읍에 가서 둘째사둔네를 만날 예정이다.
나와 나이가 동갑인 안사둔(문학가, 시인)이 낙상을 거듭해서 건강상태가 안 좋다고 한다.
내가 더 늙기 전에 사둔네를 뵙고 싶다고 둘째사위에게 말한 적이 있다.
둘째사위가 우리 내외를 모시고 태안으로 방문하기로 일정을 잡았단다.
둘째딸네 세 명, 우리 내외 두 명. 다섯이서 차를 타고 태안을 방문해서, 태안사돈과 함께 인사를 나눌 예정이다.
아래 글은 내 고교여자 친구의 카페에서 퍼 온다.
내 하나뿐인 외손자(둘째딸네의 외동아들) 돌잔칫날 이야기이다.
아랫 글의 돌잔치 아이었던 김하민. 2026년 올해 초등학교 1학년생이다.
외손자 돌잔치
오늘은 2019. 7. 6. 토요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인근에 있는 '아이비스타(Ivy Star) 서초점' 반포대로 서초 평화빌딩 지하 1홀에서 돌잔치 행사가 흥겹게 진행되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하여 성장과정을 편집한 사진(영상)이 영화 필름을 돌리는 것처럼 자르르 흘렀다. 영상이 다 끝나고 환한 불이 다시 들어왔다.
돌잔치 이벤트 진행 사회자는 '사랑'이란 말을 자주 쓰고, 또 오늘 모임에 참가한 양가 부모님을 언급한 뒤 아이의 아버지한테 질문했다.
"오늘 모임에는 본인은 물론 양가 친인척들이 참가했는데 누구를 가장 사랑하세요?"
아이의 아버지는 망설였다.
내가 "하민이, 하민이" 하면서 돌잔치 주인공의 이름을 불렀다.
애 아버지는 "하만이"라고 대답했다.
사회자는 친어머니, 친아버지에 대해서 고맙다는 말을 장황하게 한 뒤에 질문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가운데 누구를 가장 사랑하세요?"
자기 친아버지와 친어머니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 자리에서 사회자가 물었으니 누구를 선택해야 되는지?
아이의 아버지가 잠시 머뭇거렸다.
사회자의 바로 코앞에 있던 내가 "하민이, 하민이"라고 나직이 소리 냈다.
애 아버지는 자기 부모가 아닌 돌잔치 주인공의 이름을 불렀다.
"하민이".
난문현답(難問賢答)이다.
사회자는 현금이 든 상품권을 흔들면서 질문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몸무게는?"
빠르게 흘러간 영상(사진) 속에서 신생아의 몸무게까지 읽고 기억할까?
내가 손을 들지 않은 채 '314'이라고 소리를 냈다. 내 눈에 영상 속에서 얼핏 본 숫자가 기억되기에.
사회자는 바로 정면, 코앞에 있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는 건너편 뒤쪽의 사람을 지적했다.
그 사람이 맞췄다. 3.14kg
사회자는 오늘 주인공의 어머니에 대해서 덕담하였다.
얼굴이 아주 예쁘다며, 연예인 가운데 누구를 닮았느냐는 질문.
어떤 분이 "이영애"라고 대답했다.
사회자는 그분한테 상품권을 건네주었다.
개량한복을 입은 작은딸은 몸집이 제법 크며 살이 쪘으며, 얼굴은 도톰하여 연예인 이영애 씨를 많이도 닮았다.
내 큰아들이 어떤 질문에 대답하였다.
사회자는 정답이라면서 주인공 가족과의 관계를 물었다.
큰아들은 "모르는 사람인데요"라고 의뭉스럽게 대답해서 좌중을 웃겼다.
모르는 사람이라는 데에야 어쩔 수 없이 사회자는 상품권을 내밀었다.
사회자가 물었다.
"임신한 사람은?"
세상에나. 그 많은 하객 가운데 임신한 사람이 누구냐고 공개적으로 묻다니... 아무도 손을 들지 않기에 할아버지인 내가 손을 높이 쳐들었다.
사회자는 나를 본 뒤에 내 곁에 있는 내 아내(할머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아니라고 손을 내저어 흔든 뒤에 손가락으로 나를 직접 가리켰다. 내가 임신했다는 듯이.
