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 처절하게후회했던 기억, 남을 상처주고, 또 상처받았던 기억, 버림받고 돌아섰던 기억, 그런 기억들을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살아가는자만이 더 강해지고, 뜨거워지고, 더 유연해질 수가 있지. 행복은 바로 그런 자만이 쟁취하는 거야. 그러니 잊지마, 잊지말고 이겨내. 이겨내지 못하면 너는 영혼이 자라지 않는 어린애일뿐이야.”
-사이코지만 괜찮아, 1화에필로그에 나온 동화 내용 중
사이코지만 괜찮아 1화부터 3화까지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바로 트라우마입니다. 정확히는,
트라우마를 직면하라!
각자의 트라우마와 이를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와 그에 따른 인물들의 변화의 가능성. 이게 1~3화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봐요.
문상태의 트라우마
문상태의 트라우마는 직접적인 증상으로 발현됩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자폐 증세가 심화되는 것으로 말이죠.
아다다다다다 하면서 나타나는 증상으로써.
이런 증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바로 문상태가 어머니 살인 사건의 직접적인 목격자이기 때문이며, 나비는 목격자였던 문상태에게 살인범이 남긴 트라우마입니다. 이는 과거 회상 장면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나비가 그런거야, 나비가.”
자폐 증상의 환자들은 어떤 부분에서 더욱 예민하고 감각적일 수 있는데 문상태에게는 그것이 그림인 거 같습니다.
맨 처음 문상태가 등장할 때도 둘리를 보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그 이유입니다.
실제로 제가 고등학생 때 알던 한 친구도 정신적으로 아픈 친구였는데 그 친구도 그런 어떤 부분이 발달한 친구였습니다.
제가 사는 도시의 모든 버스 번호를 외우고 그 버스들의 노선까지 정확히 외우는 친구였어요.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괜찮은 정신병원”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괜찮은 정신병원의 오원장은 문상태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방법으로서 그림을 택합니다.
형님 그림 실력이 대단하다며, 벽에 괜찮은 정신 병원의 풍경을 그려달라고 합니다. 정확한 증상을 모르는데 치료법부터 정할 수 있나? 싶기도합니다.
“원장님, 혹시 형이 나비관련해서 얘기했나요?”
문강태의 질문에 오원장은 딱히 없다고 대답합니다. 이부분에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오원장이 문상태 문강태의 스토리까지 알고 있나, 싶어서.
짤리기 전 병원에서 그렇듯 1년마다 병원을 옮기는 것에 대한 사람들이 문강태에게 가지는 의문점은 잘 나와 있고, 그것을 오원장도 똑같이 문강태의 이력서를 봤을 테니 몰랐을 리 없다고 봅니다.
제가 가지는 의문점은 그런 이력을 보고 사지육신 멀쩡한 젊은 친구가 1년마다 직장을 옮기고, 거주지를 옮긴다, 그리고 가족이라고 있는 형이 정신적으로 아픈데, 이것 때문인가? 단순히 이렇게 생각해서 문상태에게 저런 치료법을내린 것인지 아니면 정확하게 스토리를 알고 있어서 그런 건지 하는 의문.
아무튼 오원장의 치료법은 효과가 있을까? 저는 있을 거라고 봅니다. 뭐 결국에는 드라마니까 좋게 좋게 풀리겠지, 하는 마음보다 어떻게 보면 정신적 측면에서도 맞다고 봅니다. 그리고 3화까지의 핵심 주제, 트라우마와직면하라! 를 풀어가는 내용적 측면에서도 맞다고 보여지고.
기본적으로 사람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때 그런 충격을 보다듬어주는 안식처 혹은 그와 비슷한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자존감도 이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나는 이런 부분 저런 부분이 부족하지만 또 이런 부분은 잘하니까 혹은 이런 부분은 괜찮아, 하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원장은 문상태에게 그런 안식처 혹은 무기를 일단 쥐어주고 싶은 겁니다.
