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원행지遠行地와 방편바라밀(2)>
- 잘못된 방편은 이제 그만, 과학시대에 걸맞는 불교를 배우고 실천해야
한국불교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하도 자주 해서 이젠 말하기조차 진부합니다. 그렇다 해도 방편에 대해서는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한국불교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하는 말이 바로 방편입니다. 일단 신도를 절에 오게 한 후 방편으로 불교를 가르쳐야 하는 게 순서가 아니냐는 당연한 말을 합니다. 신도를 끌어들이는 ‘방편’의 정체는 불교의 품격을 위해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문제는 방편으로 모인 신도들에게 제대로 된 불법을 설하고 보살행을 실천한 적이 별로 없다는 데 있습니다. 나는 불자들이 화엄경의 불법을 기준으로 신행의 마음을 갖추는 것을 ‘불교’라고 생각합니다. 경전을 왜곡하여 설하거나 잡다하게 자기 소견을 그럴 듯한 언어로 포장해 내어 불법인 양설하는 이들은 심하게 비판하면 외도外道와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나는 서울토박이로 서대문이 고향인 셈입니다. 초등학교 때 붐비는 서울역 분위기를 느끼려 가끔 혼자 가보곤 했습니다. 서울역 본관에서 용산 쪽 공터에는 늘 약장수들이 벌여놓은 볼거리가 있었습니다. 약장수들의 말을 들으면, 조금만 기다리면 머리가 두 개인 흰뱀을 볼 수 있다, 다리가 6개인 소도 볼 수 있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정말 궁금해서 몇 년을 찾아가 봐도 제가 본 것은 약장수들이 외쳐대는 ‘만병통치약’밖에 없었습니다. 한국불교의 현실상은 이런 약장수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이런 사이비적 인과로 인해 “그런 약은 효과를 확인하지 못해 안 판다”고 합니다. 그동안 “다른 데서는 다 파는데 참 유별나다” 는 타박만 들어왔습니다. 신도들이 절에서 구하고 싶어 하는 것은 위약僞藥 즉,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뿐인 약인데 그것을 취급하지 않으니 수입도 여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불자들도 이제는 과학시대에 걸맞는 불교, 엉뚱한 스님들에게 오염되지 않은 불법을 경전을 통해 직접 확인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힘들게 번 돈을 보시하면서 그 보시의 의미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몇 천원이라도 물건을 싸게 구입하려고 밤새 인터넷에 붙들려 있는 자신과는 너무 모순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방편바라밀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기에 승가에서 아무리 방편이라 주장해도 경전에 의하면 그건 방편이 아니라 ‘수법’이나 ‘수단’ 정도에 불과할 뿐입니다. 금강장 보살은 방편바라밀을 설하며 위의 본문에 이어 바로, 7지 보살은 10바라밀의 법을 다 닦는다 하며 10바라밀 수행의 핵심을 재차 설하고 있습니다.
-승가가 엉터리라고 불교도 엉터리라고 속단하지 말라
다음 내용은 10바라밀 수행의 압권 같아 소개하니 기억해 두시길 바랍니다.
‘이 보살은 생각마다 열 가지 바라밀다를 항상 구족하나니, 왜냐하면 생각마다 대비大悲로 머리를 삼고 부처님 법을 수행하여 부처님 지혜에 향하는 까닭이니라.
자기에게 있는 선근을 부처님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중생에게 주는 것은 보시바라밀다라 하고, 일체 번뇌의 뜨거움을 능히 멸하는 것은 지계持戒바라밀다라 하고, 자비로 머리를 삼아 중생을 해롭히지 않는 것은 인욕忍辱바라밀다라 하고, 훌륭하고 선한 법을 구하여 만족함이 없는 것은 정진精進바라밀다라 하고, 온갖 지혜의 길이 항상 앞에 나타나서 잠깐도 산란하지 않는 것은 선정禪定바라밀다라 하고, 모든 법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능히 인정하는 것은 반야般若바라밀다라 하고, 한량없는 지혜를 능히 내는 것은 방편方便바라밀다라 하고, 상상품上上品의 수승한 지혜를 구하는 것은 서원誓願바라밀다라 하고, 모든 외도의 언론과 마군들이 능히 깨뜨릴 수 없는 것은 력力바라밀다라 하고, 일체 법을 실제와 같이 아는 것은 지혜智慧바라밀다라 하느니라.’