늙은 할아버지가 임신했다는 발상은 말도 안 된다.
사회자가 "아이고, 아버님은 아녀요" 큰 소리를 내고는 다른 사람을 찾았다.
뒤편에서 나이 많은 아주머니가 사회자의 앞으로 나오면서 뚱뚱한 배를 쓰윽 내밀었다. 임신 7개월인 양.
사회자가 웃으면서 "아이고, 아녀요..." 하고는 또 누군가를 찾았다.
이번에는 걸어 다니는 아이가 딸린 아주머니가 아이와 함께 나왔다.
사회자는 웃으면서 상품권을 넘겼다.
사회자는 상품권을 흔들면서 "첫돌을 맞은 아이의 생일 숫자를 모두 합치면 얼마인가요?" 질문했다.
내가 곁에 있는 아내한테 "2018. 7. 19를 보태면 그게 숫자가 된다"고 말하니 숫자에 뇌가 밝은 아내가 잠시 뒤에 손을 들었다. 사회자는 내 아내를 지적했고, 아내는 "28"이라고 대답했다.
사회자는 "더 낮은 숫자로요?" 하면서 다른 사람을 지적했다. 그는 "26"이라고 말했고, 상품권은 그 사람한테 갔다.
생각해 보자. 2018년 7월 19일의 숫자는 2, 0, 1, 8, 7, 1, 9이다. 숫자 합계는 '28'이 맞는데도 사회자는 잘못 계산해서 '26'이 맞다고 했을까? 아닐 게다. 사회자는 첫돌 맞이하는 아이의 가족보다는 외부에서 참가한 하객을 먼저 배려했다고 본다.
오늘 돌잔치 주인공의 친할머니는 시집을 여러 권 낸 詩人.
그분은 손자의 첫돌 축하 詩를 낭송했다. 어렵게 얻은 손주는 겨우 하나뿐이니 돌잔치 주인공인 손자가 오죽이나 대견하랴.
귀가 나쁜 나는 그 詩를 듣지 못했다. 사회자가 낭송 詩의 어떤 낱말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나는 이번에는 손을 들지 못했다. 내 귀에 또렷이 들렸더라면 낱말들을 재빨리 기억해 낼 터인데도...
상품권이 자꾸만 나갔다.
내가 질문마다 이따금 손을 드니까 사회자는 나를 바라보고는 마이크로 크게 말했다.
"애 엄마인 따님 - 아버지는 그만 대답하세요. 아이고 ~"
터지는 웃음소리들.
모두는 안다, 외할아버지인 내가 장난치면서 좌중을 웃기려 한다는 것을.
돌잔치가 끝난 뒤 아까 임신했다고 손을 들었던 나이 든 분, 노년에 가까운 아주머니가 나한테 다가와서는 인사를 자청했다. 내 작은딸의 시고모. 자기는 늙었는데도 임신한 것인 양 손을 들었다고,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안다. 또 그분도 안다. 외할아버지인 나도 임신했다고 손을 든 억지를.
손님이 거의 다 떠난 뒤에 하민이의 친할아버지도 나한테 다가오셨다.
"아까는 자꾸만 웃기시대요."
내가 바깥사돈한테 대답했다.
"예. 언제 기회가 되면 태안으로 한 번 방문하겠습니다."
"예. 그러세요."
사돈 내외는 충남 태안읍 상옥리 백화산 아래 인근에서 사신다. 바깥사돈은 교회 목사님.
태안반도, 태안마애삼존불입상(국보 제307호)이 있는 백화산으로 구경 가면서 사돈댁에도 에둘러야겠다.
바깥사돈은 나보다 나이가 많고, 안사돈의 나이는 나와 같되 생일은 나보다 빠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잔치 모임에는 내가 세 번째로 나이 많은 늙은이. 만나이 70살 영감탱이. 그런데도 엉뚱한 발상을 하고, 어떤 수치(숫자)를 빠르게 읽으며, 그것을 기억하는 정신력은 아직껏 괜찮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사회자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게끔 엉뚱한 질문을 했고, 나 또한 난처한 질문에는 생뚱맞은 재치로써 난해한 질문을 피해 가는 슬기를 아직껏 조금은 지녔다고 자인한다.
