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이백예순여덟 번째
우리가 믿는 것
오래전 안소니 퀸, 찰스 브론슨이 출연했던 <황야의 산 세바스찬 Guns for San Sebastian>의 한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1746년 스페인이 지배하던 때의 멕시코가 무대입니다. 반란군이었던 자기를 지켜준 신부를 위해 신부의 새 임지에 동행해 도착한 곳은 인디언과 가난한 농민들의 농작물을 노리는 비열한 도적 떼로 인해 황폐해진 마을 산 세바스찬입니다. 신부가 살해되자 마을 처녀가 주인공에게 신부 노릇을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그가 신부가 아닌 줄 알지만, 정신적 지도자가 없는 마을을 규합할 방법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녀의 청을 수락하고 신부 노릇을 하며 도적 떼와 맞서는 도중 성당 앞의 천사 석고상에 화살 하나가 날아와 박힙니다. 그러자 그곳에서 검붉은 피가 흐릅니다. 이에 미온적이었던 일부 마을 사람들까지 합세해 마침내 적들을 물리칩니다. 기적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주인공이 몰래 그곳에 숨겨두었던 포도주 자루에 화살이 꽂혔던 겁니다. 최근 인도의 한 힌두교 사원 벽면의 조각상에서 물이 흘러 떨어지자 많은 이들이 신이 내린 ‘성수’라며 이를 받아먹자 사원에서 부랴부랴 이를 저지했답니다. 그 물은 성수가 아니라 에어컨에서 흘러나온 응축수였답니다. 이성적인 인간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보이는 것을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살아가는 일이 많습니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이런 일이 많습니다. 종교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정치에서도 그렇습니다. 고도로 발달했다는 현대 과학으로도 실제 우주의 고작 4%만을 관측하고 탐구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우리의 지식이라는 게 고작 이런 것이라고 일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지식으로 신을, 창조주를 이해하는 일은 더욱 어렵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