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은 어떻게 벌을 받나?
세상에는 부조리가 존재한다.
서기 6세기 로마 귀족 보에티우스는 철학의 여인에게 이렇게 항변한다.
"얼마나 이해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지 당신이 한번 보십시오.
악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벌도 받지 않고 그냥 넘어갑니다.
악이 세상을 장악하고 번성하는 반면에 미덕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악이 받을 벌을 대신 받고 있습니다.
오직 선만을 원하는 신의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철학의 여인은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고
행복이 바로 선이라는 관점에서 보에티우스에게 답을 제시한다.
"그렇지 않다. 선한 자에게는 반드시 선이라는 보상이 따른다.
선 자체가 행복이므로 모든 선한 자들은 자신이 선하다는 이유로 행복하다.
이것은 권력이나 힘으로도 빼앗아갈 수 없다.
반면에 악인들이 받는 형벌은 악 자체다.
악한 인간이 되는 것이 형벌이다."
일찍이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학설을 주창했다.
그는 사람에게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 부끄러운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있으며
이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철학의 여인 역시
"악인들은 악으로 돌아섬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단지 인간이 지닌 육신의 형태만 갖추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철학의 여인은 악인에 대해 엄중한 정의를 내린다.
"탐욕으로 불타올라서 다른 사람들의 재물을
폭력적으로 강탈하는 자는 '늑대'라고 해야 하고,
은밀하게 덫을 놓고 온갖 거짓과 술수로 사람들을 속여서
곤경에 빠뜨려놓고 즐거워하는 자는 '여우'라고 해야 하고,
우둔하고 나태한 삶을 사는 자는 '나귀'라고 해야 하며,
추악한 욕망들 속에 뒹굴며 살아가는 자는
더러운 '돼지'가 즐기는 쾌락에 사로잡힌 자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선을 버린 자는 짐승이 되어버린 자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철학의 여인은 악인이 합당한 형벌을 받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보에티우스에게 심오한 메시지를 던진다.
응징을 받지 않은 악인이 처벌받은 악인보다
실제로는 더 큰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형벌을 받으면 정의라는 선이 더해지는 기회를 갖지만
응징을 받지 않으면 불의에 속하는 악이 더 불어난다는 논리였다.
악을 개선할 기회조차 상실한 채 그의 방종과 불행이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형벌을 모면할 궁리만 하는 군상들을 목도한다.
불행의 늪속으로 질주하는 그들의 행태가 애처롭기 짝이 없다.
/- 배연국의 행복편지 / < 좋은 글 옮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