방편이라는 말은 다른 불교 용어와 같이 거의 일상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는 ‘임시방편’의 개념으로 주로 쓰고 있지만 이것 또한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방편이라는 말 자체가 부작용이나 폐해를 일으킬 여지가 없는 방법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을 여는 통로인 www월드와이드웹은 유럽과 미국에서 공동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연구 결과와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기 위해 고안해 낸 ‘방편’입니다. 이것이 지금은 앱Application 이라는 응용 프로그램으로 발전해 초기 컴퓨터의 접속의 어려움을 해소해 버림은 물론 스마트폰으로 컴퓨터를 거의 대체할 수 있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동의하시겠지만. 방안의 붙박이 컴퓨터와는 달리 손안의 성능 좋은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충격이라 할 만한 변화들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페이스북Facebook은 ‘얼굴사진 첩’이라는 뜻 그대로, 하버드대 재학생이었던 마크 저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가 2004년 처음 하버드 재학생과 동창생 전용으로 만들었는데, 불과 수개월 만에 다른 대학들에게도 개방을 하게 되고 급기야 일반인들도 이용하게 된 것 입니다. 페이스북과 유사한 방법으로 다자간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고 관계망을 형성해 주는 서비스를 통털어 SNS Social Networking Service라고 합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 네트워크의 장점은 이용자들의 숫자가 말해주는데, 미국의 경우 인터넷 사용자의 70% 이상이 사용하고 있고, 사용률이 낮은 일본의 경우도 50%는 된다고 합니다. 필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인기관리가 필요한 계층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무료 이용이 가능하고 카카오톡의 경우 밀실에 해당하는 특정 단체방이나 무료 전화 서비스까지 해주니 가입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편한 ‘방편’인 SNS의 심각한 문제들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가입자 신상 유출은 물론 성향과 동선 파악 등이 빅데이터와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을 통한 맞춤 서비스라는 희한한 명분으로, 사용자의 동의 없이 그들의 서버에 저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SNS의 속성상 자극적이고, 과장되고,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이 불분명하고, 출처도 알 수 없는 악의적인 내용들을 단편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사용자들은 사고력 결핍, 판단 장애, 감정조절 장애, 자신의 메신저 반응에 대한 불안 장애 등 인성人性을 무너뜨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온갖 사회문제의 원인이 될 것 으로 보입니다. 오직 SNS를 통해서만 교감이 가능한 사람(거의 가공된 인물들이지만)들과의 대화를 위해, 가족은 물론이고 바로 앞에서 대화하고 있는 상대를 무시하고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모습은 여러분들도 겪으셨을 것입니다.
내친 김에 대놓고는 지적을 피하는 SNS의 폐해를 거론하겠습니다. 실물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주는 글로벌 모바일 인스턴트 메신저업체도 있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메신저의 역할은 부수적인 사업이 되었고, 앱을 통한 택시 호출과 유통 등 전국 규모의, 가능한 모든 분야의 ‘거간꾼’ 역할을 독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관련 사업자들은 이 공룡의 횡포에 저항할 수 없어 막대한 수수료를 메신저 업체쪽에 줄 수밖에 없습니다.
스마트폰의 앱을 통한 모든 사업이 거의 이런 식으로 생산성은 없고 유통을 장악해서 수수료를 챙기는 식입니다. 이것을 4차 산업혁명의 인프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공허한 것은 그런 업체 등도 큰 이익을 남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숨은 승자들은 거의 중독성과 선정성을 내세운 게임업체 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게임업체 빅3의 2017년 매출이 6조 원을 넘었다는데, 매출대비 순이익 비율이 최소 60% 이상이라고 발표되는 것을 보면 황금 알을 낳는 거위 수준입니다.
그런데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 중독을 심각한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게임에 빠져 사망사고가 속출한다는 소식은 ‘질병’이 맞다고 WHO편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슈들도 경제논리에 밀려 규제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관련 연구원들을 동원해 되레 치매에 좋다는 연구와 임상 결과가 있는데 무슨 시대착오적 규제냐고 반론합니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의 도덕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반려견과 10년 넘게 살면 개가 말을 할가능성이 있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방편에 대한 얘기가 너무 멀리 나간 것 같긴 합니다만, 좋은 의미로 시작한 순수한 방편들도 결국은 인간의 욕심에 눌려 ‘돈이 된다면 경제성이 있어 좋은 것’이라는 경제 관점이 염려가 되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독자들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책으로 문자화 해 의견을 남기는 것도 필요하다는 소신을 가지고 노골적으로 거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事]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것이 인因이 되어 다시 인간의 정신[理]에 영향을 줍니다.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화엄경에서는 여러 비유와 사상을 통해 설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사유思惟와 지성이 물질의 발전을 주도하는 기술력에 의한 편리함과 경제성이라는 잘 맞지 않는 논리에 밀려 퇴화해 가는 시작점을 이미 넘어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점이 매우 우려되어서 드린 말씀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기업의 기술력은 따져보면 연구실에 수십 년 틀어박혀 평생을 바치며 기초 과학에 매진하는 순수 과학자들이 이룩한 성과들을 단지 응용하고 상업화하는 데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지적을 화엄경의 가르침에 대비시키면, 승가가 엉터리라고 불교도 엉터리라고 속단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역설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 역시 성법이라는 한 승려의 ‘방편’이라 여겨주시리라 믿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