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2집 축복(촛불)/외로워 마세요(1980)
01-촛불 작사:이희우 작곡:조용필
02-잊기로 했네 작사:정두수 작곡:김영광
03-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작사:오사랑 작곡:허영철
04-인물 현대사 작사:김교식 작곡:김희갑
05-외로워 마세요 작사:박건호 작곡:김영광
06-간양록 작사:신봉승 작곡:조용필
07-오빠생각 작사:최순애 작곡:박태준
08-뜻밖의 이별 작사:정두수 작곡:김영광,박춘석
09-세월 작사:김중순 작곡:김희갑
10-슬픈 미소 작사:유현종 작곡:조용필
11-만나게 해주 작사:정두수 작곡:김영광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1980년은 슈퍼스타 조용필이 탄생한 해였다.
3월에 발매된 공식 데뷔작 [창 밖의 여자/단발머리]는 1960년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1970년대 엽전들의 "미인"처럼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
"창 밖의 여자"와 "단발머리"가 각각 TV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0주 넘게 1위를 고수하고,
이 '중고 신인'과 그의 노래 및 음반이 방송국 주최 연말 가요 시상식들을 휩쓴 것은 40년도 지난 일이지만
당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기억에 생생할 것이다.
TV 쇼 프로그램만 틀면 조용필이 나오던 시절 말이다.
조용필의 공식 2집인 [축복(촛불)/외로워 마세요]는
그와 같은 질풍노도의 인기에 힘입어 데뷔작 발매 후 9개월 만인 1980년 12월에 나온 음반이다.
커버에 드러나 있듯 그해 6월에 있었던 카네기 홀 공연 '기념' 음반이기도 하다.
전작이 밀리언셀링을 기록했고(더구나 공식 데뷔작이었다)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9개월만에 만들어진 음반이라면 사실 그 내용물은 거의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일반적으로 기존 음원들에서 일부를 가져와 1.5집 같은 스페셜 앨범을 지향하거나 전작과
유사한 전술로 밀고 나가는 안전하고도 손쉬운 선택 말이다.
조용필 2집도 그랬을까?
타이틀 곡 "축복(촛불)"은 "창 밖의 여자"에 대응하는 곡이다.
두 곡은 드라마 주제가라는 점과 '극적인' 느낌을 주는 발라드라는 점에서 같다.
결과적으로 '드라마보다 정작 주제가가 더 유명해진 경우'라는점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라면 "축복(촛불)"은 "창 밖의 여자"에 비해 더 동적(動的)이고 '젊은 감성'이라는 점이다.
칼칼한 음색의 일렉트릭 기타와 슬랩 주법의 베이스가 리드미컬하게 박자를 쪼개는 인트로는 짧지만 인상적이며,
저음으로 감싸거나 고음으로 쏘면서 들고 나는 신서사이저도 지금 기준으론 좀 과도하다 싶긴 하지만 매력적이다.
조용필의 인상적인 노래 선율만 기억나는 사람이라면, 사운드가 꽤 참신하다는 느낌이 새삼스럽게 들 것이다.
후반부의 신서사이저 속주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잔영도 머금고 있다.
이 시기 조용필의 창법에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라도 큰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을 만하다.
세 번째 트랙 "간양록"은 전작의 "한오백년"에 대응하는 민요곡이다.
"한오백년"이 전래 민요인 반면,
"간양록"은 사극 작가 신봉승이 가사를 쓰고 조용필이 곡을 만든 창작 민요이다.
악곡은 관습적인 민요를 재구성하는 데 머무르고 있으며 조용필의 절창은 정서의 과잉이 느껴지지만,
'민요 시뮬레이션' 수준에서나마 창작 민요를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한오백년"처럼 밴드의 연주로 민요를 소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축복(촛불)"이 "창 밖의 여자"를, "간양록"이 "한오백년"을 염두에 둔 곡이라면, "단발머리" 류의 곡도 있지 않을까?
물론 있다. B면에 실린 정두수 작사, 김영광 작곡의 "뜻밖의 이별"과 "만나게 해주"가 그런 곡이다.
하지만, "단발머리"와 달리 이 경우에는 성인 취향의 감성이 짙다.
단박에 귀에 꽂히는 트로트 풍의 조용필의 노래를
'나이트클럽의 플로어'에 적합한 뿅뿅거리는 신서사이저와 업템포의 댄스 리듬과 결합했다.
즉 노래 선율은 트로트, 사운드는 트로트 디스코(혹은 뽕 디스코)인 '두 마리 토끼 잡기'인 것이다.
