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6~7년은 된듯 싶다.
어느 해 가을,
동서울 첫차를 타기위해 새벽에 일어나
터미널에 도착하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
빈 의자에 앉아 두리번 거리는데 문옆 의자에
커다란 배낭을 앞에 놓고 참하게 앉아 있는 중년의 여성.
'응? 나처럼 혼자 설악산을 가려는 걸까?'
속초행 버스가 도착하고 차에 오르니
그 녀는 저만치 앞자리에 딸로 보이는 사람과 둘이 앉아 있는게 보인다.
'아~그렇지~ 딸과의 산행이라니...멋지네~'
한계령에서 내리며 휘둘러 보았으나 그 녀는 내리지 않았고
힘들고 쓸쓸한 산길을 땀흘리며 오르고 올라
조금은 늦은 단풍을 구경하며 중청대피소에
약간은 늦은 점심시간에 도착하였다.
간단한 식사를 하러 아래 식당으로 들어서니
뒤늦은 식사를 하는 두어팀이 보이고
앗? 한쪽 귀퉁이에 아침에 보았던 그 녀가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자리를 둘러 보다가 나로선 큰 용기를 내어
슬며시 같은 테이블 끝에 자릴 잡았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도록 딸이 안보이는 것이었다.
(또 다시 용기내어)
" 따님은 어디 가셨어요?"
" 네? 저 혼자 왔는데요?"
"아~그러세요? 아침에 저는 따님인줄 알았어요~ㅎ"
"아~네 ㅎ"
"괜찮으시면 같이 식사해도 될까요?"
"네~뭐 그러시죠~ㅎ"
오색에서 올라온
그 녀의 배낭이 그토록 커보였던 이유는
그 녀가 보통의 체형이 아니란걸 밥을 먹으면서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왜소한 체구의 겉모습과 달리 그 녀는 표정이나 행동이 아주 당당해 보였다.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니 그녀도 대피소에서 1박을 할 예정이라 한다.
식사를 마치고 마치 동행처럼 같이 올라가 방배정을 받고
대청봉 인증을 위해 같이 움직였다.
이런 저런 얘기 중에 사는 동네도 바로 이웃 동네?
설악산정도 산행에서 같은 서울이거나 더구나 이웃동네이기는 쉽지 않은 경우~
아무튼 대피소로 돌아와 자연스레 같이 이른 저녁을 먹고
쌀쌀해지는 바람을 맞으며 이리 저리 산책을 하니 금방 서먹한 기분은 사라지고
마치 원래부터 친구였던듯 대화도 자연스러워 진다.
나의 예정은 대피소 1박 후에 새벽에 일어나 공룡능선을 가려했었는데
그 녀는 천불동 계곡의 단풍을 구경하며 여유로운 산행을
즐기려 하는데 같이 그렇게 하잔다.
(쫌 고민~고민~~콜!)
그리 약속을 하고 대피소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여유롭게 동틀 무렵 일어나 희운각대피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물오른 단풍구경을 하며 휘적 휘적 천불동 계곡을 걸으며
한적한 물가에서 간식을 먹고 사진도 찍으며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편하게 산행을 마쳤다.
여태까지 산행을 하면서 그런 여유를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곤 같이 버스를 타고 동서울까지 외롭지 않게~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저녁시간인데
그 녀는 바로 어딜 가야 한대서 정말 너무 우습게 헤어졌다.
(서울에 도착하니 현타가 와서 급히 도망을 한걸까? ㅎ)
물론 그 후로 몇 번의 연락은 메시지로 주고 받았으나
만나지는 못했었고 약속했던 다음 해 봄날의
설악산 산행도 혼자 했었다.
그 녀도 아직까지 혼자 산행을 하고 있을까?^^
첫댓글 히야~~ ^^ 반듯하고 성실하신 둥실님 다운 담백한 추억담입니다.
단풍이 곱게 물든 알록달록 설악에서
맑은 수채화 같이 담담하고도 설레이는 동반 산행을 하셨군요.
세상은 넓고 탁한 사람들 천지인데
이런 분들 이런 이야기들도 있으니 글 읽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
ㅎㅎ
앵커리지님 덕분에
기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ㅎㅎㅎ
저는 산행은 아니지만
대중교통으로 여행 떠날 때
소설은 아니더라도
둥실님처럼
이런 수필 한 편 정도는
나올 인연을 은근 기다려며
떠나었는데ᆢ
오랜만에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네요
반짝하다 사라그라질
다 닳은 라이타돌같은 열정이라도요 ㅎㅎ
뚝! 건드러줘서 감사합니다
제겐 무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나이들어가며 얼굴이 두꺼워지는 것은 조금씩 늘어나는데
어디 말 붙여 볼 기회는 자꾸만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 푸릇한 감정은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ㅎ
여행에서 이어진 인연이 좀 귀하더라구요
요즘 여행이 잦은 시대에 다녀온 사람들 사연을 들어보면
페키지 여행에서 일정 마칠때까진 그렇게 친했는데
인천공항에 도착만하면 쌩하니 허무하게 헤어진다고 ㅎㅎ
여행이란 특수한 상황과 분위기 탓일까요
전 산행이든 여행이든 홀로 가본적이 없어서
추억이 없어요 헤어질 때 서운하더라도
과정에서 추억이라도 건져보는 일도 없어요
잘읽었어요 ~
늘 땅만 보고 걷는 제겐 특이한 경험이었죠 .
그냥 지나온 날들이 아름답게 기억되듯....그런 ^^
그녀의 아직까지 기억 합니다.
문득 건강하게 잘 사시는지 궁금해 집니다.
정말 특이한 인연이었네요
그냥 그렇게 끝났지만... 그러기에 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었지 않았을까 싶어요
넘 잼있어요
그녀도 잊지 않고 가끔 떠올릴것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아마도 이어지는 인연이 없었기에
깨끗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혼자 떠난 여행에는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어 났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요
저역시도 자유롭게 떠난 여행에서 몇분을 만난적이 있었죠
편하고 부담없는 서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는 그런분들
오랜기억속에 지워지지 않은 그순간들~
어느 해 가을 날 천불동 단풍을 우연히 함께 나눴다는 것 ,
그런 기억 몇 개 쯤은 지니고 살아가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