돌잔치가 끝난 뒤 사회자를 만났다.
"오늘 사회를 재미나게 잘 보던데요."
키 작은 사회자가 거듭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고맙습니다. 사회를 잘 보았다고 칭찬해 주시니... 오늘 이벤트 상품권은 가족한테는 주지 말라는 말이 있었기에 어른께는 드리지 않았어요.'
"나도 알아요. 내가 분위기 띄우려고 엉뚱한 말을 했으며, 사회자의 질문에 손을 자주 들었으니까요."
오늘 돌잔치에는 결혼 당시에 주례를 보았던 목사님이 참석했고, 그분이 직접 작사한 찬송가를 불렀다. 기독교 특유의 노랫말(가사)과 늘어지는 찬송가 곡조.
내 귀에 익숙하지 않은 곡조와 어색한 내용 때문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종이에 프린트를 해서 나눠준 악보를 보았는데도 내 감흥은 적었다.
행사가 다 끝난 뒤에 그분은 나한테 오셔서 악수를 청했다. 키 작은 분의 인상이 무척이나 온화하다.
맛있는 잔치상 음식이 넘쳐나는데도 나는 고작 몇 가지만 먹어야 했다. 당뇨병 환자이기에 당이 많이 들었다고 여겨지는 음식물은 외면했고, 아내가 이따금 나를 제지했다.
귀가 직전에 행사 진행 여직원이 수건을 나눠주기에 손에 들었다.
첫돌 외손자의 이름인 김하민, 첫돌 날자를 미싱기 실로 박은 답례용 선물.
무척이나 더운 날이다.
막내아들이 운전하는 차 뒷자리에 앉아서, 오고 갈 때에 서초구청 인근에 있는 외무부 기관인 외교안보연구원를 바라보았다. 오래 전 직장 다닐 때 외교센터에서 타부처 사람들과 함께 외교안보 협상학을 잠시 공부했던 때를 떠올렸다.
퇴직한 뒤에는 시골로 내려가서 정책협상과는 거리가 먼 텃밭농사를 지었다. 충남 보령시 서해안고속도로 무창포나들목을 빠져나오면 바로 코앞에 있는 산골 화망마을이다. 함께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처자식이 있는 서울로 되올라왔고, 지금은 그저 아파트 안에 머물면서 백수건달이나 되었다.
그나저나 앞으로가 걱정이다. 애 어머니인 작은딸은 곧 직장으로 복직해야 한다. 이제 막 돌을 맞이한 저 어린아이를 누구한테 맡겨야 하나?
태안읍에 사시는 친할머니는 몸이 많이 아프고, 외할머니인 내 아내는 서울 잠실에서 산다지만 몸이 부실하여 매사를 힘들어한다.
큰 기관에서는 영아 보육시설이 직장 곁에 있지만 작은 기관에서는 그 해결책이 막막하다. 젊은 여직원이 다소 많은 직장에서는 직장 안에 간이 보육시설이 있는 사례도 있다. 여직원이 적은 직장이라도 육아에 대한 배려와 지원정책이 확산되었으면 싶다.
나는 자식 넷을 두었다. 큰딸, 작은딸, 큰아들은 결혼했고, 막내아들은 아직 장가들지 않았다. 큰딸한테는 아이가 아직 없고, 작은딸네는 아들 하나(오늘 돌잔치 주인공), 큰아들네는 딸과 아들을 두었다.
나한테는 친손녀 1, 친손자 1, 외손자 1. 모두 셋. 소중한 피붙이.
내 친손자는 기저귀를 벗은 지 얼마 안 되는데도 장난꾸러기이기에 무척이나 쾌활하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는 활발하게 놀고 잘도 웃어서 오늘도 참으로 귀엽다.
큰딸 내외, 큰아들 내외, 막내아들 모두가 둘째딸네의 돌찬치에 참석해서 우리 내외는 든든해 했다.
모두가 한 울타리이며, 끈끈한 인연이다. 인연의 끈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빈다.
2019. 7. 6.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