물론 그것만으로 트라우마, 자존감이 완벽히 치료되고 회복되는 것은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자기 자신을 향한 긍정의 마음이 한 번 싹트면 또 다른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있는 가능성이 생기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긍정하게 되면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점진적으로는 살인범이 자신을 찾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역시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길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문강태의 트라우마
문강태의 트라우마는 문상태처럼 직접적인 증상으로서 발현되는 트라우마는 아닙니다. 그러나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를 결정짓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를 살인사건으로 잃은 강렬한 기억 + 형의 자폐 증상으로 인해 결정된 피하고, 참고, 도망치는 그런 태도를 만들었습니다. 다만 문강태는 그 점들을 고문영을 만나기 전까지는 몰랐던 거 같습니다. 형은 내가 챙겨야 하고 돌봐야 한다는 생각들에 가려져 있던 거 같은데, 그 부분을 고문영이 건드린 겁니다.
“넌 제발 오바 좀 해라, 그미친 것들 때문에 칼빵 맞고 직장에서 짤렸는데 엎어버리지도 않고!”
“야, 엎으면… 속은 후련해도 퇴직금 못 받아. 어차피 관둘 때도 됐고. 이맘때잖아. 밤 공기 훈훈해 질 때. 곧 나비가 날아들겠지.”
이 부분. 문강태는 철저하게 자신의 인생의 방향이 형에 의해서 결정 되는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문강태와 고문영의 살벌한 첫 만남부터 2화 엔딩으로 끝나는 재회까지 모두 문강태 스스로가 자신의 트라우마의 진실을 목도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과거의 회상 장면이 3화동안 계속 보여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단순히 둘이 과거에 알았던 사이다, 라는 것만 짚어주기만을 위한 장면이 아닙니다.
“이래도 내가 좋아?”
살아있는 나비를 눈 앞에서 찢어서 죽이고 내가 좋냐고 묻는 상대방이 유쾌할리 만무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사색에 질려서 빤스ㄹ.. 아니 도망칠 정도까지도 아니죠.
보통은
“야, 왜그래! 나비 아퍼!”
혹은
“너 진짜 나쁜 아이구나!”
뭐 이런 반응을 보이며 말리는 게 정상적이죠. 좋아하는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 정도의 용기를 발휘했는데 그런 행동이 어려울까요.
이것은 결국 문강태가 죽음 혹은 죽이는 행위에 대한 트라우마를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그런 행위에 대한 문강태와 고문영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피하는 게 아니라 도망치는 거겠지.무서워서. 겁쟁이.”
문강태는 자신이 목도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근데 그 부분을 고문영이 계속 후벼파니 굉장히 껄끄럽습니다. 원래 사람은 자기 약점 드러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않으니까요.
문강태가 성진시로 내려가는 것은 형의 트라우마 증상 발현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그것은 기계를 발동시키기 위한 스위치일 뿐 직접적인 연료 혹은 소스는 자신의 트라우마로 결정된 인생의 태도 때문입니다.
여태까지는 형이 1년마다 보이는 증상을 보면서 그 사건에 대한 문강태가 가지고 있었으나 몰랐던 트라우마의 증상도 함께 발현됐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그것이 형의 증상 발현+고문영의 후벼파기로 인한 진실목도입니다.
그래서 2화 엔딩에서 문강태가 다시 고문영을 봤을 때 놀란 것은 이런 이유고, 때마침 성진시에 폭풍우가 쏟아지는 것도 이런 문강태의 심리를 연출한 거 같아요. 그리고 폭풍우가 거치면 무지개가 생기고 밝은 해가 뜬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 이런 의미까지 함께 담은 2화 엔딩인 거 같습니다.
고문영의 트라우마
사실 3화동안 고문영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지 자세하게 나와있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문강태와 문상태의 트라우마는 행동하는 것, 생각하는 것 등 해석할 여지가 있는데 고문영의 트라우마는 그 부분이 조금 부족합니다.
다만 추측하기로는,
어릴 때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트라우마 때문에 사람을 지나치게 싫어하지만 또 동시에 지나치게 그리워 하기도 하는 그런 역설적인 캐릭터이며 자기가 알고 있는것을 가장 실천 못하는 캐릭터 같아요.
그 역시 문강태처럼 자신의 약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동일하지만 방법은 다릅니다.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분출하고 자기 자신만을 위하며 굉장한 욕심을 보이는 방식으로 자신의 트라우마, 약점을 감춥니다.
높은성을 쌓아서 그 안에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신을 동정하거나, 저 사람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을 단 1도 들지 못하게, 그냥 또라이구나 미친개구나 이렇게 생각하도록. 그리고 동시에 그 성을 넘어서 들어오는 사람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그런 캐릭터인 거 같습니다.