"뜻밖의 이별"은 버스-코러스 부분만 보자면 1990년대 이후 전형적인 업템포 트로트를
연상시키지만 아바(ABBA)와 사랑과 평화를 합친 듯한 전주·간주·후주의 신서사이저 연주와 리듬이 인상적이며,
"만나게 해주"는 슬랩 베이스와 물컹거리는 신서사이저가 뒤엉킨 훵키한 리듬이 인상적이다.
조용필은 "단발머리"에서 보여줬던 하이 톤의 가성 창법을 이번에도 두 곡에서 활용했다.
"단발머리"에서의 창법이 비지스를 염두에 둔 것이었던 반면,
2집 B면에 실린 "외로워 마세요"와 "잊기로 했네"의 인트로 부분은
공통적으로 여성이 부르는 듯한 스캣을 구사한다.
차이점이라면, 스캣이나 전체적인 분위기 면에서 "외로워 마세요"가 성인 취향이 물씬한 반면,
"잊기로 했네"는 '지고지순' 혹은 '동요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잊기로 했네"는 곡 전체에서 조용필의 창법 자체가 꺾기를 자제하고 순수한 느낌을
담으려고 애쓴 흔적이 농후한데, '조용필 레퍼토리' 중 하나인 동요적인 노래의 전조를 보여준다.
예컨대 "친구여" 같은 노래를 예비하는 노래라고 볼 수 있다.
"진정한 2집은 내지 못했다"는 스스로의 자평은 이 음반의 전체적인 평가와 부합한다.
[창 밖의 여자/단발머리]의 구성(세대를 아우르는 상이한 곡들의 조합)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정규 앨범에 어울리지 않게 세 곡은 재수록하기까지 했다.
"창 밖의 여자"와 "단발머리"가 워낙 큰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에 이를 넘어서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작전'이었을 지는 모르겠으나, 이 점을 감안해도 신곡들의 완성도는 기대에 못 미치며
위대한 탄생의 연주 또한 전작에 버금간다고 보기 어렵다.
조용필은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한 앨범에 제 곡이 많이 들어갔다면, 그 다음은 제 곡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
그건 방송이다, 공연이다 해서 도저히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에요.
내가 한 음반에 신경을 쓰면 그 다음 음반은 회사가 신경을 쓰고 그랬어요."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대입한다면,
이 음반은 '조용필은 신경을 많이 못 쓰고 회사(지구레코드)가 신경을 많이 쓴 음반'일 것이다.
실제로 조용필의 자작곡도 "축복(촛불)"과 "간양록" 두 곡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트로트 작곡가로 유명한 김영광의 곡이 네 곡, 김희갑의 곡이 두 곡이다).
그럼에도 타이틀 곡 "축복(촛불)"이 크게 히트하며 조용필 전성시대를 이어나가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도저히 시간적 여유가 없는' 당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이 음반은 '안이한 기획과 기대 이하의 결과'라는 평가를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걸 '서포모어 징크스'라고 부르던가.
<부연>
1. 조용필 공식 1집과 2집은 관현악 세션 없이 기타, 베이스, 드럼, 신서사이저의 밴드 편성으로만 연주되었다.
신서사이저는 관현악 소리는 물론 국악기 소리까지 구사한다.
곡에 따라 관현악 세션을 위한 악단 반주와 위대한 탄생의 그룹 사운드 반주로 분리되기 시작한 것은 3집부터다.
2. 1999년 발매된 CD는 수록곡 순서가 다르다.
또 "단발머리"(경음악)와 "산마을"(건전가요) 대신 동요 "오빠생각"을 수록하고 있다.
3. "축복(촛불)"은 KBS 드라마 [축복]의 주제가이고, "간양록"은 MBC 드라마 [간양록]의 주제가다.
이처럼 드라마 주제가를 삽입하는 것은 조용필 음반들의 전형적 전술 중 하나이다.
1집에선 "창 밖의 여자", 3집에선 "물망초", 4집에선 "꽃바람", 5집에선 "산유화" 등을 수록해 히트시켰다.
4. 음악적으로는 조용필의 노래가 그랬듯 위대한 탄생도 70년대와는 다른 음악을 들려주었다.
이전까지의 밴드에서 기타가 중심이었던데 반해 위대한탄생은 데뷔작인
‘단발머리’(80)와 2집의 ‘촛불’(80) ‘못찾겠다 꾀꼬리’(82)에서 드러나듯 키보드가 중심이었다.
키보드가 2대인 때도 있었다.
“70년대 중후반부터 미국에서는 현에 이어키보드의 중요성이 커졌다.
키보드에 일찌감치 주목한 위대한 탄생은 덕분에 전보다 무게가 실린,
색다른 사운드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게 조용필의설명이다.
확실히 ‘뿅뿅’대는 일렉트릭 드럼과 남성 보컬의 틀을 깬 ‘단발머리’같은 곡은
악기와 보컬이 함께인 밴드 출신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음악이었다.