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이백예순아홉 번째
좋은 게 좋은 거야!
옛 선비들의 교육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답니다. 하나는 자학字學으로서 글자를 가르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인격을 함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사회에 공헌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인재를 뽑기 위해 실시한 조선시대의 과거科擧가 형식화되어 학문의 목적은 사라지고 오로지 신분 상승에만 빠졌다고 성호 이익李瀷이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모두 이욕利欲의 와중에 빠져서 백성들의 좋은 풍속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라고 한탄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지요. 교육의 목적이 정치에 이용될 때도 있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표방한 교육원칙 중 하나는 내선공학內鮮共學이었습니다. 내지인(일본인)과 조선인이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조선인을 일본인화하겠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여기에 크게 동조한 인물이 요즘 뉴스에 등장하는 동덕여대 설립자 조동식입니다. 그는 “모든 것이 대세에 순응하는 것이니까 장래에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며 우리말 가르치기를 포기했습니다. 조선인이기를 포기했고, 학생들에게도 그리한 겁니다. 심지어 그는 일본의 징병제도에 부응하여 조선의 여성들에게 군국의 어머니가 될 것을 역설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갈 방법으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지금 우리도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해댑니다. 미국 듀크대 등 6개 대학 연구진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97개국 의회 의원들의 교육 수준을 조사해 보니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가장 높은 학력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학력 수준과 정치 수준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확인한 꼴이 되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야’ 하면서 정의보다는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교육환경에서 배우고 자란 겁니다.
“옳은 게 좋은 거야!”라고 가르치면 학부모들이 화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