고문영과 문강태의 살벌한 만남은 고문영의 트라우마가 처음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면서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둘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고문영은 환자에게 목이 졸리면서 환자의 얼굴이 아버지 얼굴로 보이는 환상을 보는데요. 고문영의 트라우마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죠.
그 전까지 죽을 수도 있는 순간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는데 아버지의 환상을 본 이후부터는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눈이 커지는 모습이나 이후에 칼을 들고 해치려고 하는 모습.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약점을 다시 마주하게 만든 환자를 향한 증오.
“칼이 아프대? 왜 그걸 감아?”
문강태가 수건을 꺼내 가장 먼저 하는 행동, 자신의 피를 닦아내거나 상처를 감싸는 게 아닌 칼을 감싸는 것과 이어진 고문영의 질문은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문강태와 고문영의 차이를 보여준 장면입니다.
문강태는 칼을 감싸쥐고, 고문영은 칼을 휘두르고.
“트라우마는 이렇게 앞에서 보듬어야지. 뒤에서 하는 게 아니라.”
고문영은 여태껏 자신이 알고 있는 방식, 그리고 옳다고 생각한 어떤 신조랄까요? 이런 부분들이 문강태를 만나면서 점차적으로 흔들립니다. 이를테면 문강태가 알려준 나비 포옹법.
두 손을 양 어깨에 교차하여 두드려주며 순간의 트라우마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 즉 고문영의 방식과 다릅니다. 분출이 아닌 인내. 고문영은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분출을 하며 트라우마를 이겨내거나 혹은 감추거나 해왔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건 내 방식이 아니라고 한 겁니다.
3화에서는 고문영이 나비포옹법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문강태로 인해서 바뀌어가고 있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분출이 아닌 인내의 방식도 있다는 것을 하나 둘씩 깨달아가는거죠. 문강태로 인해서.
문강태와 고문영
“나 이제야 내 빨간 구두를 찾았어.”
“나도 놀아볼까? 너랑같이?”
정리하자면
1~2화는 문강태와 고문영의 트라우마와 그 차이점을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고문영이 문강태에게 끌리는 과정 또한 그려내고 있는데, 왜 고문영이 먼저냐? 한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을 지나치게 싫어하면서도 간절하게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강태와 고문영이 엮이는 과정의 매개체로서 악마를 먹고 자란 소년이 사용됐고, 1화 타이틀이기도 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거죠. 둘은 방식은 다르지만 같은 아픔과 트라우마를 지닌 캐릭터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3화에서는 두 사람이 가진 방식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가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그려냈습니다. 문강태는 분출을, 고문영은 인내의 방식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고문영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방식이 아니라던 나비 포옹법을 하는 장면을 통해,
문강태는 정치인 아들이 내제된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을 지켜보며 말입니다.
제가 이 드라마가 단순한 로코물이 아니라 진짜 괜찮은 드라마일 수 있겠다고 느낀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3화는. 3화를 그려내기 위해서 1화 2화의 그런 장면들이 있었던 거구나! 하고 느낀 거죠.
제가 해석한 3화까지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장면 별 의미는 이렇다고주저리 주저리 적어보았는데
참 제가 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드라마 리뷰를 처음 써봤기도 했고, 그냥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는거 같은데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하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써봤는데
별로 인 거 같아요 그냥 혼자서 주절거리는구나~ 생각하고 넘겨주십시오ㅠㅠ
첫댓글 서예지 조녜
존잼꿀잼
재밌는 드라마 생겼을때 이런 리뷰 하나씩 읽으면 드라마가 더 입체적으로 다가와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놓쳤던 부분도 있었는데 다시 복습해봐야겠네요
재밌나요? 추천할만한가요?
ㅇㅇ 연출도 그렇고 참 잘 만들었드라구요. 서예지의 중성적인 목소리도 매력적
@까까오톡 감사합니다ㅋ넷플릭스 땡겨봐야겠네용
존잼 잘 읽었어요!!
크 너무 잘읽었어요!! 이런 드라마는 리뷰 읽으면서 보는 맛이 있는데 공감가는것두 많았어여 감사합니당
3화 끝에 그 정치인 아들이 '그러다 보니까... 아휴 난 또 여기 와 있네'라고 한 말이 강태 심경의 전환점을 대변하는 말 같더군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